< 청춘을 즐겨라 (9) >
덴버파크로 들어가는 초입.
자수와 큐빅이 화려하게 박힌 차도르(이슬람교도의 여성이 입는 전통의상)에 검은색 히잡을 머리에 두른 여성 둘이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다.
나이는 이제 15, 17세 정도쯤 됐을까?
꼭 닮은 두 자매는 은연중 드러나는 뚜렷한 이목구비가 누가 봐도 굉장한 미인이 될 상이었다.
“언니, 오늘 여기서 공연하는 거 맞아?”
둘째인 마라타 공주의 물음에 첫째인 나타샤 공주가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주변을 이리저리 기웃거린다.
“응. 내가 확인했어. 여기 맞아. 3시? 중앙 분수대 옆 특설무대에서 한다고 한 것 같은데.”
“그런데, 언니는 도대체 어디 나라인지도 모르는 남자애들이 춤추고 노래하는 게 뭐가 좋다고 이 난리야? 그게 그렇게 재미있나? 알아듣지도 못하는 노래 뭐가······.”
“야! 잔소리 할 거면 그냥 넌 집으로 돌아가! 그리고 네가 아직 덜 커서 잘 모르나 본데, 언니 또래사이에는 한류가 완전 유행이거든?”
언니의 일침에도 동생이 여전히 입술을 삐죽거린다.
“치, 그래봤자 음악이 다 거기서 거기겠지. 외국노래는 난 다 시끄럽기만 하더라. 그리고 어차피 언니는 뭐라고 하는 지 알아듣지도 못하잖아. 한국어? 그거 너무 어려워.”
“야!!!”
나타샤 공주의 눈썹이 확 치켜 올라갔다.
“계속 종알거릴 거면 그냥 버리고 간다?”
“아, 아냐! 같이 가 언니. 조용히 있을게.”
둘째인 마라타가 행여 버림받을 세라 언니 옆에 찰싹 붙어서 베시시 웃는다.
생판 얼굴도 모르는 한국 남자그룹이 공연을 하는 것에는 별 관심이 없지만 언니랑 이렇게 같이 있는 시간은 즐겁다. 마라타가 언니의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가자, 언니!”
*
중앙 분수대 옆에 세워진 야외특설무대.
그 뒤로는 하얀색 대형 천막이 쳐져있다. 출연자 대기실이다. 그 안에서는 열 명이 넘는 사람들이 안에서 서로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두바이 관광청에서 일하고 있는 합세입니다.”
“안녕하세요. 저희는 플레어라고 하는 그룹입니다.”
대표로 내가 인사를 건넸다.
빠르게 영어가 오고가자 다들 꿀 먹은 벙어리가 돼서 눈만 껌뻑인다.
“사고 경위에 대해서는 설명을 들었고, 도착이 예정보다 늦어진다고 들었습니다. 그때까지 대신 무대 위에 서 주신다고요?”
“네.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겁니다. 넉넉잡아 30분정도?”
“저희로서는 감사할 따름이죠. 한국인들은 약속을 무척이나 중시한다고 들었습니다. 오늘 겪어보니 그 말이 정말인가 보군요. 사실 취소되거나 연기했어도 이상할 게 없는 상황이었는데. 제가 여러분이 오프닝 무대를 해주신다는 말을 듣고, 알아봤는데, 지금
한국에서는 아주 유명한 그룹이시더라고요.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이렇게 우리를 위해 배려를 해주시다니.”
“별말씀을요. 같은 회사 선배님들이 곤란하다고 하기에 자그마한 도움을 드리려고 온 것일 뿐입니다. 이 자리에 저희들이 있었던 것 또한 알라의 계시겠지요.”
“역시. 크으~”
합세가 입가에 잔주름을 만들며, 엄지를 치켜든다. 두바이는 대표적인 이슬람국가인데, 알라를 언급해주는 센스 있는 대답에 아주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1시간 정도 남았으니 서둘러 준비해주세요. 필요한 것을 말씀해주시면 저희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도와드리겠습니다.”
“말씀 감사합니다.”
대략적인 인사를 마친 후, 우리는 곧장 무대 메이크업에 들어갔다.
다섯 명의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우리에게 한명씩 달라붙었다. 분칠을 하고, 색을 발라주는 데 쉴 새 없이 그녀들이 아랍어로 떠들어 대고 있다. 간혹 가다가 자기들끼리 작은 웃음을 터트리면서.
“이 사람들 피부 진짜 좋다. 한국 사람이라고 들었는데, 한국 남자들은 원래 이렇게 다 피부가 좋나?”
“생긴 건 또 어떻고. 진짜 잘 생겼다. 내 남친 삼고 싶다.”
여기저기서 ‘나도. 나도’ 하는 소리가 터져 나온다.
“게다가 한국 남자들은 스윗하고, 다정하기까지 하대. 막 설거지도 해주고 그런다던데? 기념일 같은 것도 잘 챙겨주고.”
“진짜? 자상하기도 해라.”
한국 남자들의 칭찬이 더해질 때마다 아이스크림 녹아내리듯 표정이 녹아내린다. 눈앞의 여자는 지금 곧 국제결혼신청서를 낼 기세다. 나를 보고 있는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진다.
듣기로는 여기 있는 아티스트들은 외국 계열사인 뷰티 클리닉인가 하는 곳에서 급하게 데리고 온 이들이라고 하는데, 이슬람국가의 여인들이라고 하면 보수적일 것이라고 하는 고정관념을 확 깨게 만들었다. 나이 연령층은 대략 20대중반 전후.
괜히 아랍어를 알아듣는다고 하면 그녀들이 곤란해질까 봐 그냥 못 알아들은 척 침묵을 지켰다.
메이크업을 끝내고, 우리는 꼬질꼬질해진 옷도 벗어 던지고, 준비된 새로운 의상으로 갈아입었다.
한국에서 입는 화려한 가죽베이스의 무대 의상이라기보다는 흔히 볼 수 있는 점잖은 검은색 계통의 정장이었다.
옆에서 그 모습을 담고 있던 나 피디가 감탄을 내뱉었다.
“와, 이렇게 화장을 하고, 옷 갈아입으니까 완전히 딴 사람 같네요. 아까는 무슨 한국판 거지 떼들 같더니.”
우리는 모두 그 말에 숨죽여 웃었다.
시계를 보니 2시 40분.
리허설 할 시간도 없이 급히 올라가야하는 무대다.
너무나 갑작스럽고, 준비 없이 무대이기는 하지만, 무대 위의 공연이라면 불과 이곳에 오기전날까지도 질리도록 해왔다.
공연 순서는 케리챌에서 불렀던 곡 한 곡과 댄스곡으로 두 곡. 그리고 마지막으로 발라드 곡 한곡까지 총 4곡을 부르기로 했다. 진행자도 있다고 하니까 중간중간 인사 멘트도 넣어주고, 곡 소개도 해주고. 그러면 얼추 30분정도는 끌 수 있을 거다.
긴장된다고 잠시 화장실에 다녀오겠다고 나간 장요한이 눈이 휘둥그레져서 들어왔다.
“형형.”
“왜?”
“밖에 사람 엄청 많은데요?”
애가 넋이 나가있다.
“아니, 도대체 사람이 얼마나 많기에······.”
너나 할 것 없이 입구 쪽으로 다가가 입구천막을 살짝 걷어본 맴버들은 황급히 천막을 닫았다. 몇 걸음 떨어지지 않은 야외관객석에는 이곳 현지인으로 보이는 이슬람인들을 비롯한 세계 각국에서 모인 듯한 관광객들로 빼곡했다.
그걸 확인한 멤버들 얼굴에 전부 장요환과 비슷한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사, 사람 엄청 많은데요? 한 천명쯤?”
“아니, 이천 명은 되어 보이던데.”
“우리 인기가 이 정도였어요? 한국도 아니고 두바인데?”
“프리 마켓열리는 날은 이곳의 축제라잖아! 그리고 정확히는 우리가 아니라 본투비 선배님들을 보러 온 팬들이지.”
갑자기 불안한 표정으로 장요한이 물었다.
“한국에서는 가끔 가수들 일정 취소되든가 연기되든가 하면 앞 무대 서는 가수들 욕먹고, 반응 안 좋고 그러기도 하는데, 여기서도 그럴까요?”
“그, 그럴지도 모르지. 우리는 여기서 완전히 듣보잡, 불청객일 테니까.”
갑자기 자신감이 팍 수그러든 모양이다.
장요한이 다시 한 번 입구 천막을 걷고, 자라목으로 동태를 살폈다. 근처에 있는 몇몇 관광객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우리를 알아보고 함성을 지른다.
“플레어! 플레어!”
황급히 다시 들어온 장요한이 눈을 껌뻑거렸다.
“지금 방금 플레어라고 외친 거 같은데요?”
“나도 똑똑히 들었어.”
“저 사람들이 우리를 알아요?”
김태현이 스마트 폰으로 검색을 한다 싶더니 입을 열었다.
“본투비 선배님들이 트위터에 우리를 언급해줬네요. 두바이 관광청 공식 홈페이지에도 일정변경 건으로 플레어가 올라가 있고. 그래서 그런가 봐요.”
“아······.”
애들 눈이 몽롱해진다.
그때 잠시 보이지 않던 두바이 관광청 직원이 대기실로 들어와서 설명을 했다.
“진행자한테는 일단 상황 설명 드렸어요. 관객들 동요 없게끔 잘 진행해주신다고 하네요. 아, 이제 슬슬 나갈 준비하셔야겠어요.”
시작 5분 전.
직원의 말에 애들이 크게 심호흡을 했다.
*
급하게 제작해온 듯한 대형 현수막이 야외 특설무대 옆에 걸렸다.
‘한국에서 오신 플레어 환영합니다.’
말끔한 양복차림의 진행자가 무대 위로 올랐다.
“사정이 생겨서 한국에서 온 본투비의 공연이 잠시 늦어질 예정입니다. 대신 특별초청으로 어렵게 모신 플레어가 오프닝 무대를 장식해줄 겁니다. 모두 박수로 맞이해주세요. 소개해드립니다. 아시아의 프린스로 떠오르고 있는 한국 가수 플레어! 입니다.”
“플레어? 이건 무슨 그룹이지?”
관객석 가장 좋은 앞좌석 자리를 떡하고 차지한 첫째 나타샤 공주가 핸드폰으로 검색을 해보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한국 가수라는데? 방금 진행자가 그랬잖아.”
“멍청아! 그건 나도 알거든?”
마라타의 대답에 나타샤가 톡 쏘아붙였다.
“내 말은 어떤 장르의 음악을 하는 그룹인가를 물은 거야!”
“어떤 장르? 한국에는 음악 장르가 많아? 그냥 다 같이 나와서 노래하고, 춤추고 그러는 거 아니야?”
“쯧.”
나타샤가 혀를 내찬다.
“이거 완전 음악 무식자구만. 어디 가서 내 동생이라고 하지마라. 창피하니까. 너 K-POP음악 한 번도 안 들어봤지?”
“응.”
마라타의 끄덕거림에 나타샤가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고개를 흔들었다.
“너 보고, 뻑 가지나 마라. 완전 우리가 알던 음악과는 차원이 다른 신세계니까.”
와아아아!
갑자기 터져 나온 함성에 두 공주가 무대 위로 고개를 들었다. 무대 위에는 아시아의 프린스라고 소개받은 다섯 명의 보이그룹이 걸어 나오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플레어입니다. 이렇게 여러분과 인사하게 되어 큰 영광입니다.”
무대 위에서 유창한 영어로 된 인사가 흘러나왔다.
두바이는 아랍에미리트에서 가장 큰 도시로 공식 언어는 아랍어이지만, 두바이는 토후국 인구가 17%수준밖에 안되고, 나머지는 외국인들로 구성되어 있는 독특한 나라다. 그래서 아랍어와 마찬가지로 영어도 대중적으로 널리 쓰이고 있었다.
하얀 피부, 왠지 가까이에서 맡으면 꽃냄새가 날 것 같은 외모. 시원하게 뻑은 기럭지들.
이곳에서는 워낙 많은 인종들이 섞여 살기에 아시아인들은 몇 번 본적은 있지만, 개중에서는 볼만한··· 아니, 훨씬 잘생긴 얼굴들이다.
그리고 쿵! 쾅!
마음을 후벼파는 짙은 드럼과 베이스와 함께 퍼포먼스가 시작되는 순간.
둘째인 마라타 공주는 무대 위에서 시선을 떼질 못했다.
생전 처음 보는 듯한 박력과 사람의 춤사위라고는 볼 수 없는 부드러움이 가미된 절도 있는 동작.
생전 처음 보는 칼 군무와 쿵쾅거리는 음악에 마라타는 생전 경험해보지 못한 뭔가가 속에서 잔뜩 끓어올랐다.
언어는 달라서 뭐라고 떠드는지는 모르겠지만 귀에 쏙쏙 틀어박히는 멜로디와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퍼포먼스만으로도 충분했다.
관객석에 있는 생전 처음 K-POP을 듣는 외국인들도, 그리고 몇 번 K-POP을 들어본 적이 있는 이들도 어깨를 들썩거리며, 박수를 치며 이 순간을 즐기기에 여념이 없었다.
보수적인 이슬람 국가. 그것도 공공장소에서 단체로 춤추고 노래 부르는 장면은 상상키 어려운 것이다.
마라타는 순수하게 감탄했다.
세상에 맙소사.
어떻게 사람의 몸에서 저런 노래와 춤사위가 나올 수가 있는 거지?
첫 번째 곡이 끝나고, 두 번째, 세 번째 곡이 연달아 이어질 때까지 마라타는 아예 홀린 듯 무대 위를 멍하니 쳐다봤다. 아마도 언니인 나타샤가 말을 걸지 않았으면 하루종일 그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뭔가가 어깨를 툭툭 친다 싶어 고개를 돌려봤더니, 언니인 나타샤가 자신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야, 어때?”
“어, 어어어······?”
“어떠냐고.”
한참동안이나 정신을 못 차리고 있던 마라타가 기이한 열기를 눈에 머금은 채 물었다.
“저 오빠들 이름이 플레어라고?”
“어, 맞아.”
“한국에서 온 가수들?”
“한국에서는 저런 가수들을 아이돌 그룹이라고 그래. 어때. 들어보니까 언니 말대로 완전 신세계지?”
“응!”
막 세 번째 곡이 끝나고, 네 번째 곡이 이어지고 있었다.
두 자매는 반짝반짝한 눈이 다시금 무대 위로 향했다.
< 청춘을 즐겨라 (9) > 끝
ⓒ 윤민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