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기 그런 배우 있어요 (4) >
“최강민씨 이제 봤더니 진짜 재밌는 사람이네. 이왕이면 쓰담쓰담도 좀 해주지 그랬어요. 그랬다면 장선화 얼굴 볼만했을 텐데.”
어, 옆에 바로 장선화가 있는데도 이런 소리를 해도 되나?
아니나 다를까 기다렸다는 듯이 뾰족한 음성이 튀어나온다.
“내가 강아지냐? 쓰담쓰담을 하게?”
“강아지는 귀엽기라도 하지, 너는 여우잖아. 꼬리 한 아홉 개쯤 달린 불여우쯤 되려나?”
장선화가 기막히다는 듯이 코웃음을 친다.
“뭐래. 시비 걸 거면 그냥 가셔. 그리고 너 내가 친한 척 말 걸지 말라고 그랬지?”
“최강민씨랑 대화 중인데 끼어든 건 너거든?”
“그럼, 내 이야기하는데 귀 닫고 있을까!?”
이건 사이가 좋은 건지 아닌 건지 헷갈린다.
어쨌든 내가 실수를 한 건 맞는 일이기에 나는 장선화쪽을 바라보며, 다시 한 번 사과의 말을 건넸다.
“조금 전에는 진짜로 죄송했습니다. 제가 정신이 나갔었나 봅니다.”
“됐어요. 저도 연기에 몰두하고, 그러면 가끔 실제인지 연기인지 구별안갈 때가 있어요. 그보다도 궁금한 게 있는 데요······.”
말꼬리를 흐린 장선화가 나를 곧장 쳐다보더니 반짝반짝한 눈으로 묻는다.
“듣기로는 이번이 첫 작품이라고 하던데, 연기 레슨은 언제부터 받았어요?”
“올해 처음 받았습니다. 한 달 정도?”
“진짜?”
못 믿겠다는 표정을 지은 장선화가 반말을 툭하고 내뱉고는 다시 말을 철회하며, 정정한다.
“아니··· 진짜로요? 진짜로 연기 레슨을 받기 시작한 게 한 달밖에 안된다고요? 와, 어떻게 그런 연기를 할 수가 있지? 레슨만 3년 넘게 받은 누구는 연기가 아직도 저 모양인데?”
장선화가 옆을 힐끔거린다.
그게 누구를 말하는 건지는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지나가는 개도 알겠다.
듣고 있던 김준호가 눈에 힘을 주며 장선화를 쏘아붙인다.
“야! 너 지금 나 디스하냐?”
“야라니. 나 08년도에 데뷔 했거든? 이게 선배한테!”
“선배 질하고 싶으면 가요계 후배들한테나 하든가. 연기 짬밥은 내가 더 오래 됐어. 이거, 왜 이래?”
“흥, 오래되면 뭐해. 연기가 그 모양인데.”
“너어······ 진짜!”
팩트공격에 김준호가 말문이 턱하고 막히더니, ‘어휴, 내가 말을 말아야지.’ 라고 중얼거리며 시선을 내게 돌린다.
“최강민씨, 대본 리딩 끝나면 뭐해요? 혹시 스케줄 있어요? 나랑 같이 밥 먹을래요? 요 앞에 초밥 맛있게 하는 집 있는데.”
“저, 저요?”
김준호가 원래 저런 캐릭터였나?
듣는 거랑은 달라서 나는 적잖아 당황했다.
“최강민씨가 마음에 들어서 그래요. 왜, 사람을 보면 아, 이 사람은 나랑 잘 통하겠구나. 그런 느낌 들 때가 있잖아요. 제가 그래요. 최강민씨는 그런 기분 못 느꼈어요?”
나를 쳐다보고 있는 눈이 초롱초롱하다. 잔뜩 뭔가를 기대하는 눈빛이다. 그의 눈을 보자 차마 아니라는 말이 안 나온다.
“어, 어······ 느꼈어요. 저도.”
대답이 나오기가 무섭게 김준호가 왁 소리를 지르며, 좋아죽겠다는 표정으로 손뼉을 친다.
“그쵸? 어쩐지! 우린 뭔가 통할 거 같더라니까!!!”
어느 틈엔가 내 어깨위에 팔을 두르고는 어깨동무를 하며, 보란 듯이 장선화에게 눈을 흘긴다.
봤지? 우리 이렇게 친한 사이야. 뭐 이런 표정을 짓고 있는데, 그걸 본 장선화가 어이가 없다는 듯이 혀를 내찬다.
“나참······ 유치해서 진짜. 누가 보면 고딩인 줄 알겠네.”
아까와는 반대로 이번에는 김준호가 턱을 내밀며 ‘뭐, 뭐.’ 거리고 있다.
“하.”
상대도 하기 싫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장선화가 사라진다.
그걸 즐거운 표정으로 보고 있던 원로배우 윤복자가 이병진을 보며 웃으면서 말했다.
“이번 작품 느낌이 왠지 좋네요. 안 그래요?”
“그야 당연하죠. 송희연 작품에 하윤성 연출인데. 여름시즌 최고 기대작이라고 다들 그러잖아요. 더군다나······.”
이병진이 아직도 김준호에게 붙잡혀서 짤짤이를 당하고 있는 최강민을 가리키며 소곤댔다.
“저 친구가 일을 내도 단단히 낼 것 같은 기분이라······.”
“그쵸? 저만 그렇게 생각하는 거 아니죠?”
“주위를 봐봐요.”
그 말에 윤복자가 고개를 들어 대기실에 앉아 있는 배우들과 매니저들을 둘러 봤다.
둘, 셋씩 짝을 지어 대화를 하는 도중에도 그들은 계속해서 어느 한 지점을 힐끔거린다.
그리고 시선의 끝에는 어김없이 최강민이 있었다. 그의 말이 더 은근해졌다.
“최강민이 이렇게 연기를 잘할 줄 누가 알았겠어요. 김준호만큼만 되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웬걸. 지금 완전 로또 맞은 분위기잖아요.”
“이러다가 시청률 막 20%넘고 그러는 거 아니에요?”
이병진이 혀를 내찬다.
“에이, 그래도 그건 너무 가셨다. 요즘 드라마 15%도 넘기 힘든 거 잘 아시면서.”
그 말은 맞다.
요즘 케이블이다 인터넷드라마다 여기저기에서 지상파 시청률을 야금야금 갉아먹고 들어오는 추세라 예전만큼 시청률이 안 나오는 건 사실이다. 평타는 친다는 사극조차도 시청률 10%를 못 넘어보고 종영하는 드라마가 수두룩하며, 심지어는 5-6%대 드라마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러면 한······ 14%정도?”
그렇게 적정 합의선을 찾은 두 원로배우가 얼굴을 맞대며 키득거렸다.
*
화기애애한 첫 대본 리딩이 끝이 나고, 나는 결국 김준호와 함께 초밥 집에 갔다.
그 이야기를 들은 작가, 감독이 자신들도 같이 가자고 따라나섰고, 결국······ 리딩에 참가했던 배우들이 전부 가는 회식. 비슷한 자리가 만들어졌다.
누군가 2차를 가자고 제안을 했지만, 다음 스케줄 때문에 떨어져나간다는 사람이 절반이상이라 결국 거기서 쫑이 났다.
그렇게 식사를 끝내고, 숙소로 돌아오자 러그 위에서 뒹굴거리던 장요한이 제일 먼저 달라붙어 질문을 던졌다.
“형, 어땠어요? 첫 리딩 현장 소감이? 거기에 배우들도 엄청 많았죠? 누구누구 봤어요? 아, 맞다. 장선화, 장선화 봤어요? 실제로도 막 얼굴에서 빛이 나고 그래요?”
“어, 봤어. 빛이 나진 않지만, 예쁘게는 생겼더라.”
또 다른 질문이 날아든다.
이번에는 박진우다.
“배우들이 막 아이돌 출신이라고 무시하고, 깔보고 이러진 않았어요? 듣자하니 가수 출신 배우들은 막 왕따 당하고 그런다던데.”
“그런 거 없고, 윤복자 선생님 손녀딸이 우리 팬이라고 내가 같이 사진 찍어드렸어. 엄청 좋아하시더라.”
장요한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진짜요? 그분 손녀가 저희 팬이래요? 왜요. 영상 통화라도 한번 하지 그랬어요. 그랬다면 확실한 형 편 한명 생기는 건데.”
“멍청아. 오늘만 날이냐? 다음번에 하면 돼지.”
“아, 맞네.”
원한다면 애들이 전화연결이나 사인 백장은 거뜬히 해줄 수 있다며, 잘하라고 용기를 복 돋아 준다.
“첫 촬영은 언제해요?”
“5일 뒤.”
“와, 진짜 신기해요. 형이 배우들이랑 같이 드라마를 찍는다니. 꼭 대박 나서 CF도 찍고, 해외도 진출하고 막 그랬으면 좋겠다. 저도 드라마 시작하면 꼭 본방 사수할게요. 열심히 봐서 시청률에 작은 보탬이라도 돼야지.”
의지를 다지는 장요한의 말에 박진우가 혀를 내차며 초를 친다.
“멍청아. 네가 아무리 봐도 시청률은 안 오르거든? 피플 미터 집계 몰라? 우리 숙소는 설치 안돼 있거든?”
“그, 그걸 누가 몰라!? 그냥 말이 그렇다는 거지! 말이!”
장요한이 얼굴이 새빨개져서 버럭 소리를 지른다. 배우들 사이에서 기죽지 말라는 둥, 필요하면 언제든지 지원사격을 해주겠다는 둥, 부산을 떨며 한참을 떠들어댔다. 그러더니 이내 몽롱한 표정으로 한껏 들뜬 목소리로 말한다.
“우리 음원, 음방 1위도 해봤고, 예능, 라디오, 이제는 드라마까지···. 뭔가 올해는 일이 술술 풀릴 것 같은 예감이 들어요. 진짜 이대로만 계속 흘러갔으면 소원이 없겠어요. 무탈 없이 3년. 아니아니 딱 2년만 더요.”
“그건 안 돼지.”
소파 한쪽에 앉아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차조영 실장이 불쑥 끼어든다.
“2년만 활동하고 접을게 아니라면 지금 보다 더 대단해져야지. 지금이랑은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장요한은 물론 박진우까지 놀란 표정을 짓는다.
“지금보다 더요?”
지금까지도 사실 운이 좋은 편이었다. 데뷔를 하자마자 음원 1위에 음방 올킬. 이 정도면 아이돌 역사상 전무후무한 기록이지. 상상 속에서나 그리던 일들을 이뤄냈는데, 이것보다 더 잘 되야 한다는 게 어떤 건지 감이 오질 않는다.
차조영 실장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툭하고 말을 내뱉었다.
“전용기 타고, 해외 투어 다닐 정도는 되어야지. 또 혹시 알아? 해외 스케줄이 많아지고, 눈, 코 뜰 새 없이 바빠지면 회사에서 전용기라도 한 대 사줄지?”
“에이··· 그건 좀.”
그건 내가 봐도 좀 오바다 싶어서 고개를 흔들었다.
전용기 가격이 1, 2억 하는 것도 아니고 몇 백억씩은 할 텐데, 그걸 고작 우리 타라고 사준다고? 꿈같은 이야기다.
과연 그 날이 오기는 오려나?
*
마침내 첫 촬영 날이 다가왔다.
이른 새벽부터 차조영 실장이 숙소로 방문했다.
“오늘 메이킹 촬영도 같이 진행하는 거 알지? 숙소에서 나가는 부분부터 VJ따라 붙어서 촬영장까지 같이 갈 거라니까. 얼른 세수하고, BB크림이라도 발라······.”
말을 하다 말고 막 잠에서 깬 내 맨 얼굴을 본 차조영 실장이 고개를 흔든다.
“······넌 그냥 로션만 발라도 되겠다. 어휴, 너는 진짜 얼굴이 어쩜 그렇게 생겼냐?”
“제 얼굴이 왜요?”
“나 잘생김. 딱 쓰여 있잖아. 너 혹시 잘 때 꿀 같은 거 바르고 자? 아니면 혹시 나 몰래 피부샵 다녀?”
“에이, 제가 그런 곳 다닐 시간이 어디 있어요.”
“그런데 막 일어난 애 피부가 왜 이렇게 좋아? 젊어서 그런가?”
그러더니 자신의 얼굴을 만지며, 나도 20대 때는 도자기 피부였네. 스킨로션도 안 바르고 다녔네. 한참을 떠들어대더니, 밖에서 대기 중인 VJ를 데리고 들어온다.
2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젊은 남자 VJ였다.
“잘 주무셨어요?”
“네.”
“여기 실장님한테 설명 들으셨겠지만 촬영장까지 가는 배우들 모습을 메이킹 영상으로 쓸거에요. 새벽부터 바쁘게 촬영준비에 여념이 없는 배우들. 뭐 이런 타이틀로? 문 밖으로 나오는 순간부터 촬영을 진행할 거예요. 그리고 추가로 길게는 아니고 차에
타고, 배우들은 차안에서 뭘 하나 짤막하게 20, 30초짜리 녹화분도 찍을 예정이고요. 혹시 쌩얼 노출이 조금 그러시면 안경이나 모자를 쓰시고 나오셔도 돼요.”
“네.”
“그러면 저는 대문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게요. 그 편이 더 자연스러우니까. 문이 열리면 바로 카메라 들이댈 건데, 살짝 놀란 표정 좀 지어주세요. 그래야 왠지 실제 같고, 생동감 있게 느껴져서 시청자들이 보기에는 더 재미있거든요.”
나는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이며, 콧잔등을 긁적였다.
배우라는 단어가 왠지 낯간지럽고, 간질간질하다.
문을 닫고 VJ가 나가자 내가 물었다.
“예능 같은 거 보면 그냥 바로 막 찍는데, 그런 게 아닌가 봐요?”
“그것도 사람 봐 가면서나 그러는 거지. 배우들이 예능인들은 아니잖아. 배우들, 특히 여배우들한테 그런 식으로 막무가내로 카메라 들이댔다가는 큰일 나게? 화면에 잡티 하나만 잡히게 나와도 얼마나 예민하게 군다고.”
“아, 그렇구나.”
문을 열고 나가자 미리 예고한대로 카메라가 바로 따라붙는다.
차조영 실장의 표정이 돌변한다. 근엄, 진지하게. 누가 보면 대통령 경호실장쯤 되는 줄 알겠다.
“어우, 깜짝이야. 웬 카메라에요?”
내가 준비해놓은 대로 놀란 척을 하자 VJ가 인사를 건넨다. 마치 오늘 처음 본 사람처럼.
-오늘 첫 촬영인데, 잠은 잘 주무셨어요?
저 사람도 VJ가 아니라 연기해도 되겠네.
“아휴, 말도 마세요. 어찌나 떨리던지 밤새 잠 한숨도 못 잤어요. 다른 배우님들도 다들 이러셨을까요?”
내 천연덕스러운 연기에 VJ가 카메라에 고개를 박은 채 엄지를 치켜들었다.
-지금은 어딜 가시는 거예요?
“지금 저는 첫 촬영 현장에 가려고 숙소를 나섰습니다. 파주에 가요. 촬영장 세트가 거기에 있거든요.”
-벌써요? 아직 해도 안 떴는데요?
“제가 첫 촬영이고, 신입이다 보니 현장에 일찍 가서 선배님들 기다리고 있으려고요. 막내라 빠릿빠릿해야하거든요.”
-이걸 보고 있는 시청자들에게 한마디만 해주시겠어요?
“어··· 요즘 시청자분들의 사랑이 과분하다고 느껴지는 나날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더욱 열심히 노력하는 최강민이 되겠습니다. 꽃 미남 학교 많이 사랑해주세요.”
내가 차에 올라타고 VJ가 뒤따라 올라타서 맞은편에 앉더니 카메라를 내려놓는다.
“조금 있다가 차 움직이고, 다시 한 번 카메라 돌릴게요. 졸리면 그냥 주무셔도 돼요. 그냥 자는 모습 살짝 찍으면 되니까.”
“어, 만약 그러다가 침이라도 흘리면요?”
내 질문에 VJ가 실실 웃으며 대답한다.
“그러면 대박이죠. 제가 꼭 PD님한테 피곤한 최배우라고 자막 꼭 넣어달라고 할게요. 와, 진짜 그러면 엄청 재미있을 거 같은데.”
이 양반이 진짜. 그거 1초 재밌자고, 나를 죽이려고 들다니.
이젠 나도 그런 게 찍히면 평생 굴욕 짤로 돌아다닐 거라는 것쯤은 안다.
절대 그런 일은 만들 수 없다는 의지로 눈에 힘을 줬다. 그리고 자유로를 올라타고 한참을 달린 승용차가 이내 파주시내로 접어들고, 서서히 속도를 줄이기 시작했다.
“다 왔어.”
파주에 위치한 예명대학교. 촬영현장.
정차된 차 문을 열기가 무섭게, 벌써부터 후끈한 촬영 현장의 열기가 고스란히 피부로 전해져왔다.
< 여기 그런 배우 있어요 (4) > 끝
ⓒ 윤민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