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듀스 나노머신-88화 (88/124)

< 청춘을 즐겨라 (8) >

“여기다! 바로 여기야! 우리가 찾던 곳이!”

“우와, 여기가 천국이네! 형형, 엄청 좋아요! 저기저기, 푸드 트럭도 엄청 많아요. 5디르함? 싼 거 맞죠!?”

“옷도 팔아요. 저기 중고장터 그런 곳인가 봐요! 빨리 구경 가요 빨리!”

덴버 파크안는 이미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북적거리고 있었다.

척 보기에도 여러 각국에서 온 것으로 보이는 관광객들과 현지인들. 숫자를 헤어리다가 포기했다. 한눈에 담기는 인원수만 족히 천명은 넘어 보인다. 두바이에서는 프리마켓이 열리는 기간이 축제라더니 그 말은 사실이었다.

애들이 행복한 표정으로 비명을 지른다. 얼굴에는 흥분과 기쁨의 빛이 어른거린다.

마치 엄청 큰 장난감 가게에 데리고 온 초딩들 같다.

주위를 훑었다. 테마파크 답게, 잘 다듬어진 잔디와 곳곳에 보이는 조형물. 외관을 훼손하지 않고, 최대한 자연 친화적인 파크를 꾸미려는 노력이 엿보이는 곳이다. 잔디로 깎은 대형 낙타가 바로 그런 범주일 것이다.

더군다나 끝도 보이지 않는 엄청 큰 파크 외각 지역에 수십 개는 족히 되어 보이는 천막과 푸드 트럭에서 맛있는 냄새들이 퍼져 나오며 관광객들과 현지인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더군다나 보기만 해도 시원해 보이는 아이스크림과 쉐이크.

애들 말이 맞다. 여기는 천국이다.

“형형, 햄버거랑 감자튀김이 20디르함(5800원)밖에 안 해요! 우와, 햄버거도 엄청 커!”

자석에 이끌리는 철가루 마냥 음식을 파는 트럭 앞에서 두리번거리는 애들은 침을 꼴깍꼴깍 삼키며 음식들을 쳐다보기에 여념이 없다.

꼭 모습들이 굶주린 거지들 같다.

하긴, 올드 수크에서 뭐 하나 건진 것도 없이 걷기만 엄청 걸은 지라 지치기도 지쳤을 거다. 게다가 날씨가 좀 더워야 말이지.

“저건 또 뭐지? 피자? 형형, 피자같이 생긴 것도 팔아요! 가격이······ 어, 근데 좀 비싸다. 40디르함.(11600원) 아, 저거 먹고 싶은데. 우리 저거 하나 사서 나눠 먹으면 안돼요?”

이러고 있으니 마치 연습생 때로 돌아간 것 같다.

그때는 진짜 햄버거 세트를 하나 사면, 감자튀김 먹는 것도 사치라고 생각해서 남겨놨다가 다음날 먹기도 하고 그랬었는데.

내가 웃으면서 말했다.

“먹고 싶은 거 다 먹어도 돼. 첫날 숙박비랑 식사 값 아꼈으니까.”

김태현에게 돈을 받아 쥔 애들이 메뉴를 한참동안이나 의논해서 고르더니, 삽시간에 흩어지며, 음식을 사서 들고 온다.

종이에 둘둘 말려 있는 햄버거와 감자칩, 치킨 한 조각이 큰 종이 박스 안에 나오는데, 치킨을 추가했더니(7250원)이었다.

그리고 박진우가 말한 피자도 사가지고 왔다. 이름은 잘 모르겠는데, 한국에서 먹던 피자와는 모양이 조금 다르다. 이탈리아 피자라기보다는 꼭 느낌이 인도식 야채 피자 느낌이랄까?

인도식 볶음밥도 3개 사왔다. 이건 4디르함씩(1160원).

돈을 손에 쥔 노아가 한참동안 돌아오지 않기에 봤더니, 어떤 아이스크림을 파는 푸드 트럭 앞에서 시선이 고정된 채 침만 꼴깍꼴깍 삼키고 있다.

“먹고 싶어?”

내 물음에 고개를 홱 돌려서 나를 확인한 노아가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거린다.

식탐도 거의 없는 애인데, 저건 되게 먹고 싶은가보다.

하긴, 시원해보이기는 엄청 시원해 보인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주륵주륵 흐르는 날씨에 저런 시원한 게 입안으로 들어가면 좋을 것 같긴 한데······. 가격이 좀 사악하다.

25디르함.

아이스크림 한 개에 가격이 무려 25디르함(7250원)이라니······.

크게 다섯 입정도 베어 먹으면 그냥 없어지겠구만.

“안 돼! 비싸!”

어느새 옆으로 다가온 김태현이 단호박처럼 선을 긋는다. 그리고는 발을 떼지 못하는 노아를 질질 끌고, 미리 선점해놓은 테이블로 끌고 간다.

여러 가지 음식들을 모아놓으니 그럴 듯 했다. 로티랩, 피자, 케밥 슬라이더에 피자에 햄버거와 감자튀김까지. 아, 그리고 보니 마실게 빠졌네. 장요한이 부랴부랴 음료가게에 가서 음료 다섯 잔을 사들고 왔다.

두바이의 전통 음료라는데, 맛이 좀 희한하다.

“타마르 힌디? 라고 하는 데요. 으깬 타마린드를 물에 타 설탕과 레몬주스를 넣어 마시는 음료래요.”

김태현이 어느새 검색을 하고, 설명해준다.

상큼, 달콤한 맛이 함께 느껴지는 데, 레몬 아이스티에 가까운 맛이다.

애들이 배가 고팠는지 사가지고 온 음식들을 입안에 구겨 넣고 있다. 빠른 속도로 음식들이 사라진다.

“얌마! 천천히 먹어. 누가 뺏어 먹냐?”

“네가 뺏어먹을 거잖아! 앗, 피자! 이거 한 조각 남은 거 맞지? 내가 한 조각 더 먹는다.”

“너 벌써 세 조각이나 먹었잖아! 이 돼지야!”

장요한과 박진우가 티격태격하고 있다. 쟤네는 여기까지 와서도 저러네.

햄버거 먹다가 사래가 걸렸는지 노아는 캑캑거리고 있고. 김태현이 자연스럽게 음료수를 집어, 노아의 입에 빨대를 물려준다. 꼭 아들 챙기는 엄마 모습 같다.

그걸 본 내 입가에 절로 흐뭇함이 번진다.

장소와 환경이 바뀌었어도 늘 눈에 담아오던 일상 같은 모습들.

벌써 자신의 할당량을 다 먹어치운 장요한이 나를 보며 재촉했다.

“형, 뭐해요! 빨리 먹고 옷 구경 가야죠!”

*

그 같은 모습들을 조금 떨어진 발치에서 나피디와 메인작가가 흐뭇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확실히 얘네들은 리얼 예능프로그램이랑 궁합이 잘 맞는 것 같네요. 스튜디오에 앉혀 놓고 찍은 거 보니까 영 어색해서 못 봐주겠던데. 지금은 마치 갓 잡아 올린 생선처럼 팔딱팔딱 거리잖아요?”

메인 작가의 말에 나 피디가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스튜디오 촬영은 다 그렇잖아요. 대본대로 외우는 대로만 해야 하니, 몸이 경직되고, 시선처리도 어색해지고, 또 실수라도 하면 어떻게 해야 하나 MC눈치도 보게 되고.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병풍 같은 리액션만 남발하다 끝나게 되죠. 대부분 다 그래

요, 아이돌들이. 걔들은 전문 방송인들이 아니잖아요. 어색한 게 당연하죠. 헌데, 일단 리얼 예능이 개개인의 장점이 잘 살아나게 되잖아요. 대본이 있는 것도 아니고, 누가 시켜서 하는 것도 아니니까 평상시 모습이 자연스럽게 연출이 되죠.”

시청자들이 생각하지 못한 신선한 조합으로 늘 새로운 예능만을 꿈꾸는 나 피디.

플레어와 함께 하는 꽃 청춘을 찍는다고 했을 때 솔직히 우려스러운 부분들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두바이에 온지 이틀째가 된 오늘. 메인작가는 이번 캐스팅이 신의 한수임을 부인하지 않았다.

피자 가지고 티격태격하는 애들을 보고 있는 두 사람의 입가에 보기 좋은 큰형, 큰 누나의 미소가 서린다.

“그런데 다른 프로 볼 때도 느낀 거지만 애들이 사이가 참 좋은 것 같지 않아요?”

“그쵸? 원래 단체 생활을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불만이 튀어나올 수가 있거든요? 가족도 아니고, 생판 모르는 애들끼리 비즈니스 관계로 뭉쳤는데, 사이가 좋기만 하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거죠. 한 이불 덮고 십수 년 산 부부들도 대판 싸우고 나면 이혼을 하네

마네 하는 판국에. 그런데 이 팀은 딱히 그런 게 없어요. 형들이라고 동생들한테 무게 잡는 것도 없고. 그리고 팀내 한명이 너무 잘나가도 잡음 생기고, 뒷말 많아지고 그러는데, 그런 말도 전혀 안 들리잖아요.”

“가만 보면 최강민이 동생들한테 잘하는 탓도 커요. 그 소식 들으셨어요? 플레어는 개인 활동 수입도 그냥 다섯이서 똑같이 n/1로 하기로 한 거?”

나 피디의 말에 메인작가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되물었다.

“진짜요? 요즘에는 엔터테인먼트마다 전부 개인정산으로 돌아서는 추세인데. 최강민 개인수입이 꽤 되지 않아요? 드라마도 찍고, 작곡 수입도 꽤 될 테고.”

나 피디가 정정했다.

“아, 작곡 수입은 빼고요. 그건 나도 잘 모르겠네. 아무튼 그걸 최강민이 먼저 회사 측에 제안했다고 했나 봐요. R&N 매니지먼트 사업부 박호영 팀장 아시죠? 그분이 미팅자리에서 최강민 칭찬을 어찌나 해대던지······.”

“그건 칭찬할 만하네요.”

“아무튼 그런 거 보면 얘가 진짜 볼수록 진국이에요. 적당히 형으로서 책임감도 있고, 동생들도 잘 챙기는 것 같고. 그런 게 자연스럽게 애들과 동화되니까 팀 내 분위기도 훈훈하고. 비주얼도 좋고. 무엇하나 빠지는 게 없네요. 피디 입장에서는 저런 게스트만

나오면 진짜 땡큐죠. 일단 섭외만 시켜놓으면 시청률은 어느 정도 보장이 되니까. 어디서 저런 애가 하늘에서 뚝 떨어졌는지 진짜 신기하다니까요? 아··· 잠깐만요. 전화가 왔네요.”

자신의 핸드폰을 꺼내 힐끔 쳐다본 나 피디가 고개를 갸웃했다. 메인 작가가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

“왜요? 누군데요?”

“박호영 팀장이요. 조금 전에 말했던.”

“그 사람이 왜요? 아, 얼른 받아보세요.”

고개를 끄덕거린 나 피디가 핸드폰을 손에 쥐었다.

“여보세요? 아, 박팀장님. 네네, 네? 뭐라고요!?”

*

사온 것들을 다 먹어치우고, 앉아 있는데, 나 피디가 심각해진 표정으로 다가왔다.

뭐지?

“플레어 여러분. 잠깐 할 이야기가 있는데요.”

“네? 할 말이요?”

“우선 이 전화부터 받아보세요. 한국에서 박호영 팀장님이 전화를 주신 건데, 여러분을 바꿔 달라네요.”

대표로 핸드폰을 받아들고, 귀에 붙였다. 멤버들이 호기심어린 표정으로 내 주위로 다닥다닥 붙는다.

“여보세요? 박 팀장님?”

-어, 강민이냐?

“네, 말씀하세요. 갑자기 무슨 일이세요?”

-다름이 아니고, 혹시 두바이에서 오늘 본투비 공연하는 거 혹시 들어서 알고 있어?

“네. 태현이가 핸드폰으로 검색했다가 우연히 알아냈어요. 그래서 선배님들 응원하려고, 덴버파크에 겸사겸사 와 있어요.”

-아, 그래? 덴더 파크라고? 휴. 이걸 운이 좋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나쁘다고 해야 할지.

갑자기 한숨소리와 함께 뜬금없는 소리가 들려온다.

도대체 이게 뭔 소리야.

“왜요?”

-어제 한국에서 공항 가는 길에 본투비가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아··· 너무 걱정 말고, 큰 사고는 아니니까. 여하튼 그래서 두바이 가는 일정이 조금 딜레이가 됐는데, 거기 도착해도 공연시간까지 간당간당해서 말이야.

“공연시간이 음······ 3시 아니에요?”

-맞아.

시계를 들여다봤다.

1시 20분이다.

-한 실장한테 전화가 왔는데, 이제 애들이랑 막 두바이 공항에 도착했대. 입국 심사받고, 빨리 이동한다고 해도 3시가 넘을 것 같다고 해서 말이야. 어쩌면 그것보다 더 늦을 수도 있고.

“그런데요?”

-혹시 너희들이 무대에 올라가서 시간 좀 끌어 줄 수 있을까? 본투비 단독공연이라 부탁 할 다른 팀도 없고, 그렇다고 마냥 관객들한테 기다리고 있으라고 하기에는 상황이 여의치가 않아서 그래. 너도 혹시 알는지 모르겠지만 이게 두바이 관광청에서 초청받

아서 가는 거라. 너희들만 오케이 해준다면 두바이 관광청에 이야기해보고, 현지 스텝들이랑도 조율해볼까 하는데. 어때? 해줄 수 있겠어?

너무나 갑작스런 제안에 잠시 혼돈이 왔다. 멤버들도 스피커에서 새어나가는 드문드문한 이야기를 들었는지 눈이 커졌다.

“어··· 잠깐만요. 멤버들이랑 상의를 해봐야할 것 같아요.”

-그래, 상의해봐야지. 이게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니까 준비도 안 돼 있고, 당황스럽기도 할 테니까. 어서 상의해봐.

“네, 잠깐만요. 끊지 마세요.”

내가 핸드폰을 내리자, 애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물었다.

“뭐래요? 얼핏 들었는데, 공연 어쩌구 하는 거 같던데.”

“본투비 선배님들 공연 딜레이 될지도 모른다고, 우리보고 잠깐 땜빵 좀 서달라는데? 아, 공항에 탑승하러 가다가 교통사고를 당했대. 다행히 크게 다친 곳은 없는 모양이야.”

잠깐 동안 애들 얼굴이 심각해졌다.

전혀 예측하지 못한 상황이라 당황스럽긴 나도 마찬가지다.

“나 피디님. 이거 어떻게 해야 해요? 프로그램에는 지장 없는 거예요?”

걱정 되서 나 피디에게 물었더니, 오히려 이런 상황을 기꺼워하는 눈치였다.

“이런 의외성 같은 일들이 벌어지면 리얼 예능프로그램이 더 살죠. 저희는 좋아요. 이런 일이 흔히 벌어지는 일들은 아니잖아요. 분명 재미있을 거예요. 하고 싶은 대로 하세요.”

음. 그렇단 말이지.

“어때? 할래?”

애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확인했다.

“이거 좋은 기회 아니에요? 아시아 아이돌 그룹으로서는 두바이에서 처음으로 본투비 선배님들이 공연하는 거였는데, 어쨌든 저희가 그것보다 더 먼저 공연을 하게 되는 셈이잖아요.”

“맞아요. 생각해보니 의미도 있고.”

“최초네요. 최초. 해요. 해!”

김태현을 시작으로 애들이 한마디씩을 던진다. 그리고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좋아.”

내가 핸드폰을 다시 들었다.

“그런데 팀장님. 저희 의상도 형편없고, 메이크업도 하나도 준비가 안됐는데, 이건 어떻게 해요?”

-아, 그건 걱정하지 마. 현지에 우리 스텝도 있으니까 알아서 다 해줄 거야. 그러면 일단 승낙한 걸로 알고 있는다. 알았지?

“네.”

-그러면 우선 한 실장님한테 수락했다고 연락하고, 다시 전화 줄게. 일단 두바이 관광청에도 사정 설명하고, 양해 구해야 하니까.

“네. 알았어요. 그러면 전화주세요.”

-상황 정리하고, 금방 다시 전화 줄게. 아마 한 실장이 전화를 할 거야. 알았지?

“네.”

그리고 10분 후. 다시 핸드폰이 울렸다.

< 청춘을 즐겨라 (8) > 끝

ⓒ 윤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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