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뢰라는 것이 생기면 (3) >
-고등학교를 두 군데 다니셨나 봐요. 아니면 몸이 두 갠가? 김태현은 천동 고등학교 다녔던데, 같은 학교 다녔다면 천동고등학교 출신이여야 되는 거 아니에요? 알아보니 장덕고등학교 졸업하셨던데.
“뭔데? 무슨 문잔데?”
멤버들이 이택민의 핸드폰 주위로 모인다. 그러나 이미 이택민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핸드폰을 귀에 가져다대고 있다.
긴 신호음 끝에 상대편이 목소리가 스피커를 타고 들려온다. 음성변조를 한 건지 조금은 부자연스러운 기계 목소리가.
시발! 상대는 선수다. 음성 변조까지 한걸 보니.
-애 닳으셨나 봐요. 바로 전화를 하신 걸 보니.
“시발, 너 누구야?”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그게 지금 중요해요? 샤인 멤버가 김태현 엿 먹여 보려고 말도 안 되는 게시 글을 작성하고 올렸다는 사실이 중요하지. 이거 기자들이 알면 난리 나지 않겠어요?
“증거 있어? 내가 그랬다는 증거.”
-본인이 안 그랬다면 나한테 전화를 걸 필요가 없었겠죠.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글을 올린 거예요? 아, 그리고 반말하지 마세요. 저 그쪽보다 나이 많으니까.
이택민이 입술을 질끈 깨물고는 변명하듯 말했다.
“저기요. 제가 술 먹고 잠깐 실수한 거예요. 그래서 바로 글 내렸잖아요. 그쪽 원하는 게 뭐에요? 돈을 원해요?”
-어··· 한 10억쯤 줄 수 있어요?
상대가 웃음기 서린 목소리로 말한다. 이택민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시발, 지금 장난쳐요? 내가 그런 돈이 어딨다고······.
말을 끝내기도 전에 상대편의 목소리가 치고 들어온다.
-사실 돈은 필요 없어요. 이미 전화 건 목적은 충분히 달성한 거 같으니까.
“뭐?”
-자백해줘서 고마워요. 그리고 이제부터라도 세상 똑바로 사세요. 이 개 새끼야.
툭 소리와 함께 상대방에서 전화를 끊는 소리가 들려온다.
이택민이 다급하게 다시 수신된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지금 거신 번호는 없는 번호이니, 다시 한 번 확인하시고······.
뭔가 낚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곧 굉장히 큰일이 터질 것 같은 그런 불안감이 스물스물 밀려들어 온다.
“으아아악! 시발시발시발!”
이택민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
전화를 끊고, 인터넷 창을 켰다. 여전히 김태현은 실시간 검색어에 이름이 박혀 있다. 소속사에서 입장 표명 글을 올렸는지 이미 기사화가 되어 올라와 있다.
-R&N은 공식입장에서 먼저 이와 같은 일이 발생된 점에 대해 플레어를 아껴주시는 모든 팬 여러분, 그리고 김태현을 사랑해주시는 많은 대중 여러분께 진심으로 깊은 사죄의 말씀을 전합니다.
먼저 OO사이트에 올라왔던 김태현군의 학창시절의 일은 전혀 사실과 무관한 글로 전혀 근거가 없고, 대단히 악질적인 글이라고 판단, 대중들의 관심을 받고, 살아가는 연예인에게 심각한 명예훼손을 입혔는바, 사이버수사대에 정식으로 본 사건을 신고,
접수했음을 알려드립니다. 앞으로도 이와 같은 악의적인 글, 댓글은 소속 연예인을 보호하고자하는 차원에서 강력하게 대응할 것이며······ (하략)
회사의 공식적인 입장 표명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논란은 팽팽했다. 뻔한 소속 가수 감싸주기라는 비아냥거리는 글들. 그리고 믿고 지지해주겠다는 플레어의 팬들과의 의견이 거의 50대 50쯤으로 주거니 받거니 하고 있다.
그래도 아까보다는 김태현을 옹호하는 글들이 많이 보이는 것 같아 회사 입장표명 글 때문인가 싶어 봤더니, 그건 또 아니었다. 뭔가 싶어 봤더니, 그 이유는 커뮤니티사이트에 올라왔던 한 개의 글이 그 발단이었다.
-전 김태현 선배와 같이 학교를 다녔던 후배입니다. 먼저 개인적인 친분은 전혀 없음을 밝힙니다.
내용은 이러했다.
김태현이 폭력 서클과는 전혀 무관하고, 오히려 전혀 상관없는 학교 일진들이 김태현 이름을 팔아먹고 다녔으며, 돈을 뺏고 폭력을 행사하는 이들에게 김태현은 오히려 학교 학생들을 지켜줬다는 것. 그 밖에도 제법 괜찮은 미담들이 적혀 있었다. 그리고
그 글이 올라온 후 같은 학교 학생, 혹은 동네 친구, 후배라고 밝힌 이들에게서 그와 비슷한 경험담, 들은 이야기들을 풀어놓는 글들이 줄지어 올라와 있다.
아, 이정도면 그래도 얘가 제법 괜찮게 살아왔구나.
“영삼아, 조금 전 그 통화 내용이랑 CCTV영상. 각 언론사, 신문사 메일에 보내줘. 내용은 샤인의 이택민이 게시글을 올렸고, 그것을 자백했다는 그런 내용도 포함시켜서.”
-네, 알겠습니다.
그 사이 나는 다시 택시를 잡아타고, 숙소로 향했다. 전체 메일을 받은 각 언론, 신문사에서 일제히 기사를 터트리자 5분도 안돼서 연예란이 비슷비슷한 내용들로 도배되기 시작했다.
팩트만 줬을 뿐인데, 몇몇 기자들은 그 내용을 풍족하게 읽을 만한 소설들을 써 놨다. 캐리챌 때 이야기를 끄집어내며, 플레어에 대한 시기와 질투심이 눈에 멀어 이런 일을 저지른 개새끼로 묘사해놓았다.
택시 뒷좌석에 앉아 기사를 한 편 한 편 훑어 내리며 읽는데, 탄산수를 목구멍에 대고 벌컥벌컥 마시는 것 같다.
마음의 평화가 찾아오는 기분이랄까.
이 기사들을 접한 샤인애들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를 상상하자 입꼬리가 저절로 말려 올라갔다.
*
숙소에 도착해서 문을 열었다. 안의 공기나 분위기가 아까와는 사뭇 다르다.
김태현의 얼굴을 확인했다. 나갈 때까지만 해도 제 구역을 홀랑 뺏기고, 쫓겨난 늑대마냥 풀죽어 있는 모습이었는데, 지금은 언제 그랬냐는 듯 평상시와 같은 상태로 회복되어 있다.
억울한 것도 억울한 거지만, 자신 때문에 혹시 플레어가 어떻게 되는 게 아닌가 하는 그런 생각. 아마 모르긴 몰라도 그런 비슷한 생각들이 저 작은 머릿속에 꽉꽉 들어 차 있었을 거다.
그래서 더욱 멤버들한테 면목도 없고, 얼굴 들기도 창피하고 그랬겠지.
그걸 생각하니 괜히 안쓰럽고 짠하고 그런다.
애들 네 명이 옹기종기 거실에 앉아 뭔가를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다가 내가 들어가자 모두 벌떡 일어서서 나를 쳐다본다.
“형, 기사 봤어요!?”
노아가 가장 먼저 현관문으로 쪼르르 달려와 묻는다.
뭘 봤냐고 묻는 건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만했다.
내가 고개를 끄덕거리자 입이 쭉 찢어지며 싱글벙글한 표정을 짓는다. 팔 다리를 휘젓거리는 게 아주 좋아 죽는다는 표정이다.
노아뿐만이 아니다. 애들 전부가 다 비슷한 표정을 짓고 있다. 아까는 마치 하루하루 죽을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사형수 같은 몰골이었다면, 지금은 비타민제를 삽으로 퍼먹은 듯한 표정들이다.
아주 날아갈 것 같은 모습.
그때 차조영 실장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기사를 봤는지 목소리가 다소 흥분 상태다.
-나 지금 법무팀 직원이랑 경찰서에 고소 접수하러 왔다가 전화하는 건데, 혹시 인터넷에 올라온 기사들 봤어?
“네.”
-이게 갑자기 무슨 영문인가 모르겠네. 아무튼 애들하고 다른데 가지 말고, 숙소에 잠깐 있어봐. 내가 곧 갈 테니까 같이 이야기를 어··· 잠깐만! 대행사 업체에서 전화 들어왔다.
“확인해 보시고, 전화주세요.”
-어어, 그래. 금방 다시 전화 줄게.
그 사이 애들은 다시 거실에 모여 앉아 핸드폰과 태블릿을 저마다 들고 화면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다. 간간히 대화를 주고받으면서.
이제야 좀 사람 사는 곳 같다.
나도 느긋하게 앉아 그 무리에 합류했다.
“태현이 오빠 나쁜 일은 잊어버리고, 힘내세요. 제가 계속 응원해드릴게요. 샤인 공홈 폭파시키러 가는데 같이 가실 분? 내 그럴 줄 알았다. 샤인 걔네 언제고 사건한번 칠거 같더라니, 샤인 인성 거지같네. 회사에서 인성교육은 안 시켜주나······ 와, 기사들
마다 덧글 엄청 달려요.”
장요한이 기사에 달린 덧글을 일일이 읽어준다.
한 문장 한 문장이 끝날 때마다 애들이 리액션을 보인다. 예능에서도 보지 못한 진심으로 감탄어린 리액션이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보는 거랑 듣는 거랑은 또 천지차이다. 저건 백번을 반복해서 들어도 안 질릴 것 같다.
“저도 뭐 찾았어요!”
“뭔데? 읽어 봐봐.”
“태현이형 후배란 사람이 쓴 글인데요, 지금 고3이래요. 학교 선생님들이 종종 형 이야기해준대요. 공부는 못했지만 훌륭한 학생이었다면서···. 어, 학생주임선생님 별명이 은멸치였다고 하는데 맞아요?”
노아의 질문에 김태현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응, 맞아. 비쩍 마르셨는데, 늘 그레이 색상의 정장만 입고 다니셔서. 그런데 그런 글이 있어? 나 그분 속 엄청 썩혔는데.”
“여기 봐요. 여기.”
그러면서 노아가 보고 있던 핸드폰을 내민다.
그건 진짜였다. 그걸 본 멤버들이 저마다 웃는다.
그때 핸드폰이 진동 하길래 내가 얼른 받았다. 차조영 실장이었다.
들려오는 목소리가 싱글벙글하다.
-강민아. 오늘 저녁에 펑크 낸 스케줄 다시 해줄 수 없냐고 대행사 직원한테 전화 왔거든? 어떻게 할까? 내가 너희한테 물어보고 다시 전화 준다고 그랬는데.
“행사요?”
내 말 한마디에 멤버들이 동작을 멈추고, 일제히 쳐다본다. 행사라는 단어를 들은 탓인지 다들 눈이 반짝반짝하다.
-쉰 김에 그냥 오늘은 푹 쉬던가. 스케줄은 내일부터 해도 상관없을 것 같은데. 어때?
“어, 잠깐만요······ 애들한테 한 번 물어볼게요.”
고개를 슬그머니 돌렸다.
애들이 자석에 달라붙는 쇳가루처럼 주위로 들러붙어서 질문을 퍼붓는다.
“실장 형이 뭐래요? 스케줄 잡혔대요?”
“행사요? 행사 다 취소됐다면서요?”
“오늘요? 오늘 행사 가자는 말이에요?”
하나씩 물어봐라, 좀.
“어······ 그랬는데. 다시 잡혔다네. 취소됐던 행사업체에서 다시 무대서줄 수 있냐면서.”
내가 콧등을 긁적거리면서 대답하자 애들이 왁, 하고 웃음을 터트리며 환호성을 지른다. 다들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한다.
“어떻게 할래? 힘들면 그냥 오늘 하루는 쉬어도 괜찮다고 실장님이 그러시는데.”
내가 김태현에게 물었다.
하루종안 금가고 깨졌을 녀석 맨탈을 생각하자면, 쉬는 것도 좋겠다 싶었는데 녀석은 기다렸다는 듯이 고개를 흔든다. 녀석의 얼굴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환한 웃음이 떠올라 있다.
“가야죠! 스케줄 잡혔다는데.”
“그래.”
내가 애들의 반응을 이야기해주자, 차조영 실장이 웃으면서 대답한다.
-알았어. 내가 지금 곧장 갈 거니까. 준비하고 있어.
애들이 부랴부랴 머리를 감는다, 샤워를 한다 정신없이 돌아다니고 있는데 김태현이 나에게 슬그머니 다가와 말한다.
“형, 고마워요.”
“뭐가?”
“저 믿어준 거요. 그런데 도대체 무슨 마법을 부리신 거예요?”
“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시치미를 딱 잡아떼자 녀석의 눈썹이 가늘어진다. 입 주위가 웃고 있다.
“다른 애들은 몰라도 저는 못 속여요. 형이 밖에서 무슨 일을 해서 이렇게 일이 좋은 쪽으로 해결된 거잖아요. 제가 보육원에서 눈칫밥 먹은 게 몇 년인데, 그 정도 눈치도 못 챌까.”
“내가? 회사에서 뭔 수를 써줬겠지. 내가 무슨 힘이 있다고.”
내가 어깨를 으쓱했다. 녀석은 그런 나를 말없이 비뚜름한 표정으로 쳐다본다. 악의 없는 묘한 시선이 곧장 내 얼굴에 닿는다.
“뭐? 왜!?”
괜히 찔린 내가 물었다.
대답 없는 녀석이 한참동안이나 그렇게 쳐다보고는 이내 끄덕거린다. 곧 몽글몽글하고 포근한 미소가 녀석의 입가에 자리를 잡는다. 나한테서 떨어져나간 녀석이 기지개를 피고는 옷을 입고 나온다며 방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면서 한마디를 덧붙인다.
“아, 김밥 먹고 싶다.”
김밥 같은 소리 하고 있네.
그러니까 도대체 뭘 알았다는 건데!
차를 타고 행사장으로 이동하는데 장요한이 돌연 소리를 지른다.
“어? 이택민이 sns에 글 올렸는데요?”
“그래? 뭐라고 싸질러 놨나 한번 보자.”
술에 취해 어떤 몹쓸 유도 심문에 걸렸다는··· 사실과는 무관하다는 그런 말도 안 되는 글.
보고 있는데 웃음이 난다. 그런 개소리를 곧이곧대로 믿는 네티즌이 있을까 싶었는데, 역시 예상대로 덧글이 달린다.
팬들이라고 자처하던 팬들의 대거이탈이 계속해서 줄지어 이어지고, 실시간 검색어도 줄 세운 것 마냥 샤인과 이택민이 차지하고 있다. 욕은 말할 것도 없이 바가지로 퍼 먹고 있고.
인간 말종, 개 쓰레기, 온갖 나쁜 수식어가 녀석에게 꼬리표처럼 달렸다.
차조영 실장말로는 회사차원에서도 이번 일을 그냥 넘기지 않을 거라고 하는데, 10년 묵은 변비가 쑥 내려가는 기분이다.
그리고 그날 저녁.
무대 위에서 김태현은 완전 날아다녔다.
폭풍 같은 랩을 퍼붓는 녀석의 얼굴은 여지껏 본 것 중에서도 가장 신나 보이는 얼굴이었다.
< 신뢰라는 것이 생기면 (3) > 끝
ⓒ 윤민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