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뢰라는 것이 생기면 (1) >
-님들 새벽에 올라온 글 봤어요?
-아, 김태현 관련된 글이요? 봤죠. 얼굴이 좀 사납게 생겨서 왠지 그럴 거 같긴 했는데······.
-그 글 진짜예요?
-그거야 모르죠. 원래 좀 뜨면 그런 뜬소문들 많이 생기잖아요. 동창이네 뭐네 하면서. 좀 더 지켜보면 답 나오겠죠.
-그런데, 글은 어디 갔어요? 검색해 봐도 안 나오던데.
-아침에 삭제 됐어요. 본인이 삭제한 건지, 아니면 삭제를 당한건지. 아무튼 캡쳐본은 떠돌아다니고 있으니 그거 찾아 보셈.
“이런 씨···. 어떤 자식이 이런 글을 싸질러 논거야?”
이른 아침부터 박호영 팀장이 서슬이 파란 얼굴로 모니터를 지켜보고 있다. 그 새벽에 올라왔다는 캡쳐본이다. 그도 홍보팀 장선영 팀장의 전화를 받고, 급히 사무실로 온 뒤였다.
“왜 이렇게 전화가 안돼요?”
“사우나에서 잠깐 눈 좀 붙이느라. 그나저나 이거 올린 사람 누군지 확인 할 수 있을까?”
“그쪽 게시판 담당자랑 통화해봤는데, 개인정보보호법으로 죽어도 안 된다고 하네요. 정 알고 싶으면 정식으로 경찰에 수사 의뢰하래요.”
장선영 팀장의 대답에 박호영 팀장이 속 끓는 소리를 낸다.
“장난해? 절차 밟고, 글 올린 놈 찾으려면 최소 1, 2달 이상 걸릴 텐데. 그때까지 아이돌 이미지는 어떻게 하고? 이런 썅. 그 아래 증인들이라는 댓글들은 또 왜 달려? 이것들이 싹다 고소미를 먹어봐야 정신을 차리려나.”
“네티즌들이 뭘 아나요? 그냥 자극적이니까 동조하고 보는 거지. 본투비 애들 때 겪어보고도 몰라요? 막상 잡아놓고 보니까 죄다 중, 고딩들이었잖아요. 그냥 심심해서 반응 좀 보고 싶어서 그랬다고 하는데, 얼마나 어이가 없던지. 걔네 부모님은 또 뭔 죄
예요. 잘못했다고 경찰서에서 울고, 빌고. 어휴······.”
“하여간 우리나라도 이게 문제야. 뭐 건수만 잡았다 하면 죄다 헐뜯는다고 혈안이 돼 있어 가지고, 확인조차도 안하려고 들지.”
박호영 팀장이 씩씩거리며 말했다.
“애들은 어쩌고 있어요? 태현이는요?”
“우선 인터넷하지 말고, 오는 전화도 다 받지 말라고 해놨어. 지금 차 실장이 가고 있을 거니까 일단 상황 수습부터 해봐야지.”
“그런데 그 말 진짜일까요? 상납비 받았다는 거?”
“절대.”
장선영 팀장의 질문에 박호영 팀장이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내가 여지껏 봐온 김태현은 누굴 도와주면 도와줬지, 남의 거 뺏을 애는 아니야. 그런데 폭력 서클을 만들고, 애들한테 상납비를 받아? 말도 안 되는 소리지.”
*
-저는 김태현과 같은 고등학교를 다녔던 학생입니다. 오늘 예능프로그램에 나와서 가식적으로 웃고, 즐거워하는 김태현을 보자니 역겨워서 참을 수가 있어야 말이죠. 팬들의 사랑을 되돌려준다고요? 그걸 보고 있는 내내 기가 막혀서.
이제 연예인이 됐으니 과거 따위는 아무래도 좋다 이건가요? 김태현은 대구 화연동에서도 알아주는 일진, 학교 짱이었습니다. 폭력서클을 만들고 애들을 시켜 조직적으로 상납금을 받고, 그 돈으로 유흥비에 쓰고.
저 뿐만이 아니라 어지간한 애들도 한두 번씩은 다 돈 뜯겨봤을 겁니다. 말만 학생이지 조폭이나 다름이 없었는데, 그런 놈이 이제 연예인이라고 방송을 하고 있네요.
이런 놈은 방송을 하면 안 되는 거 아닌가요?
문제가 된 게시 글이다.
글은 내려갔지만 캡쳐본은 각종 카페, sns, 커뮤니티사이트를 통해 이미 퍼질 대로 퍼진 뒤였다. 포탈 검색어창에 김태현을 치면 연관 검색어에 폭력서클이라는 단어가 뜬다.
문제는 몇몇 이들이 자신도 화연동 출신이라면서 그 말에 신빙성을 더해주는 발언들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대로라면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는 것도 시간문제다. 아, 이미 올라가네. 제길.
“형, 우리 이제 어떻게 되는 거예요?”
아침부터 얼굴이 허옇게 뜬 장요한이 안절부절 못하며 물어본다. 사건의 주범이 된 김태현은 아까부터 입술을 꾹 다문 채 무서운 눈으로 바닥만 쳐다보고 있고.
저러다가 바닥이 뚫릴까봐 걱정이다.
애들도 뭐라 말을 걸어야 모르는 눈치다.
“어떻게 되긴 뭘 어떻게 돼? 아무 일도 없을 테니까 걱정하지 마. 기사가 뜬것도 아니고, 고작 게시 글 하나야. 그것도 말도 안 되는. 실장님 곧 오신댔으니까 기다려봐.”
말 그대로 고작 게시 글 하나다. 예전 같으면 그냥 무시하고 말았을.
헌데, 음원 1위와 오늘의 아이돌의 방송 출현 파급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도 훨씬 더 컸다.
곧이어 연예란에도 기사가 하나, 둘 실리기 시작한다. 확실한 팩트 없이 기자의 추측으로만 쓴 찌라시 같은 그런 기사들.
-유명 보이그룹 김모씨가 전직 폭력서클 장이었다는 소문이.
-최근 급상승세를 이어가는 보이그룹에 제동.
이름과 그룹명만 적지 않았을 뿐이지, 누가 봐도 우리를 연상할 수 있는 글이다.
기사 아래 댓글 창을 보니 이미 네티즌들이 플레어와 김태현을 언급하고 있다.
일이 생각보다 더 커질 것 같은 느낌에 내가 방으로 들어가 김태현을 조용히 불렀다.
“그냥 조용히 묻힐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일이 더 커지네.”
“미안해요. 형. 괜히 저 때문에.”
녀석이 분한 표정으로 중얼거린다. 누구를 향한지 모를 분노, 앞일에 대한 걱정, 그리고 이런 상황을 만들게 된 자책감. 갖가지 표정들이 얼굴에 떠올라 있다.
뭘 어떤 식으로 이야기를 꺼내놓아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나는 솔직히 물어보기로 했다.
“태현아······.”
“저 그런 적 없어요. 그 글에 있는 내용에 대해서 묻는 거라면.”
내가 질문을 던지기도 전에 녀석이 먼저 대답한다.
“제가 고등학교 때 방황을 많이 해서 싸움도 많이 하고, 그랬던 건 사실인데요, 결코 제 욕심 채우자고 폭력을 쓰거나, 괜한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그런 행동은 한적 없어요. 혹시라도 얼굴도 모르는 부모님 욕 먹일까봐. 네가 그러니까 부모님이 너를 버리
고 간 거야. 뭐, 그런 비슷한 소리를 들을까 봐요.”
김태현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진지했다.
그리고 내가 그동안 봐온 김태현은 저런 표정을 짓고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는 놈이다. 특히나 부모님 이야기를 했을 때 흔들거리던 감정은 여지껏 녀석이 꽁꽁 싸매어오던 내면을 잠시 엿 본 느낌이다.
그동안 성장하면서 부모님 없다고 얼마나 많은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며 성장했을 지를 떠올리는 괜히 내 마음이 짠해왔다.
그런 내 마음을 눈치 챈 걸까. 김태현이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했다.
“형. 그런 눈으로 볼 거 없어요. 그래도 수녀님 밑에서 사랑받고 컸으니까. 그냥 부모님이 있는 게 어떤 느낌인지를 모를 뿐이에요. 부모님이 자식에게 주는 조건 없는 사랑. 그런 걸 받는 기분이 어떤 건지 궁금하기도 하고.”
“그래, 알았어. 어떻게 수습해야할지 실장님이 오면 한 번 상의해보자. 그리고 너 핸드폰 좀 줘봐.”
“핸드폰은 갑자기 왜요?”
녀석은 물으면서도 꺼놓은 핸드폰을 내밀었다.
“이거는 잠시 내가 가지고 있을게. 오늘은 인터넷도 하지 마. 봐봤자 기분만 나쁘니까. 어떻게든 오늘 실장님이랑 이 문제 해결해볼 테니까.”
김태현이 피식하고 웃는다. 하긴. 내가 반대 입장이었어도 웃기기는 하겠다.
저 근거 없는 자신감은 뭐지? 이러면서.
“형이 어떻게요?”
“나 못 믿어?”
“형이야 믿죠. 헌데 지금 할 수 있는 일이 빤하니까 그렇죠.”
객관적으로 봤을 때 여기서 차조영 실장이 와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해봤자, 확인 사실과 소속사의 입장 표명, 조금 더 나아가서는 경찰서에 가서 고소를 진행하는 것. 이 정도가 고작일 거다.
사실 이런 일들은 그동안 연예계에서도 종종 있어왔고, 대처방법이라고 해봤자 대게 이 정도선에서 그쳤다. 하지만 글 작성자를 잡고, 사실이 아님을 밝힌 뒤에는 이미 연예인의 이미지는 넝마가 된 이후고, 그동안 받은 정신적 스트레스와 경제적 피해는
산정 불가다.
예상대로 차조영 실장이 도착해서 김태현이 했던 비슷한 말을 늘어놓았다.
헌데 문제는 그 뿐만이 아니다.
“그나저나 오늘 잡힌 행사는 어떻게 해요?”
“지금 행사가 문제가 아니지. 잠시 논란 가라앉을 때까지는 그냥 쉰다고 생각해.”
잡혀있던 행사가 줄줄이 다 취소됐다.
논란의 여지가 있는 연예인은 조금 꺼림직하다 이거겠지.
도대체 그 말도 안 되는 글 하나 때문에 우리가 얼마나 많은 피해를 입어야 돼? 그리고 이 문제로 김태현은 자신과 멤버들에게 얼마나 많은 죄책감으로 시달려야······.
뭐가 울컥하고 올라온다. 분하고 억울하다는 심정이 뭔지 알겠다.
작성자가 누군지 잡히기만 해봐라. 무슨 억하심정으로 그런 글을 싸질러 놓았는지 꼭 멱살잡고 물어볼 거다.
“아참, 그런데 그 글은 회사에서 내리게 한 거예요?”
차조영 실장이 고개를 가로젓는다.
“아니, 작성자가 올렸다가 일이 커질 거 같으니까 지웠나보더라고.”
그러더니 시선을 김태현쪽으로 돌리고 묻는다.
“그나저나 회사 입장표명을 하긴 해야 할 거 같은데, 태현아.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 건데 너 진짜 이런 일 한적 없지?”
“네.”
대답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다.
차조영 실장이 그런 김태현의 얼굴을 진지하게 쳐다보더니, 이내 입술을 다물고는 묵직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알았어. 일단 나는 회사에 다시 들어가 봐야할 거 같으니까 오늘은 인터넷 하지 말고, 핸드폰도 잠시······.”
“이미 강민이형이 뺏어갔어요. 보지 말라면서.”
어깨를 으쓱거리는 김태현의 말에 차조영 실장이 나를 보며 떨떠름한 표정을 짓는다.
“어, 어? 잘했네.”
그러더니 김태현의 어깨를 두들겨준다.
“너무 걱정하지 마. 최대한 잘 수습해볼 테니까. 며칠 동안 제대로 쉬지도 못했잖아. 이참에 하루, 이틀 푹 쉰다고 생각해.”
차조영 실장이 나가고, 나는 방으로 들어와 문을 닫았다.
차조영 실장이 아무 생각 없이 그냥 푹 쉬라는 말을 했지만, 일이 이대로 타인 손에만 맡겨진 채 흘러가게끔 지켜보고 있을 생각은 추호도 없다. 잘못된 거라면 당연히 바로 잡아야지. 다른 사람의 일도 아니라 우리 멤버의 일인데.
내가 할 수 있는 건 최대한 해볼 생각이다.
“영삼아, 전에 네가 그랬지? 지구상에 있는 데이터화된 정보는 모두 열람할 수 있다고.”
-네, 가능합니다.
“삭제된 글은?
-삭제됐어도, 해당 데이터서버에는 그 기록이 남아있을 겁니다. 추적하는 걸 원하시면 가능합니다.
“좋아. 그러면 추적해줘. 아이피 번호, 신상명세, 이름, 주소, 사는 곳. 알아낼 수 있는 건 뭐든지 다.”
불과 눈 몇 번 깜짝일 시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도 영삼이가 완료됐다고 말을 해준다.
-해당 게시물을 작성한 곳의 아이피 번호는 221.112.20.4로, 해당 커뮤니티사이트에 가입된 회원은 이수혁. 70년생 남자로 2017년 2월 23일경에 가입을······.
“그 이수혁이라는 사람이 사는 곳 주소는? 회원 가입했을 때 주소도 적어놨을 거 아냐?”
“주소는 기입해놓지 않았습니다.”
“에이씨, 그러면 아이피 주소는?”
“그건 확인 가능합니다. 마포구입니다.”
“마포? 가깝네?”
“확인 결과 팀플레이스라는 피시방으로 나타납니다.”
“좋아. 마포란 말이지?”
나는 모자와 재킷을 챙겨들고, 방에서 나왔다. 거실에는 박진우와 노아가 앉아 있다. 둘이 나를 보더니 놀란 표정을 짓고서는 자리에서 일어난다.
“형, 어디 가세요?”
“어, 잠깐 앞에. 태현이는?”
“방에요.”
“태현이 밖에 나가려고 하면 못나가게 하고, 걱정하지 말고 기다리고 있어. 뭘 좀 알아보러 나갔다가 금방 올 테니까.”
“어, 그러면 저도 같이······.”
노아가 같이 따라 나오려고 하자 내가 만류했다.
“둘이 다니면 너무 눈에 띄어서 안 돼. 넌 그냥 집에 있어.”
노아의 어깨가 축 늘어진다. 어정쩡하게 내려가 있는 양팔의 손끝이 마주 한 채 쉴 새 없이 꼼지락거리고 있다.
“저도 뭔가 도움 되는 일을 하고 싶어서······.”
그런 노아를 바라보는 내 입가에 훈훈한 미소가 맴돈다.
“그냥 형만 믿고 기다리고 있어. 아무 걱정 말고. 그러면 되는 거야.”
근거 없는 자신감이라고 해도 좋다. 왠지 이래야 녀석들이 조금이라도 더 안심을 할 것 같으니까.
숙소에서 나와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곧장 택시를 잡아탔다.
기분만큼이나 잔뜩 흐린 날씨. 다리 위를 달려가는 택시 안에서 차창을 내다보며 생각했다.
도대체, 왜. 그 이수혁이라는 사람은 그런 글을 올린 걸까? 단순히 어그로를 끌어보려고? 아니면 우리에게 무슨 억하심정 같은 게 있나? 게다가 70년생? 부모님 아이디를 사용한 거 같은데, 혹시 진짜로 아는 사람인가?
머릿속 안에 바쁘게 움직이지만 이렇다 할 결론은 없다. 가보면 알겠지.
“다 왔어요. 손님.”
잠시 후, 택시에 내려 주위를 훑어봤다.
몇 걸음 떨어진 곳에 건물 지하로 향하는 입구. 팀플레이스 피시방 간판이 보인다.
저기란 말이지?
동굴처럼 컴컴한 입구.
내가 성큼 그 속으로 걸음을 내딛었다.
< 신뢰라는 것이 생기면 (1) > 끝
ⓒ 윤민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