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듀스 나노머신-77화 (77/124)

< 변화의 소용돌이 (2) >

KBN 드라마국 로비 휴게실.

퇴근하고 집에 돌아갈 시간인데도 웬일인지 그곳에 사람이 바글바글했다. 삼삼오오 짝을 찍어 숙덕거리는 소리가 하모니처럼 들려온다. 꽃 미남 학교 제작에 매달렸던 모든 스텝들과 관계자, 그리고 오늘의 방송이 궁금해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직원들이다.

꽃 미남 학교는 방송국 내, 외에서도 워낙 관심도가 높은데다가 올 한해를 KBN을 대표할 드라마인 만큼 관계자들의 관심이 대단했다.

하윤성 감독과, 드라마국 김 부장, 담당 CP까지 휴게실에 앉아 큼지막한 대형 화면을 지켜보고 있다.

“몇 프로로 시작할까?”

누군가가 툭 던진 화두가 불씨를 지펴 놨다.

“그래도 한 7, 8프로정도는 나오지 않을까?”

“에이, 조금 더 쓰죠. 9프로.”

“두 자리 수로만 시작해도 참 따뜻할 텐데. 그쵸?”

첫방 시청률에 관한 걸로 직원들의 의견이 분분하다. 월드컵 예상 득점수를 놓고, 설전을 벌이는 것처럼 열기가 뜨겁다. 돈을 놓고, 내기를 하는 이들도 보인다.

잠자코 앉아 있던 최CP가 옆에 앉아 있는 김 부장을 힐끔 보며, 작은 소리로 물었다.

“잘 되겠지?”

“잘 될 거예요. 대본 좋고, 배우들 연기 좋고, 편집까지 잘 끝내놨는데. 대체 뭐가 걱정이세요?”

“그치? 그렇지? 잘 돼야 될 텐데. 잘 될 거야······.”

최CP가 주문처럼 같은 말을 반복해서 하고 있다. 헌데, 말과는 달리 다리를 덜덜 떨고 있다. 굴착기를 가동시켜놓은 것처럼 다리와 의자가 같이 흔들린다.

“최CP님 다리 좀 그만 떠세요. 부정타요.”

“긴장되니까 그렇지!”

“어제 편집해놓은 첫화 분까지 이미 보신분이 왜 그렇게 긴장을 하고 그러세요?”

“봤지. 보긴 봤는데······.”

주위를 힐끔거린 최CP의 목소리가 은근해졌다.

“이건 너만 알고 있어. 실은 이거 아직은 내부적으로는 비밀인데, 얼마 전에 국장님이랑 중국 쪽 사람을 만났거든? NV에이전시 너도 알지? 중국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큰 회사.”

“알죠. 근데 그게 왜요?”

“거기서 이 드라마를 관심 깊게 쳐다보고 있단 말이야. 잘만 하면 판권 사갈 것 같은 분위기란 말이야.”

“······진짜요?”

못 믿겠다는 듯이 묻는 김 부장의 눈이 동그래졌다.

침을 삼키는 듯 그의 목젖이 출렁거렸다.

종종 종영한 드라마 판권을 중국 쪽에서 사가지고, 그쪽에서 방영을 하는 경우는 있지만 아직 첫 방도 안한 드라마를 관심 깊게 보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얼마에요?”

“좀 더 조율해봐야 알겠지만 대충 이야기 오고간 금액이 회당 3억쯤.”

“헉······.”

아무리 드라마시장이 우리와 규모가 다른 중국이라고는 하지만 회당 3억이 넘는 돈이면, 선례를 거의 찾아볼 수 없는 꽤 큰 액수다.

가장 최근에 중국 쪽으로 판권을 판 드라마가 ‘태양의 후손’이었는데, 16회 총 2400만위안. 43억 원이었다. 그것도 한국 드라마 역대 최고가라며, 한참동안 언론에서 떠들어댔는데, 한국드라마 가치가 예전보다 더 늘었다고는 하지만, 그것보다 더 큰 액수라고?

“하지만 김준호랑 장선화가 아직 중국 쪽 인지도는 좀 낮지 않아요?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3억 이야기하기에는 조금······.”

귀를 기울이고 있던 최CP가 고개를 내저었다.

“잘못 짚었어. 그쪽이 아니야.”

“잘못 짚었다면··· 설마, 최강민?”

최CP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플레어 이번 앨범이 중국 쪽에서 심상치 않은 가봐. 타이틀곡 스트리밍 조회수 1억 돌파한건 알고 있지?”

“알죠.”

“얼마 전에 ‘케이팝 리그 챌린지’도 중국 쪽에 판권 넘겼는데, 이게 은근히 인기가 있나봐. 참가 팀들 중에서는 당연히 플레어가 톱이고. 벌써 안무 커버하는 팀까지 생겨났다고 하던데?

시기가 잘 맞아 떨어진 거지. 더군다나 플레어도 이제 1집 활동 슬슬 마무리 중이니까 곧 2집 앨범 나올 거 아니야? 드라마 끝내고, 중국 쪽에 날릴 때쯤에는 2집도 거의 나올 시점인데, 만약 2집까지 또 대박나면? 중국 쪽에서도 다 계산기 두드려보고 들어온 거지. 김준호랑 장선화 정도면 손해는 안보겠다 싶었는데, 최강민이라는 조커카드가 있으니까.”

“아······.”

“그러니까 서로를 위해서라도 이 드라마는 무조건 성공시켜야한단 말이야. 국장님도 말은 안하고 계시지만 지금 국장실에서 이거 보고 계실걸?”

“광고 끝났어요. 드라마 시작해요!”

어느 여직원의 외침에 모두의 시선이 화면 쪽으로 홱 돌아갔다.

시선을 화면에 둔 채 최CP가 다시 물었다.

“태양의 후손이 첫방 몇으로 스타트 끊었지?”

“12. 6프로요.”

“막방은?”

“35. 3프로인가? 에이, 근데 최CP님. 거기에다가 비교를 하면 안 되죠. 태양의 후손이야 올 사전 제작에 투자 엄청 받고 해외 로케까지 한 달 이상 다녀왔잖아요. 제작비로 보나, 규모로 보나 저희는 그것보다 한참 아래죠.”

“알지. 그러니까 그 정도는 바라지도 않으니, 덜도 말고 더도 말고 딱 8에서 9정도만 시작해도 여한이 없겠다. 아니아니 10정도. 그 정도는 욕심내도 되잖아? 화제성도 꽤 있었으니까. 안 그래?”

이런저런 추측을 해봐도 시청률은 말 그대로 뚜껑을 까봐야 안다.

요란하다 싶을 정도로 이슈가 되고, 화제성이 높은 드라마도 의외로 첫 방 시청률이 기대에 못 미치는 경우도 많았고, 또 그와는 반대로 별다른 홍보도 화제성도 없었는데, 첫 방 시청률이 놀랄 만큼 잘나온 경우도 허다하니까.

“어이, 지금 시청률 몇 프로야? 지금 잘 체크하고 있지?”

시청률을 체크하기 위해 노트북을 공수해온 남자직원 하나가 그래프 변화 추이를 지켜보더니, 눈을 껌뻑이더니, 소리쳤다.

“지금 6프로··· 7프로 넘었고, 어어, 이거 뭐야. 8프로 돌파하겠는데요?”

“8프로? 아직 시작도 안했는데?”

그 말을 들은 모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나쁘지 않은 시작이다.

화면에서 등장인물 소개와 함께 주, 조연들의 얼굴들이 확대됐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그리고 시청자들의 눈을 사로잡기 위해 미리 선별해놓은 하이라이트장면들이 편집되어 짧게 나간다. 시청자들이 보기에 가장 흥미로워 보이는 장면들만 뽑아놓은 것이다.

김준호가 고급세단에서 내리는 모습, 장선화가 교복을 입고 눈을 껌뻑이는 모습, 그리고 최강민과 장선화가 다정히 웃고 있는 모습을 2층 난간에서 지켜보는 김준호의 모습등이 차례대로 자리 잡는다.

잠시 동안이지만 모두가 생각을 멈추고, 멍하니 그 장면을 바라본다.

이미 이곳에 모인 대다수가 촬영현장, 혹은 편집 본으로 한번 씩은 봤지만 다시 봐도 눈을 뗄 수가 없게 만든다.

“어어··· 10프로. 부장님. 저희 지금 막 10프로 넘었어요!”

“뭐, 진짜?”

직원의 외침에 김부장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노트북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상체를 기울여 화면을 쳐다봤다. 그리고는 멍한 표정으로 최CP를 쳐다봤다.

“CP님. 저희······.”

“왜! 왜 또 무슨 일인데!?”

최CP가 뭔가 싶어 급히 다가가 모니터를 들여다봤다.

분당 시청률을 기록하는 그래프가 끝도 없이 치솟고 있었다.

*

-방금 꽃미남 학교 본 사람?

-졸잼. 진짜 미치지 않았어요? 드라마를 어떻게 이렇게 재미있게 만들 수가 있지?

-그러게요. 저도 방송 전부터 떠들어대서 어떤가 하고 봤는데, 완전 미쳤음. 그런데 김준호 연기 좀 늘은 거 같지 않아요? 소라빵 머리 모양도 좀 웃기고ㅋㅋㅋㅋㅋ

-완전 빵 터졌음. 시발ㅋㅋㅋㅋㅋ 머리 모양이 그게 뭐임. 아줌마도 아니고ㅋㅋㅋㅋㅋㅋ

-장선화 교복 완전 잘 어울리지 않아요? 와, 어쩜 그렇게 고등학생 같지?

-최강민은 또 어떻고요. 오늘 연기하는 거 보고 진짜 깜짝 놀랐음. 걘 아이돌이 아니라 그냥 배우던데요? 연기 논란이 왜 일었는지 솔직히 어이없었음.

-막말로 오늘 분은 최강민이 캐리한 거 아니에요? 김준호보다 훨씬 더 연기 잘함. 그냥 얼핏 보면 최강민이 더 주인공 같던데?

-어? 최강민이 주인공 아니었어요? 난 그런 줄 알았는데?

드르륵. 드르륵.

드라마가 시작되는 순간부터 핸드폰이 아주 난리가 났다.

가족들과 친인척, 친구들, 데뷔하면서부터 사귄 사람, 그리고 꽃 미남 학교를 촬영하면서 연락처를 주고받은 수많은 이들. 조금이라도 인연이 있다 싶은 사람들한테는 모두한테 연락이 왔다.

드라마가 끝날 때까지 핸드폰이 잠시도 가만히 있질 못하면서 덜덜거린다.

얼핏 화면에 떠올랐다 사라지는 글들이 드라마 재밌다. 잘되길 바란다등의 축하 메시지와 감상평들이 퍼레이드를 이뤘다.

처음에는 몇번 답장을 하다가 나중에는 그냥 포기했다. 감당이 안 된다. 답장을 보내고 있는 도중에도 몇 개씩이 연달아 오는 걸 어떻게 하라고.

걸려오는 전화도 내버려뒀더니, 순식간에 부재중 전화가 20개가 찍힌다. 안되겠다 싶어 잠시 동안 음소거를 해 놨다.

꽃 미남 학교드라마 첫 방이 끝이 나고, 화면은 어느새 광고 화면으로 바뀌어 있었다.

노트북에 파묻다 시피 얼굴을 묻고 있던 장요한이 얼굴을 천천히 들었다.

“형, 시청자 반응이 진짜 좋은데요?”

나도 혹시나 하고 불안한 마음에 게시판에 들어가서 반응을 확인했다. 녀석의 말대로 시청자들의 반응은 다음 편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내면서 호평일색이다.

드라마를 본 멤버들도 저마다 짧은 감상평을 내놓았다.

“진짜 재밌었어요.”

“마저. 나도.”

“시간 가는 줄 모르겠던데요. 근데 맨날 얼굴 보는 형이 티비 안에서 연기하고 있으니까 진짜 어색해요. 막 오글거리고.”

내가 웃으면서 말했다.

“그건 나도 그래.”

“여보세요? 차 실장님? 형이요?”

뭔가 싶어 봤더니 노아가 핸드폰을 귀에 딱 붙이고 있다. 노아가 나를 힐끔 쳐다보더니, 대꾸한다.

“옆에 있어요. 형, 형 왜 전화 안 받느냐고 물어보는데요?”

“아······.”

핸드폰을 슬쩍 봤더니, 여전히 전화랑 문자, 톡이 쉴 새 없이 날아들고 있다.

저러다가 핸드폰 불나는 거 아니냐고 염려될 정도로.

노아가 웃으면서 스피커에 대고 대답했다.

“형. 핸드폰 지금 장난 아니에요. 연락이 이곳저곳에서 너무 많이 와서 음소거 해놨어요. 네. 네. 잠깐만요.”

노아가 스피커폰으로 바꿨는지 말소리가 울려 퍼졌다.

-얘들아. 놀라지 말고, 잘 들어. 방금 꽃 미남 학교 시청률 나왔는데······.

꿀꺽.

침 넘어가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첫방 13프로로 마감했대.

솔직히 13이라는 숫자에 대해서 체감이 잘 와 닿질 않는다. 그건 멤버들도 마찬가지인 것 같고.

“잘 나온 거 맞죠?”

노아의 물음에 차조영 실장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약간 흥분했는지 평소와는 목소리 톤이 한음정도 높았다.

-당연하지. 작년하고, 올해동안 10프로 넘기고 시작한 드라마가 10개도 안 돼. 최근 1년 동안한 드라마 중에서는 탑이야. 탑. 참고로 태양의 후손 첫방이 12.6프로였는데, 그보다도 높아. 이제 체감이 가?

“태양의 후손보다 더 높게 나왔다고요? 그거 진짜에요?”

이구동성으로 멤버들의 입에서 열렸다. 이렇게 말하니 체감이 확 된다.

그 어마어마한 드라마보다 첫방 시청률이 더 높게 나왔다니.

-아주 여기저기에서 전화오고 난리 났다. 아주 기자들이 벌떼 같이··· 어휴, 지금도 또 전화 들어오네. 아무튼 너희들이 궁금해 할 것 같아서 조금이라도 빨리 알려주려고 전화한 거니까 그렇게 알고 있어. 나도 지금 여기저기 전화 돌려서 고맙다고 감사 인사라도 좀 해야 할 것 같으니까. 조금 있다가 숙소에 들릴 테니까 우리끼리 회식이라도 하자. 이렇게 좋은 날 그냥 넘어 갈 순 없지. 안 그래?

얼떨떨한 표정으로 노아가 핸드폰을 종료했다. 한참동안 멤버들이 넋 놓고 있는 표정을 짓더니, 점점 표정들이 기괴하게 변해 간다.

마치 사람에서 요괴로 변신하고 있는 과정 같달까.

제일 먼저 장요한의 환호성이 떠나가라 거실을 메운다. 그리고 연달아 멤버들이 나한테 달라붙더니, 축하한다면서 팔과 등. 여기저기를 퍽퍽 때린다.

*

-송 작가님! 이야기 들었어요?

첫 방이 끝나기가 무섭게 걸려 들어오는 전화에 누군가해서 봤더니, 하윤성 감독이었다. 송희연 작가가 핸드폰을 고쳐 들었다.

“아, 하 감독. 왜요. 시청률 나왔어요?”

-네, 나왔어요.

“잠깐만요. 긴장을 해서 그런가. 물 좀 마시고요.”

일단 싱글벙글한 음색을 들으니, 나쁘게 나오진 않은 것 같다. 만약 시청률이 예상보다 저조하게 나왔다면 이렇게 득달같이 전화를 걸어 시청률 이야기부터 하진 않을 테니까.

몇이지? 몇이나 나왔을까?

사실 손익분기점을 넘느냐 못 넘느냐는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 이상 얼마만큼의 성적을 거둬내느냐가 문제였지.

부엌으로 가서 물 한 잔을 따르고, 목을 축인 송희연 작가가 핸드폰을 귀에 대고 말했다.

“몇··· 나왔어요?”

-놀라지 말고 들으세요. ··· 3프로.

주위에서 뭔가 떠들썩한 소리가 들려와 목소리가 묻혔다.

송희연 작가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설마 3프로란 소리는 아니겠죠?”

속이 타들어간다. 대답을 기다리는 동안 다시 목을 축이는데, 조금 전과는 쩌렁쩌렁한 소리가 들려왔다.

-13프로요! 송 작가님. 저희 대박 났어요!

쿨럭.

목구멍으로 들어갔던 물이 다시 뿜어져 나왔다.

< 변화의 소용돌이 (2) > 끝

ⓒ 윤민우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