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듀스 나노머신-62화 (62/124)

< 여기 그런 배우 있어요 (1) >

[스타 투데이] 배우 장선화와 김준호, '꽃미남 학교' 송희연 작가의 특급 만남!

25일 방송 관계자에 따르면 장선화와 김준호는 송희연 작가의 차기작 KBN ‘꽃미남 학교’의 출연을 확정했다고 전했다.

꽃미남 학교는 스타작가인 송희연 작가의 야심찬 작품으로 명문사립 고등학교에서 펼쳐지는 젊은 청춘 남녀들의 아름답고, 활기찬 모습을 담아낼 로맨스 드라마로 벌써부터 화제를 모으고 있다.

장선화, 김준호의 주연 케미 이외에도 3대 천왕이라 불리는 박선우와 이승훈역에도 최근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아이돌 그룹 플레어의 최강민과 김준이 캐스팅 확정됐다. 특히나 최강민은 비공개 오디션장에서 심사위원들의 만장일치로······(하략)

-헐, 최강민 이제 드라마도 찍어요? 그것도 주조연급?

-이거 무리수 아닌가요? 최강민 연기 처음이지 않아요? 혹시 회사에서 밀어 넣은 건가?

-솔직히 아이돌 만하기에는 얼굴이 아깝긴 함. 실제 봤는데 진짜 뒤에서 후광이 막 남.

-우리 최강민 오빠는 만능엔터테이너거든요? 꺄, 무조건 본방 사수!

-오디션 보고 들어간 거라잖아요. 일단 함 지켜보죠.

우려와 걱정이 반반 섞인 관심들.

예상보다도 관심과 호응이 더 뜨겁다.

꺼지려는 아궁이에 장작을 밀어 넣듯 관심이 꺼질 만 하면 KBN와 제작사인 산울림 프로덕션에서 보도자료, 기사를 지속적으로 내보낸 탓도 있다. 그리고 그런 기사 덧글 란에는 한번 두고 보겠다는 그런 비슷한 덧글들이 꼭 달린다.

처음에는 신경도 쓰이고 그랬지만, 이제는 그것도 관심의 일종이니 생각하며, 그러려니 하고 있다.

그밖에도 이런 저런 변화들이 찾아왔다.

첫 번째는 모든 음방 1위 석권이라는 거대한 업적을 이뤘다.

그뿐만이 아니다.

빌보드 핫 100차트에 87위로 첫 진입에 성공했다. 아시아 보이 그룹으로는 최초로 빌보드 차트에 도장을 찍은 셈이다. 국내 언론사들은 그 이야기를 한참동안이나 앞 다퉈 보도, 기사화했다.

미국의 어느 유명한 음악평론가는 플레어의 음악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아시아그룹에서는 나올 수 없는 비트의 세련미를 갖췄다. 라고.

두 번째 변화는 조금 더 크고 좋은 곳으로 숙소를 이전 했으며, 셋째는 멤버들 저마다 개인 스케줄이 생겼다는 점이다. 김태현은 언더프리 랩 배틀이라는 케이블 프로그램에 고정으로 들어갔고, 장요한은 교육 방송 어린이를 위한 프로그램에 박진우는 국

악 홍보 도우미대사로 활동 중이고, 노아는 틈틈이 학교를 다니며 출석일수를 부지런히 채우고 있다.

그리고 나는.

알다시피 드라마에 캐스팅이 됐다. 오디션을 보고, 캐스팅이 확정된 이후, 일주일에 두 번씩 청담동에서 연기 레슨을 받고 있다.

지금은 픽업하러 온다는 차조영 실장을 기다리며, 방안에서 혼자서 대본 연습 중이다. 정확히는 이제 막 시작하려고 하고 있다.

-상대역은 몰입 감 있는 진행을 위해 장선화의 모습으로 이미지 형상화 하겠습니다.

영삼이의 말과 함께 뭔가 흐릿한 잔영이 눈앞에서 형상화 되어 진다.

성냥개비를 올려놔도 될 정도로 길게 뻗은 가지런한 속눈썹. 잡티 하나 보이지 않은 하얀 피부. 시원하게 뻗은 이목구비와 조약돌만한 크기의 얼굴.

걸 그룹으로 활동할 당시 비주얼 센터를 맡았을 정도로 잡다한 수식어 없이 그냥 한눈에 봐도 예쁘다는 말이 절로 나올 비주얼.

교복을 입은 장선화가 내 앞에 서 있다.

와, 아무리 봐도 진짜 같다.

영삼이 말로는 뇌파에 신호를 보내 허상 이미지를 구현해놓은 거라고 하는데, 손을 대면 촉감이 느껴질 것처럼 생생하다. 혹시나 하고 손은 가져다 대보니 애꿎은 허공만 닿는다. 차라리 다행인지 모른다.

만약 촉감까지 느껴지면 너무 변태 같을 거 아냐.

-선우야. 대사 안하고 뭐해?

눈앞의 장선화··· 아니 영삼이가 내게 말을 걸어온다.

허상과 현실의 경계선이 와르르 무너져 내린다. 이제는 눈앞에 있는 게 영삼인지 장선화인지 헷갈릴 정도다.

“그런 모습으로 영삼이인 척 말 걸지 말아줄래?”

-그럴까요?

가지런한 치아가 드러나면서 장선화의 눈이 반달처럼 접힌다. 허상인지 알고 있는데도, 장선화의 미소를 대하자 웃음이 절로 나온다.

진짜 장선화 부모님은 저렇게 예쁜 딸이 시집간다고 하면, 아까워서 어떻게 보내려고 하지? 나라면 두 눈에서 눈물이 철철 날 것 같다.

“사람인 척 그만하고. 교실 씬 13. 시작한다.”

-넵. 자료 데이터로 분석된 배우 박선우 모드로 전환합니다.

영삼이··· 아니 장선화가 눈앞에서 가지런히 손을 모은 채 아침을 먹었냐고 다정하게 묻는다. 가사 도우미일을 하고 있다는 장선화는 고사리 같이 하얀 손을 내밀며, 설거지하느라 아침 먹을 시간도 없었다면서 이러다가 주부습진 걸리는 거 아니냐고 투덜

거린다.

-너 같은 부잣집 도련님은 이런 고충을 절대 모를 거야.

그런 장선화를 보는 내 눈이 아기 고양이를 보는 것 마냥 부드러워지고, 포근해진다. 이내 가방에서 핸드크림을 꺼내 장선화에게 내민다.

-큼큼, 오다가 길에서 주웠어. 너 필요하면 쓰던가.

-이걸 길에서 주웠다고?

-어, 어···? 안 쓰려면 말아. 그냥 버리면 되니까.

장선화가 황급히 핸드크림을 낚아채가며, 자신의 앞주머니 속에 쏙 넣는다.

-무슨 소리야! 고마워. 딱 마침 내가 필요하던 거였는데. 잘 쓸게.

그때 반 친구가 와서 장선화를 부른다.

-야! 담임 쌤이 너 지금 교무실로 오래.

-나를?

-어, 나는 분명히 말 전했다.

반 친구가 사라지고, 장선화가 교무실에 다녀오겠다며 의자에서 일어선다. 아쉬움이 뚝뚝 묻은 표정으로 장선화의 뒷모습을 쫓는 박선우.

그때였다.

똑똑.

노크소리와 함께 이미지화된 장선화가 팟하고 사라진다.

“강민아, 레슨 가자.”

차조영 실장의 목소리다. 이제야 도착했나 보네.

“네. 나가요.”

내가 대답을 하며 일어섰다.

*

청담동에 위치한 연기 레슨학원.

태블릿으로 기사를 보고 있던 차조영 실장이 혀를 내찬다.

오늘도 어김없이 산울림 프로덕션에서 내보낸 홍보기사에 최강민의 연기력에 대한 덧글이 달려 있다.

“어휴, 사서들 걱정이네. 진짜 연기하는 걸 보여줄 수도 없고.”

“냅둬. 남 잘되는 거 배 아파하는 족속들이 그런 덧글다는 거니까. 아이돌이 연기 처음 할 때 그런 논란 없었던 애들 한명도 없었어. 서은채를 봐. 처음에는 걸 그룹이다 뭐다 그렇게 말들 많더니, 지금은 그런 말 하나도 안 나오잖아. 이제는 아예 연기자로

자리 잡았지.”

레슨 선생의 말에 차조영 실장이 고개를 끄덕인다.

“하긴, 그것도 그러네요. 그보다 선생님.”

“왜?”

차조영 실장의 어조가 은근해진다.

“강민이, 연기 잘하는 거 진짜 맞긴 맞죠?”

“왜. 이젠 내 말도 못 믿겠어?”

“아뇨. 다시 한 번 확인해보고 싶어서 그렇죠. 도무지 믿겨지지가 않아서. 저도 나름 매니저생활 오래했다고 생각하는데, 조금은 얼떨떨해서요.”

“하긴, 나도 살다 살다 저런 애는 처음 봤어. 쟤처럼 배울 거 없는 애는 또 처음이야. 그래서 요즘에는 그냥 상대역 대사나 쳐주고 있잖아. 가르쳐줄 게 없어서. 연기 천재라던 종혁이도 처음에 이 정도까진 아니었는데. 요즘에는 나도 깜짝깜짝 놀란다니까?”

윤수희 선생의 입매가 가늘어지며 눈가에 보기 좋은 주름이 접힌다.

연기 레슨경력만 25년째인, 그녀의 말이라면 그 어떤 말보다 신빙성이 있다.

대한민국에서 연기를 하는 이들이라면 윤수희 이름 석 자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선생님이니까.

“두고 보라고. 지금은 발연기니 뭐니 마음대로 떠들라고 그래. 드라마 첫 방 시작하면 그런 말 쏙 들어갈 테니까. 시청자들한테 제대로 한방 먹여주는 거지. 후후, 생각만 해도 내가 다 신이 나네.”

“그럴까요?”

두 사람의 시선이 레슨실안 또 다른 레슨선생과 함께 대본 대사를 치고 있는 최강민에게로 향한다.

좁은 레슨실 안, 분위기를 주도하고 이끌어나가고 있는 건 레슨선생이 아니다.

다름 아닌 최강민이지.

웃고, 울고, 다채로운 감정변화를 일으키는 최강민의 얼굴에는 이미 박선우가 씌여 있다.

그걸 보고 있는 윤수희 선생의 얼굴에는 흐뭇함이 걸린다.

차조영 실장을 보며 장난스럽게 웃던 그녀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장담하건데, 첫 방만 나가봐. 아주 난리가 날거니까.”

*

깔끔하고 모던한 디자인의 오피스텔 안.

거실에 걸려 있는 큰 사진이 인상적인 공간이다. 사진 속 인물은 모델 포즈를 취한 채 아래는 청바지, 위에는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상반신을 드러내고 있다. 복근에 자리 잡은 선명한 식스팩과 그 아래로 도드라지게 보이는 치골뼈가 왠지 아찔하다.

이곳은 다름 아닌 김준호의 오피스텔.

그리고 그 안에는 그의 매니저도 함께 있다.

“여기, 새로 나온 대본.”

“뭐야? 대본이 또 바뀌었어?”

매니저가 내미는 대본을 받아든 김준호가 거실 소파에 앉아 한 장 한 장 페이지를 넘겨 확인해보더니, 미간을 찡그린다.

“뭐야, 이거. 내 비중이 왜 이렇게 줄었어? 아예 씬 자체가 없어진 것도 있네? 대사도 많이 줄었고. 이게 정말 수정된 대본이라고?”

당장 대본이라도 찢을 듯이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거린다.

마치 금방이라도 폭발하기 직전의 활화산 같다.

매니저가 가만히 그의 이름을 부른다.

“준호야.”

“이번에 스펙트럼 좀 넓혀보겠다고 일부러 청춘로맨스드라마를 선택한 건데, 이따위로 내 비중을 확 줄이면 난 뭐 어떻게 하라고!? 명색이 주연인데, 촬영 내내 그냥 입 다물고, 허수아비처럼 가만히 서 있기만 할까?”

어, 너는 입 다물고 그냥 있을 때가 제일 멋있어.

잠잘 때는 마치 화보 속 주인공 같고.

차마, 그 말이 입 밖까지 튀어나왔지만 매니저는 꾹 눌러 참았다. 만약 그 말을 했다가는 저 자식은 18층 창밖에서 자신을 밀어버릴지도 몰랐으니까.

“너 스케줄 바쁜 거 알고, 일부러 씬좀 줄여준 걸 수도 있잖아. 잘됐지 뭐. 너 대사 많은 것도 별로 안 좋아 하잖아. 우리 좋게좋게 생각하자. 응?”

“그거랑 그거랑 같아? 내가 바보도 아니고. 어? 가만······.”

김준호가 전체 대본을 한참 동안 뒤적거리더니, 고개를 치켜든다.

“시발, 이거 뭐야. 박선우 씬이 눈에 띄게 늘었네? 송 작가님, 혹시 아프시거나, 머리가 어떻게 되신 건 아니지?”

“임마! 누가 들어!”

매니저의 말에 김준호는 오히려 목소리를 더 키우며 보란 듯이 떠든다.

“뭐, 뭐! 내 집에서 내가 말하는데 누가 뭐라고 그래? 대통령도 안 보이는 곳에서는 그냥 막 이름 부르고 그러는 거지. 그게 아니라면 비중을 줄여도 모자란 판국에 어떻게 비중을 늘려줄 생각을 해? 캐스팅 때도 이상하긴 했는데, 진짜 최강민이랑 송 작가

님이랑 뭐 있는 거 아니야?”

“에라이, 미친놈아. 세상 사람들이 다 너 같은 줄 아냐? 그리고 인마 송 작가님이랑 최강민이랑은 엄마랑 아들 뻘이야!”

“그렇지 않고서야 말이 안 되잖아! 최강민 그 자식 뭘 보고? 난 오히려 그게 더 말이 되는 거 같은데?”

“R&N쪽에 내가 아는 매니저가 한명 있는데 그 사람이 그러더라. 최강민 연기 레슨 받고 있는데, 연기 졸라 잘한대.”

“팔이 안으로 굽고 뭐 그런 거겠지. 형은 어디 가서 나 연기 못한다고 떠들고 다녀?”

“미친놈아. 잘한다고 거짓말하고 다녀도 모자란 판국에 내가 왜 그런 소리를 해!?”

“같은 맘인 거라고, 그 매니저도. 그러면 설마 자기 소속 연예인을 험담하고 다닐까?”

납득한 매니저가 고개를 끄덕거린다.

“하긴, 듣고 보니 그것도 그러네.”

김준호가 혀를 내찬다.

“아휴, 형 보면 진짜 답답하다. 어디 가서 내 매니저라고 하고 다니지 마. 창피하니까.”

“얘가 그런데 진짜!”

“아, 몰라몰라! 지금은 뭐 까라면 별수 없이 까겠는데, 만약 첫 리딩 현장에서도 최강민 연기 봤는데, 개판이면 나 못 참아. 나 그래도 명색이 주연인데 그 정도는 해도 되잖아? 하여간 그 자식 하나부터 열까지 다 마음에 안 들어.”

김준호가 팔짱을 끼며, 인상을 가득 쓴다. 얼굴에는 누군가를 향한 못마땅함이 가득하다. 물론 그 못마땅함의 대상은 최강민이다.

“누구? 최강민? 둘이 얼굴도 한번 못 본 사이잖아?”

“그 자식 생긴 게 조금 그렇잖아. 사람들이 그러더라? 김준호랑 최강민이랑 누가 더 잘생겼냐고?”

“어!?”

“그래서 내가 인터넷 쳐서 사진봤는데, 그거 다 보정빨, 각도빨, 카메라빨이잖아. 뽀샵으로 만져준 거. 맞지?”

매니저가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김준호가 비뚤어진 자세를 바로잡으며 매니저를 향해 똑바로 쳐다본다.

“이참에 말 나온 김에 한번 물어보자. 형이 보기에는 어때? 걔랑 나랑 누가 더 잘생긴 거 같아? 피디님이랑 미팅하러 갔다가 걔 얼굴 한번 본적 있다며? 솔직하게 말해봐.”

“음.”

잠깐 고민한 매니저는 이내 몸을 흠칫 떨며, 반사적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이건 고민하고 자시고할 문제가 아니다.

“무조건 네가 잘생겼지! 그걸 말이라고. 사람들 눈이 다 삔 거야.”

“그렇지? 내가 더 잘생겼지!?”

것 보라는 듯이 김준호가 즉각 반응한다.

“그러어엄.”

매니저가 열심히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데 왜 자꾸 사람들이 나랑 그 자식을 비교해? 기분 나쁘게?”

김준호가 야무지게 입술을 꾹 눌러 닫고는 비장한 모습으로 입을 땠다.

“하여간 첫 리딩때 가봤는데 나보다 못생기기만 해봐. 촬영하는 내내 들들 볶아 줄 테니까.”

< 여기 그런 배우 있어요 (1) > 끝

ⓒ 윤민우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