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듀스 나노머신-75화 (75/124)

< 내가 너무 얕보였지? >

납치씬 #3

음침한 분위기가 흐르는 지하실.

사내 다섯 명이 마스크를 쓴 채 험악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고, 벽면 구석에는 한이슬(장선화)가 의자에 결박된 채 묶여 있다. 그때 문이 활짝 열리며, 박선우(최강민)이 지하실 내부로 들어온다.

두리번거리는 박선우. 그러다가 한이슬을 발견하고는 소리친다.

“이슬아!”

봉두난발에 얼굴이 지저분해진 한이슬(장선화)이 의자에 결박된 채 앉아 있다가, 박선우(최강민)을 발견하고 소리를 지른다.

허나, 입을 테이프로 막아놓은 터라 말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읍읍읍!”

“뭐야, 저 새끼는?”

불청객이 끼어들었다는 걸 알자 험악한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검은 마스크를 쓴 다섯 명의 사내가 서로 눈짓을 한다.

“쳐!”

계단을 단숨에 뛰듯 내려간 나는 계단 아래 있는 괴한 한명을 발로 차며, 싸움을 시작한다.

여기까지가 이번에 찍어야할 분량이다.

싸움은 조금 해봤냐고?

그럴 리가.

그렇다고 이날을 위해 액션 연습을 하던가, 체육관에 찾아가서 운동을 배운 것도 아니다. 그저 촬영 직전 스턴트맨들과 합을 맞춰본 게 전부다. 허나, 스턴트맨들과 그들과 같이 온 팀장은 나를 향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마치, 타고난 액션 배우 같다면서.

-액션 배우 모드로 전환됩니다.

영삼이의 낭랑한 음성이 머릿속으로 전해져옴과 동시에 나는 재빠르게 뻗어오는 주먹을 한손으로 흘려보내며, 발로 한 녀석을 걷어찼다. 물론 시늉일 뿐이다. 발이 상대의 몸에 닿기도 전에 상대가 억 소리를 내며, 뒤로 나자빠진다.

“으헉!”

얼핏 보면 진짜 같지만 이것 또한 미리 사전에 다 맞춰놓은 동선이다.

쓰러진 배우가 가슴을 움켜쥐며 할딱거린다.

진짜 할리우드 액션이 따로 없다. 괜히 스턴트맨을 연기자라고 하는 게 아니다.

그리고 내가 벽을 딛고, 회전을 해서 발차기, 옆차기, 뒤차기, 날라차기등.

보여주기 용 기술이란 기술은 모두 선보이며, 상대들에게 퍼부었다. 순식간에 네 명, 아니 다섯 명이 바닥위로 쳐 박힌다.

내 시선이 바닥 위 쓰러져 신음을 흘리고 있는 괴한들을 훑어본다. 그리고는 이내 묶여있는 한이슬에게로 향한다.

“괜찮아?”

내 다정한 음성에 눈물이 왈칵 솟은 한이슬이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기다려. 곧 풀어줄 테니까.”

우선 입에 붙어 있는 테이프를 제거했다. 그리고 손에 묶인 밧줄을 풀어주려던 그때.

녹슨 경첩에서 나는 끼익- 소리가 들려오고, 지하실 철문이 열린다. 이우빈이 잠시 외출했다가 돌아온 것이다. 장내를 한번 쳐다본 이우빈이 나를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이우빈의 아버지는 한국과 일본을 오고가며, 야쿠자들을 등에 업고 사업을 벌이는 사금융쪽의 거물인데, 그래서인지 이우빈도 역중 설정이 각종 운동을 모두 섭렵한 스포츠인으로 나온다. 그가 코웃음을 치며, 시선을 아래로 둔다.

“용케 찾아냈네.”

“이슬이는 내보내. 이 일에 아무 상관도 없는 애야.”

“아무 상관이 없다고?”

이우빈이 코웃음을 친다.

“만약 고용태가 저 계집을 좋아한다고 해도 그런 소리가 나올 수 있을까?”

“뭐?”

보조개가 살짝 팬 비열한 웃음이 이우빈의 입가에 걸린다.

“아, 맞다. 너도 저 계집을 좋아하지? 그런데 어쩌냐. 내가 본 바에 의하면 쟤는 네가 아니라 고용태를 좋아하는 것 같던데.”

대사 한마디 한마디가 비수가 되어 가슴속에 팍팍 꽂힌다.

우수에 젖은 듯한 내 눈빛이 한이슬에게 향한다. 저 말이 사실이냐고, 사실이 아니라면 거짓말이라고 어서 말해달라면서.

그리고 그 사이 이우빈이 거의 날 듯이 내려와 기습적으로 나의 옆구리를 향해 발을 날렸다. 퍽소리가 났다.

“크윽.”

반사적으로 몸을 틀었지만 거의 무방비로 옆구리를 내어준 터라 비명소리가 절로 나왔다.

겁나 아프다. 원래는 차는 척만 해야 하는 장면인데, 정말로 걷어차였다.

시발, 저 새끼가 진짜로 걷어찼다고!

분노에 찬 눈으로 쳐다봤더니, 녀석의 입 꼬리가 슬그머니 올라가고 있는 게 보인다. 웃고 있다. 그것도 끅끅거리면서.

대본상 웃어야 하는 게 맞는데, 그 웃음이 전진후가 웃는 건지 이우빈이 웃는 건지 헷갈린다.

그래도 대사는 쳐야할 것 같아서 입술을 꽉 깨물며 소리쳤다.

“네가 이러고도 무사할 것 같아?”

“무사하지 않으면? 어차피 회사건 집안이건 풍지박살나기 일보 직전인데. 그것도 다 그 잘난 태산 때문에!”

현실과 작품 속을 왔다 갔다 하던 이우빈 목소리가 지하실에 울려 퍼진다.

태산 그룹은 작품 속 고용태(김준호)의 아버지가 대표이사로 운영 중인 그룹으로, 명실공히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대기업중 하나다. 자동차, 의료, 건축, IT, 가전제품, 호텔, 중공업등 총 60개가 넘는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는 초우량기업.

이우빈 집안도 금융시장 쪽에서는 제법 콧방귀를 뀌고 있다지만, 태산에 비교하면 그야말로 태양 앞의 반딧불 수준. 작품상 두 아버지는 사업상 갈등 중이다.

“방해하지 말고 그냥 조용히 나가. 조금 있으면 고용태(김준호)가 올 테니까. 그동안의 우정을 생각해서 곱게 보내주마.”

“이 상황에서 고용태를 불러서 뭘 어쩔 건데?”

“녀석을··· 죽여 버릴 거야.”

“만약 그러지 못하겠다면?”

“어쩌긴.”

광기에 찬 녀석의 눈동자가 번들거린다.

“너도 죽여 버려야지.”

컷!

“좋습니다. 다음 씬 가겠습니다.”

*

모니터를 통해 방금 찍은 씬을 되돌려보고 있던 하윤성 감독이 턱을 매만지며 중얼거렸다.

“와, 실감나는데. 진짜로 미친놈 같잖아?”

“우빈씨가 원래 이런 역 전문이잖아요. 그런데 조금 전에 강민씨 진짜로 얻어맞은 거 같지 않았어요? 맞는 소리가 여기까지 나던데요?”

“그래? 나는 모니터만 보고 있어서 그런 가 잘 모르겠던데. 시늉만 하기로 미리 말 맞춰 논 거 아니야?”

“그러기야 그랬죠. 내가 잘못 봤나?”

그 말에 옆에 있던 또 다른 스텝이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요. 제대로 본거 맞아요. 제가 보기에도 분명 세게 맞았어요. 그런데 겉보기에는 아무렇지도 않은 것 같네요. 혹시 둘 사이에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거 아니에요?”

이우빈이 싱글거리는 얼굴로 내게 말을 걸어왔다.

“미안해요. 역할에 너무 몰입하다보니 힘 조절이 잘 안됐네요. 안 아팠어요?

“네, 괜찮아요.”

“아, 다행이네요. 다음 씬은 제가 신경 써서 할게요. 우리 귀중하신 최배우님 다치기라도 하면 큰일 나니까.”

이우빈이 씩 웃으며 살살 눈웃음을 친다. 그런데 이게 상황이 참 긴가민가하다. 사과는 사과 같은데 나는 왜 저게 꼭 조롱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거지?

“슛 들어갑니다. 배우님들 준비해주세요.”

스텝의 외침에 곧장 촬영이 속행됐다.

이우빈과 일대 일로 맞짱을 떠야하는 장면.

대본에는 실감나게 보이기 위해서 내가 안 죽을 만큼 쥐어터지고, 가까스로 제압을 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우빈 캐릭터가 만능 스포츠인 뭐, 그런 걸로 나오는데 쉽게 제압을 하면 그건 설정 파괴니까.

박선우도 어려서부터 태권도를 꾸준하게 익혀 쎈 캐릭터로 나오기는 했지만, 사실 내가 봤을 때 이건 드라마니까 그냥 그러려고 하는 거지, 현실은 말이 안 된다.

뭐, 아무튼······.

우린 미리 맞춰놓은 대로 짜놓은 합을 주고받기만 하면 되는 거다. 어려울 거야 없지.

그런데······.

쉬익.

이우빈이 날린 원투가 내 얼굴을 짓이겨버릴 듯 꽂힌다. 정말 운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간발의 차이로 얼굴을 틀어 피했지만, 워낙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보고 있던 이들도 순간 움찔했다.

“제법인데, 박선우. 그동안 놀지는 않았나봐?”

“너······.”

“어디 이것도 피할 수 있을지 한번 지켜볼까?”

이우빈이 권투 자세를 잡더니, 내 턱밑까지 치켜 들어온 다음 옆구리, 복부를 향해 주먹을 던진다. 양팔로 가드를 하긴 했지만, 막은 팔이 얼얼했다. 녀석이 얼굴을 기울여 내 귀 쪽으로 바싹 붙더니, 속삭이듯 말했다.

“그동안 지켜보고 있었는데, 너 좀 재수 없었거든.”

“······.”

대본에는 없는 말이다.

얼굴을 들어 쳐다보니 이우빈이 한쪽 입 꼬리를 치켜 올린 채 웃고 있다. 마치, 이 상황이 무척이나 재미있다는 것처럼.

그 광경을 지켜보던 스텝들 사이에서 수군거림이 일었다.

분명 두 남자의 대사와 행동들이 지금 처해있는 상황과 기가 막히게 잘 맞아떨어진다. 연기라 할 수 없을 만큼 대사나 눈빛 연기도 좋았고, 정말로 치고받은 것처럼 표정도 리얼했다.

스텝 한명이 하윤성 감독에게 나지막하게 말했다.

“어어··· 감독님. 이거 스톱시켜야하는 거 아니에요? 지금 행동이랑 대사랑 대본이랑 완전히 다 다른데요?”

“나도 알아! 그런데 가만히 있어봐. 지금 장면은 엄청 잘 뽑히고 있으니까.”

간혹 사전 조율 없이 현장에서 애드리브로 즉석 연기를 펼치는 배우들이 있긴 하다.

일부로 라기보다는 배역에 몰두하다보면 자연스럽게 나오는 현상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그렇게 뽑힌 장면들의 대부분이 원래 대본보다 좋을 때가 더 많다. 그래서 현장 경험이 많은 감독들은 바로 자르기보다는 일단 장면을 찍어놓고, 보는 경우가 많았다. 바로 이번 같은 경우처럼.

“그냥··· 이대로 가요?”

“한번 지켜보자고. 강민씨가 어떻게 나오나. 일단 카메라 계속 돌려.”

*

적대감 섞인 눈빛이 나를 훑고 지나간다. 그 눈빛을 보는 순간 나는 대번에 알아차렸다.

내 앞에 있는 건 고용태(김준호)집안과 얽혀서 복잡한 상황에 처해진 전진후가 아니다. 현실 속에서 시기와 질투심에 사로잡혀 앞뒤분간 못하고 있는 이우빈이지.

힐끔 감독과 스텝들의 반응을 살폈다.

분위기상 그냥 이대로 고하자는 분위기다.

나는 일단 이우빈을 쳐다보며, 대사를 쳤다.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해? 우리 친구잖아.”

“친구?”

녀석이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다는 말을 들은 것처럼 히죽거리더니, 입술을 핥는다.

“친구는 무슨. 그냥 우리는 고용태 옆에 붙어 다니는 꼬봉들이야. 언제든 버릴 수 있는. 그런데 친구는 무슨. 시발, 좃까라고 그래!”

녀석의 표정이 악귀처럼 무서워지더니, 입술을 질끈 깨물며 장선화와 나를 번갈아 쳐다본다.

“죽기 싫으면 꺼져. 난 고용태한테 볼일이 있으니까.”

“싫다면?”

“싫어?”

이우빈이 새하얀 치아를 드러내 보이며, 이내 싸늘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면 오늘 다 같이 죽는 거지. 너도. 쟤도.”

분노를 담은 주먹이 곧장 내게 날아왔다.

역시나 대본과는 완전히 다른 경로다. 이빨까지 꽉 문 녀석에게서 살기감마저도 느껴진다.

이 새끼가. 진짜 보자보자 하니까.

실제로 각종 스포츠로 단련된 이우빈은 배역만큼이나 스피드가 빨랐다. 어느새 내 코앞까지 닥친 녀석의 주먹을 나는 간발에 차이로 흘려보내고, 액션배우 모드화 된 날렵한 반사신경을 이용해서 녀석의 복부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새삼 생각하지만 만약 나한테 영삼이 능력이 없다면 어떻게 했을지 나도 모르겠다.

아, 아예 이우빈과 대면할 일 자체가 없었으려나?

어쨌든.

억 소리를 내며, 한 대 맞고 떨어진 이우빈이 복부를 움켜잡더니, 야차같이 일그러진 눈으로 나를 쳐다본다. 녀석의 눈동자가 당황함으로 물들어 있다.

아마 전혀 생각지도 못했을 거다. 대본상에는 내가 그냥 일방적으로 맞아주는 장면이었으니까.

더군다나 내 주먹이 좀 빨랐게? 아마 보이지도 않았을걸.

“이, 새끼가 진짜!”

맞았다는 수치심과 분노로 인해 녀석의 얼굴이 붉어졌다. 내 행동이 녀석의 가슴속에 있는 도화선에 불을 붙였나보다. 아주 나를 잡아먹을 듯 달려든다.

나는 그걸 보고 잠시 고민했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할지.

연예계 바닥에 발을 들여놓으면서 느끼기 시작하는 건데, 사람이 한번 얕보이기 시작하면 계속 해서 얕보인다는 거다. 때로는 힘을 보여주는 것도 필요했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바로 그 시점이 바로 지금인 것 같고.

생각은 길었지만 몸 반응은 빨랐다. 녀석이 쏘아오고 있는 도중 내 상체와 허리가 그림처럼 회전했다.

그리고 내 발과 녀석의 면상이 도중에 만났다.

빡 소리가 났다.

< 내가 너무 얕보였지? > 끝

ⓒ 윤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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