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춘을 즐겨라 (1) >
녹화 방송을 모두 끝내고, 주차장으로 향하는 길.
모든 에너지를 모두 쏟아 부은 듯, 무대에서 내려온 멤버들의 얼굴은 홀 가분, 개운함으로 가득 차 있다. 심지어는 아직도 얼굴이 발간 녀석도 있다. 어깨의 들썩거림이 잦아질 무렵쯤, 장요한의 입에서 앓는 소리가 튀어나왔다.
“으아, 배고파. 실장님 우리 식당이라도 들렸다가 가면 안돼요? 점심부터 굶었더니, 너무 배고파요.”
“맞아. 저도요.”
기다렸다는 듯이 멤버들이 아우성이다. 굶주린 배를 움켜잡으며, 배고픔을 호소한다.
점심부터 계속 굶은 탓이다. 무대의상이라는 것이 의복에 대한 실용성에 초점이 맞춰져있기보다는 보이는 화려함이나 날렵함을 부각시키는 디자인이라 대부분 무대에 오르기 전에는 보이그룹, 걸 그룹 구분 없이 배가 나오는 것을 최소화하기 위해 굶는 게 다
반사다.
배가 고프면 사탕이나 초코 렛등을 먹기도 하지만 그건 식사대용이라기보다는 당보충용에 가깝고.
“그래, 알았어. 곧 밥 먹게 해줄게.”
“진짜요? 전 고기요. 고기!”
“초밥요. 초밥 먹으면 안돼요?”
지들끼리 신나서 메뉴를 떠들어대고 있다. 뷔페에 대려다놓으면 아주 그 안에 음식들을 죄다 거덜 낼 기색이다. 그 이야기를 듣고 있던 차조영 실장의 고개가 갸웃거렸다.
“··· 식에 불고기가 나왔던가?”
“네?”
“아, 아니야. 아무것도. 어서 가자.”
젠장, 이때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챘어야 했는데!
“어? 이게 다 뭐에요?”
“뭐가?”
차에 올라타니 못 보던 카메라가 보인다. 하나, 둘, 셋, 넷. 이게 다 몇 개야.
“아, 이거?”
카메라를 톡톡 쳐본 차조영 실장이 별거 아니란 듯 어깨를 으쓱했다.
“다음 달에 회사에서 방송채널을 하나 팔까하는, 홍보 자료용 영상좀 뽑으려고. 며칠 달아 놀 거니까 신경 쓸 거 없어.”
“아하······.”
“그나저나 대표님이 이번 여름에 너희들 해외여행이나 보내줄까 하고 물어보시던데. 너희들 생각은 어때?”
“진짜요? 진짜? 진짜진짜진짜진짜죠? 거짓말이면 저 화내요!”
차조영 실장이 넌지시 묻는 말에 장요한이 가장 먼저 미끼를 덥석 물었다.
반응이 격하다. 차가 들썩 거릴 만큼.
그 짧은 순간에 진짜요? 라는 말이 열 번도 넘게 나왔으면 말다한 셈이지.
사실 이건 나한테도 좀 반가운 소식이다. 전혀 예상하지도 못한 일이라서 뜻밖의 선물을 받은 기분이랄까.
물론 일도 좋다. 연예인로서 쉬지도 않고 일을 한다는 기쁨이 얼마나 즐겁고 행복한지도 안다. 일이 쉬지도 못할 만큼 들어오는 건 대중들의 사랑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니까. 모두들 오랜 기간 동안 연습생으로 있었고, 그것을 간절히 바래왔기에 그거에 대한 불
만은 없다. 하지만 아직은 한창 이것저것 해보고 싶은 것도 많고, 궁금한 것도 많은 청춘들이다.
친구들끼리의 여행. 낯선 오지에서의 생활. 경험해보지 못한 일들에 대한 설렘과 두근거림.
여행이라는 두 글자가 주는 흥분과 기대는 그 어떤 말로 표현한다 해도 모자를 것이다.
길가는 금발의 미녀와 인사를 막막··· 크으으.
유럽스타일로 아침에 브런치를 딱··· 크으으.
길가다가 모르는 게 있으면 처음 본 사람들한테 영어로 막 물어보고.
좋잖아?
영화 속에서나 볼법한 특급 호텔 스윗룸에서 묵으며, 중간중간 호텔 수영장에서 수영을 막하고, 시원한 칵테일도 마시고. 상상만으로도 전기가 몸을 관통하는 것처럼 짜릿하다.
이걸 우리 회사 대표님이 하게끔 해준다는 거지? 우리 회사 대표님 연예인들 복지에도 엄청 신경 쓰는 구나. 좋으신 분이네.
눈이 있는 대로 확장된 멤버들이 믿기지 않는 다는 표정을 지으며, 저마다 생각을 늘어놓는다.
“저희 데뷔 이후로 진짜 하루도 못 쉰 거 같아요. 진짜 제 소원이 여행 한 번 가는 건데.”
“저도요. 형들이랑 가는 거면 무조건 찬성!”
멤버들의 대답에 차조영 실장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알았어. 그러면 일단 승낙하는 걸로 하고, 여행지는 적당한 곳으로 내가 골라볼게.”
차조영 실장이 불현 듯 던져놓은 여행이라는 단어는 우리 가슴 속의 불을 지펴 놓았다.
저마다 여행에 대한 로망에 대해 이야기를 끄집어내며, 시간가는 줄 모르고 떠들었다.
그런데 우스운 것은 해외여행 경험자가 전무한 터라, 모두들 생각하는 게 나를 별반 다르지 않다. 하긴 노는 것도 놀아본 애들이나 잘하는 거지. 무경험자의 상상은 죄다 비슷비슷 하구나.
그리고 30분 뒤.
“어어? 우리 지금 어디 가는 길이에요? 인천? 저희 인천에 스케줄 있어요? 여기는 인천 공항가는 길인데요?”
불현 듯 창문을 통해 밖을 내다보던, 김태현이 소스라치게 놀랐다. 지금 막 인천공항으로 들어가는 이전표가 빠른 속도로 우리 뒤로 지나갔다.
김태수 매니저는 운전석에서 앞만 응시하며, 입을 꾹 다물고 있고, 차조영 실장이 별거 아니라는 듯 웃고 있다.
“아니야. 맞게 가고 있는 거야.”
“네?”
“너희가 그랬잖아. 여행가고 싶다고.”
“그거야 그랬는데······.”
오늘따라 우리를 보고, 웃는 차조영 실장의 표정이 의뭉스럽다고 생각할 무렵, 차가 주차장에서 서서히 멈춰 섰다. 가만 보니 주위로 사람들이 잔뜩 몰려 있고, 어깨에 얹고 카메라를 얹고 있는 VJ도 보인다. 설마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건가? 대체 이게 다 뭐지?
“다 왔다. 내려.”
“네? 여기서요? 왜요?”
“나머지는 피디님이 잘 설명해주실 거야. 회사랑 이야기 다 끝낸 거니까 너희는 아무 걱정 없이 잘 다녀오기만 하면 돼.”
차조영 실장이 멤버들의 등을 마구 떠민다.
“그러니까 그게 뭔데요?”
탁.
잠시 후, 우리는 영문도 모른 채 차에서 버려졌다. 문을 닫은 우리의 승합차가 매몰차게 뒤도 안돌아보고 떠났다.
“어, 어어 뭐지?”
혹시 몰래 카메라 뭐 그런 건가?
어리둥절해 있는 나와 멤버들에게 서글서글하게 생긴 피디 한명이 다가왔다. 익숙한 얼굴이다. 우리나라에서 발붙이고 사는 연예인들치고 나 피디의 얼굴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테니.
그런데 저 양반이 여기는 무슨 일이지?
“나 피디님이 여기는 왜.”
“무슨 일은요. 피디니까 촬영하러 왔죠.”
“그러니까 무슨 촬영······.”
뭔가 머릿속에 스쳐 지나간다. 장요한이 눈을 크게 부릅뜨며, 나피디를 향해 삿대질 했다.
“어, 어 혹시. 이거 그거······!”
사고를 하는 머리회로가 고장 났나보다. 말까지 더듬거린다.
“꽃미남 청춘!”
격한 반응을 보여주던 멤버들이 이윽고 입을 맞춰 소리 지른다.
그런 멤버들을 쳐다보는 나 피디의 입가에 자그마한 웃음이 걸린다.
“네, 맞아요.”
멤버들이 왁, 소리를 질렀다가 손으로 입을 막는다. 그리고 주위를 휙휙 돌아보더니, 이번에는 소리 죽여 웃는다. 지금 상황이 믿기 힘들다는 듯 멤버들은 서로를 쳐다봤다 나 피디를 쳐다 봤다를 반복한다.
“무슨 프로인지는 다들 아시는 것 같고, 회사랑은 이야기 다 끝났어요. 그냥 바로 출국하시면 돼요.”
“우리 꽃청춘 찍는 거예요? 진짜? 진짜예요?”
“실감 안 나면 한번 꼬집어보든가.”
김태현의 말에 장요한이 자신의 볼을 세게 꼬집고는 제자리에서 방방 뛴다.
“아악, 아파!!! 꿈 아닌가봐!”
멤버들의 그 같은 모습을 보며, 나 피디가 아빠 미소를 짓고 있다.
덩달아 내 입꼬리도 올라갔다.
“저기, 그런데 우리 어디 가는 거예요? 중국? 유럽?”
나 피디가 조용히 들고 있는 비행기 티켓 다섯 장을 내밀었다.
그리고 거기에 쓰여 있는 나라를 확인했다.
“어··· 두바이?”
“여기가 뭐하는 데에요?”
여행 무식자들이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너 여기 알아? 아니 나도 몰라. 하는 표정으로 눈만 껌뻑거린다. 하긴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여행을 가봤어야 알지. 장요한은 벌써 핸드폰을 꺼내 폭풍 검색중이다.
“자자, 우선 입국심사부터 합시다. 시간이 그렇게 많은 편은 아니니.”
나 피디가 핸드폰에 고개를 박고 있는 장요한의 등을 떠밀며, 멤버들을 독촉했다. 포진해있던 카메라 3대가 동시에 따라붙었다.
“와, 근데 저희 진짜 이렇게 가는 거예요? 옷도, 세면도구도 아무것도 없는데?”
진짜 손에 아무것도 없다. 심지어는 지갑도 없다고!
“원래 그게 이 프로그램의 테마에요. 대신 가서 쓸 돈은 드릴 거예요. 그 돈으로 전부 해결하시면 되요.”
“돈도 엄청 짜게 주시는 거 아니에요? 이전 방송분 보니까 출연자들 아이스크림도 맘대로 못 사먹고, 막 스텝들 꺼 훔쳐서 먹고 달아나고 그러던데.”
“아, 그분······.”
여기저기서 낄낄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 피디가 그때를 상기시키는지 어이없는 웃음을 흘리며, 손을 휘휘 내저었다.
“그냥 재미있자고 한 거예요. 저희 그렇게 나쁜 사람들 아니에요. 아, 맞다. 돈 드려야지. 돈 누구한테 드릴까요?”
화제를 급히 돌리는 티가 역력했지만, 그 상황에 그거 알아서 뭐할까 싶다. 짜기라도 한 듯 일제히 시선이 내게로 돌아갔다. 나 피디가 웃으면서 크로스백 하나를 내밀었다.
“그러면 일단 최강만씨한테 드릴게요. 자요.”
가방 지퍼를 열어 안을 보니, 빳빳한 지폐 뭉치가 꽉꽉 들어차 있었다.
“환전할 필요도 없이 바로 가서 쓸 수 있게 준비해놨어요. 돈은 충분할 거예요. 가서 하고 싶은 거 실컷 하시면 되요.”
*
공항 안으로 들어가자 카메라 몇 대에 둘러싸인 우리를 알아보고 몇몇 여행객들이 꺅꺅 거린다. 한쪽 구석에 자리를 잡고, 잠깐의 인터뷰가 이어졌다.
“지금 기분이 어때요?”
“아직도 얼떨떨해요. 우리 진짜 가는 거 맞아요?”
나 피디의 질문에 장요한이 대답했다. 이어서 눈을 껌뻑거린 노아도 대답도 뒤 따랐다.
“재미있을 거 같아요. 중학교 졸업 여행이후로 어딜 가보는 게 처음이라 엄청 설레요.”
“야!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난 비행기 타는 게 처음이란 말이야!”
흥분한 표정의 장요한이 인터뷰에 끼어들며 노아의 등을 퍽퍽 때린다. 저건 틀림없이 도파민 과다 분출현상이다. 병원이라도 데리고 가봐야 하나 걱정이 들 무렵, 나 피디의 묘한 시선이 나에게로 향했다.
“최강민씨는요. 최강민씨는 지금 기분이 어때요?”
기분이 어떠냐고?
“음.”
잠깐 옆을 쳐다봤다. 멤버들 표정들이 망치 백만 대는 맞은 듯한 두더지 표정이다. 아주 넋이 나가 있다.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손가락을 꼼지락 하는 김태현의 모습, 돈 얼만지 세어보겠다며, 아까부터 손에 침을 튀기며 돈을 세고 있는 박진우의 모습, 도파민 과다분출상태로 방방 뛰고 있는 장요한과 붉은 볼이 상기된 채 실실거리고 있는 노아.
생생한 녀석들의 표정들이 고스란히 한 눈에 들어온다.
“이번 기회를 통해서 멤버들과 더욱 더 친해졌으면 좋겠어요. 이런 기회 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추억 쌓고 돌아올게요.”
우리는 여권을 보여주고, 보딩패스를 받았다.
붙일 수하물이 없으니, 그건 패스한 뒤 바로 입국장으로 들어갔다. 연신 신기한 듯 두리번거리는 장요한을 보며, 박진우가 다가가 옆구리를 푹 찔렀다.
“야, 타기 전에 신발 벗어야 되는 거 알고 있지?”
“뭐? 진짜?”
그 말에 김태현이 조용히 신발을 벗어들고 있다. 박진우도 따라서 신발을 벗고 있고.
뭐야. 초딩들이야?
둘이서 한 명 놀려먹자고 저 짓을 하고 있게? 요즘에 저런 거에 누가 속을까 싶었는데······.
“그, 그래?”
있구나.
장요한이 신발을 얼른 벗어들고 손에 든다. 탑승 전 스튜어디스가 그걸 보고, 소리죽여 웃는다. 뒤늦게 놀림당한 것을 안 장요한이 얼굴이 붉어진 불을 토해내고 있다. 아주 시끌시끌하다.
“이륙하겠습니다. 모든 승객 분들은 안전벨트를 매주십시오.”
소풍 나온 병아리들 마냥 설레는 표정으로 좌석에 앉은 멤버들이 안전벨트를 맸다.
그리고 잠시 후.
“오오, 뜨, 뜬다!”
6월 17일. 무더운 여름날.
두바이로 가는 비행기가 하늘 위로 올랐다.
< 청춘을 즐겨라 (1) > 끝
ⓒ 윤민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