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듀스 나노머신-66화 (66/124)

< 여기 그런 배우 있어요 (5) >

꽃 미남 학교의 주 촬영장이 될 예성 대학교 촬영현장.

그곳은 이미 백 명도 넘는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있었다.

뒤편에 자그마한 산이 있어서인지, 아니면 아침이라서 그런지 날씨가 제법 쌀쌀하게 느껴진다.

“어우야, 생각보다 춥다. 감기 들지 모르니까 단추 잠궈.”

차조영 실장이 차에서 내리며, 자신도 점퍼를 걸치며 말했다.

아닌 게 아니라, 산에서 내려온 찬바람이 옷깃 안으로 스며든다. 나는 산바람을 맞으며 코트를 여며 죄고, 주차장에서 빠져나와 현장으로 걸음을 내딛었다.

갖가지 촬영 장비, 바닥 위로 깔린 레인, 길쭉하게 위로 올라가 있는 무인 카메라 크레인(지미집). 몇 걸음 떨어진 곳에서는 큰 드럼통에 장작을 집어넣고, 불기를 쬐려는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내 딴에는 제법 빨리 왔다고 생각했는데, 그들 중에는 하윤성 감독과 리딩실에서 봤던 배우들도 껴 있었다.

시계를 들여다보니 8시 10분.

촬영 시작 시간보다 1시간 50분이나 빨리 온 것이다. 그래도 이 정도면 체면치례는 했다는 생각에 감독과 보이는 배우들에게 차례로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오, 최강민씨. 생각보다 빨리 왔네요. 생각보다 날씨가 춥죠? 어서 이리 와서 붙어요.”

배우 한 명이 불가 옆자리를 내주며 오라고 손짓한다. 그래도 한번 본 사이라고, 처음 봤던 날만큼 서먹서먹하지는 않다. 같은 목적을 향해 달려갈 이들이라서 그런지 한 번 봤을 뿐인데도, 동료애 비슷한 것이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고.

나는 성큼 다가가 저마다 한손에는 대본을 꼭 쥐고, 첫 촬영에 대한 기대감과 설렘을 나타내며, 배우들과 한참동안이나 말로 떠들었다.

잠시 후, 주조연급 배우들이 하나둘 현장에 도착했다.

인사가 오고 가고, 안면이 있는 배우들끼리는 저희들끼리 가벼운 농담이나 작품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며 곧 다가올 촬영에 대한 긴장감을 풀었다.

그리고 그 같은 장면들을 메이킹 팀에서는 쉬지 않고 찍어댔다.

오늘 찍은 영상과 사진 등은 공홈에 올리고, 각종 보도 자료로도 사용할 거라는데, 그냥 나는 카메라와 마주칠 때마다 미소를 지어주느라 정신이 없었다.

“응, 저게 뭐지?”

그러다가 문득 배우 한명이 뭔가를 봤는지 눈이 가늘어진다. 그리고 그 옆에 배우도 웃으면서 내 어깨를 툭툭 치고 있고.

뭔가 싶어봤더니 촬영장으로 탑차 하나가 커다란 현수막을 나부끼며 들어오고 있다.

현충일날 국기 계양하듯 모서리 길쭉한 기둥에 단 플랫카드를 휘날리며 들어오는데, 그 안에 내 얼굴이 박혀 있다.

세상에, 맙소사. 저게 뭐지?

그리고 그 위에는 플랫카드가 쓰여 있는데, 나는 그걸 보는 순간 손발이 오그라드는 줄 알았다.

-오늘은 최배우가 쏜다.

-꽃 미남 학교 대박 기원!

-배우, 스텝 분들! 우리 박선우 잘 부탁드려요.

그냥 보는 순간 입이 다물어지질 않았다.

운전기사가 촬영에 방해되지 않은 조금 떨어진 곳에 문을 오픈하더니, 제작해 놓은 듯한 입간판을 세워놓는다. 거기에도 여지없이 내 얼굴이 큼지막하게 박혀있다.

문구도 쓰여 있다.

‘여기 있는 사람들 무조건 공짜! 지나가는 사람도 다 공짜!’

순간 밀려드는 감정이 복잡하다.

어······. 이런 기분을 뭐라고 표현해야 좋을까 딱히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워, 첫날부터 커피차? 이거 최 배우 덕분에 오늘 하루 커피 걱정은 없겠네. 고마워. 잘 마실게.”

그걸 본 하윤성 감독이 내 어깨를 툭 치며, 웃으며 커피차를 향해 걸어간다. 그리고 곧이어···.

“최 배우, 고마워.”

“최 배우, 잘 마실게요.”

“최 배우, 최 배우······.”

여기저기에서 생글생글 웃으며 고맙다는 배우들의 인사가 전해져온다. 그놈의 최 배우 소리. 잠깐 동안에 그 소리만 한 백번도 넘게 들은 것 같다.

어떻게 된 거냐는 표정으로 내가 차조영 실장을 쳐다봤더니, 그가 싱글벙글한 표정으로 내 옆으로 다가와 말했다.

“팬들이 보냈나본데?”

“팬들이요?”

“며칠 전에 한빛나가 물어봤거든. 촬영장 위치랑 시간 언제냐고. 왠지 기합이 단단히 들어가있길래 뭘 보내나 싶었는데, 이거였구나. 차 배우는 좋겠네.”

“실장님까지 놀리기에요?”

내가 가늘게 눈을 치켜뜨자, 차조영 실장이 웃으며 전방을 향해 고갯짓 한다.

“고맙잖아. 드라마 촬영장에서 제일 환대받는 게 커피차거든. 특히 이렇게 날씨 쌀쌀한 날에는 더 제격이지. 봐봐. 인기 폭발인 거.”

커피차 앞에는 벌써 줄이 늘어지기 시작했다. 언뜻 봤더니, 차 종류도 많다.

아메리카노, 까페라떼, 헤이즐럿등등 각종 커피음료와 유자, 대추, 생강, 모과차에 에이드와 스무디까지.

개별 포장 된 아기자기한 쿠키들도 있었는데, 테이크아웃 잔을 들고 있는 사람들 한손에는 어김없이 그 쿠키가 쥐어져있다. 그 안에 문구가 적혀 있길래 봤더니.

-우리 최 배우 잘 부탁드립니다. 라는 문구와 함께 분홍색 하트가 그려있다.

설마, 저걸 일일이 다 손수 포장한 건가?

그뿐 만이 아니다.

테이크아웃 잔에도 어김없이 그와 동일한 문구가 붙어져 있다. 진짜 지극 정성이다.

간혹 스튜디오 녹화나 야외촬영 때 도시락이나 간식 조공은 받아봤지만 팬들이 보내준 커피차를 받는 건 처음이다.

물론 나 마시라는 것도 있겠지만, 그것보다는 배우, 스탭들보고 나를 예쁘게 봐달라는 마음에서 보낸 것 같은데··· 이걸 위해 팬들이 모은 정성과 투자한 시간들을 생각하자니 괜히 가슴이 뭉클하고, 뿌듯하고 그렇다.

“첫날부터 기 제대로 살고 시작하네. 암만 봐도 우리가 팬 매니저는 잘 뽑은 거 같아. 자, 우리도 가야지?”

그러면서 내 어깨를 툭 치며 커피차가 있는 쪽으로 다가가며, 손짓한다.

“팬들이 보내준 건데. 커피 잔 들고, 인증 샷 정도는 남겨줘야지.”

나는 차조영 실장의 말대로 입간판 옆에서 셀카를 찍고, 커피를 마시고 있는 모습도 찍었다.

너무나도 고마운 팬들이라는 제목으로 사진들을 sns에 올렸다.

매니저도 누군가에게 통화를 하는 것 같은데, 아마도 한빛나에게 하는 것 같다.

그렇게 훈훈한 분위기 가운데, 시계가 10시를 가리키고, 첫 슬레이트 치는 소리와 함께, 촬영이 시작됐다!

*

베이지색 교복스커트와 흰색 셔츠를 갖춰 입은 장선화가 길쭉길쭉한 각선미를 뽐내며, 교문 안으로 들어선다.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그림 같은 배경이다. 모르긴 몰라도 실제 저런 여학생이 다니는 학교라면, 뒤로 남학생들이 한 백 명은 졸졸 따라다닐 것 같다.

찰랑거리는 장선화의 머릿결이 잠시 떠오르다 어깨위로 차분하게 내려앉는다. 그리고 동그랗고, 커다란 눈이 정문 너머의 학교 풍경으로 향한다.

-나도 이제 여기 학생이란 말이지?

입가에는 싱그러운 웃음이 맺히고, 발랄한 발걸음과 함께 그녀가 힘찬 걸음을 내딛는다.

보기만 해도 풋풋함이 전해져오는 느낌.

컷.

대망의 첫씬이 단숨에 오케이를 받으며, 다음으로 넘어갔다.

그걸 보고 있던 구경꾼들이 소곤거린다.

“와. 진짜 예쁘게 생겼네. 이래서 다들 장선화 장선화 하는 구나. 교복도 어쩜 저렇게 잘 어울리니? 혹시 맞춤 핏인가? 허리 가는 것 좀 봐. 사람이 아닌 것 같다.”

“연기도 이제 완전 물오른 거 같지? 처음에는 조금 어색하더니.”

이어서 승용차를 타고 등교하는 김준호.

차에서 내리는 모습이 영락없는 부잣집 도련님이다.

귀티 나는 얼굴, 왠지 모르게 싸가지 없을 것 같은 시선 처리. 누가 봐도 오냐오냐하면서 버릇없이 키워진 도련님 같은 외모와 분위기.

저 모습을 보니 왜 김준호가 이 드라마의 주연인지 이해갔다.

이윽고 차가 서서히 정지하더니, 운전기사가 내려 차문을 열어 준다.

“도련님. 오늘 회장님께서 저녁식사를 같이 하자고 하십니다. 오늘이 사모님 생신이시라면서······.”

“오늘이 그 아줌마 생일이래요?”

물론 입만 안 열면.

“아······.”

소곤거리는 구경꾼들 사이에서 안타까운 탄식성이 새어나온다. 왜 신은 한사람에게 모든 것을 주지 않은 것일까.

하지만 내가 봤을 때 못 봐줄 정도는 아니었다. 바로 장선화 뒤에 라서 조금 비교가 될 뿐이지.

NG와 컷의 경계선을 넘나들면서 김준호가 힘겹게 연기를 이어간다. 애초에 하윤성감독도 그에게 크게 연기력을 바란 것이 아닌 듯 오케이 사인을 외치며, 촬영을 계속 이어갔다.

그리고 마침내 내 차례가 됐다.

-배역 박선우 모드로 전환합니다.

영삼이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긴장감과 설렘으로 두근두근하던 심장이 차분해짐을 느낀다. 나를 찍고 있는 카메라가 하나, 둘씩 눈에 들어온다. 시작을 알리는 슬레이트 소리와, 번쩍이는 반사판, 수십 명의 구경꾼들이 모여 달싹이는 아주 작은 소리들까지 모두.

모든 것을 관조하고 있듯 주변의 모든 사물과 소리 하나하나가 피부에 와 닿듯 선명하게 다가온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크게 확대 대듯 다가오는 장선화의 모습이 눈에 담긴다.

“저기, 혹시 교장실이 어딘지 알 수 있을까요?”

듣기 좋은 미성의 목소리가 간질거린다.

“못 보던 얼굴인데, 혹시 전학생?”

“네. 오늘 전학 왔어요.”

나를 살짝 올려다보고 있는 교복을 입은 장선화의 모습이 보인다.

그녀의 눈에는 전학 온 학교에 대한 호기심과 설렘. 앞으로 이곳에서 생길 일들에 대한 기대감이 가득 했다. 그 모습을 보자 왠지 웃음이 나온다. 마치 이상한 나라에 처음 들어갔을 때의 짓던 멜리스 같은 표정이랄까.

그런 장선화를 바라보고 있는 갓 쪄낸 감자 같은 몽실몽실한 미소가 입가에 걸린다.

“따라와. 내가 안내해줄게.”

“어··· 그냥 말로 알려주셔도.”

“여기 학교 생각보다 커. 곧 있으면 수업종 울릴 텐데 지각하는 사태는 면해야지?”

5월의 아침 추위 때문인지, 아니면 전혀 예상치 못한 미소가 가슴속에 틀어박혀 서인지 장선화의 두 뺨이 상기되듯 달아오른다.

그리고 그녀의 입가에 수줍은 미소가 떠오른다.

카메라가 클로즈 업으로 들어가더니, 버스트 숏으로 둘의 얼굴 표정을 한 화면에 담는다.

숨이 턱턱 막힐 듯 아름다운 투샷이다.

“컷! 아주 좋았어!”

그걸 들여다보고 있던 감독의 오케이 사인이 떨어졌다.

“방금 둘 모습 끝내줬어! 이대로만 쭉 가자고!”

“장소 이동하겠습니다!”

FD의 스텝의 외침에 우르르 민족 대 이동이 시작됐다. 외투를 들고 대기하고 있던 장선화 매니저가 그녀에게 다가가더니, 어깨 위로 외투를 걸쳐준다.

“왜 그렇게 멍 때리고 있어? 오케이 사인 못 들었어?”

“어?”

“어휴, 볼 빨간 것 좀 봐. 춥지? 어서 가자. 다음 씬 촬영하러 가야지.”

“어······ 어.”

얼떨떨한 모습의 장선화와 함께 그녀의 매니저가 같이 이동을 한다.

허나, 그녀의 눈동자는 불과 몇 걸음 앞에서 매니저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박선우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조금 전 최강민의 연기는 구경하고 있는 구경꾼들의 가슴속에서도 틀어박혔다.

“헐, 대박. 최강민 연기 개 잘하는데?”

“인터넷에 한참 발연기다 뭐다 말 많았는데, 첫 방, 아니 티저 메이킹 영상만 풀려도 바로 논란 수그러들 것 같지?”

“근데 최강민 원래 저렇게 잘 생겼었나? 오늘 보니까 김준호보다 더 잘생긴 것 같은데?”

“그치? 나만 그렇게 생각한 거 아니지?”

그리고 누군가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그런데 있잖아. 원래 드라마는 남주랑 여주랑 잘돼야 하는 거잖아. 그치?”

“원래대로라면?”

“그런데 나는 왜 최강민, 장선화가 더 잘 어울리는 거 같지?”

< 여기 그런 배우 있어요 (5) > 끝

ⓒ 윤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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