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듀스 나노머신-83화 (83/124)

< 청춘을 즐겨라 (3) (수정) >

“형형, 이거 진심이에요? 호텔? 우리 호텔에서 묵어요?”

“저희 100만원밖에 없어요. 이걸로 호텔은 도저히 무리 같은데요? 저희 컨셉이 혹시 욜로예요. 오늘만 살고, 내일은 죽자. 뭐, 그런 건 아니겠죠?”

그랜드 렛다트 호텔로 들어가는 이전 표 앞에서 잠시 정차하고 있는데, 김태현과 박진우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묻는다.

장요한과 노아는 아직도 사막 탈출의 여파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핼쑥한 얼굴로 멍 때리고 있고. 땀범벅인 얼굴에 모래까지 뒤집어쓰니 얼핏 보면 부랑자 집단 같다.

내가 마른 입술을 핥으며 대답했다.

“있어봐. 나한테 생각이 있으니.”

전후사정 이야기해주면서 속 시원하게 궁금증을 해결해주고 싶지만 그게 안 되니 답답하긴 나도 마찬가지다.

그걸 지켜보고 있던 VJ가 급히 핸드폰을 귀에 붙였다. 처음 기획과는 너무나도 어긋나고 있는 플레어의 행보에 이쪽은 이쪽 나름대로 비상이다.

“나 피디님. 지금 큰일 났어요!”

-큰일은 무슨! 왜? 지금 어딘데?

“지금 저희 시내에 있는 호텔에 와있거든요?”

통화너머로 깜짝 놀란 음성이 전해져 온다.

-호텔!? 벌써 사막을 빠져나왔다고? 30분도 안 걸린 거 같은데?

“몰라요. 이유는 모르겠지만 애들이 그냥 죽자고 막 밟던데요? 따라가느라 진짜 죽는 줄 알았어요. 최강민 걔 운전 초보 맞아요? 운전 엄청 잘하던데?”

두바이의 사파리 사막이 아무리 관광 상품화된 축소용 사막이라고는 하지만 사막운전에 노련한 베테랑들도 빠져 나오려면 족히 40-50분은 걸린다. 느긋이 관광하는 것처럼 운전을 하면 2시간-3시간 코스고. 그런데 그걸 30분도 안 되는 시간 안에 빠져 나왔

다고?

혹시 똥이라도 급히 마려웠던 걸까? 에이, 말도 안 돼.

-그런데 갑자기 호텔은 왜 갔대?

“그건 저도 모르죠. 최강민씨가 멤버들을 데리고 이리 왔는데, 혹시 호텔에서 뭐 서비스로 공짜로 제공하는 뭐 그런 거 있어요? 빵이나 음료 뭐 이런 거 공짜로 먹으려고 왔나?”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노숙자들 잔치 벌일 일 있어?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잖아. 설마 하루 만에 돈 다 쓰고, 돈 더 달라고 땡강 부리고 뭐, 그러는 거 아니야? 방송을 볼모로 잡고, 협박하면서?

“에이, 설마 그러기야 하겠어요? 얘네 그렇게 막 나가는 그런 애들······.”

말을 하다만 VJ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왜, 왜!? 또 무슨 일인데?

“어어··· 잠깐만요. 지금 멤버들 호텔 안으로 들어가는데요?”

그랜드 렛다트 호텔 로비.

정문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곳. 하얀색 셔츠와 대조적으로 부각되어 보이는 검은색 유니폼을 입고 서 있던 총지배인이 시계를 힐끔 쳐다보고는 입술을 달싹였다.

“부지배인, 슬슬 준비하자고. 이제 곧 천 번째 팀이 들어올 테니 말이야.”

“예, 총지배인님.”

부지배인이 지시하자 남자 직원 둘이 재빠르게 움직였다.

호텔정문과 로비로 이어지는 곳. 붉은 레드카펫 위로 간이용 펜스 봉이 세워졌다. 그리고 세트장처럼 꾸며진 작은 단상 위로 지금 막 손님 한 팀이 들어오면서 999라는 숫자로 바꼈다.

그때 무전기를 통해 정문 쪽에 세워놓은 직원의 음성이 들려왔다.

-치익, 지금 천 번째 손님이 입장하십니다.

“다들 준비해. 이번 문이 열리면 천 번째니.”

그때 문이 벌컥 열리며, 아시아인으로 보이는 곱상하게 생긴 청년 다섯이 거지 행색을 한 채 들어왔다.

동시에 단정한 유니폼을 입은 채 일렬로 서 있던 직원들의 허리가 90도로 꺾였다.

“어서 오십시오.”

총지배인이 두 팔을 벌려, 오늘의 주인공들을 맞이했다.

“축하드립니다. 오늘 저희 호텔의 천 번째 손님으로 입장하셨습니다!”

잘 차려입은 중년남성이 두 팔을 벌리며 아랍어와 영어로 뭔가를 쏟아내고 있는데, 뭐라 하는지 알 수가 없다. 멤버들은 영문도 모른 채 그대로 얼어붙었다. 눈 안에서 지진이 났다.

나와는 상관없이 주위에서 막 떠들어대고, 좋아하고, 폭죽이 터지고 그러니, 당황하기도 하겠지.

박진우가 불안한 표정을 지으며, 시선은 정면을 고정한 채 복화술처럼 입만 달싹거렸다.

“형, 저희··· 뭐 잘못한 거 있어요? 사람들 반응이 왜 이래요?”

“지금 막 콩크레이츄레이션이 들리고, 나이스 뭐라고 하는 게 좋은 일인 거 같은데? 맞죠? 그쵸 형?”

뭔 말인지 알아듣지 못하는 애들과는 달리 나에게는 이 상황이 반갑기 그지없다.

설마 설마 했는데, 실제로 이벤트에 당첨됐다고!

우리가 말을 하지 않자 답답한 듯 총지배인이 한 발자국 나서서 물었다.

-아시아에서 온 분들 같은데, 아랍어나 영어 하실 줄 아시나요?

-정말 우리가 당첨된 건가요? 천 번째 손님으로?

-네, 맞습니다. 오, 영어 잘하시네요?

내 입에서 유창한 영어가 흘러나오자 나를 보며 총지배인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삐걱거리던 애들의 고개도 내게 고정했다. 사정없이 흔들거리더니, 눈동자가 이내 초롱초롱해진다. 그 안에서 존경의 샘물이 무럭무럭 샘솟는다.

총지배인이 영어로 계속 대화를 시도했다.

-오늘 저희 호텔에서 하는 이벤트에 당첨되셨습니다. 오픈 20주년 기념을 맞이해서 천 번째 들어오는 팀에게 스위트룸 무료 숙박권과 식당에서 식사를 할 수 있는 식사권이 주어지거든요.

-정말인가요?

-그렇습니다. 일행 분이 총 다섯 명이신가요?

-네. 맞습니다.

-좋습니다. 간단한 인터뷰와 사진 한 장 찍고, 바로 스위트룸으로 안내를 해드리겠습니다.

그때 뒤늦게 따라붙은 카메라가 일행들을 향하고 있다는 걸 보고는 총지배인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그런데 혹시 저 카메라들은 뭔가요? 혹시 방송을 하는 분들인가요?

-네, 저희는 한국인입니다. 한국에서 리얼리티로 방송하는 프로그램을 촬영 중인데, 혹시 괜찮다면 촬영을 계속 해도 될까요?

-한국? 티비쇼 그런 건가요? 혹시 그쪽··· 일행 분들도 모두 방송인들이신가요?

-네, 저와 일행들은 한국의 가수들입니다. 그리고 촬영하고 있는 프로그램도 한국에서는 제법 유명한 쇼 프로그램입니다.

-이제 보니 유명하신 분들이셨군요. 이렇게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저희 호텔은 촬영을 엄격히 금하는 건 아니나, 다른 분들에게 피해가 갈수도 있으니 그에 관해 몇 가지 조율할 게 있습니다. 그건 따로 말씀 드리기로 하고, 일단은 이벤트 당첨 사진을 찍고, 짤

막한 인터뷰부터 진행하기로 하겠습니다.

-네, 좋습니다.

“우와, 형! 영어 진짜 잘하시네요. 혹시 유학 다녀오셨어요?”

“뭐래요. 뭐래? 저 사람들이 지금 뭐라고 하는 거예요?”

멤버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내게 다닥다닥 달라붙어 질문을 쏟아냈다.

“영어는 노아 너도 잘하잖아. 전국 수석이 뭐 그 정도 가지고 놀래? 그리고 저 분들이 그러는데 우리가 이벤트에 당첨됐다고 호텔 스위트룸에서 묵을 수 있대. 식사도 공짜고. 전부 다 공짜래.”

“와, 진짜요? 진짜!?”

믿기지 않는 듯 애들이 진짜소리를 한 스무 번쯤 했다. 직원들이 목에 꽃목걸이를 걸어주고, 박수를 쳐주자 그제야 믿는 눈치다.

뒤늦게 애들이 팔짝뛰고, 좋아하고, 난리가 났다. VJ와 같이 있던 현지인이 통역을 해줬는지, 우리를 보고 있던 VJ의 동공이 마구 흔들린다.

VJ 한 명이 핸드폰을 급히 꺼내들었다.

-피디님. 지금 큰일 났어요. 무슨 이벤트에 당첨됐다는데, 멤버들 스위트룸에서 하루 묶게 생겼어요.

-뭐? 무슨 그게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알아듣게 이야기를 해봐.

-아무튼 지금 빨리 와 보셔야할 것 같아요. 어어··· 멤버들 움직여요. 일단 따라가면서 찍을 테니까 끊어요!

난리가 난 것은 우리 쪽만이 아니구나. 그걸 보고 있던 내 눈가의 웃음이 자리한다.

뜨거운 시선이 느껴져 고개를 돌렸더니, 노아가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다.

“왜?”

“가만 보면 형은 진짜 못하는 게 없는 것 같아요. 꼭 슈퍼 히어로 같아요.”

“에이, 내가 그 정도는 아니지.”

내가 노아의 머리를 헝클어주자, 녀석의 눈이 보기 좋은 반달로 접힌다.

호텔 측에서 짤막한 인터뷰와 소감, 뭐 무슨 목적으로 관광을 왔냐는 질문 등에 대답해준 후, 사진 한 장을 찍고, 스위트룸으로 안내됐다.

붕어처럼 눈만 껌뻑거리던 애들이 스위트룸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감탄을 했다.

“나 태어나서 이런 데는 처음 와봐!”

“수영장! 수영장도 있어! 여기 우리만 쓰는 수영장인가!?”

“우와, 화장실이 우리 숙소만 해!”

침실이 무려 3개에, 인피니티 풀, 루프탑 테라스와 그 앞에 펼쳐진 개인 수영장, 터키식 목욕탕, 거품욕조실, 사우나등등.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럭셔리한 풍경이 뷰처럼 펼쳐졌다.

뒤따라 들어오며 그 광경을 찍던 VJ도 입을 벌리며 구경하기에 여념이 없다. 애들은 구경한다고 여기저기 빨빨거리며 돌아다니고 있고.

그 모습을 보고 작은 미소를 짓던 직원이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필요한 일이 있으면 프론트로 연락주시면 됩니다. 모쪼록 하루 동안 편히 머물다 가십시오.”

“감사합니다.”

“식사는 바로 가능합니다. 1층 식당에 가셔서 방 번호를 대시면 됩니다.”

일사천리로 샤워를 끝내고, 식당을 가서 배를 채운다음 우리는 다시 호텔로 올라왔다. 그 무렵쯤 이곳에 도착한 나 피디가 뚱한 눈으로 쳐다봤다.

이거는 전혀 계획에 없던 거라며, 절규했지만 어쩔 거야? 상황이 이렇게 됐는데.

“혹시 호텔 측에서 이런 이벤트 하는 거 사전에 알고 있었어요? 멤버들은요? 멤버들은 다 알고 있었어요?”

나 피디의 날카로운 질문이 날아들었다. 눈치를 보던 멤버들이 입을 꾹 다물며 나만 쳐다봤다.

“큼큼.”

내가 짐짓 헛기침을 하며, 슬쩍 김태현을 쳐다보곤 대답했다.

“검색을 했더니, 나오더라고요. 운이 좋았어요. 한번 와보기나 해보자하는 생각이었거든요.”

“에이, VJ말들이 완전 기다렸다는 듯이 들어왔다고 하던데요? 그게 운으로 되나?”

“그러니까 재미죠. 여행은 이런 돌발적인 맛에 하는 거 아니에요? 안 그래요?”

넉살에도 불구하고, 나 피디의 의심스러운 눈빛이 치덕치덕 내게 붙는다. 한참동안 턱을 매만지던 나 피디가 작은 한숨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뭐, 좋아요. 오늘은 여기서 지내시는 걸로 해요.”

피디의 허락이 떨어졌다.

그 다음부터는 뭐, 난리가 났다. 수영하고, 월풀, 사우나를 왔다갔다하며, 애들이 하루 동안 뽕을 빼야한다며, 바쁘게 돌아다닌다. 나는 그 장면들을 웃으며 느긋이 지켜봤다. 그때 테이블위에 올려놓은 김태현의 핸드폰이 짧게 지잉거리다 멈췄다.뭔가 싶어 봤

더니, 톡이 와 있었다.

정혜원 수녀님한테 온 거였다.

워낙 찰나의 순간에 스쳐 지나간 것이었지만, 나는 똑똑히 봤다.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영삼이가 봤다. 이런 내용이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 내가 어떻게든 돈은 마련해볼 테니. 괜히 그런 이야기를 해서 너한테 부담 주는 게 아니었는데.

뭔가, 망치로 머리를 맞은 기분.

혹시 이 일이 김태현과도 관계가 있는 일이라면 그동안 왜 그렇게 심난한 얼굴이었는지가 설명이 된다. 뭔가 보육원 쪽과 관련 되서 목돈이 필요한 일이 생겼나본데, 멤버들과 나한테는 차마 말하지 못하고 혼자 끙끙대고 있었나보다.

때마침 수영을 즐기던 김태현이 탄탄한 상반신을 드러내며 내 쪽으로 다가왔다.

“형은 같이 안 놀아요? 애들이 형 데리고 오라고 아주 난린데.”

“너, 왜 이야기 안 했어?”

“네?”

“보육원에 문제 생겼다고 왜 말 안했어?”

여과 없이 그대로 머릿속에 든 말이 입 밖으로 빠져나갔다.

몰랐다면 몰라도, 그 같은 사실을 안 이상 모른 척할 수는 없지.

김태현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수축된 눈동자로 잠시 나를 쳐다보더니, 이내 입술을 달싹였다.

“어떻게 아셨어요?”

“그게 중요해? 그래도 우리는 가족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했는데, 어떻게 그렇게 중요한 문제를 숨겨? 무슨 일인데? 속 시원하게 나한테 말해 봐봐.”

잠시 머뭇거린 김태현이 작은 한숨과 함께 사실을 털어놓았다.

계속된 적자운영에 재단에서 보육원을 폐쇄하기로 결정했다는 내용.

“4억이라······.”

그렇게 큰돈이 있을 리가 없다. 멤버들한테 말한다고 해도 뾰족하게 다른 방도가 나올 것 같진 않고. 내가 심각한 표정을 짓자, 김태현이 아랫입술을 꾹 물고, 고갯짓을 했다.

“제가 괜한 이야기를 했네요. 괜찮으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불가항력이라는 일도 있으니까.”

“만약 돈을 못 구하면 어떻게 돼?”

“수녀님과 아이들이 제각기 다른 보육원으로 뿔뿔이 흩어지겠죠. 건물도 너무 오래되고 낡아서, 좀 불안하긴 했어요.”

어깨를 으쓱거리며 대답을 하는 김태현의 얼굴에는 씁쓸함이 가득했다.

그걸 보자 왠지 마음이 짠해왔다.

그래도 희망 보육원은 김태현이 유아기 때부터 지냈던 고향 같은 곳인데, 그런 곳이 사라진다면 어찌 마음이 편할까. 더군다나 그곳을 집처럼 여기며, 부대끼며 살던 아이들의 심정은 또 어떻고.

음, 이를 어쩐다?

< 청춘을 즐겨라 (3) (수정) > 끝

ⓒ 윤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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