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듀스 나노머신-70화 (70/124)

< 인맥이 좋으시네요 (3) >

말은 하지 않았지만 모두의 얼굴에 이렇게 쓰여 있다.

누군데요? 혹시 장선화, 김준호 아니에요?

아니라고 하면 큰일이라도 날 것 같은 분위기다. 그들의 시선에는 기대를 넘어선 간절함이 엿보인다.

팀 단위가 아닌 이런 단독게스트로 나오는 건 처음인데, 나또한 방송이 재미없게 나오길 바라진 않는다. 상황이 이쯤 되자 나도 은근히 기대가 된다.

핸드폰을 집어, 발신자를 확인했다.

발신자 - 최형식 실장.

아, 아니구나.

내가 어깨를 으쓱거리며, 고개를 흔들었다.

“최형식 실장님이시네요. 그런데 이분이 무슨 일로 전화를 하셨지?”

뜨겁던 시선의 온도가 확 식는게 느껴진다. 세트장 안으로 쳐다보고 있던 PD가 옆에 있는 메인 작가에게 나지막하게 물었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인데. 누구였지?”

“R&N의 최실장님이시면, 서은채씨 일 봐주시는 분인 거 같은데요?”

“서은채? 배우 서은채?”

PD의 눈이 번쩍 떠진다.

“그런데 그분이 왜 전화를 했지?”

“모르셨어요? 최강민씨 R&N에 들어가게 된 것도 다 그분 덕분이잖아요. 예전에 플레어 인터뷰 때 말한 적 있어요. 최 실장님이 최강민씨에게 명함을 줘서 최강민씨가 D&M에서 나오자마자 바로 R&N으로 간 거잖아요. 아, 이제 봤더니 두 분이 연락도 주

고받고 그러는 사이구나.”

혼잣말처럼 중얼거린 메인 작가를 보며 피디가 넌지시 묻는다.

“그러면 혹시 서은채씨랑도 친분이 있는 거 아니야?”

“네?”

덩달아 메인작가의 눈도 커졌다.

*

-지금 어디야? 스케줄은 다 끝났어?

“네, 다 끝났어요. 어··· 저녁 먹으려고요.”

-어디서? 숙소에서?

“숙소는 아니고, 밖이에요. 음, 압구정동이에요.

-압구정동? 우리도 마침 그 근처인데. 누구랑 같이 있는데?

“혼자요. 잠깐 볼일이 좀 있어서요.”

-이 시간에 청승맞게 왜 혼자 있어? 잘됐네. 같이 저녁이나 먹자. 지금 은채랑 같이 있는데······.

(빨리 말해요. 그거. 빨리.)

-알았어, 알았어. 지금 말하려고 그러잖아.

누군가와 같이 있는 듯 희미한 여성의 목소리도 같이 들려온다. 서은채인가?

“옆에 누구에요?”

-아, 은채가 너한테 좀 전해달래. 자기가 지금 한우가 아주 우.연.히 먹고 싶고, 때마침 내가 너한테 한우 사 주기로 한 게 딱 생각나서, 너도 불러서 같이 먹었으면 싶다고··· 아얏! 아, 아파! 왜 등짝을 때려고 난리야!

갑자기 최형식 실장의 목소리가 높아진다.

(아씨, 오빠!)

소프라톤의 여자목소리가 들려온다.

(그걸, 그렇게 말하면······ 어휴, 진짜!)

그리곤 몇 번 더 찰싹찰싹 소리가 몇 번 더 들려온다.

뭐지? 혹시 지금 최형식 실장님이 맞고 있는 건가?

다시 최형식 실장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맞긴 맞았나보다. 목소리에 아픔에 찬 신음소리가 섞여 있다.

-아, 아무튼. 같이 밥 먹는 거다. 안 그러면 나 큰일 날 지도 몰라. 어디서 볼까?

이거,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 상황이지?

어찌해야할 줄을 몰라 MC와 앞에 PD를 번갈아가며 쳐다보자 누구라 할 것 없이 허공에다 대고, 오라는 손짓을 해대고 있다. 일단 불러보라는 뭐, 그런 뜻인가?

내가 ‘오라고요?’라고 입모양을 벙긋거리자, 열정적으로 고개를 마구 끄덕거린다.

“일단 이쪽으로 오세요. K도서점 앞에 있는 J커피숍이라고 있는데, 저 거기 있어요.”

-오케이, 알았어. 그러면 조금 있다가 보자고.

뚝. 전화가 끊겼다.

뭐지?

촬영장은 한바탕 큰 태풍이 지나간 것 같은 분위기다.

“뭐야, 최강민씨. 서은채씨랑 친분이 있었어?”

가장 먼저 반응을 보인 건 MC김경규였다.

“우와, 이거 엄한대서 친구를 찾고 있었네. 진즉 처음부터 서은채씨한테 전화를 했으면 됐을텐데. 뭐에요. 두 사람? 서로 밥도 먹고 그런 사이에요? 소속사에서는 이러는 거 알아요?”

김경규가 건수하나 걸렸다는 표정으로 능글능글하게 물어왔다.

“에이, 그런 거 아니에요. 실장님 통해서 전화 온 거보면 몰라요? 저 서은채씨 전화번호도 몰라요.”

“그런데 막 밥을 먹자고 그래요?”

“아, 그거 최실장님이 저한테 고기 사주신다고 한 것 때문에 그런 걸 거예요. 최 실장님이 은근히 주변사람들 잘 챙겨주고, 그러시거든요.”

“음, 냄새가 나는데. 냄새가.”

그걸 또 임현경이 받아주고 있다.

“그쵸? 저한테만 나는 거 아니죠? 어디선가 깨 볶는 냄새가 솔솔~”

“이거 주책없이 우리 때문에 괜히 핑크핑크한 분위기 깨지는 거 아니에요?”

그 장면을 보고 있던 담당 PD가 메인 작가에게 들릴까 말까한 목소리로 물었다.

“서은채씨, 방송 출연해준다고 할까?”

“어, 아마 안하려들걸요? 서은채씨 예능 울렁증이 있어서 걸 그룹시절에도 예능 몇 번하다가 안 한 걸로 알아요.”

“그치? 아무래도 힘들겠지? 서은채씨 정도면 말 안하고 가만히만 앉아 있어줘도 그림은 나올 것 같은데.”

어차피 예능프로그램에서 여배우에게 기대를 거는 PD는 없다.

예쁜 비주얼로 그림을 담당해주고, 간혹 묻는 질문에 재치 있는 대답으로 시청자들의 이목을 잡아두는 것 정도면 충분하다.

그러다가 의외의 매력이 터져 나오면 그것 나름대로 좋고. 게다가 그 대상이 올 여름 기대작으로 손꼽히는 꽃미남 학교의 여주인공이라니.

그 등장만으로도 화제성을 충분할거다.

헌데, 만약 출연을 거부하거나 그런다면, 어쩌면 전화통화부분에서부터 통으로 편집해서 날려야할지도 모른다. 실제로도 그런 경우가 몇 번 있었다. 술에 과도하게 취한 상태에서 들어오는 경우나 아니면 다른 회사와의 계약간의 문제, 혹은 이미지 관리 때문.

특히나 여배우들은 그런 면에서 다른 연예인들보다 깐깐했다.

이런 프로그램에 여배우들이 얼굴을 자주 안 비추는 데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거다.

그때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핸드폰에서 두 번째 진동소리가 들려왔다.

“최강민씨건데요?”

홱. 또 한 번 시선이 나에게로 쏠린다.

“이번에는 누구야 누구!?”

“어··· 그게요. 장선화씨 전화인거 같은데요?”

내 말에 김경규가 다들 조용히 하라는 제스처를 취하더니, 얼른 받으라고 손짓한다.

“여보세요?”

-어머, 난 또 누군가 했네. 강민씨가 웬일이에요. 이 시간에 전화를 다 하고.

“바쁘신데 제가 괜히 방해한건 아니죠?”

-아니에요. 외부미팅이 있어서 거기 갔다가 집에 돌아가는 길이에요. 조금 전에는 미팅중이여서 전화를 못 받은 거였고요. 핸드백 안에 핸드폰에 있었거든요.

“아, 그러셨구나.”

-밖이에요? 뭔가 주변이 좀 소란스러운데요?

“커피숍이에요.”

-커피숍? 누구랑?

“혼자요. 친구랑 같이 있었는데, 친구가 갑자기 일이 있다고 가버리는 바람에······.”

한번이 어렵지 두 번부터는 거짓말이 술술 나온다.

-아, 그래요? 혼자 커피숍에서 뭐해요? 누구 기다려요?

“어······.”

내 머릿속은 잠시 혼란에 빠졌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한다. 장선화도 이곳으로 오라고 해야 하나?

예전 재방송 모니터링을 해보니, 이런 비슷한 상황에 처해진 출연자들이 종종 있긴 했다. 보니까 일단 다 부르고 보던데. 그건 좀 친했을 때나 할법한 행동이고. 과시할 인맥도 아닐뿐더러 사적인 자리에서 마주하지도 않은 두 사람과 같이 한다는 게 엄청

어색하다.

만약 불러놓고, 상대 쪽에서 출연을 거부한다면 편집도 해준다고 하는데, 괜히 부담주기도 좀 그렇고.

에라, 그냥 솔직하게 털어놓자. 괜히 나중에 욕먹을라.

“실은 저 지금 오늘밤 뭐해. 친구야. 녹화 중이에요. 혹시 이 방송 보셨어요?”

-뭔지는 알아요. 몇 번 본적이 있어서······ 어, 근데 방송중이면 저 지금 목소리 나가고 있는 거예요?

“혹시, 불편하시면 끊을까요? 원하시지 않으면 편집도 가능······.

-아니에요. 괜찮아요. 그런데 그 프로, 절친 불러서 같이 토크하는 프로그램 아니에요?

“맞아요. 제가 별로 친구가 없어서요. 장선화씨랑 김준호씨한테 전화 걸어봤어요. 그나마 좀 편해진 사람이 두 사람밖에 없어서.”

잠깐 동안의 정적이 흐르고, 핸드폰 너머로 나지막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면 오늘부터 우리 절친 인거예요? 그런데 준호씨는요? 준호씨는 안 온대요?

“지금 녹화중이여서 전화 연결이 어렵다네요.”

-아, 그렇구나. 그러면 내가 또 친구로서 최강민씨 기 살려 주러 가야지. 어딘데요 거기가?

너무 적극적으로 나와서 오히려 내가 더 놀랬다.

반응을 보니 놀란 건 나뿐 만이 아닌 것 같다.

출연자들은 물론 관계자들까지 좋아서 죽으려고 든다. 장선화가 들어오는 길목에다가 레드카펫을 깔고, 꽃이라도 던져줄 기세다.

“진짜 오시게요?”

-어차피 오늘 스케줄도 끝났고, 집에 들어 가봤자 할 일도 없어요. 그런데 방송 보니까 미션도 막 시키고 그러던데, 미션은 뭘 시킬 거예요? 내가 지금 차안이라서 뭘 딱히 해줄건 없는데······.

그 말에 여태껏 숨죽이며 통화를 지켜보던 김경규가 나섰다.

“안녕하세요. 장선화씨. 저 MC김경규입니다.”

-어, 어머. 안녕하세요, 선배님!

간드러지는 웃음소리가 촬영장안을 가득 메운다. 동시에 남자 출연자들 입이 헤벌쭉 벌어진다.

“진짜 여기 오시는 겁니까? 최강민씨 친구 신분으로?”

-네, 네. 간다고 했으니 가야죠. 어, 저 그런데 예능은 진짜 몇 번 안 해봐서 무지 떨리긴 한데요. 막 이상한 거 시키고 그러진 않겠죠?

“어휴, 걱정 마세요. 설마 여배우신데 저희가 그런 걸 시킬까.”

-저 그러면 선배님만 믿고 가요. 진짜에요!

“네네. 여기 압구정동에 있는 J커피숍인데. 네비 찍고 오시면 될 거에요. 앞에 도서점 하나있는데 그 맞은 편 건물이에요.”

-네네~ 알겠습니다. 그러면 조금 있다가 뵐게요.

“최강민씨 도로 바꿔드릴게요. 잠깐만요.”

-네.

통화가 다시 나에게로 넘어왔다. 주변을 힐끔 쳐다봤다. 큼직한 먹이감을 코앞에 둔 하이에나 같은 얼굴들이다.

아, 이건 좀 부담스러운데.

“조심히 오세요. 기다릴게요.”

통화너머로 나지막한 기분 좋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네. 조금 있다가 봐요.

좋은 상황임은 분명했다.

좋긴 좋은데··· 웃어야 될 상황은 분명히 맞는 것 같은데, 이러면 이거 상황이 어떻게 되는 거지?

만약 서은채씨가 녹화하겠다고 하면 나 여배우 2명과 같이 예능을 찍어야 하는 건가?

촬영 관계자들은 이미 축제 분위기다. 서은채와 장선화라는 소스를 두고 어떻게 써먹을지 벌써부터 이야기가 오고 가고 있다.

같이 게스트로 출연한 오달민과 김강현의 표정은 그리 썩 밝지만은 않다. 시기 반 질투 반 섞인 눈초리로 나를 힐끔거린다. 왜 아니겠는가. 나온다는 게스트가 무려 여배우. 그것도 우리나라에서 내놓으라하는 탑 스타들인데.

조금 전 오달민이 불렀던 개그맨의 존재는 희미해져, 언급도 안 되고 있다.

MC김경규가 음흉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더니, 실실거린다.

“이야, 최강민씨 이제 봤더니 인기 좋네.”

“제가 뭐랬어요. 설레서 잠 못 잔다니까요?”

임현경이 단짝처럼 멘트를 받아준다.

그리고 김경규의 못된 기습 질문이 들어왔다.

“최강민씨. 하나, 둘, 셋 하면 선택하는 겁니다. 서은채, 장선화. 누가 더 본인 이상형이 가까워요?”

“네, 네!?”

“최강민씨도 선호하는 이상형 타입이 있을 거 아닙니까? 둘 중 누가 더 예뻐 보이냐고요. 자, 카운트 갑니다. 하나, 두울··· 셋!”

이 양반이 진짜. 뭐 그런 개떡 같은 질문을.

이건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보다 더 고난이도 문제다. 한명은 같이 출연하는 작품 여주인공이고, 한명은 같은 학·지·혈연보다 더 무섭다는 가요, 연기, 회사 선배다.

그리고 누가 봐도 예쁘다고 인정할만한 두 명이라, 이쯤 되면 그건 그냥 취향 문제다.

늘씬하고, 여성스럽게 생긴 서은채냐 아니면 도도하고, 도회적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장선화냐.

이건 내가 판단할 문제가 아니지.

“어··· 두 분 다 제가 감히 선택할 수 없을 정도로 매력적이셔서. 고르기가 힘드네요.”

“에이, 그게 뭐예요. 김빠지게. 예능에서 이러기 있어요?”

FM대답을 했더니, 바로 타박이 들어온다.

내가 만약 서은채를 선택한다면 바로 기사가 나갈 거다. ‘플레어 최강민 이상형은 서은채로 밝혀져.’ 이런 헤드라인 문구가 박힐 확률 백 프로다. 안 봐도 비디오지. 그런 뻔한 떡밥에 낚여줄 생각은 눈곱만치도 없다.

“저도 활동은 계속 해야죠. 아직 신인인데.”

내가 웃으면서 대답을 하던 그때.

핸드폰에서 세 번째 진동소리가 들려왔다!

< 인맥이 좋으시네요 (3) > 끝

ⓒ 윤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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