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춘을 즐겨라 (6) >
갑자기 지목 당한 코디가 얼굴 빛이 붉어지며, 발을 동동 구른다.
“어머, 저 방송에 나가는 거예요?”
“얼굴 팔리시는 게 싫으시면······.
“아뇨!!!”
말이 끝나기도 전에 말허리를 자르고, 들어왔다.
“좋아요. 완전 좋죠!”
나 피디가 손짓을 하자 코디가 여지껏 보여준 적 없는 기이한 열기를 얼굴에 머금고 카메라 앞으로 나섰다. 스텝들이 음지에 숨어서 활동해야한다는 말은 옛날 말이다. 최근에는 매니저든 코디든 담당 연예인들과 케미만 잘 맞으면 적극적으로 프로그램에 참여시키고 있다. 시청자들은 늘 새로운 얼굴에 목말라하니까.
간혹 그렇게 출연한 이들이 의외의 재미를 줄 때가 있는데, 그럴 경우 곧장 예능 블루칩으로 떠오르기도 한다. 그런 식으로 본격적으로 방송 활동을 하는 이들도 적지 않게 있고.
“5분 정도는 오차 범위로 정답으로 인정해드리도록 할게요. 코디네이터분은 잠깐 자신의 소개를 해 주시겠어요?”
코디가 자신에게 향해져있는 카메라 3대를 보며, 두리번거리며 물었다.
“어딜 봐요? 이쪽요?”
“네, 정면에 있는 거요.”
갈팡질팡하던 눈동자가 정면 카메라 앞에서 멈춰 섰다. 경직되어 있는 그녀의 입 꼬리가 올라갔다. 어색한 웃음과 함께, 익살스럽게 손가락이 브이자를 그린다.
“안녕하세요. 플레어의 코디네이터 이숙자입니다. 엄마 나 티비 나왔어!”
여기저기서 숨죽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이윽고, 제작진 측에서 나온 태블릿 하나가 그녀에게 건넸다.
“이걸 이용해서 검색을 하시고, 문제를 내주시면 됩니다. 그냥 편하게 아무 포털 사이트에다가 검색해서 내고 싶은 나라의 도시를 말하면 돼요. 맞추는 사람은 손을 들고, 정답을 외치고, 대답을 하면 되고, 문제는 총 다섯 번을 내주면 돼요. 다섯 번을 먼저 맞추는 사람이 이기는 겁니다. 다들 아셨죠?”
코디가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며 우리를 향해 앙증맞은 주먹을 움켜쥐었다.
“플레어 화이팅!”
숨을 고른 뒤, 그녀가 첫 번째 문제를 냈다.
“첫 번째 문제 갑니다! 음······ 런던의 현재 시각은?”
“정답!”
문제가 나오기가 무섭게 이승훈 조연출이 손을 들었다.
“너무 쉽네요. 현재 런던의 시각은 오후 12시 39분입니다.”
“정답이라면 정답이라고 외쳐주시면 됩니다.”
나 피디의 말에 코디가 고개를 끄덕거리며 대답했다.
“네. 어··· 정답입니다!”
희비가 교차한다. 제작진 측에서 작은 함성이 터져 나왔다. 이승훈은 주먹을 말아쥐고, ‘예스.’를 외쳤다.
“두 번째 문제 갑니다. 상파울루의 시간은?”
말 떨어지기가 무섭게 이승훈의 손이 또 다시 올라간다.
“정답! 오전 10시 45분.”
“정답입니다.”
실로 번개 같은 속도다. 해당 도시의 시간을 설사 안다고 하더라도, 계산하는 데 시간이 꽤나 소요될 텐데, 마치 90 빼기 30은 뭐죠? 네, 정답은 60입니다. 하는 느낌이랄까.
멤버들은 하나같이 입술이 붙어 있는 마냥 입도 못 떼고 움찔거리고 있다. 조연출이 정답을 외칠 때마다 얼어붙은 표정을 짓다가, 정답이라는 외침이 나올 때마다 한숨만 내쉰다.
“형, 어떻게 좀 해봐요. 우리 이러다가 진짜 지겠어요!”
눈치를 보던 코디가 우리 쪽을 쳐다보며, ‘이번에는 꼭 맞춰요. 쉬운 문제에요.’라고 입술을 달싹였다.
그래도 가재는 게 편이라 이거지.
눈빛이 간절하다. 물론 그 염원이 눈에 힘을 주고 있는 멤버들만큼 하겠냐만은.
“세 번째 문제. 현재 서울의 시간은!”
귀를 쫑긋거리고 있던 노아와 김태현이 벼락같이 손을 들었지만······ 아쉽게 간발에 차이로 제작진 측 막내작가가 더 빨랐다. 막내작가가 눈치를 보며 입을 뗐다.
“새벽 3시 2분이요.”
“정······답입니다.”
정답을 말하는 코디의 목소리에 안타까움이 묻어나온다. 애달픈 시선이 우리에게로 향한다. 밥을 떠먹여줬는데도 이것도 못 받아먹느냐는 뭐, 그런 무언의 시선이겠지.
아깝긴 아깝다. 방금 건 손만 빨리 들면 맞출 수 있는 문제였는데.
조급함을 보이는 멤버들과는 달리 여유로워 보이는 내 표정을 읽고는 나 피디가 물었다.
“최강민씨. 아예 포기하신 거예요?”
“왜요. 그래 보여요?”
“사람이 지나치게 자신감이 있어 보이니까 하는 소리죠. 지금이라도 졌다고 인정을 하시고, 항복 선언을 하면 조금 선처해드릴 수는 있는데.”
“진짜요? 어떻게요?”
가장 큰 불안증세를 보이던 노아가 혹해서 물었다.
“스카이다이빙에서 번지점프로 바꿔 드릴게요. 어때요? 이 정도면 크게 선심써드리는 거예요.”
그 제안을 들은 노아가 고뇌에 찬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본다. 혹시 방금 그 말에 혹 한건가?
그 모습을 보고 있는 나 피디의 눈매가 웃고 있다. 이 상황이 무척이나 재미있는 것 마냥.
그래, 실컷 웃어라. 웃을 수 있을 때.
내가 노아의 어깨를 툭툭 두들기며 안심시켰다. 들릴까 말까하게 작게 속삭였더니, 노아의 눈이 커졌다.
“기다려봐. 스카이 다이빙이든 번지점프든 높은 곳에서 뛸 일은 없을 테니까.”
“진짜요?”
“어.”
노아를 안심시키고는 영삼이에게 조용히 물었다.
-이거 문제 맞출 수 있지?
물론 될 거라는 건 알지만 혹시나 만에 하나라는 게 있으니까.
-초 단위까지도 가능합니다.
역시나.
-알았어.
“모스크바 현재 시간은요?”
코디의 문제가 이어지고, 내가 손을 들었다.
“오오, 최강민씨가 제일 빨랐어요.”
놀리는 듯한 나 피디의 음성이 들려온다. 실낱같은 기대감과 의구심을 잔뜩 품은 시선들이 다닥다닥 들러붙었다.
“오후 3시 45분이요.”
코디가 자신이 들고 있는 태블릿을 쳐다보고는 환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여지껏 봤던 얼굴중 제일 밝은 얼굴이다.
“맞아요. 정답이에요!”
이승훈 조연출이 아쉽다는 듯이 이맛살을 찌푸리며, 자세를 고쳐 잡는다. 표정을 보니 알긴 알았나보다. 역시 만만하게 볼 상대는 아니구나.
다음 문제로 이어졌다.
“암스테르담의 시간은?”
“오후 1시 50분.”
“앙곤의 시간은?”
“미얀마의 수도네요. 오후 7시 16분?”
“산호······.
“코스타리카 수도 말하는 거죠? 오전 4시 36분요.”
내가 말하는 건지 영삼이가 말하는 건지 이젠 나도 헷갈린다. 그냥 문제를 들음과 동시에 손이 자동으로 올라간다.
기가 질린다는 듯 이승훈 조연출이 나를 쳐다보고, 나 피디는 물론 제작진들이 어이없어 하는 표정을 짓고 있다.
순식간에 4문제를 연달아 맞추자, 나 피디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최강민씨. 갑자기 왜 이렇게 잘 맞춰요? 혹시 컨닝하고 있는 거 아니에요?”
이 양반이 독심술을 배웠나.
“에이, 그럴 리가요.”
속말과는 다른 능청스러운 대답이 튀어나왔다.
“그게 아니라면 두 분이서 텔레파시라도 하는 거 아니에요? 그런 게 아니라면 갑자기 왜 이렇게 잘 맞춰요?”
따가운 시선을 외면한 채 옆을 봤더니 이승훈 조연출은 기합을 잔뜩 불어넣고 있다. 마지막 문제만큼은 꼭 맞추겠다는 의지를 보인다.
“마지막 문제입니다! 캐스······”
“오전 8시 47분.”
“저, 정답!”
나 피디가 기가 차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캐스······ 뭐요? 그것만 듣고 어떻게 맞췄어요? 그런 도시가 있긴 해요?”
“캐스트리스. 북아메리카 카리브해 동부에 있는 입헌군주국이잖아요. 세인트루시아의 수도.”
제작진 측 한명이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코디 옆으로 다가가더니 고개를 기울여 태블릿을 확인했다. 그리고 놀랍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피디님. 최강민씨 말이 맞는데요? 있어요. 그런 도시가.”
“우와······!”
뒤늦게 비명이 터진 애들이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하고 있다. 저건 결코 예능 리액션이 아니다. 진짜로 좋아하고 있는 거다.
“저희가 이긴 거 맞죠?”
나 피디가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고는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우리가 빤히 쳐다보자 작은 한숨을 내쉬고는 한발자국 앞으로 나서, 우리 쪽을 향해 오른손을 치켜들었다.
“마지막 라운드는 플레어의 승리입니다. 따라서 플레어 대 제작진 팀 경기는 2대1로 플레어의 승리로 돌아갔습니다.”
승리선언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제작진 측에서 단어 하나가 불쑥 튀어나왔다.
“피디님 그런데 3000CC차······.”
“쉿.”
카메라 감독이 조용히 입술 위로 검지를 올렸다. 뒷말은 새어나오지 않았다. 말을 하던 이가 슬그머니 아랫입술을 먹으며, 나 피디의 눈치를 살핀다.
나 피디는 얼굴을 떨구고 있었다. 사약그릇을 앞에 둔 사형수 마냥.
그 모습을 카메라가 담는다.
여기저기에서 웃음을 참는 소리가 들려온다.
스텝들의 반응을 보아하니, 게임을 하는 과정은 잘 찍힌 것 같다.
내가 생각해도 나쁘지 않다. 누가 봐도 우리 팀이 질 모양새였는데, 막판에 역전을 해서 예능적 재미도 살려냈고, 또 나 피디가 이 난관을 어떻게 헤쳐 나갈지에 대한 새로운 관점 포인트도 잡았으니까.
이젠 나도 궁금하다. 이번에는 나 피디가 또 뭔 억지를 부리며 걸고 넘어질지.
사실 나 피디가 차를 사줄 거라는 기대는 손톱만큼도 없다.
만약 방송 같은데서 차 같은 걸 걸고, 진짜로 내기나 도박을 한다면 우리가 가야할 곳은 예능시상식장이 아닌 경찰서가 될 테니까.
“피디님 차는 제렝시스로 부탁드려요. 검은색으로. 괜찮으시죠?”
그래도 예능인데, 약 올리는 것 정도는 해줘야지.
작은 웃음소리와 함께 카메라 감독의 어깨가 들썩 거렸다.
*
두 번째 날.
우리는 호텔에서 조식을 챙겨먹고, 이른 아침에 나왔다. 호텔에서 쉬는 것도 좋지만 그래도 여행을 왔으니, 여행답게 놀아봐야지.
우선은 시장에 가서 옷부터 살 계획을 짰다. 그리고 속옷도.
벌써 하루 동안 옷을 안 갈아입고, 그대로 있었더니, 씻어도 몸이 찝찝하다.
꽃 청춘 출연하면, 돈 이외 아무것도 안준다더니, 그 말은 진짜였다. 그래도 속옷정도는 줘도 상관없지 않나?
“여기에 현지 전통시장이 있대요. 관광객들은 필수로 들리는 코스라니 한번 가 봐요.”
김태현이 열심히 검색을 해서 쇼핑 루트를 짰다. 올드 수크를 들렸다가 스파이스 수크, 골드 수크까지 탐방하는 걸로.
설마 세군데 돌아다니면 저렴하고, 예쁜 옷···까지는 아니더라도, 쓸 만한 한 벌 정도는 살 수 있겠지. 그나마 다행인건 댄스가수들이라 신발이 운동화인 게 천만 다행이다. 구두를 신고 돌아 다녔다고 생각하면······.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두바이의 전통 시장이라 불리는 올드 스쿠에 들어가니 입구부터 화려하고, 화사한 옷감들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관광지이기는 하지만 토속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그런 곳이었다.
우리는 저절로 구경꾼 모드가 돼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형, 여기는 흥정 빨이래요. 흥정만 잘하면 돼요!”
노아가 안 보이기에 둘러봤더니, 어떤 상점에 안에서 실크로 만든 스카프를 목에 두르고 있다.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여성이 스카프를 두른 노아를 보며 헤실헤실 웃고 있다.
“자밀! 자밀!”
저건 예쁘다는 뜻인데.
가격표를 보니 50디르함이다. 세상에 맙소사, 저런 천 조각이 145000원이라고?
한국에서라면 모를까. 지금은 먹고 죽을 래야 돈도 없다. 그 돈이면 속옷이 5장이다.
김태현이 노아를 질질 끌고 나왔다.
그런 노아를 보는 상점주인의 아쉬움 섞인 눈빛이 덕지덕지 붙는다.
그 후로도 돈 냄새를 맡은 상인들의 호객행위가 어마어마하게 따랐다.
마치 쌍팔 년도의 이태원거리를 연상케 했다.
우리가 지나간 곳마다 주위 사람들의 시선이 우리에게로 쏠린다. 상인들은 물론 관광객들까지도 우리와 지나치면 꼭 한번 씩은 힐끔거리며 쳐다본다. 길쭉하고, 훤칠한 남자 다섯 명에서 다니니까 자연스럽게 시선이 모이는 거다.
더군다나 카메라까지 따라다니고 있으니, 어디 아시아의 연예인인가 싶은 거겠지.
“노아야. 노아야?”
잠깐 한눈을 팔았더니, 여지없이 이름 모를 상점 안에 끌려 들어가 있다.
이번에는 바지인지 치마인지 구별 안 되는 걸 허리에 휘감고 있다.
저건 스카프보다 더 비싸다. 90디르함이다.
눈이 동그라져가지고 호기심 많은 토끼처럼 이리저리 보는 노아는 상인들의 가장 좋은 먹이감이었다.
“정신 차려! 여기는 눈뜨면 코 베어가는 곳이야! 서울보다 더해!”
코까지는 아니어도 돈은 순식간에 사라지겠다.
김태현이 또 급히 노아를 끌고 나온다.
“형, 여긴 다 좋은데, 너무 비싼 거 같아요.”
물가가 서울보다 비싸더니, 그 말은 사실이었다. 물건을 사려고 돌아다녀보니 체감이 확 느껴진다. 괜찮은 옷을 하나 사려면 70-100(약 2만원-3만원)디르함을 줘야하니, 한 벌도 아니고 다섯 벌이나 사려면 돈이 감당이 안 된다.
이대로라면 스파이스 수크나 골드 수크를 가봤자 옷은 살수 없을 거라는 불안감에 휩 쌓일 무렵, 핸드폰에 얼굴을 박다시피 걷고 있던 김태현이 뭔가를 발견한 표정으로 흥분에 싸여, 소리쳤다.
“형형, 덴버파크에서 엄청 큰 프리마켓이 열린다는데, 거기서 옷 같은 것도 팔지 않을까요? 여기서 거리도 가까워요!”
“그래?”
조금 더 들여다본 김태현이 말을 이었다.
“여기서는 일반인들도 물건을 사고, 팔고 그럴 수 있나 봐요. 1년에 한 번씩 열리는 축제 같은 건데. 볼거리도 많고, 먹거리도··· 어? 여기서 행사도 하는 것 같은데요? 두바이 관광청 초청으로 가수도 온다는데요?”
“가수? 누구?”
“본투비요.”
“우리나라 그 본투비? 본투비라면 우리회사소속 선배님들이잖아?”
“네. 기사가 있는데요? 사진도 있고.”
핸드폰을 보니 그 말이 진짜였다.
그걸 본 장요한이 난리법석이다.
“우와. 요즘에 해외투어 다닌다고 하더니, 두바이까지 진출했나 보네. 잘됐다. 형, 우리 선배님들 응원가요!”
< 청춘을 즐겨라 (6) > 끝
ⓒ 윤민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