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듀스 나노머신-73화 (73/124)

< 우리 집의 탑 스타 (1) >

며칠 후,

메인작가의 말은 예언과도 같았다. 짤막하게 15초짜리 티저 영상을 내보냈을 뿐인데도, 네티즌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최강민이 배우 3명을 불렀다고요? 장선화 김준호는 홍보차원에서 나왔다고 쳐. 그런데 서은채 조합은 뭐죠?

-서은채랑 최강민이랑 같은 소속사잖아요. 둘이 엄청 친하다고 하던데.

-혹시 둘이 사귀나? 수상한데.

-그건 아니고요. 제가 알기론 서은채가 플레어 광팬이라던데요?

-암튼 재밌겠네요. 본방 꼭 봐야지. 그런데 서은채, 장선화 투샷으로 붙여놓으니까 서은채가 더 예뻐 보이지 않아요? 나만 그런가?

“힛.”

차안에서 핸드폰으로 네티즌의 글을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던 서은채가 마지막 댓글을 보고 배시시 하고 웃는다.

“뭘, 그렇게 재미있게 봐?”

운전석에 있던 최형식 실장이 백미러를 쳐다보며 물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핸드폰을 슬쩍 내리던 서은채가 잠시 후,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더니, 화면을 툭툭 건드린다. 그러면서 또 실실거린다.

뭐 재미있는 움짤이라도 보나보다 싶어서 있는데, 이번에는 거울을 꺼내더니 자신의 얼굴을 쳐다보고 있다.

“오빠, 오빠. 있잖아요. 제가 예뻐요? 아니면 장선화가 더 예뻐요?”

“어? 갑자기 웬 장선화? 왜, 누가 너보고 장선화보다 못 생겼대?”

“그냥 묻는 말에 대답해주세요.”

대답을 기다리는 눈이 초롱초롱하다.

말했다시피 최형식 실장은 서은채 매니저 5년차다. 고민은 필요 없다.

“그거야 당연히 비교불가 서은채지. 장선화 실제로 보니까 생각보다 별로더라. 그거 다 성형빨, 화장빨이야. 너는 성형 하나도 안했잖아. 성형미인이랑 자연미인이랑 어떻게 비교가 돼?”

입은 꾹 닫고 있었지만, 서은채의 입 꼬리 끝이 움찔거린다. 쭉 뻗은 뒤꿈치 끝이 차 바닥을 툭툭 건드린다. 말을 하지 않았지만 저건 엄청 좋아하는 거다.

뭔지 대충 짐작이 간다. 네티즌 반응 체크라면 자신도 꾸준히 하고 있었으니까.

슬그머니 미소를 짓고 있던 최형식 실장이 잠시 후, 툭 던지듯 물었다.

“걱정 안 돼?”

“뭐가요?”

“방송 재미있게 잘 나올지.”

“걱정 안 돼요. PD님이랑 작가님이 재미있게 잘 나왔다면서 걱정하지 말랬자나요. 그런데 걱정을 왜 해요?”

오히려 이상하다는 듯 서은채가 되물었다.

‘그거야 네가 해놓은 짓이 있으니까!’

최형식 실장은 목구멍까지 그 말이 차올랐으나 다른 한편, 잘됐다 싶기도 했다. 사실 방송이 나간 이후, 시청자들의 반응이 염려되긴 했지만, 그래도 녹화방송을 지켜본 당사자로서 새침때기 이미지에서 좀 벗어난 것 같기도 하고, 이미지도 친근하게 잡힌

것 같았으니까.

배우로서 스펙트럼을 넓게 가지려면 시청자들과의 친근한 이미지는 요즘 시대 필수다.

조금 팔푼이 같이 보이긴 했지만, 그건 PD가 알아서 잘 편집해서 붙여준다고 약속 했다.

서은채가 또 말없이 잠잠하다 싶어 뭘 하나 봤더니, 핸드폰을 내려다보고 있다.

좋아죽겠다는 듯이 싱글거리면서.

“왜? 뭐 재미있는 글이라도 있어?”

“어··· 여기 n123님이 그러는데요. 수상하대요.”

“수상해? 뭐가?”

서은채가 차창으로 고개를 돌리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있어요. 그런 게.”

*

“컷! 좋았어. 자자, 다음 점심 먹고 합시다!”

메가폰에서 울려 퍼지는 감독에 말에 다들 환호성을 하며 반긴다.

“와, 밥이다 밥! 배고파 쓰러지는 줄 알았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다 죽어가던 스텝들의 얼굴에 활력이 맴돌았다. 그리고 동시에 그들의 눈이 촬영장 구석 한 켠에 자리 잡은 밥차로 향한다. 1시간 전쯤에 도착한 밥차는 마치 3단 로봇처럼 변신해서, 향긋한 냄새와 따끈따끈한 김을 사방으로 내뿜고

있다. 그리고 밥차 위에는 여지없이 현수막이 붙어 있다.

-밥 짓는 최배우. 오늘도 잘 부탁드립니다.

“크. 오늘도 감동이야. 진짜. 저번에는 커피차에 이번에는 밥차. 최 배우 오늘도 맛있게 잘 먹을게.”

감독이 어깨를 툭툭 두들겨주며 지나갔다. 그리고 스텝들과 배우들의 고맙다는 인사가 한참동안이나 쏟아진다.

정신없이 몰려든 손님들을 부부 내외가 반갑게 맞이하고 있다. 식판 위에 큼직큼직한 고기들과 반찬, 금세 막 한 것처럼 보이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고슬고슬한 밥이 듬뿍 얹어진다.

“와, 죽인다. 진짜.”

“꿀맛이다. 꿀맛. 이게 얼마 만에 먹어보는 제대로 된 밥이냐.”

밥과 국물을 맛본 이들의 환호성이 끊이질 않았다.

촬영 현장에 똬리를 틀면, 쉬지 않고 10시간이든 20시간이든 계속 촬영을 감행해야하는 열약한 환경상, 하루 3끼를 계속 챙겨먹는 것은 그것 나름대로 고욕이다. 특히나 촬영 현장에서 알 박히듯 계속 머물러 있는 스텝들은 더더욱.

제육볶음, 불고기, 각종 나물들과 따뜻한 미역국과 된장찌개가 전부인 식단이지만 열약한 촬영 현장에서 방금 맛 지은 따뜻한 밥과 고기가 들어가니, 다들 입가에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나도 밥과 반찬을 뜨고, 자리를 잡고 앉는데 김준호가 식판을 들고, 내 맞은 편 자리에 앉았다.

“강민씨 때문에 이거 호강하네. 또 김밥 먹어야하나 고민했는데. 나 다이어트 실패하면 이거 강민씨 때문인 거 알죠? 한 달 뒤에 화보 촬영 스케줄 잡혔는데.”

어이, 그게 식탁위로 밥과 반찬으로 산을 쌓은 사람이 할 말이냐?

“다이어트는 개뿔. 누가 보면 체중 증량하는 사람인줄 알겠다. 그렇게 먹고 살 빠지길 바라냐?”

누가 이렇게 속 시원하게 내 속을 대변해주나 했더니, 장선화다.

그렇지. 이 촬영장에서 김준호에게 저렇게 막말할 사람은 장선화 뿐이지.

그녀가 김준호와 내 사이에 턱하고 자리를 잡는다.

그녀의 식판을 힐끔 쳐다보니, 김준호와는 대조적으로 조촐하기 그지없다.

밥 몇 숟가락과 불고기 몇 점. 나머지 반찬들도 죄다 나물위주다.

그걸 안타까운 눈으로 쳐다본 김준호가 혀를 내찼다.

“그거 먹고 오늘 촬영 버티겠냐? 오늘 새벽까지 촬영한다는데?”

“남이사 신경 끄고. 그나저나······.”

퉁명스럽게 김준호의 말을 딱 잘라버린 장선화가 나를 보며, 은근한 어조로 말했다.

“그런데 저번에 녹화할 때보니까 보니까 서은채씨가 강민씨한테 관심 있던 거 같던데. 본인은 그거 알고 있어요?”

이건 또 무슨 소리야.

파리 날개 짓하다가 뺨 후려치는 소리하고 있네.

서은채가 나를? 에이, 그럴 리가.

“잘못 보셨겠죠.”

내가 말도 안 된다는 듯이 고개를 흔들자 오히려 장선화의 눈이 커진 듯 나를 이상하게 바라본다.

“어어? 진짠데?”

“야, 헛소리하지 말고 밥이나 먹어. 너 진짜 눈이 좀 이상한 거 아니냐? 하여간 여자들은 뭐 그런 쓸데없는 이야기를 막 지어내나 몰라.”

김준호가 밥을 오물거리며, 고개를 흔든다. 그 말이 장선화의 심기를 건드렸다.

“야! 거기서 여자란 소리가 왜 나와. 그러는 너야 말로 눈알이 장식용 아니냐? 딱 보면 몰라?”

“어, 몰라.”

김준호가 말섞을 가치도 없다는 듯 단호박처럼 잘라낸다.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은 장선화가 가자미처럼 눈을 흘겨 뜬다.

“네가 그러니까 여태껏 여자가 없지. 모르겠으면 그냥 닥치고, 불고기나 먹어. 강민씨랑 대화하는데 눈치 없이 끼어들지 말고. 이건, 짐승이랑 말하는 것도 아니고, 뭔 말이 통해야 하든가 말든가 하지.”

“야! 강민씨랑 오붓하게 밥 먹는데 끼어든 건 너거든!? 그리고 나는 여자가 없는 게 아니라 내가 안 만나는 거야. 왜 이래!”

“멍청아! 목소리 낮춰. 팬들 보잖아.”

장선화가 등 쪽을 향해 힐끔거리며, 눈을 부라린다. 아니나 다를까 조금 떨어진 곳에 구경 온 팬들이 모여서 우리 쪽을 쳐다보며 수군거리고 있다.

“하하하. 우리 안 싸워요. 그저 얘기 중이에요.”

김준호가 웃으며 팬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준다.

딱한 눈으로 혀를 내찬 장선화가 나를 향해 다시 한 번 말했다.

“하여튼 서은채씨 녹화할 때보니까 강민씨 쳐다보는 눈이 심상치가 않았다니까요? 여자인 내가 봤을 때 틀림없었어요. 여자는 여자가 봐야 알지.”

“야, 니가 무슨 여자냐? 너는 그냥 남자지. 남자.”

“뭐래. 그런데 얘가 왜 자꾸 아까부터 자꾸 시비야? 짜증나게, 진짜!”

아랫입술을 질끈 깨문 장선화가 고개를 홱 돌려 가버린다.

그리고 김준호가 득의양양한 표정을 짓는다. 누가 보면 던전에 들어가서 보스 몹이라도 처치 한 줄 알겠다.

그리고 나는 잠시 장선화가 던진 말 때문에 생각에 잠겼다.

서은채가 나를?

에이, 설마 아니겠지.

*

오밤친 방영 당일.

드라마 촬영일정이 하루씩 뒤로 미뤄지는 바람에 모처럼만에 하루 짬이 났다. 그래서 집에 내려가는 길이다. 가족들이 보고 싶기도 하고.

그동안 진짜 쉬지 않고 달리느라 정신이 없었지.

“네, 엄마 지금 가고 있어요. 차 안 막히면 1시간 이내면 도착할 거 같아요. 운전이요?”

나는 운전석을 힐끔 쳐다보며 귀에 붙인 핸드폰에 대고 대꾸 했다.

“괜찮아요. 일 봐주고 있는 실장님이 운전해주고 있어요. 네네, 그러면 조금 있다가 봐요. 그만 끊어요.”

핸드폰을 끊자 운전석에서 운전을 하고 있던 차조영 실장이 웃으며 물어왔다.

“집에 오랜만에 가는 거지? 어머님이 되게 좋아하시는 같네.”

“데뷔하고 처음 가는 거예요. 그나저나 같이 안 가주셔도 되는데. 그냥 택시 탈걸 그랬나 봐요.”

“이참에 나도 한번 찾아봬야지. 맨날 간다간다 하면서 아직까지 한 번도 못 뵀네. 마침 근처에 일 있으니까 거기 일보고 다음 날 데리러 가면 돼. 그게 뭐 어려운 일이라고. 너 택시 태워 보냈다는 거 알면 팀장님한테 큰일 나게? 아참, 그리고 혹시 통장 확

인해봤어?”

“통장이요?”

“며칠 전에 저번분기 활동한 거 정산된 거 같던데. 한 번 확인해 봐.”

그 말을 듣고 나는 곧장 혹하는 마음에 핸드폰으로 통장잔고를 확인했다.

그런데.

이게 0이 몇 개냐.

5/22일  8:37 216028-56****19 잔액 57,505,310원

“액수가 그리 크진 않을 거야. 우리 회사 정산 시스템도 분기별인데다가 대부분 회사들도 익월로 정산해주는 곳이 많아서 아직 돈이 넘어오지 않은 곳도 태반이거든. 다음 정산 때는 아마 그것 보단 훨씬 많을 거야. 아참, 그리고 그거 음원, 저작권료는 뺀

금액이야. 그건 아직 정산이 덜 끝났거든.”

“음원, 저작권료를 뺀 거라고요? 그건 얼마정도나 받는데요?”

“어··· 모르긴 몰라도 한 1억쯤은 되지 않을까? 타이틀곡이 히트 쳐서 수익 꽤 될 걸?”

차조영 실장의 말에 나도 모르게 절로 신음소리가 흘러 나왔다.

그야말로 억소리가 났다.

곡하나 만들어놓으면 연금이나 다름없다고 하던데, 그 말이 사실이었어!

“뭘 그 정도 가지고 놀라? 봄꽃엔딩은 여태껏 한곡으로만 벌어들인 음원, 저작권료만 40억이 넘는데.”

“40억이요?”

“아이돌 중에서도 저작권료로 돈 잘 버는 애들 꽤 있어. 너도 지금은 두곡이라서 그렇지만 한 열곡쯤 히트시키면 건물도 살 수 있을 걸?”

그 말은 잠시 동안 소강된 나의 작곡 의욕을 불태우기 충분했다.

이거 안 되겠다.

다음 앨범은 전 트랙을 전부 내 곡으로 만들어볼까? 하는 희망찬 꿈을 꿀 때.

잠시 덜컹거린 차가 고속도로를 벗어나, 논 사이에 나 있는 1차선 도로 위를 진입했다.

차도 없고, 한적하기 이를 데 없는 전형적인 시골 풍경이 눈앞에서 펼쳐졌다. 한참 모내기를 해야 하는 시기라 그런지 논밭에는 이미 빼곡히 꽂힌 모들이 장관을 이뤘다. 이앙기 한대가 덜덜거리며 논밭을 가로지르는 게 보인다. 그리고 새참을 먹고 있는

듯한 농부들도.

코를 찌르는 퇴비 냄새를 맡으며, 한참을 더 간 끝에 승합차는 이윽고 덩굴담장이 있는 집 앞에서 천천히 멈춰 섰다.

“오오, 아들.”

차 소리에 반응한 어머니가 제일 먼저 뛰쳐나왔다. 그리고 그 뒤로 큰 이모, 작은 이모, 큰 삼촌, 애들까지 줄줄이 기다렸다는 듯이 나온다. 이게 다 뭐야? 오늘이 무슨 잔치 날이라도 되는 거야? 설마 나 온다니까 전부 다 와 있었나?

“오, 연예인이다. 나 티비에서 봤어!”

나를 보며 한 녀석이 손가락질 한다. 쟤 이름이 형식이었던가? 마지막 본 게 한 3년 전쯤이었는데. 많이 컸네.

“인마, 사촌형이야. 형이라고 불러.”

첫째 삼촌이 아들내미 머리통을 쥐어박았다.

“어이구, 우리 강민이 못 본 사이 엄청 훤칠해졌네. 난 네가 언제고 성공 할 줄 알았다.”

단발에 곱슬 거리는 파마를 한 큰 이모가 내 엉덩이를 두들겨준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는 이모들이 전부 같은 집에서 살았었던 터라, 거의 반이상은 이모들 등에 업혀서 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네, 고마워요 큰 이모.”

“티비 잘보고 있다. 요즘 여기저기 잘 나오던데. 진짜 축하해.”

“고마워요, 작은 이모.”

“이번에 드라마 들어간다면서? 꽃미남 학교? 그거 언제부터 시작 하냐?”

“네, 큰 삼촌. 첫 방, 이제 10일정도 남았어요.”

여기저기에서 안부 인사가 사방에서 몰려든다. 진짜 정신이 하나도 없다.

“다들 정신없게 여기서 뭐하는 거야? 인사는 안에 들어가서 마저 하고, 어서 들어가자.”

아버지가 손짓을 하자 혼란 속의 인사가 급 마무리 됐다. 식구들이 나왔던 문을 통해 다시 우르르 들어갔다. 그제야 한쪽 구석에서 우두커니 서 있던 차조영 실장이 한발 나서 아버지께 인사를 드렸다.

“안녕하세요. 매니지먼트 사업부 실장 차조영입니다.”

“아, 이야기 많이 들었습니다. 조금 정신이 없죠? 실장님도 먼길 오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일단 안으로 들어가셔서 차라도 한잔 하시면서 말씀 나누시죠.”

“네네, 그러면 잠깐 실례하겠습니다.”

그리고 차조영 실장을 안으로 안내하는 아버지와 눈이 마주쳤다. 날 향해 무슨 말을 하려나 싶었는데, 밭일을 하다가 굳은살이 잔뜩 베인 주름진 손이 내 어깨에 턱하고 올라와 두들긴다.

“왔냐.”

무뚝뚝한 음성이지만, 입가에 잔뜩 팬 주름이 웃고 있다.

그 웃음이 내 가슴속에 틀어박혔다.

도대체 아버지가 저렇게 웃는 걸 본 게 얼마만이지?

< 우리 집의 탑 스타 (1) > 끝

ⓒ 윤민우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