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듀스 나노머신-50화 (50/124)

< 뜻 깊은 무대 (2) >

데뷔 30년차 가수인 김문재는 풀린 눈으로 멍하게 바닥을 보고 있다.

산새 좋고, 공기 좋은 산이라고는 하지만 그러한 풍경들은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바로 자신이 가장 존경하고, 친형처럼 따랐던 박남길 형님이 바로 다른 곳도 아닌 이곳 땅속에 묻혀 있으니까.

관을 땅속에 묻고, 크레인이 흙을 퍼다 올리며 봉분을 쌓아 올리는 모습까지 지켜봤지만 도무지 형님이 돌아가셨다는 것이 실감 나질 않는다. 불과 일주일 전만해도 자신과 포장마차에서 히죽거리며, 술잔을 같이 기울였다.

지금이라도 당장 이름을 부르면 웃으며 자신을 맞아줄 것 같다.

허나 그 사람은 떠났다. 아주 먼 곳으로.

잊을만하면 상기되고, 또 현실 아닌 과거 속으로 돌아가 형님과 술잔을 기울이고, 또 다시 깨고, 현실에서 절망하고를 반복한다. 얼마나 시간이 지나야 현실과 과거속의 경계가 명확해질까?

모른다. 그러니 남겨진 사람들은 더 미치는 수밖에…….

그를 따랐던 많은 연예인들과 후배 가수들이 추운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그와 같은 이유로 쉽사리 묘지 곁을 떠나지를 못하고 있다.

그때 매니저가 다가와 그에게 뭔가를 내밀었다.

“형님, 이것 좀 한번 봐보실래요?”

“아, 귀찮아. 나 좀 내버려둬. 오늘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으니까.”

귀찮음이 가득 묻어나오는 목소리에는 아직도 슬픔이 가시지 않는 듯 비통함이 가득하다.

“아, 글쎄 한번 봐보기나 하시라니까요. 오늘 플레어라는 그룹이 박남길 선생님 추모 공연을 한다고 하는데요?”

“뭐?”

그가 내민 태블릿 화면에는 R&N측에서 기재한 공고문이 보인다.

- 오늘은 원래 플레어의 쇼 케이스가 있는 날입니다.

예정대로 쇼 케이스는 진행될 것이나, 일정에 변경이 있어 공지 드립니다.

가요계의 큰 별이 떨어졌습니다. 비통함과 슬픔이 가득한 날입니다.

이제껏 가요계를 잘 이끌어주신 존경하는 박남길 선배님에 대한 고마움과 존경심을 받아, 그분을 위한 자그마한 추모 공연도 같이 진행할까 합니다.

팬 분들의 너그러운 양해 부탁드리며, 본 행사는 비공개에서 공개 행사로 변경됨을 알려드립니다. 입장은 북문과 서문 두 군데서 동시에 진행될 예정입니다. 감사합니다.

“추모 공연?”

고개를 든 김문재의 표정이 조금 묘했다. 여러 가지 복합적인 표정이 떠올라있다. 얼핏 보면 화가 나 있는 것 같기도 하고.

“플레어가 누군데?”

“케이팝 리그 챌린지라는 프로그램 아시죠? 이번에 거기 시즌2에서 준우승을 한 그룹입니다. R&N소속 보이그룹이요.”

“준우승? 실력은?”

“저도 그 프로 봤는데, 애들 실력은 다들 상당합니다. 실력으로 보자면 틀림없는 우승이었는데, 팬덤 빨에 밀려서 준우승을 했어요.”

“흐음, 그래?”

매니저가 플레어의 사진을 클릭해서 확대시켜 보여준다.

“다들 잘 생겼죠?”

미끈하고, 어리고, 잘생긴 애들 다섯 명이 방송용 미소를 지며 서 있다. 그걸 본 김문재의 얼굴에는 못마땅함이 떠오른다. 노래 실력은 쥐뿔도 없으면서 얼굴과 댄스로 밀어붙이는 아이돌그룹을 워낙 많이 봐온 까닭이다.

가수란 단순히 노래 부르는 것. 그 이상의 무언가를 듣는 이들에게 전해 줘야한다는 게 김문재의 생각이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요즘에는 가수라는 이름을 달기에는 모자라는 이들이 너무 많았다.

김문재의 표정을 살핀 매니저가 고개를 갸우뚱한다.

“형님. 왜 그런 표정을 지으세요?”

“실력도 안 되는 애들이 형님 노래를 망가트린다고 생각하니까 조금 짜증이 나고 그래서. 형님 이름 이용해서 이름 팔아보려는가 싶기도 하고.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잘못된 건가?”

“어… 아뇨.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네요.”

김문재의 가늘어진 눈빛으로 매니저를 쳐다보며 물었다.

“공연이 언제라고?”

“오늘 저녁 8시입니다.”

“좋아. 그러면 저녁에 여기 한번 가보자고. 새카맣게 어린 후배들이 형님 노래를 어떻게 부르는 지.”

*

“어? 그래, 알았어. 차 실장한테 마중 나가라고 할게. 어, 고마워.”

박호영 팀장이 회사에서 걸려온 전화를 끊자, 차조영 실장이 옆에서 묻는다.

“왜요? 또 누가 여기 온대요?”

“어, 가수 김문재씨 알지?”

“당연히 알죠. 설마 제가 그 분을 모를까. 지금 故박남길씨 유가족들이랑 같이 장지에 가있지 않아요? 충남 어디쯤이라고 한 거 같은데.”

“김문재씨가 추모 행사장에서 박남길씨 부인모시고, 동료 몇 명이랑 같이 이곳에 온다고 하네.”

“가족이요? 헐. 이건 생각도 못한 그림인데요?”

“그러게. 혹시 자리 좀 빼줄 수 있냐고, 그쪽 매니저 통해서 회사로 연락 왔어. 혹시나 하고 VIP석을 비워놓길 망정이지.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네. 그런데 이걸 좋아해야해, 아니면 말아야해?”

박호영 팀장의 표정이 알게 모르게 진지해졌다. 차조영 실장이 뭔 그런 쓸데없는 고민을 하느냐는 표정으로 묻는다.

“당연히 좋아해야하는 일 아니에요? 故박남길씨 부인이 오면 아무래도 기사 한 줄이라도 더 나가게 될 거고, 유명 연예인들 오면 그만큼 기사가 더 풍부해질 테니까요.”

“음, 그건 그런데… 그다지 좋은 목적으로만 오는 것 같진 않아서 그렇지.”

뭔지는 몰라도 박호영 팀장의 표정이 그리 썩 밝지만은 않다. 차조영 실장이 고개를 갸웃한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왜요? 뭐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라도 있으세요?”

“김문재씨 말이야. 故박남길씨랑 친분이 좀 두터워? 그런 형님의 노래를 이름도 모르는 새파랗게 어린 후배가 넋을 위로해준답시고, 부르면 참도 좋아하겠다. 모르긴 몰라도 얼마나 형님 노래를 잘 부르나 심사하는 심정으로 들을 걸?”

“어… 그건 생각이 너무 많이 가신 거 아니에요? 노래는 많은 사람들이 불러주는 게 좋은 거잖아요?”

“그랬으면 나도 좋겠는데….”

“에이, 너무 걱정 마세요. 저도 아까 연습실에서 애들이 노래 부르는 걸 들었거든요? 그런데 진짜 말도 안 되게 잘 불러요. 아마 여기 오는 사람들 모두 노래 듣고 나면 아무 말도 못할걸요?”

“그래? 그렇다면 다행이고. 아무튼 넌 전화 받으면 입구로 나가서 그분들 좀 모시고 와. 몰랐으면 모르겠는데, 안 이상 모른 척 할 수는 없으니까.”

“네. 그런데 생각보다 사람이 더 많이 모이는 것 같은데요? 조금 전에 잠깐 나갔다가 와봤는데, 출입을 위해서 대기하고 있는 줄이 어마어마하더라고요.”

“그래?”

“3천명은 그냥 넘어가겠던데요?”

*

널찍한 대기실안.

“으아아, 이게 웬일이야! 이제 30분도 안 남았어!”

시계를 들여다본 장요한의 목소리가 가득 울려 퍼진다. 아까부터 저러고 있다. 뭐라고 떠드는 건지 입이 쉴 새가 없다.

“좀 닥쳐줄래? 너 때문에 더 정신이 없으니까.”

박진우가 의자에 앉아 차분하게 숨을 고르며 장요한에게 쏘아붙인다.

그러거나 말거나 장요한은 신경도 안 쓰는 눈치다.

“야야, 내가 관객 얼마나 왔나 슬쩍 봤거든? 그런데 객석이 꽉 찼어! 그런데도 더 들어오는 거 같아! 저 많은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한다니 떨려 미치겠다!”

김태현은 아까부터 자꾸 가사를 잊어버리는 통에 가사 외우기에 여념이 없다. 혹시나 무대 위에서 가사를 잊어버릴지 몰라 쪽지에 가사까지 옮겨 적고 있다. 노아는 뭘 하고 있나 봤더니, 호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 껍질을 까서는 입안에 쏙 넣는다.

“뭐 먹어?”

“우황청심환이요. 도무지 진정이 되질 않아서. 형도 하나 드려요?”

“나나나나. 그거 나줘!”

장요한이 그걸 보더니 부리나케 달려온다. 노아의 손에 호주머니에 들어간 상태에서 멈칫하며 눈을 동그랗게 뜬다.

“아…….”

“뭐야! 그 표정은! 강민이 형한테 주는 건 안 아깝고, 나한테 주는 건 아깝다는 거야!?”

“아니요. 그런 게 아니라. 남은 게 하나밖에 없어서…….”

노아가 쭈뼛거리며 대답한다. 그걸 본 박진우가 낄낄거리며, 호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 장요한에게 던진다.

“넌 이거나 먹고 떨어져. 너랑 강민이형이랑 비교가 되겠냐? 옜다, 목 캔디.”

“이거라도 땡큐.”

장요한이 포장지를 까서 입속에 쏙 넣고 사라지자, 그제야 노아가 주머니에 넣은 손을 꼼지락 거리며 동그란 환약 하나를 내게 내민다.

“형, 자요.”

“어? 고, 고마워.”

마음을 진정시키는 거야 영삼이에게 안정화 모드로 바꿔달라면 되긴 하지만, 얼른 먹으라고 재촉의 눈빛을 보내는 통에 하는 수 없이 우황청심환을 입안에 넣고 우물거렸다.

아, 써.

그런데 이게 진짜 효과가 있긴 있는 건가?

나야 처음 먹어보는 거니 알 수가 있나.

그런 나를 보며, 노아가 재미있다는 듯이 웃는다.

“왜 웃어?”

“그냥요. 좋아서요.”

“뭐가? 내가 우황청심환 먹는 게?”

“그냥 다요.”

그러더니 노아가 자그마한 소리로 주절주절 말을 늘어놓는다.

“이렇게 형들이랑 같이 있는 것도 좋고, 예고로 편입 가는 것도 좋고, 부모님이 인정해줘서 좋고, 아, 그리고 이렇게 앨범을 내고, 무대에 서게 된 것도 좋아요.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우리 팀이 어떻게 될까. 내년에는 내가 뭘 하고 있을까. 이런 걱정 때

문에 잠도 안 오고 그랬는데.”

얘도 말은 안했지만 심적으로는 많이 힘들었구나.

“그랬어?”

“네, 그래서 지금 되게 신기해요. 형이 온 다음부터는 모든 일이 술술 다 잘 풀리는 것 같아서.”

낯간지러운 말에 나는 괜히 콧잔등을 긁적였다.

“그게 엄밀히 따지면 나 때문은 아니지. 다 모두들 열심히 노력한 덕이지. 내가 뭐 한 게 있다고.”

내 말에 노아가 낮은 소리로 웃으며 대꾸한다.

“아닌데요. 엄청 많이 한 것 같은데. 지금도 그렇고.”

그런 말을 들으니 괜히 기분이 말랑말랑 해진다. 누군가에게 신뢰를 얻는 다는 기분이 이렇게 좋은 건가 싶기도 하고. 또 그에 못지않은 책임감 같은 것도 느껴지고.

어느새 주위가 조용해진다 싶어서 봤더니 멤버들이 전부 나를 쳐다보고 있다.

나를 쳐다보는 표정들이 노아가 짓고 있는 표정과 별반 다르지 않다. 눈빛이 전부 따스함으로 가득하다.

뭘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하고 있는데, 관객 동태를 상태를 살피러 나갔던 차조영 실장이 대기실 안으로 들어온다.

“어휴, 밖에 사람이 어마어마하다. 다들 긴장하지 말고, 연습한다고 생각하고, 편안하게……”

말을 하다만 차조영 실장이 잠시 동안 떨떠름한 표정을 짓더니 고개를 갸웃거린다.

“…… 어째 다들 괜찮아 보이네? 엄청 떨고 있을 줄 알았는데.”

곧이어 관계자가 문을 열고 들어와 시작을 알린다.

“이제 나가셔야 될 것 같은데요.”

“화이팅 한번 하고 갈까?”

나와 멤버들이 눈빛을 주고받으며, 둥그렇게 모여 손을 뻗는다.

내 손위로 김태현의 손이 올라가고, 그 위로 장요한, 박진우, 노아의 손이 차례대로 포개진다.

무대와 곧장 이어진 통로로 걸어 나가자, 한발 한발 가까워질수록 MC의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린다.

“자, 모두가 기다리고 있던 플레어를 소개하겠습니다!”

마침내 팀명이 거론되고, 눈빛을 주고받은 우리가 무대 위로 올라갔다.

사람이 어마어마하다. 3천명이라고 했는데, 이미 좌석은 사람들이 모두 앉아 있고, 그 밖에 서 있을 공간이 될 만한 장소에도 어김없이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인사를 하자 함성소리가 들려온다.

“으아, 형. 사람 엄청 많은 것 같아요. 도대체 이게 다 몇 명이야?”

“4천명은 넘겠는데? 어? 저기 앞에 앉아 있는 사람들 연예인들 아니에요?”

박진우가 가리킨 곳을 보니 정말로 티비 속에서나 보던 연예인들이 앉아 있었다. 연기자, 가수, 개그맨, R&N소속 연예인들도 보인다.

MC심현섭이 인사를 하라고 사인을 보내자 내가 마이크를 잡았다.

“안녕하세요. 플레어의 최강민입니다.”

짤막한 몇몇의 환호성과 함께 삽시간에 주위가 조용해진다.

4천명이 넘는 눈길을 동시에 마주하자, 순간 멍해지면서 머릿속이 새하얘진다.

정말이지 천장 위에서 내리쬐는 조명과 무대 끝에서부터 뿜어져 나오는 조명 불빛 외에는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가 않는다. 무중력 공간 속에서 정신만 쏙 뽑힌 채 둥실둥실 떠다니는 느낌.

어, 순간 이러면 큰일이겠다 싶은데, 안정화 모드가 발동되면서 가출했던 정신이 다시 육체로 돌아왔다.

“최강민씨?”

당황한 표정으로 나를 부르는 MC심현섭의 모습이 보인다.

휴, 하마터면 큰일 날 뻔 했네.

먹었던 우황청심환도 별 소용없구나.

아깝게 괜히 먹었네. 장요한이나 줄걸.

심호흡을 하고, 눈을 껌뻑였다. 그러자 마음이 차분해지며 무대 위에 시선을 두고 있는 관중,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는 MC, 멤버들이 차례대로 눈에 들어온다.

< 뜻 깊은 무대 (2) > 끝

ⓒ 윤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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