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듀스 나노머신-71화 (71/124)

< 인맥이 좋으시네요 (4) >

“어, 김준호씨인데요?”

화면을 확인한 내가 대답을 했더니, MC김경규가 눈이 동그래져서는 마구 손짓한다.

“어서 받아 봐요. 어서.”

나를 바라보는 시선들이 따갑다. 장선화는 이미 촬영하기로 승낙했고, 서은채도 일단 오고 있는 중이고, 이런 상황에서 김준호까지 섭외 된다면?

이건 잭 팟이다. 오밤친 역사상 볼 수 없었던 초 럭셔리 캐스팅. 비단 이 프로그램뿐만이 아니라 다른 프로그램에서도 회자 될 런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모두들 내 목소리에 집중하느라 침 삼키는 소리도 안 들린다.

“여보세요.”

전화를 받자 김준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오, 최강민씨. 톡은 간혹 해도 전화한 건 처음이죠? 내가 전화 왔다기에 반가워서 얼른 전화 걸었어요.

“녹화 중이시라면서요? 통화 괜찮아요?”

-다 끝났어요. 지금 스텝들이랑 인사 중이에요. 헌데, 웬일이에요? 혹시 무슨 일 있어요? 이 밤중에 전화를 다 하고.

“어······. 그게요.”

잠깐 고민했다. 이걸 어떤 식으로 이야기를 풀어 가야해?

하지만 고민을 별로 길지 않았다. 역시나 사실대로 말하는 게 낫겠다 싶어서 차근차근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가만히 듣고 있던 김준호가 내가 한말을 그대로 되짚어준다.

-그러니까 지금 오밤친 촬영 중이고, 절친으로 저를 부르려고 했다는 거죠? 그런데 장선화씨랑 서은채씨가 오기로 한 상황이고.

“네.”

잠깐 동안의 침묵이 찾아왔다. 그러면 저는 나중에 따로 만나요, 혹은 촬영 잘하세요. 라는 비슷한 말이 나올 줄 알았다.

이 상황에서는 당연히 그렇게 말해야 정상이지.

탑 배우 3명이 정식 게스트 출현도 아닌, 게스트의 친구 신분으로 나올 필요는 없으니까. 이건 그야말로 계란 프라이 하나 부치자고, 일급 호텔요리사를 초청하는 격이다. 세상에 이런 인력낭비가 또 있을까.

헌데, 얘도 정상은 아닌가보다.

불쑥, 그것도 아주 단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면 당연히 제가 가야하지 않겠어요?

뭐, 뭐?

-둘보다는 그래도 내가 더 강민씨랑 친하잖아요. 안 그래요?

나지막한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에이, 최강민씨 이제 봤더니 의리 없네. 당연히 이런 프로에 나갔으면 저한테 제일 먼저 전화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내가 또 최강민씨가 불러 주면 이런 프로 열 번도 더 나가지. 우리 그 정도 사이는 되는 줄 알았는데. 저만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나 봐요?”

방송 중이라니까 일부러 과장해서 말해 주나보다 싶어 내심 고마운 마음이 들긴 한다. 헌데, 저건 좀 오바지.

좋긴 한데, 촬영 끝난 이후 얼굴을 어떻게 쳐다봐야할지 벌써부터 갑갑하다.

혹시 저렇게 말해놓고 나한테 돈을 요구하거나 그러는 건 아니겠지?

-그래서 제가 가면 몇 번째에요? 세 번째?

“어, 아마도 그렇게 될 거 같은데요?”

-저도 촬영 다 끝났으니까 바로 출발할게요. 거기 위치가 어디에요?

“압구정동이요.”

-위치 문자로 날려줘요. 지금 출발하면 한 30, 40분쯤 걸리겠네. 아씨, 장선화보다는 빨리 도착해야하는데.

구시렁구시렁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다음 ‘형! 형! 우리 빨리 가야해. 차 어디다 세워놨어?’ 라는 소리가 들려오고, 잠시 후 통화가 종료됐다.

뭐야, 이렇게 끊은 거야?

얼떨떨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내리는데, 다들 나를 쳐다보는 눈빛이 초롱초롱하다. 특히나 옆에 앉은 오달민의 눈이 나에게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마치 일반인이 연예인을 처음 본듯한 모습, 아니 그것보다는 부처님 오신 날에 부처님을 영접한 신자의 모습··· 여하튼, 뭐든 간에 엄청 부러워하는 건 확실했다.

“우와, 최강민씨 이제 봤더니 인맥 장난이 아니네. 혹시 또 부를 다른 사람 없어요? 그냥 전화하면 자판기에서 음료수 뽑듯 막 올 것 같은 분위긴데? 거기 드라마에 또 누구 나오죠? 아니, 그것보다 혹시 소속사 대표님도 나오라면 나오시려나? 한 번 전화해 볼래요?”

누가 MC아니랄까봐 김경규가 가장 먼저 실없는 농담을 날린다.

그리고 임현경이 사이좋게 그 뒤를 따른다.

“음, 저는 원민씨요! 제 이상형이시거든요.”

얼씨구.

그 뒤로 자신들이 보고 싶은 사람들 이름을 줄줄이 댄다. 이러다가는 대통령까지 나올 기세다.

그렇게 한참동안 경쟁적으로 실없는 농담을 주고받고 있는데, 건물 외곽에 설치해놓은 CCTV화면에 검은 색 벤 한 대가 다가와 서서히 멈추는 게 보인다.

“어? 누가 왔나 본데?”

벤의 뒷좌석 문이 드르륵 열리고, 모두의 시선이 그리로 향했다.

*

“오빠, 먼저 내려가 있을 테니까. 주차하고 내려오세요. 되도록 천천히.”

“어? 왜, 주차하고 같이 내려가지.”

최형식 실장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서은채가 고개를 지그시 내저었다.

“사람을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하면 그건 매너가 아니죠. 그리고 부탁드릴게 있는데, 저 오늘 진짜진짜로 많이 먹을 거니까 미리 소화제 좀 사다주시면 안돼요? 굶다가 갑자기 먹으면 막 소화도 안 되고, 그러거든요. 저 체해서 내일 스케줄에 지장생기면 큰

일 나잖아요. 그쵸?”

“소화제? 약국은 다 닫았을 테고, 혹시 근처에 편의점이라도 있나?”

최형식 실장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는데, 기다렸다는 듯이 서은채가 까치발까지 디디며, 손가락으로 차타고 온 방향을 가리킨다.

“들어오면서 보니까 저기, 저기, 쩌~어기에 편의점 하나 있던데. 거기서 팔지 않을까요?”

“그랬어? 난 못 봤는데? 얼마나 먼데?”

“음, 걸어서 한 10분쯤?”

“10분?”

주위를 두리번거린 최형식 실장이 뭔가를 발견했다는 듯 어느 한쪽 지점을 쳐다봤다. 바로 코앞에 사거리에 편의점이 보인다.

“잘됐네. 저기도 편의점 있다.”

“어, 어디요?”

당황한 듯한 서은채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허나, 그것도 잠시 뿐.

이내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젓는다.

“저 편의점은 광양 소화제 안 팔아요. 저는 좀 특이 체질인가 광양에서만 나온 소화제만 받거든요. 다른 건 영 먹어도 효과가 없더라고요.”

“뭔 체질이 그래? 소화제 성분이야 다 비슷비슷하니까, 그냥 아무거나······.”

말을 하다 고개를 힐끔 든 최형식 실장은 멈칫했다. 서은채가 팔짱을 낀 채 자신을 노려보고 있다. 조금 아까 차안에서 봤던 바로 그 표정이다.

여기서 몇 마디 더 했다가는 당장 등짝 스매싱이 날아올 것 같아서 반사적으로 몸을 움츠리며 말했다.

“그래, 소화제는 역시 광양 소화제가 최고지. 내가 얼른 가서··· 아니아니 최대한 천천히 가서 사가지고 올게. 그러면 되는 거지?”

그제야 서은채의 입가에 조용한 미소가 떠올랐다.

“네, 조심히 다녀오세요. 전 추우니까 먼저 들어가 있을게요.”

*

커피숍 입구에 설치해놓은 CCTV에 사람 모습이 잡히면서 누군가 들어오는 게 보인다.

“누군가 들어오십니다.”

모니터링 요원의 말에 MC김경규가 호들갑을 떨면서 화면을 주시한다.

“어어! 들어온다. 들어와. 누구야? 누구?”

고화질이 아니라선지 얼굴 윤곽이 자세히 보이진 않는다. 블라우스 차림에 스키니 진을 입은 여성. 어깨까지 내려오는 머리카락이 이리저리 찰랑거린다.

여자인건 확실했다. 그런데 현재 섭외된 이라고는 개그맨 김정수와, 김강현이 부른 연극배우 윤현이 전부다. 여자면 분명 서은채나 장선화 둘 중 한 명일 텐데······.

“어?”

드디어 기다리던 여성이 문을 열고 고개를 삐죽 내민다. 잘 다듬어진 눈썹이 반듯이 펴지며, 눈동자가 이리저리 굴러다닌다. 다름 아닌 서은채다.

“······잘못 들어왔나?”

주춤한 서은채가 문을 다시 닫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린 뒤, 다시 문을 열고 고개를 내민다.

“어, 맞는데?”

주위를 돌아보며, 당황하는 서은채를 향해 MC김경규가 황급히 달려 나가 맞이한다.

“하하, 서은채씨 반가워요.”

당황하던 서은채가 김경규 손에 이끌려 문 안쪽으로 끌려 들어왔다.

카메라 3대가 기다렸다는 듯이 그녀를 향해 움직인다. 뭔가 싶어 두리번거리던 서은채와 눈이 딱 마주쳤다. 서로 눈을 깜빡거리다가, 내가 먼저 멋쩍은 표정으로 인사를 했다. 서은채도 답례로 같이 목을 끄덕이기는 했는데, 지금 이런 상황이 되게 낯선 모양이다.

당연하겠지. 바로 눈앞에서 돌아가고 있는 카메라만 10대가 넘는데.

“어··· 혹시, 지금 방송 촬영 중이에요?”

동그랗게 떠진 그녀의 눈동자가 여러 대의 카메라를 주시했다.

이곳에 와서 한마디를 했을 뿐인데도, 촬영장 분위기가 화사해진다.

남자 출연자들은 모두 눈을 못 떼고, 서은채를 쳐다보고 있다. 카메라들도 경쟁적으로 그녀를 찍고 있고.

서은채를 두 번 본적이 있지만 그때마다 메이크업도 방송용 의상도 입지 않을 때라서인지 연예인 같아 보이지는 않았는데, 지금은 영락없이 화면 속에서 보아오던 연예인 서은채다. 한껏 꾸며놓은 외모가 눈이 부실 정도다.

“아, 이거 그거구나. 절친 불러서 하는 프로. 맞죠!?”

김경규와 나를 번갈아쳐다보던 서은채가 뭔가 떠오른 표정으로 외쳤다.

김경규의 눈가주름이 살며시 접히면서 보기 좋은 모양을 만들어냈다.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여기서 지금 오밤친 녹화하고 있어요. 일단 오해가 없게끔, 어떻게 된 건지 설명해드릴게요. 이게 어떻게 된 거냐면요.”

그리고는 하나하나 상황을 설명했다.

“최강민씨가 절친을 불러야 되는데, 때마침 서은채씨한테 전화가 온 거에요. 얼씨구나 싶어 우리가 일단 부르라고 했죠. 천하의 서은채씨한테 전화가 왔는데, 우리가 또 안 부를 수는 없잖아요. 안 그래요?”

“아······.”

“저희 당사자 의견 없이 막 촬영하는 그런 프로 아니에요. 당사자 의사 물어보고 촬영하지. 괜찮으시면 잠깐 녹화 괜찮으세요? 시간 오래 뺏지는 않을게요. 금방 끝나요. 바쁘시면 녹화 좀 하다가 가셔도 되고요. 혹시 뒤에 남은 스케줄 있어요?”

“아뇨, 스케줄은 다 끝났긴 끝났는데··· 어, 잠깐만요. 일단 회사랑 이야기를 해봐야할 것 같은데요.”

“네, 그러세요. 그러면 통화를 해보시고, 말씀을 해주시면···.”

그때 모니터링 요원이 다시 외쳤다.

“누군가 들어오십니다.”

벽에 걸린 화면을 보니 니트 소재의 원피스에 부츠를 신은 여성이 귀걸이를 짤랑거리며, 들어오고 있다.

저건 보나마나 장선화겠지. 그냥 옷차림만 봐도 알겠다.

아니나 다를까 그녀가 1층 문을 열고, 기세 좋게 들어왔다.

처음 볼 때도 반바지에 코트를 입은 차림이었는데, 날씨가 풀린 지금은 옷차림이 더 시원시원 해졌다. 장선화가 아주 작정하기라도 한 듯 실내에 있는 카메라를 죄다 끌어 모으고 있다. 게스트쪽을 찍던 카메라 한 대를 제외한 모든 카메라가 일제히 돌아간다.

하긴, 저건 내가 봐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그림이긴 하지. 더군다나 그 옆에 서은채라니.

기가 막힌 투샷이다.

지하 커피숍에서 카메라들과 눈싸움을 하던 안구가 정화되는 느낌이랄까.

“어머, 서은채씨?”

“안녕하세요.”

두 여배우가 커피숍 입구에서 인사를 나눴다.

“와, 이게 얼마만이에요? 저번에 문지영씨 결혼식 때 이후로 처음이죠? 그동안 더 예뻐지셨네. 살도 좀 더 빠진 거 같은데요?”

“저보단 선화씨가 더 예뻐지셨는데요? 드라마 들어가셨다는 이야기는 들었어요. 벌써부터 기대작이라고 소문이 자자하던데요?”

“드라마는 첫 방 나가봐야 아는 거죠. 서은채씨도 장영문 감독님이랑 찍는 영화 크랭크인 했다는 소리는 들었는데, 언제 영화 나와요? 시사회 때 초대해주시면 꼭 보러 갈게요. 그런데 서은채씨는 여기 누구 절친으로 나온 거예요?”

“어··· 저요?”

장선화의 질문에 그녀의 눈이 정처 없이 흔들린다.

그리고 서은채가 잠시 대답을 망설이는 사이, 장선화가 나를 향해 익살맞은 표정으로 손을 흔들었다. 그 행동만으로도 그녀의 평소 성격이 여지없이 흘러나온다. 겉보기엔 쌀쌀하고, 차가울 것 같은데 실제 성격은 전혀 그렇지가 않다.

촬영장에서도 짓궂은 장난을 걸기도 하고, 말하는데 돌려서 말하는 법도 없다.

무엇이든 거침이 없달까.

그 광경을 본 서은채가 아랫입술을 지그시 물었다.

살짝 찡그린 미간사이에 여지껏 없었던 단호함이 서린다. 이윽고 서은채가 입을 열어 대답했다.

“당연히 강민씨죠.”

“최강민씨요?”

장선화가 놀란 표정을 짓는다.

“네, 우리 되게 친해요.”

< 인맥이 좋으시네요 (4) > 끝

ⓒ 윤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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