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듀스 나노머신-87화 (87/124)

< 청춘을 즐겨라 (7) >

“뭐!? 그게 정말이야!?”

김관수 본부장이 사무실에 앉아 있다 벌떡 일어섰다. 핸드폰을 귀에 딱 붙이고 있는 그의 얼굴을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다친 사람은 없고? 응급차는 불렀어?”

가느다란 신음소리와 함께 굵직한 목소리가 스피커를 타고 흘러나온다.

-네. 사고 신고했고, 보험사랑 응급차 불렀어요. 가해자 차량운전자가 아무래도 술을 먹었나 봐요. 문을 열었더니, 술 냄새가 아주 말도 못 해요. 그냥 가만히 신호 받고 서 있는데, 뒤에서 냅다 박았다니까요?

“이런, 육시랄 같으니. 음주 운전하는 새끼들은 아주 가만 놔둬서는 안 돼. 그나저나 다친 곳은? 너는 전화 통화를 한걸 보니, 죽을 만큼은 아닌 것 같고. 애들은? 누구 다친 애들 있어?”

-다행히 크게 다친 사람은 없는 것 같은데, 지호가 가슴 쪽이 좀 아프다고 하네요. 아무래도 일단 응급실은 가봐야 할 거 같아요. 그나저나 공연은 어떻게 하죠? 아씨··· 하필이면, 이런 중요한 날.”

“야! 지금 공연이 문제야? 얼른 병원부터 가. 너도 너 몸 좀 추스르고. 엑스레이든 CT든 찍을수 있는 건 다 찍어봐. 행여 나중에 문제라도 생기면 그게 더 골치니까. 응급차 오면, 어디 병원으로 가는지 나한테 연락해. 내가 그리 가든가 할 테니까.”

-네. 죄송해요. 본부장님. 괜히 저 때문에.

“네가 뭐가 죄송해. 술 먹고 운전한 그 개새끼가 죄송해 해야지. 일단 병원부터 가봐. 수습은 내가 장팀장이랑 잘 한 번 해볼 테니까. 너무 걱정 말고.”

전화를 끊은 김관수 본부장은 한숨부터 토해냈다.

“잠깐, 지금 내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핸드폰을 주머니에 쑤셔 넣은 김관수 본부장이 급하게 자신의 사무실에서 나왔다.

*

“장 팀장님. 혹시 이 글 보셨어요?”

사무실 여직원이 모니터를 들여다보다가 재미있는 거라도 찾은 표정으로 홍보팀 장선영 팀장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뭐? 기사거리라도 찾았어?”

“본투비 오늘 밤에 두바이 가잖아요. 그래서 기사거리 될 만한 거 더 있나 찾아보다가 발견했는데요? 이거 커뮤니티 연갤에 올라온 따끈따끈한 글이에요. 한 번 봐보세요.”

정선영 팀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여직원의 등 뒤에서 상체를 기울여 모니터를 들여다봤다.

-어느 두바이 재벌이 본투비를 만나게 해주면 15만(약1억5천)달러를 주겠다고 제안.

발리우드 스타이자 유명인들을 연결해주는 회사를 운영 중인 시라즈 닉산은 자신의 트위터에 글을 남겼다. 자신의 고객이 남긴 말 때문이었는데, 그는 자신의 딸이 본투비의 팬임을 자처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15만 달러는 좀 오바 아니에요? 하룻밤 같이 보내달라는 것도 아니고, 그냥 한번 만나주는데?”

장선영 팀장이 피식하고 웃었다.

“두바이라면 가능하지.”

“왜요? 중동 쪽이라 부자들이 많나요?”

“어. 우리나라 부유층들과는 비교조차도 안 될 갑부들이 태반이야. 오죽하면 거지들도 하루 구걸로 300만원씩 번다는 소리가 나올까?”

직원 눈이 휘둥그레진다.

거지가 구걸해서 하루 동안 버는 돈이 자신의 월급보다 훨씬 많다. 이직을 고민하는 진지한 직원의 표정에 장선영 팀장이 웃는다.

“그리고 그런 팬들 덕에 우리 같은 사람들이 밥 벌어먹고 사는 거야. 팬이 있어야 연예인들이 돈을 벌고, 그 돈이 우리 월급으로 들어오는 거니까. 일단 그 내용 사실 확인해보고, 사실이라면 홍보기사로··· 쓰기에는 조금 뉘앙스가 그러니까. 아는 기자 통해서 대신 써달라고 해. 오늘 기사 적어도 다섯 개는 더 내보내야하는데, 소스가 딸리니까. 아직 중동 쪽은 인식이 한류가 뚫고 들어가기에 좀 두꺼운 벽 느낌이 있는데, 저런 기사가 자주 나가야 한국 아이돌그룹이 중동에서도 먹혀 들어가고 있다는 걸 알지.”

“네. 금방 알아볼게요!”

여직원이 전화기를 붙잡고 있는 사이, 벌컥 사무실 문이 열렸다. 누가 들어오나 싶어서 봤더니 김관수 본부장이 이맛살을 찌푸리며 들어오고 있었다.

“어라? 본부장님이 이 시간에 웬일이세요?”

왠지 직감적으로 좋지 않은 일이 터졌음을 느낀 장선영 팀장이 물었다.

김관수 본부장이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터졌지.”

“도대체 무슨 일이 터졌길래 표정이 그렇게 안 좋으세요?”

“한 실장한테 좀 전에 전화 왔는데, 본투비 공항 가는 길에 교통사고 났대.”

툭 던진 한 마디의 말이 장선영 팀장과 홍보팀 전체를 얼려버렸다.

사고회로까지 같이 언 듯 장선영 팀장 얼굴이 경직 됐다가, 이내 풀어지며 숨을 토해냈다. 뾰족한 음성이 그녀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네에? 교통사고요? 크게 다쳤대요?”

“어떤 술먹은 개님이 뒤에서 들이 받았나봐. 응급차 불러야 될 정도이긴 한데, 다행히 다들 사지육신은 멀쩡하대. 그나저나 이제 곧 기자들이 냄새 맡고, 추측성 기사 엄청 쏟아낼 거 같은데, 그 전에 입장 정리해서 발표 준비해야 할 것 같아서 알려주려고 급히 왔어.”

“이런 미친. 어떤 미친놈이 정신머리 없이······!”

거품 물고, 침을 튀긴 장선영 팀장이 이내 라마즈호흡을 하듯 숨을 들여 마셨다 내뱉는다. 입가에 경직된 미소를 머금고 미간을 피며, 반복적으로 입술을 달싹였다. 뭔가 싶어 봤더니 ‘바르고 고은 말. 바르고 고은 말.’을 중얼거리고 있다.

김관수 본부장이 장선영 팀장을 어처구니없다는 듯 빤히 쳐다봤다. 그녀가 여전히 라마즈호흡을 하며 말했다.

“분노조절 장애 올까 봐 관리중이에요. 회사 일을 하다 보니 성격이 나빠지는 것 같아서.”

이내 좀 차분해진 그녀가 말을 이었다.

“그나저나 타이밍이 너무 안 좋은데요? 하필 공항 가는 길에······ 그것도 가벼운 접촉사고도 아니고, 응급실에 갈 정도라면. 기자들 금방 냄새 맡고 달려들 텐데.”

“그러니까 내가 수습해보자고 장 팀장한테 온 거지.”

서 있는 자세에서 한 손으로 턱을 괴고, 생각에 잠시 잠긴 장선영 팀장이 물었다.

“다른 건 몰라도 두바이 공연 건이 조금 곤란해지겠는데요? 그쪽에다가도 미리 연락해줘야 하는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미치고 팔짝 뛰겠다는 거 아니야. 일정을 넉넉하게 잡은 것도 아니고, 거의 무박 2일 일정에 호텔 체크인 했다가 오후 때 체크 아웃해서 바로 그날 무대 올라가야하는 일정인데. 입원이라도 하게 되면 무조건 펑크야. 그렇다고 몸이 생명인 연예인인데, 몸 상태 안 좋은 애들 그냥 비행기 태워서 보낼 수도 없고.”

그때 손에 쥐고 있던 김관수 본부장의 핸드폰을 진동을 했다.

“아, 전화 왔다.”

화면을 들여다본 김관수 본부장이 반색을 했다.

“정실장이야.”

“뭐해요? 어서 받아요!”

“아, 알았어.”

허둥거리던 김관수 본부장이 핸드폰을 귀에 딱 붙였다.

“여보세요? 어, 정실장? 어떻게 됐어?”

-한일병원으로 가는 중인데요. 선호가 갈비뼈 골절이 의심되고, 나머지 애들은 다 괜찮은 거 같아요. 한 10분이면 도착할거 같은데요?

“한일병원? 알았어. 나도 지금 바로 출발할게. 기자들은? 혹시 냄새 맡은 기자들은 있어?”

-아직은 없는 것 같아요. 그래도 응급실 들어가면 말 퍼지는 건 시간문제라······. 그나저나 두바이 일정은 어떻게 하죠? 아무래도 캔슬해야겠죠?

“일단 그거는 엑스레이랑 CT촬영부터 해보고 결정하자고. 괜히 애들 상태도 안 좋은데, 무리시켰다가 몸 망가지면 안 되니까.”

-네. 알았어요.

“그럼 끊어. 30분정도쯤 걸릴 테니까. 무슨 일 생기면 즉각 전화주고.”

-네.

“뭐래요? 큰 부상은 아니래요?”

전화를 끊기가 무섭게 장선영 팀장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물었다. 그 뒤로 직원 셋이 달라붙어 미어캣처럼 고개만 빼죽 내밀고 있다.

“다행히. 큰 부상은 없대. 선호 정도만 갈비뼈 골절? 뭐, 아무튼 내가 일단 가볼 테니까 공식입장표명할 기사 미리 써놓고 있으라고. 병원 들어가는 거 보면 개인 트위터나 SNS에 글 올리는 일반인들 분명히 있을 테니까. 글 한 번 올라오기 시작하면 퍼지는 건 순식간인 거 알지? 아마 확인 전화도 엄청 올 거야.”

“알죠. 퇴근은 애초에 그른 것 같고, 오실 때 야식이나 좀 사 와주세요.”

김관수 본부장이 장선영 팀장의 어깨를 툭툭 두들겼다.

“알았어. 올 때 맛있는 거 사가지고 올 테니까 수고 좀 하고 있으라고.”

*

30분 후.

홍보팀 사무실. 첫 번째 전화벨이 울렸다.

“슬슬 시작하려나 보네.”

고개를 흔든 장선영 팀장이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R&N 언론홍보팀 장선영 팀장입니다. 네네, 사고 사실은 맞는데요. 아직은 성급한 보도 자제해주세요. 큰 부상은 없지만 혹시나 모를 미연의 방지로 인해 병원에서 검사 중이예요. 네에에에-? 저희 측 매니저가 술을 먹고 운전한 게 아니냐고요? 아니, 김 기자님. 누구 인생 말아먹게 할 일 있어요? 술은 상대 쪽 운전자가 마신 거고, 저희는 그냥 제자리에 서 있다가 받힌 거라니까요? 아무튼 사실 확인 끝나는 대로 공식 발표할 테니까. 그때까지 기다려주세요. 괜히 이상한 기사 내보내서 이미지 훼손되면, 저희 측에서도 진짜 가만히 안 있을 테니까. 아셨어요!?”

쌍심지까지 치켜든 장선영 팀장이 전화를 끊자 뒤에 있던 여직원 한명이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누군데 그렇게 세게 나가세요?”

“있어. 김현성 기자라고. 예전에 홍정훈 배우가 상습적으로 호텔에 콜걸을 불러서 즐긴다고 소설 써 재낀 놈.”

“아. 저도 기억나요. 그 기레기요? 와, 아직도 기자 생활하고 다닌 데요? 그때 그냥 확 고소미를 먹였어야 했다니까요.”

*기레기는 '기자'와 '쓰레기'의 합성어로 대한민국에서 허위 사실과 과장된 부풀린 기사로 저널리즘의 수준을 현저하게 떨어뜨리고 기자로서의 전문성이 상당히 떨어지는 사람.

“그럴걸 그랬나봐. 아무튼, 아······.”

동시에 홍보팀 사무실 벨이 일제히 울리기 시작했다.

“······드디어 시작됐네.”

장선영 팀장이 손뼉을 치며 소리쳤다.

“자자, 다들 침착하게. 일들 하자고. 일.”

*

“다행히 검사결과 별다른 이상 징후는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김선호씨는 초음파 검사로 시행한 결과 갈비뼈 미세골절 소견이 보입니다. 큰 무리만 하지만 않는다면 4-5주면 충분히 회복 하실 겁니다.”

“직업이 댄스 아이돌인데, 춤을 추면 안 되겠죠?”

한실장의 물음에 담당 의사가 웃으며 대답했다.

“아무래도 격렬한 춤 같은 걸 추면, 상체 쪽에 무리가 가겠죠? 일상적인 생활에는 무리가 없으니 너무 걱정 마세요.”

“네.”

한 실장이 대답했다.

일단 한시름은 놓았다. 멤버들 중 크게 다친 녀석은 없다니.

가해자는 아직도 술에 덜 깼는지 병원에서도 해롱해롱 거리고 있다. 사고 현장에서부터 쫓아온 경찰도 들락날락하고 있고.

“어. 한 실장!”

김관수 본부장이 급히 응급실로 들어왔다.

“괜찮아?”

“다행히 큰 문제는 없대요. 선호만 갈비뼈 골절이고.”

“너는 인마. 너는 괜찮냐고?”

“저야 뭐······.”

김관수 본부장이 한숨을 내셨다.

“휴, 이만하길 천만 다행이다.”

“그나저나 본부장님.”

가느다란 미소를 지어보인 한 실장이 주위 눈치를 보다 은근한 어조로 말했다.

“두바이 건은 어떻게 해요? 상황이 이런데. 어차피 예약해놓은 비행기는 못 탈 것 같고. 제가 혹시나 해서 알아봤거든요? 3시간 후에 떠나는 비행기가 있긴 하던데.”

김관수 본부장이 기가 차다는 표정으로 한 실장을 쳐다봤다.

“너도 참. 누가 매니저 아니랄까봐 이 와중에도 스케줄 걱정을 하고 있냐?”

“그게 제 일이잖아요. 애들도 되게 가고 싶어 해요. 빨리 퇴원해서 지금 공항에 가면 얼추 공연시간 전에는 맞춰서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좀 늦지 않을까?”

“호텔에 안 들렸다가 바로 행사장으로 가면 되요. 애들이 피곤하긴 하겠지만.”

대충 시간을 짐작해본 김관수 본부장이 까실까실한 턱을 쓰다듬는다. 이내 눈매가 가늘어진다. 비뚜름해진 시선으로 고개를 기울인 김관수 본부장이 한 실장을 쳐다보며 물었다.

“······그런데 애들이 가고 싶어 한다고? 호텔도 못 들릴 정도로 촉박한 일정인데?”

“네. 이미 얘기 끝났어요. 게다가 두바이는 처음이잖아요. 한국의 남자 아이돌로서 그곳에서 초청받아 공연하는 것도 의미가 크고요.”

“그래? 애들도 이제 다 컸네. 그런 것까지 생각하는 걸 보니.”

김관수 본부장이 잠시 생각한 표정을 짓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일단 애들하고 이야기 좀 해 볼 테니까. 장 팀장한테나 전화한통 넣어줘. 걔가 너 걱정 많이 하더라.”

“이미 통화했어요. 돌아올 때 기념품으로 낙타 열쇠고리 사오는 걸로요.”

“낙타? 웬 낙타? 아, 거기 사막 액티비티가 유명해서?”

말을 하다만 김관수 본부장이 껄껄하고 웃는다. 한 실장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갑자기 왜 웃으세요?”

“아, 갑자기 뭐가 생각나서. 지금 꽃 청춘 찍는다고 두바이에 가 있는 애들이 있거든.”

“누구요? 아, 플레어요?”

“어. 걔네는 지금 촬영 잘하고 있나 몰라. 밥이나 먹고 다니는지 모르겠다.”

< 청춘을 즐겨라 (7) > 끝

ⓒ 윤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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