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변화의 소용돌이 (3) >
- ‘꽃 미남 학교’ 계속된 고공행진. 시청률 15% 돌파!
[YN스포츠뉴스] 작성일 2018. 6. 6.
- ‘꽃 미남 학교’ 시청률 20% 코앞에. 동시간대 드라마 압도적인 차이로, 수목 드라마 의 강자로 우뚝 서다.
[MTY] 작성일 2018 6.13
- ‘꽃 미남 학교’ 5화 세 주연 배우의 삼각관계 효과? 분당 시청률 25% 돌파!
[투데이뉴스] 작성일 2018 6. 21
- 꽃 미남 학교 신드롬. 간접광고, 협찬 물밀듯이 밀려들어. 제작진들 행복한 비명!
[연예 칼럼] 작성일 2018 6. 22
“잠시만 뒤로 물러나주세요. 펜스 봉 좀 놓겠습니다!”
남자 스텝 한 명이 간이 펜스봉을 들고, 바쁘게 발을 놀리고 있다. 보통은 야외 촬영은 통제 인원 2, 3명만 붙으면 해결되곤 했지만, 이번에는 사태가 좀 심각해 보여 간이 펜스를 치기로 했다.
어느 정도냐 하면 몰려든 인파 때문에 촬영은 고사하고, 최소한의 인원을 제외한 모든 스텝, 관계자들이 통제에 나서야 될 정도였으니까.
“구경 하시는 분들은 이 선을 넘으시면 안 됩니다. 선 넘으시면 촬영에 방해가 될 수 있거든요. 양해 부탁드리겠습니다.”
남자 스텝의 외침소리와 함께 펜스봉과 펜스봉 사이 빨간 줄이 쳐지고, 그 뒤로 개미떼 같이 사람들이 달라붙는다. 헉소리가 날 정도로 어마어마한 인파다.
다행히 통제 직원의 지시에 따라 그 선을 넘어가진 않았다. 혹시나 너무 많은 사람이 몰려들어 안전에 문제가 생길까 염려한 담당 FD가 그걸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한고비는 넘긴 셈이다.
“민수야! 곧 촬영 들어갈 거니까 저쪽도 좀 쳐라. 통제인원 한명 더 붙이고!”
광화문을 배경으로 촬영을 해야 하는 씬인데, 혹시나 촬영 허가가 나지 않으면 어떡하나 걱정했는데, 오히려 그런 걱정은 기우였다. 구청 쪽에서 종로의 자랑 광화문 홍보를 잘 해달라며, 직원까지 파견해줬다.
여담이지만 파견 나오는 직원간의 경쟁도 장난이 아니었다고, 직원 한명이 슬쩍 흘려 놓았다. 그건 그만큼 꽃 미남 학교가 엄청난 관심을 받고 있다는 반증이겠지.
여하튼 모든 배우들과 스텝들은 그 원동력으로 피곤함도 잊은 채 하루하루를 불태우며, 촬영에 임하고 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고.
“최강민 오빠. 오빠! 여기 한번만 봐주세요! 최강민 오빠!”
여고생으로 보이는 팬 두 명이 손을 열심히 흔들어 대고 있다. 저러다가 이름이 닳으면 어떻게 하나 걱정이 될 정도다. 5분 동안 이름을 한 백번쯤 불렀나?
그때 누군가 여고생 등 뒤로 다가가 어깨를 툭툭 건드렸다.
“저기요.”
“네?”
여고생 두 명이 고개를 홱 돌려 음성이 들려오는 쪽을 바라봤다.
등 뒤에는 작고, 예쁘장한 체구를 가진 긴 머리 여성이 눈썹을 꿈틀거리고 있다. 다름 아닌 한빛나였다.
“응원해주시는 건 고마운 일인데요, 여기서 그렇게 크게 소리치면 오디오에 잡음 들어가요. 그것 때문에 재촬영 들어가고, 촬영 감독님들과 배우님들 피곤해지면 그것도 다 결국 강민 오빠한테 마이너스 요소가 되는 거예요.”
“아, 그래요? 저희가 드라마 촬영 현장에 오는 건 처음이라서······ 죄송합니다.”
여고생 두 명이 박력 있게 고개를 90도로 숙인다. 체구는 분명 자신들보다 작은데 박력은 학교일진 언니들 버금가는 정도다. 조곤조곤 말하는데도 왠지 수축되는 느낌이랄까. 한빛나가 웃으면서 대꾸한다.
“모르는 것 같아서 말씀드린 거예요. 그런데 혹시 강민 오빠 팬이세요?”
“네! 네! 이번에 드라마 나오는 거 보고 완전 팬 됐어요! 저 여기 종로에 촬영 있다고 해서 미팅 약속도 깨고 나왔는걸요?”
“미팅을요? 그건 진짜 큰 결심인데.”
한빛나가 턱을 문지르며 중얼거렸다.
자신의 공로(?)를 알아주는 듯한 상대를 만나자 쭈그러들었던 여자애가 어깨를 쭉 폈다.
“안 봐도 오징어 같은 애들이나 나오겠죠. 강민 오빠 때문에 눈이 너무 높아졌나 봐요. 어딜 가든 다 수산시장 같다니까요?”
“맞아맞아.”
옆에 있는 여고생도 맞장구를 친다.
“아··· 그러시구나. 혹시 일코 중은 아니시죠?” *일코 - 일반인 코스프레, 누구의 팬인 것을 감추고 일반인인척을 함
“에이, 요즘 덕밍 아웃하는 게 뭐 흠인가요? 원래는 엑스보이 오빠들 팬이었는데, 종민오빠 열애설 터지고, 탈덕했거든요. 잠시 휴덕중이에요.”
순식간에 전문용어(?) 몇 가지가 오고갔다. 한빛나의 눈동자가 이채를 발했다.
“그러면 아직 입덕 하신 곳은 없는 거네요?”
“그건 왜요?”
“아······ 다름이 아니라. 혹시, 강민 오빠 팬이시면, 저한테 미공개 사진들 몇 장 있는데 혹시 구경해보실래요?”
왠지 모를 은근한 어조에 여고생 둘의 눈이 가늘어진다. 한빛나를 쳐다보는 눈초리에 의심이 섞여 있다.
“혹시 홈마세요? 아니면 직찍러? 저희 가난한 학생들이라 사진 살 돈 없는데요.”
종종 연예인들의 촬영 현장은 은밀한 거래의 장소로 이용되기도 한다.
극성팬들의 수집 병이야, 이미 이쪽세계에서는 일상 일이니까.
자신이 좋아하는 연예인이 신던 양말 한쪽을 5, 6만원씩 주고도 살 수 있는 게 바로 극성팬들이다.
한빛나가 웃으면서 고개를 내저었다.
“그런 거 아니에요. 저 코로나 팬마에요. 오늘 실습이 있는 날이라 신입회원들 데리고 현장 나왔어요. 저기, 우리 회원님들.”
한빛나가 한쪽 방향을 가리키자 병아리 떼처럼 옹기종기 모여 눈을 반짝거리고 있는 신참들이 보인다. 그걸 확인한 여고생 둘이 꺅꺅 거리며 방방 뛴다.
“어머, 진짜요!? 진짜 그··· 팬마? 꺅, 웬일이야!”
누가 보면 최강민팬이 아니라 한빛나 팬인줄 알겠다.
“타 팬덤 사이에서는 언니 소문 자자하거든요. 아, 물론 좋은 쪽으로요. 다른 팬마들은 독재? 뭐 그런 것도 좀 있고, 돈도 좀 삥땅치는 것 같고, 아무튼 좀 구린 구석이 있는데, 언니는 그런 것도 하나도 없다고. 진짜 덕심이 뭔지를 보여주는 살아있는 표본 같다고 하던데요?”
“에이··· 제가 그 정도는 아니죠.”
한빛나가 웃으면서 고개를 설레설레 흔든다.
그리고 핸드폰을 내밀어 최강민 갤러리라는 적혀있는 폴더로 들어가서 사진을 펼쳤다.
인터넷 공간에서 떠도는 그런 인위적인 사진들이 아닌 그야말로 일상생활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자연스러운 사진들. 그야말로 최강민팬이라면 눈이 돌아갈 수밖에 없는 레어템들이다.
당연히 여고생 둘의 눈이 헤까닥 돌아갔다. 정신없이 사진들을 보고 있던 그 때, 한빛나가 무슨 영문인지 핸드폰을 뒤로 스윽 감췄다.
“왜, 왜요! 조··· 조금만 더요!”
다급해진 둘의 표정에 한빛나의 잘 다듬어진 미간이 곧게 펴지며, 예쁜 눈이 반달모양으로 접힌다.
배시시 웃던 한빛나가 입술을 달싹였다.
“이건 정회원 등급이상 분들에게만 공개되는 사진이라서요. 어때요? 이참에 회원 가입 하실래요?”
*
R&N 대표실.
하얀색 셔츠위에 캐시미어 조끼를 받쳐 입은 중년 사내가 소파에 앉아 커피 잔을 기울이고 있다. 터치하나, 움직임 하나하나가 우아하기 그지없다. 마치 성공한 도시남자의 표본 모델이랄까?
그는 다름 아닌 이방의 주인인 정도운 대표다.
그리고 그 맞은편에는 김관수 본부장이 피곤한 표정으로 수염이 까실까실한 턱을 매만지며, 목을 돌리고 있다.
뚜둑 소리가 목에서 났다.
“정본부장. 요즘 피곤해 보이네. 보약이라도 한 채 지어줄까?”
그걸 본 정도운 대표가 웃으면서 말했다. 김관수 본부장이 다급히 손사래를 친다.
“어휴, 됐습니다. 저번에 주신 것도 아직 다 못 마셨는데. 그보다 뭐 좋은 일 있으세요? 기분 좋아 보이시는데.”
“나쁠 이유가 없잖아. 요즘.”
어깨를 으쓱한 정도운 대표가 커피를 홀짝이며 대답 했다.
“하긴, 요즘 진짜 살 맛 나죠. 꽃미남 학교도 대박 터져서, 회사 주가도 계속 오르고 있고, 차중원씨도 400억짜리 한중합작 영화도 그렇게 속 썩이더니, 결국 크랭크인 들어갔고, 신보라씨도 무사히 재계약 끝마쳤고. 그러고 보니 이보다 더 좋을 때가 없는 것 같은데요?”
“그것도 그렇지.”
그 말에는 이견이 없다는 듯 정도운 대표가 고개를 끄덕였다. 헌데, 김관수 본부장이 앞서 말한 문제 때문은 아닌 듯 했다. 머릿속은 다른 생각을 떠올리고 있는 듯 피식 거리고 있다.
표정이 좀 희한하다고 할까?
“대체, 뭔데 그러세요? 저는 알면 안 되는 거예요?”
그걸 본 김관수 본부장이 고개를 갸웃했다.
“아, 그런 건 아니고. 중국 쪽에서 재미있는 소리가 들려와서.”
“중국이요? 혹시 현지 에이전시에서 무슨 문제라도 생겼대요?”
“우리 쪽이 아니고, TA프로덕션 쪽.”
김관수 본부장의 눈이 동그래졌다.
“TA프로덕션이라면······ 김백만 사장이 대표로 있는 곳이잖아요? 승우네 아버지. 왜요. 똥물 뒤집어 쓸 일이 있다고 하더니, 무슨 일이라도 벌어졌대요?”
“일이야 벌어졌지. 아예 똥간에 빠질 기세라서 문제지.”
“아, 뭔데 그러세요. 속 시원하게 말씀 좀 해보세요. 답답하게.”
한동안 잊고 지낸 TA프로덕션 이야기가 나오자 김관수가 관심을 보이며 달려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김승우를 그렇게 방출하고, 김백만 사장과의 관계도 완전히 틀어져버리자, 이제나 저제나 그쪽에서 무슨 억하심정을 갖고 나올지 조마조마했던 까닭이다.
곧 데뷔할거란 소문이 파다하게 난 김승우도 계속 데뷔 일정이 미뤄지는 것 같고, 신경 쓰이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게··· 이번에 TA프로덕션에서 극장, 문화사업으로 사업을 확장해나가면서, 중국 쪽 투자를 좀 받았거든. 그쪽에서 흘러들어온 돈이 대부분 세탁하기 위해 빼돌려진 자금인데, 그 주최가 A에이전시야. 그런데 A에이전시 중국 정부 측에서 감사를 받고 있는 중인가 봐. 투자도 중단된 상황이고. 그걸 안 다른 투자자들도 손 털고 나오는 중이고.”
“헐. 완전 엿 됐네요?”
“그렇지. 엿 됐지.”
벙찐 표정을 짓던 김관수 입꼬리가 서서히 올라갔다. 마치 뒷간에 갔다가 일주일치 묵은 뱃속을 털어내고 나온 얼굴이랄까.
“제가 사실 말을 안 해서 그렇지 태풍이 언제쯤 상륙하나 조마조마 했거든요? 그런데 이제 두 다리 쭉 피고 잘 수 있겠네요.”
“내가 걱정하지 말랬잖아.”
“어휴, 대표님은 속도 편하십니다. 저는 맨탈이 약해서······.”
김관수 본부장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짓던 정도운 대표가 남은 커피를 단숨에 마시며, 말했다.
“그나저나 나랑 같이 중국 들어갔다가 와야겠는데?”
“중국이요? 갑자기 중국은 왜요? 혹시 방금 그 일 알아보시려고요?”
“아니, 태풍 맞아 초상난 집 가서 뭐하게? 이제 그쪽에는 볼일 없어. 다른 비즈니스 건이야.”
“다른 일이요?”
백도운 대포가 두툼하고, 굵은 손가락 끝으로 테이블 팔걸이를 톡톡 건드린다.
“꽃미남 학교 중국에서 반응이 꽤 좋다면서? 듣자하니 이번에 중국 쪽 에이전시에서 판권 사간다는 이야기가 돌던데. 회당 3억이라고 했나?”
“네. 그거 거의 확정되는 분위기래요. 에이전시 쪽에서 한국 쪽 반응 보다가 계약 진행하려던 모양인데, 대표님도 알다시피 드라마 완전 빵 터졌잖아요. 이제는 도장 찍을 일만 남았다고, 며칠 전에 KBN드라마국 김부장이랑 술자리 같이 했는데 엄청 좋아하던데요?”
“그러니 우리도 이제 일해야지.”
“일이요? 그 말뜻은 혹시······.”
잠시 주춤하던 김관수 본부장이 은근한 어조로 물었다.
“혹시 플레어 이번에 중국 진출하나요?”
정도운 대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슬슬 준비해야지. 어디 중국에서도 통할지 한 번 지켜보자고.”
< 변화의 소용돌이 (3) > 끝
ⓒ 윤민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