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로운 도전 (2) >
뭔가 싶어 눈을 깜빡거리며 봤더니, 화면에 차트 순위가 떠 있다.
“저희 1위 했어요!”
좀비 같은 녀석의 얼굴에 점점 화색이 돌더니 혼자 주먹을 움켜쥐고, 허공에 찌르고 난리도 아니다. 그 바람에 주위에 널브러져 있던 멤버들이 하나둘 눈을 뜨며, 부스스 자리에서 일어난다.
가장 먼저 일어난 것은 노아였다. 마른입술에 침을 살짝 묻히고는 아직 반쯤은 덜 뜨인 눈으로 입맛을 찹찹 다신다.
“형··· 방금 요한이형이 꿈속에서 저희 1위 했다고 소리쳤어요. 아, 생생해.”
“야! 그거 꿈 아니야! 봐봐.”
장요한이 흥분된 목소리로 말하고선 핸드폰 화면을 노아에게 보여준다.
“우리 진짜 1위라고! 1위!”
노아가 화면을 한참동안 쳐다보더니, 이내 커진 눈을 손등으로 눈을 비비적거린다. 그러더니 동그래진 눈으로 화면을 보며 껌뻑인다.
“어? 이거 진짜예요? 꿈은 아닌 거 같은데.”
“어! 진짜야. 진짜라고!”
김태현도 잠에서 깼는지 비척거리며, 구부러져있던 상반신을 피며 소파에 앉는다.
“아우, 아침부터 왜 이렇게 시끄러워? 누가 뭘 어쨌다고?”
박진우도 방에서 기어 나오더니, 소란에 합류한다. 쟨 또 언제 방으로 들어갔대.
“우리가 뭐 1위라고? 장난이면 너 진짜 가만 안 둬.”
박진우가 불신 가득한 표정으로 장요한의 핸드폰을 낚아채 김태현과 머리를 맞대고 차트를 확인했다. 둘의 표정이 노아와 같아지더니, 화면과 나를 한 번씩 번갈아가며 쳐다본다.
내가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우리 1위 했어.”
사실 나도 못 믿겨져서 거실 테이블위에 있는 태블릿으로 다시 확인을 했거든. 장요한 녀석이 워낙 엉뚱해야 말이지. 혹시 합성을 한 거나 장난을 쳤나 싶어서 확인을 했는데, 정말로 차트 순위 1위에는 우리 그룹명이 박혀 있었다.
그제야 얘들이 동시에 비명을 지른다.
“와아아아!!!”
그러더니 방방 뛰는 놈들과 합류해서 얼싸 안고, 어깨동무를 하고, 암바를 당한··· 응? 암바?
장요한이 박진우에게 목이 졸린 채 버둥거리고 있다. 저거 말려야 하나? 위험하진 않겠지. 아무튼······.
자기들이 표현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반응들을 보이며 좋아한다.
대문에서 도어락 누르는 소리가 들려봤더니, 차조영 실장이 들어오고 있다. 거실에 옹기종기모여 있는 우리들을 보며 멈칫한다.
“어? 뭐야. 순위 확인하자마자 직접 와서 알려주려고 했는데, 벌써 다 일어나있네? 차트 순위는? 다들 순위는 확인해봤어?”
말해 뭘 해.
“실장니이이임!!!!”
대답대신 장요한이 가장 먼저 뛰어가서 차조영 실장을 덮치듯 끌어안았다.
“저희 1위. 1위··· 으아아!!“
그렁그렁한 눈으로 1위를 외쳐대더니, 결국 차조영 실장을 부둥켜안고, 울음을 터트린다. 차조영 실장이 그런 녀석의 등을 다독여준다.
“그래그래. 고생했어. 너희들 마음 내가 다 알지. 앞으로는 쭉쭉 올라가는 일만 남았어. 이제 고생 끝. 행복 시작이야.”
괜히 그 광경을 보고 있는데 내가 다 울컥한다.
김태현이 슬그머니 자신의 핸드폰을 들고, 방으로 들어가는 게 보인다. 그러고 한참동안 나오지 않는 것이 아무래도 누군가와 전화통화를 하는 것 같다. 수녀님이랑 통화를 하나? 노아도 부모님께 전화를 건다고 방으로 들어가고.
나도 잠깐 망설이다가 핸드폰을 들고, 충청도에 계신 부모님 집에다가 전화를 걸었다.
몇 번 통화 연결음이 들리더니, 누군가가 전화를 받는다. 아버지였다.
“여보세요?”
“어··· 아버지. 저예요.”
“강민이냐?”
“네.”
조금은 의외였다.
아침잠이 없으신 어머니는 이시간이면 깨어나 한참 활동을 하실 시간이다. 전화기가 부엌에 있으니까 당연히 어머니가 받으실 줄 알았는데.
“잘 지내시죠?”
“뭐, 그렇지.”
무뚝뚝한 목소리가 수화기를 통해 들려온다. 나도 딱히 할 말이 생각 안 난다. 어머니한테는 가끔 이러쿵저러쿵 잡다한 말도 늘어놓기도 하는데, 이상하게 아버지한테는 그게 잘 안 된다.
용건이 있으면 최대한 요약해서 줄이고 또 줄여서, 통화시간이 1분 이상을 넘긴 적이 없다.
어려서는 목욕탕도 같이 가고, 낚시도 따라가고 그랬는데. 사춘기 시점 이후로는 급격히 아버지와의 대화가 줄어들더니, 이제는 이 지경까지 이르렀다.
친밀한 부자지간도 많다고 하던데 나는 이상하게 아버지 목소리만 들으면 저절로 몸이 수축된다.
아마도 이건 내가 그동안 지은 죄가 많아서 그러는 거겠지.
“아버지. 저희 그룹 차트순위 1위 했어요.”
“······뭐? 1위?”
“어제 공연도 하고, 음원도 발표했는데, 그게 1위 됐어요. 포털 사이트에 검색하면 나올 거예요.”
나는 최대한 그런 것을 잘 모르는 아버지께 친절하게 설명해줬다. 그 말을 들은 아버지는 한참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고 잠시 후.
“그래, 수고했다.”
이 말 한 마디를 듣자 가슴 속 안에 있는 뭔가가 차오른다. 아버지한테 한 명의 성인으로서 인정을 받은 기분이랄까. 5년간의 고생이 이 한 마디로 보상받는 느낌이다.
“너희 엄마한테는 내가 말해주마.”
“어머니는 어디 가셨어요?”
“새벽 기도하러.”
“아······.”
한동안은 안 다니시는 것 같더니. 뭔가 기도할 거리가 생긴 거라면, 저건 아마도 나 때문일 거다. 보나마나 우리 그룹, 그리고 나 잘되라고 기도를 드리는 거겠지. 요즘 허리도 안 좋으시다고 하던데.
괜히 눈시울이 붉어진다. 불과 몇 초 전까지만 해도 이제 사회의 일원으로서 내가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해 아버지께 인정받았다고 좋아했는데, 여전히 나는 부모님 앞에서는 심려만 끼쳐드리는 아들일 뿐인 것 같아서······.
아마도 이건 평생 동안 바뀌질 않겠지.
이번에 1위하면서 조금은 우쭐거리는 마음이 생겼는데, 그러한 마음이 쏙 들어갔다. 진짜 돈 많이 벌어서 부모님한테 효도해드려야지······.
“이만 끊어야겠어요. 준비하고 얼른 나가봐야해서요.”
“벌써?”
“네. 매니저형 벌써 숙소에 와서 기다리고 있어요.”
“아침은? 아침은 먹고 다니는 거냐? 연예인들은 바빠서 끼니 챙길 시간도 없다고 하던데.”
무뚝뚝한 음성 속에 나를 걱정하는 마음이 고스란히 묻어나온다.
“네. 전 잘 먹고 다니고 있어요. 아버지도 식사 잘 챙겨 드세요.”
“그래.”
“조만간 한 번 내려갈게요. 전화 또 드릴게요.”
“그래. 너희 엄마한테는 전화 왔었다고 말하마.”
슬슬 전화를 끊어야할 시점인거 같다.
오늘도 역시나 1분을 못 넘기네. 딱히 할 말이 떠올라야 말이지. 그건 아버지도 마찬가진 거 같다. 분명 형이나 어머니와 통화를 했다면 대화가 물 흐르듯 넘어가며 한참동안 전화기를 붙잡고 있었을 텐데.
“아버지.”
“응?”
주저하다가 가까스로 내가 한마디를 더 끄집어내려고 했는데, 뒷말이 목구멍에 막혀서 도저히 올라오질 않는다. 사랑해요. 이말 하기가 이렇게 힘든 거였나?
“······아니에요. 아무것도. 건강 잘 챙기세요. 어디 아프지 마시구요.”
잠시 동안 말이 끊어지더니, 이내 메마른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래, 알았다.”
전화를 끊고 거실로 나가자 차조영 실장이 여기저기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고 있다.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얘들이 다들 얼굴이 상기된 채 실실거리고 있다.
핸드폰을 통해 축하 메시지가 끊임없이 밀려들어 오고 있다. 톡, 문자, 전화도 쉴 새 없이 걸려온다. 특히 예전에 만들어놓았던 단톡 방에는 대부분 메시지가 벌써 가득 쌓여있다. 확인해보기도 겁이 날 정도다.
좋지. 좋은 날이다.
차조영 실장이 멤버들에게 손짓을 한다.
“다들 모여 봐. 그래도 역사적인 음원 첫 1위 날인데, 기념사진 정도는 찍어줘야지.”
그 말에 제 각기 퍼져있던 멤버들이 신속하게 나를 기준으로 모여든다. 다들 메이크업은커녕 세수도 제대로 안한 터라 몰골이 말이 아니다. 급하게 세수하고, 단장하고 오겠다는 걸 매니저가 말렸다. 이건 이대로 나중에 보면 다 추억이 될 거라면서.
그 말에 동의한 멤버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눈곱만 떼고, 머리만 추스른 채로 사진을 찍었다.
“하나, 둘, 셋.”
찰칵.
잠시 후 그 사진은 플레어 음원 1위라는 제목과 함께 공식 sns와 팬 페이지에 올라갔다. 그리고 다음 날 똑같은 사진이 거실에도 걸렸다.
*
그 날 이후로, 스케줄이 물밀 듯이 들어왔다. 행사 스케줄과 케이블 방송이 대부분 주를 이뤘다. 케이블 쇼, 오락, 토크쇼, 음악방송, 라디오 게스트출연, 교양방송등등.
간간히 지상파 프로그램에도 나갔다.
지상파는 대부분 떼 토크로 참여하거나 풀 샷에 동전 만하게 나오는 그런 프로이었지만, 그래도 그게 어디냐 싶다. 이제 막 데뷔한 신인인데 그정도면 감지덕지지.
행사무대도 하루에 몇 번씩이나 서고, 앨범 판매량을 늘리기 위해 대형 판매점 앞에서 팬 사인회도 열었다.
그야말로 악마의 스케줄이다.
새벽같이 일어나서 메이크업하고, 온 종일 뛰어다니다가 지쳐서 새벽에 잠이 드는 나날이 이어졌다. 맨 처음 샾에 간 날 실장님이 뻣뻣하고, 불편한 자세로 앉아 있는 우리를 보고, 나중에는 편해지고 그럴 거라더니, 그 말은 진짜였다.
첫날 샾에서의 기억은 시간이 너무 안가 큰일이었는데, 지금은 오히려 그 반대다. 의자에 앉으면 곯아떨어지기 시작하는데, 깨어보면 2시간이 후딱 가있다.
그래도 헤어, 메이크업을 해주는 아티스트들 눈치가 보여 졸고, 깨고를 반복했는데,
“눈치 보지 말고, 한숨 주무세요. 끝나면 깨워드릴 테니까.”
사근사근한 직원의 말에 그 다음부터 멤버들은 아예 목 베개를 들고 다니며 숙면을 취했다. 처음에는 이걸 왜 그렇게 들고 다니나 했는데, 써보니까 쪽잠에는 이만한 게 또 없다. 이러다가는 목 베개 애호가가 될지도 몰라.
이건 말로만 듣고, 상상했지 직접 스케줄을 겪어보니 사람이 할 짓이 아니다. 숙소보다는 이동하는 차에서 자는 시간이 더 많다고 어느 연예인이 인터뷰를 한 적이 있는데, 조만간 그게 우리의 미래가 될 것 같다.
그래도 멤버들은 좋다고 늘 얼굴에 생기가 돈다.
늘 이런 나날들을 꿈꿨다면서.
차안에서 김밥 먹고, 새우잠을 자는 것조차도 즐거워한다.
그리고 오늘은 무려 단독 게스트 출연 방송이 있는 날이다.
프로그램명은 ‘오늘의 아이돌.’
말 그대로 단독 게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아이돌을 초대해서 이런 저런 미션도 내어주고, 그룹에 대해서 시청자들에게 소개를 해주는 프로그램인데, 우리나라에서 활동하는 모든 아이돌의 입문관 같은 곳이다.
케이블이라고는 하지만 무려 40분짜리 단독 게스트인데다가 BGM 15초짜리 두 곡에, 끝날 때 뮤직 비디오까지 나간다고 한다.
그 덕분에 우리는 일주일 전부터 매일같이 꼬박꼬박 오늘의 아이돌의 녹화방송을 돌려보며, 모니터링에 열중했다.
첫 단독 게스트인데 실수할 수는 없잖아.
요즘에는 리얼 예능이 대세라면서 사전 질문지 같은 건 주지도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하는 수 없이 녹화 방송분들을 챙겨보면서 그동안 게스트들에게 했던 질문들을 하나하나 체크했다. 해프닝이나 숨겨진 비하인드, 멤버들을 처음 만났을 때 첫 인상 등.
질문 종류가 참 많기도 하다.
방송국에 들어가기 전 차조영 실장이 우리에게 신신당부를 한다.
“음원 1위 했다고 절대 자만해서는 안 돼. 항상 또 겸손. 인사는 무조건 깍듯이 하고. 괜히 1위 했다고 목에 힘들어갔다는 말 나올 수도 있으니까 가수, 개그맨, MC, 그냥 따지지 말고 무조건 다 인사해. 사원 증 차고 다니는 사람들한테도. 알았지? 아니다.
그냥 고개를 들고 다니지 마. 그게 더 나을 수도 있겠다.”
반쯤은 우스갯소리로 하는 농담 같지만 이건 농담이 아니었다.
방송국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저절로 고개가 폴더 접히듯 90도로 향한다. 대기실에 가기까지 인사를 진짜 뻥 안치고 백번도 더 했다.
고개가 쉴 틈이 없다. 우리야 처음 방송을 하는 거니까 보이는 사람들이 죄다 선배고, 고참이다.
인사를 받은 사람도 반응이 전부 제각각이다. 대부분은 고개를 끄덕이며 지나가고, 연차가 짧거나 나이가 어린 연예인들은 같이 맞인사를 해준다.
음원 너무 잘 듣고 있다고, 승승장구할거라는 격려와 응원이 담긴 화답도 간간히 들려온다.
방송을 하기 전부터 기가 다 빨리는 느낌이다. 방송보다는 인사를 하는 게 더 힘들다는 멤버들의 말에 전적으로 동감이다.
이러다가 목 디스크 먼저 걱정해야할지도 몰라······.
< 새로운 도전 (2) > 끝
ⓒ 윤민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