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듀스 나노머신-74화 (74/124)

< 우리 집의 탑 스타 (2) >

집안으로 들어가자 미처 나오지 못한 형과 형수가 나를 반겼다.

“야야, 오랜 만에 보는데 왜 어제 보고, 그제도 본 것 같지? 하도 주위에서 떠들어대서 그런가? 아무튼 잘 왔다. 내 동생.”

“도련님. 그동안 더 잘 생겨지셨네. 어우야, 얼굴에서 빛이 막···. 이게 바로 연예인 후광 뭐 그런 거예요?”

거의 1년 만에 본 형과 형수가 부부끼리 합심해서 나를 놀리느라 정신이 없다.

“놀리지 마요. 제가 그 정도까지는 아니죠.”

“그 정도 맞을 걸요? 저희 회사에도 플레어 팬 있다니까요? 도련님 팬이래요. 내가 그거 말하고 싶어 입이 얼마나 근질 근질거렸는지 몰라요.”

“왜요, 그냥 말하셔도 되는데.”

“말해봤자 나만 들들 볶이지. 누구 좋으라고요? 내가 제일 싫어하는 대리님인데.”

상상을 해봤는지 형수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든다.

이번에는 사촌 동생들이 달라붙는다.

이모들과 삼촌들의 자식들. 초등학교에 입학한 녀석도 둘이나 된다. 내 기억 속에 사촌 동생들은 아직 한참이나 애기들인데, 언제 이렇게 다 컸지?

“형형, 진짜 우리 사촌형이 최강민이라고 말해도 돼요?”

조금 전 내가 손가락질했던 동생 놈이다.

“어, 돼.”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폴짝거리며 엄청 좋아한다.

“진짜요? 진짜? 아싸, 학교에 가서 자랑해야지.”

“나도 나도!”

차조영 실장이 애들이 귀엽다면서 지갑에서 만 원짜리를 몇 장 꺼내 애들한테 나눠주자, 천하라도 가진 듯 신난다고 뛰어다닌다. 물론, 그건 이모, 삼촌들의 손에 의해 5초 천하로 끝났지만.

차조영 실장이 나가기 전 나를 툭 치며 웃는다.

“집안 화목하니 보기 좋네. 나간다. 무슨 일 있으면 전화하고.”

“네.”

차조영 실장이 나가는 것을 배웅하고, 들어오자 형이 나에게 슬쩍 다가와 소곤거렸다.

“너 오늘 온다고 이모, 삼촌들 전부 아버지가 불렀어. 오늘 방송하는 거 같이 보자면서. 삼촌네는 그거 때문에 애들이랑 원래 동물원가기로 했다는데 그것도 파토 냈다더라.”

“진짜?”

“어, 너 방송하는 것도 빠짐없이 다 챙겨보고 계셔. 말은 안하시지만 티비에서 너 나오면 엄청 좋아하시더라. 뭔 방송인지도 모르고, 막 웃고 계신다니까? 나 그거 보고 진짜 기절하는 줄 알았다.”

아버지가? 상상이 잘 가질 않는다. 내가 알고 있는 아버지는 티비를 통해서 보는 거라고는 뉴스밖에 없다. 간혹 축구나 야구를 보신다면 모를까. 내가 최근에 나왔던 거는 대부분 예능프로그램이었는데, 그걸 아버지가 다 챙겨봤다고?

아버지를 슬쩍 쳐다봤다.

어머니가 내온 과일을 포크로 찍어 드시면서 웃고 있는데, 그러고 보니 아버지가 저렇게 웃고 계신 걸 본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내 기억 속에 아버지는 항상 무뚝뚝하고, 근엄한 표정이었는데.

여하튼 저런 아버지의 변화가 나 때문이라니 조금은 머쓱하기도 하고, 기분이 묘하고 그렇다.

“암튼 알아두라고. 와, 그나저나 내 동생이 연예인이라니 좀 어색하고, 이상한데? 그런데 너 얼굴이 조금 달라진 것 같은데? 혹시 성형 받았어? 아니면 카메라 마사지 뭐, 그런 거 받으면 얼굴이 잘 생겨지나? 나는 얼굴이 왜 이렇지?”

나를 한발자국 뒤에서 쳐다본 형이 위아래로 훑더니 턱을 문지른다. 그런 형의 등짝을 어머니가 철썩 때린다.

“너는 아빠를 닮았고, 강민이는 나를 닮았고.”

“왜요, 어머니. 제 눈에는 우리 여보가 훨씬 잘 생겼는데.”

뒤에 서 있던 형수가 괜찮다는 듯 형을 감싸 안고 토닥거리자, 그 모습을 보고 친척들이 모두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잠시 후.

이른 저녁을 먹고 우리 가족은 옹기종기 거실 티비 앞에 모여 앉았다.

조금 걱정이 되긴 한다. 피디가 과연 편집을 어떻게 해놨으려나.

차조영 실장이 피디와 전화해봤는데, 생각보다 더 재미있게 나왔다고 걱정하지 말라는 말을 전하긴 했다.

우려와 걱정 속에 프로그램이 시작됐다.

서서히 떠오른 오늘밤 친구야 뭐해. 라는 글씨가 대문짝만 하게 커지더니, 이내 화면에 자리 잡다 사라졌다. 그리고 MC김경규와 임현경이 오프닝 멘트와 함께 내 얼굴이 가장 먼저 비춰진다.

한바탕 거실 안이 난리가 났다.

내가 나온 프로는 꾸준히 모니터링을 하고 있지만 볼 때마다 어색한건 어쩔 수가 없나보다.

회사 측에서 넘긴 것이 확실해 보이는 인서트 컷 몇 장이 들어온다.

꽃 미남 학교 촬영현장으로 보이는 장소에서 나와 장선화가 웃고 떠드는 사진, 그리고 김준호와 하이 파이브를 하고 있는 장면도. 그 뒤로 서은채의 인터뷰 영상이 뒤따른다.

-최강민씨를 개인적으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개인적으로요? 음.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서은채가 웃음을 흘린다. 그리고 편집부에서 일부러 그 장면을 엄청 부각시켜 놨다.

꼭 뭔가 있어 보이는 것처럼.

순간 나를 쳐다보는 주위 시선들이 뜨거워진다.

“너 혹시 서은채랑······.”

내가 왜 저 질문이 안 들어오나 했지.

“아무 사이도 아니에요. 실제로 저렇게 가까이서 본 게 저때가 처음이에요. 재미있으라고 저렇게 편집해놓은 거예요.”

대부분 고개를 끄덕였지만, 몇 몇은 아직도 의심쩍은 표정으로 쳐다본다.

그리고 서은채, 김준호, 장선화의 모습이 새롭게 떠오른 내 얼굴 아래 쾅쾅쾅 하고 박힌다. 그리고 그 위로 자막 글씨가 자리 잡는다.

‘최강민을 위해 탑배우 3인방 방문하다.’

최강민 특집이 될 거라더니, 아예 연출진에서 작정을 했나보다.

그걸 보고 가족들이 눈이 휘둥그레진다.

“너 드라마 찍는다고 하더니, 김준호랑 같이 드라마 찍었어? 그, 웃음꽃이 피었네에 나온 그 김준호?”

“네, 작은 이모. 그 김준호 맞아요.”

전작을 가족 드라마를 찍어서 그런지 김준호는 40, 45대 여성들에게 인기가 좋다.

“장선화는 진짜 화면처럼 예뻐? 듣기로는 얼굴이 주먹 만 하다고 하던데. 실제로도 그래?”

“네, 큰 이모. 주먹 만 하지는 않고, 그것보단 커요. 그런데 작긴 엄청 작아요.”

“그래? 혹시 사인 좀 받아다주면 안될까? 수열이가 장선화 엄청 팬이잖아.”

수열이라면 이번에 군대 들어간 큰이모 첫째 아들이다.

하긴 관물대 전시용이라면 여자 연예인 사진과 사인만한 게 없지.

그것만 붙여놓더라도 선임들한테 예쁨 많이 받을 거다. 기회 되서 목소리라도 들려준다면 아주 난리가 나겠지. 선임이 라면을 끓여다가 갖다 바칠지도 모른다.

“네, 큰 이모. 사진이랑 사인 받아다 드릴게요.”

“꼭이야. 꼭.”

이윽고 본격적인 방송이 시작됐다. 장선화, 김준호와의 전화연결이 불발이 됐을 때 인상을 찌푸리던 식구들이 서은채, 장선화, 김준호가 모두 온다고 하니까 아주 난리가 났다. 자기들이 더 좋아한다.

녹화를 하면서 나는 적극적인 토크보다는 주로 묻는 말에만 대답했을 뿐인데, PD가 그걸 또 엄청 잘 살려 놨다. 말을 할 때마다 게스트로 나온 이들의 엇갈린 반응과 리액션이 들어가니, 그게 또 보는 맛이 쏠쏠하다. 특히나 퀴즈 코너에서 서은채가 계속

손을 들 때마다 식구들은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어머어머, 서은채 쟤 웬일이니. 어떻게 저렇게 잘 알지?”

“저거, 다 대본에 있는 거지? 다 짜고 치는 고스톱 아니야? 그게 아니라면 어떻게 저렇게 잘 맞춰?”

가족들이 나를 보는 눈초리가 심상치가 않다.

곧이어 서은채의 나이와 키, 가족 관계 등. 별의별걸 다 묻는 질문들이 날아든다.

“조금 뒤에 나올 건데, 서은채씨가 플레어 팬이래요. 저 내용들 팬 페이지에 가면 다 있어요. 그거 보고 안 거래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진짜 너한테 마음 있는 거 아니야?”

“아니에요.”

내가 딱 잘라 선을 그었다.

진짜 별 이야기를 다 듣겠네.

“어어!? 강민이 지금 실검 올라갔는데?”

“어디어디.”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던 작은 이모의 말에 모두가 핸드폰을 꺼내 인터넷창을 켰다.

방송이 나가고, 회사에서 돌린 홍보자료를 받고, 대기 중이던 기자들이 일제히 업데이트를 했나보다. 연예란에 들어갔더니 첫 페이지의 절반가량이 전부 내 기사로 도배돼 있다.

가만 보니, 꽃 미남 학교 측에서 내보낸 것으로 보이는 기사들도 보인다.

이참에 꽃 미남 학교가 거론되는 거 확실하게 한 번 더 홍보를 하고 가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그 덕분에 10위에 보이던 내 이름이 단숨에 1위를 꿰차고 올라갔다.

그리고 계속 이름이 거론되던 탑스타 3인방도 내 아래로 줄줄 올라오고 있고. 덩달아 꽃미남 학교도 그 뒤를 따른다.

방송은 끝이 났지만, 그 열기는 좀처럼 식을 줄 몰랐다. 거실에 모인 친척들이 연신 나를 중심으로 이야기꽃을 피우며 즐거워하고 있다.

진짜 아들하나 잘 키웠다. 이제 고생 끝났고, 팔자 필 일만 남았다. 너 부모님에게 진짜 효도해야한다. 저마다 한마디씩 보태는데, 평소 내 이야기만 나오면 어깨를 움츠려 들었던 부모님들이 춤이라도 출 듯 덩실덩실 거리고 있다.

왜 아니겠는가.

가수한답시고 그 좋은 세월 다 갖다 바치고, 티비에 얼굴 한번 안 나오던 애가 반년 사이에 탑 스타가 돼서 나타났는데.

그날 실검에 올라간 내 이름은 다음날 오전까지 내려오지 않았다.

*

그리고 다음날 오후.

촬영 현장에 갔더니, 웬일인지 시끌벅적하다. 무슨 일인가 싶어서 봤더니, 어제 방영됐던 오밤친 이야기가 한창이다.

그 인파 속에는 장선화와 김준호도 포함되어 있었다.

하윤성 감독이 싱글벙글한 표정으로 내게 다가왔다.

“최강민씨 덕분에 우리 드라마 홍보 제대로 했어요. 방송 봤더니 예능감이 생각보다 좋던데요? 아주 우리 세 주연배우들이 떡 하고 앉아 있으니, 채널이 안돌아가더라고.”

“그게 뭐 제 덕분인가요. 준호씨랑 선화씨가 다 했죠. 저야 그냥 묻어 간 거고.”

“그거야 최강민씨가 불렀으니 나간 거고.”

나를 쳐다보고 있는 하윤성 감독의 목소리가 한층 은근해진다.

“그래서 말인데요. 혹시 다음 차기작도 생각 있으면 나랑 할래요? 내가 다음 차기작으로 뭘 할지는 모르겠지만, 강민씨는 무조건 염두 해두고 있을 테니까. 어때요?”

현장에 와있던 송희연 작가가 중간에 끼어들었다.

“최강민씨, 하감독 이야기는 더 들을 것도 없고, 그냥 나랑 한 작품 더 해요. 내가 다음 작품은 제작비지원 빵빵하게 받아서, 시공간을 뛰어넘는 판타지 로코물을 쓸 생각인데, 아주 끝내주게 캐릭터 뽑아 줄 테니까.”

그 말을 들은 하윤성 감독이 눈이 동그래진다.

“송 작가님, 벌써 차기작 준비하고 계신 거예요?”

“예전에 시놉 뽑아놓은 게 있어서 그래요. 판타지 장르라고 하면 돈 많이 깨지고, 손익분기점 넘기 힘들다며 제작, 투자사들 잡기 힘든데, 이번 작품 대박 터지고 나면 상황이 좀 달라지지 않겠어요? 관심 있으면 하 감독도 붙던지.”

하윤성 감독이 웃으면서 이야기한다.

“그건 일단 성적 나온 다음에 이야기하죠. 아직 첫 방도 안 나갔는데, 대박은 무슨.”

말은 그렇게 했지만 하윤성 감독의 눈이 이미 웃고 있다. 어느 정도의 성적은 보장받아놓기라도 한 것처럼.

상황이 이쯤 되자 이게 농담인지 진담인지 나도 헷갈린다.

배우들의 몸값은 크게 작품 전과 작품 후로 나뉜다.

그저 그런 무명배우가 드라마 한편, 영화 한편 찍고, 대박나면 몸값이 몇 배씩도 껑충 뛰고 그러니까 그다지 틀린 말도 아니지.

특히나 나 같이 드라마 판에서 검증되지 않은 신인배우라면 백지수표나 마찬가지다.

10-20대들 사이에서는 인지도가 어느 정도 형성되어 있다곤 하지만 그거야 전체연령대로 보자면 극히 일부분일 뿐이고, 그나마 배우로서가 아닌 가수로서 쌓아놓은 인지도다.

실검에도 여러 차례 오르긴 했지만, 그건 대중들의 호기심과 관심일 뿐이고.

만약 첫 방이 나가고, 그런 대중들의 기대감을 충족시키지 못해줄 경우 호기심과 관심은 분노로 바뀔 거다. 욕이란 욕은 오질 나게 먹으면서 악플에 한참동안이나 시달리겠지.

허나, 그와 반대로 배우로서의 놀랄만한 역량을 시청자들에게 보여준다면?

“말씀 감사합니다. 제가 신중하게 생각해볼게요.”

내가 웃으면서 대답했다.

나야 반쯤은 농담으로 그 말들을 흘려버렸지만, 그 같은 이야기들이 누군가에게는 달갑지 않은 모양이다.

그 같은 모습을 조금 떨어진 발치에서 지켜보던 두 쌍의 눈에는 못 마땅함이 가득했다.

“누가 보면 저 새끼가 주인공인줄 알겠네.”

“시발, 다들 미친 거 아니야? 별거 없어 보이는데 왜 저렇게 빨아대?”

역중 3대 천왕을 맡은 이우빈과 최하늘이 영화촬영장 한 켠에서 담배를 피며, 수군거린다.

이우빈이 침을 바닥에 뱉으며 말했다.

“기다려봐. 오늘 액션 신 있지? 내가 저 새끼 제대로 한방 먹여줄 테니까.”

아마추어 복싱대회에서 신인상까지 받은 이우빈이다. 단추 두 개를 풀어놓은 셔츠사이로 잘 다듬어진 근육들이 성을 내고 있다.

“왜? 뭘 어떻게 하려고? 설마 너··· 두들겨 패기라도 하려고?”

“내가 미쳤냐? 작·감이 저렇게 시퍼렇게 두 눈 뜨고 지켜보는데? 그냥 적당히 만져 주는 거지. 시발, 연기하다가 흥분해서 힘 좀 들어갔다는데 누가 뭐라고 할 거야? 안 그래?”

< 우리 집의 탑 스타 (2) > 끝

ⓒ 윤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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