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듀스 나노머신-49화 (49/124)

< 뜻 깊은 무대 (1) >

홍보팀 사무실이 갑자기 바빠졌다.

“노래 세 곡 정도 부르는 선에서 그칠 것 같아요. 네네. 플레어가 직접 부를 거예요. 아, 괜찮으시다고요? 저희 측도 지금 막 이야기가 나온 거라 곡 결정은 회의를 해봐야 나올 것 같아요. 갑작스럽게 전화 드렸는데, 친절하게 응대해주신 거 감사드립니다.

그러면 제가 1, 2시간 후쯤에 결정 나는 대로 다시 전화 드릴게요. 네에, 수고하세요.”

故박남길 소속 회사에 전화를 건 장선영 팀장이 통화를 마치자, 박호영 팀장이 기다렸다는 듯이 묻는다.

“뭐래?”

“고인의 이미지를 훼손하거나 실추시키는 거라면 곤란하다고, 최대한 그런 부분만 신경써주면 괜찮을 것 같다고 하네요. 조금 있다가 다시 통화하고, 미팅 시간 잡기로 했어요.”

“유족들은? 그쪽에다가도 물어봤대? 괜히 의견 없이 진행했다가 나중에 뒷말 나오면 곤란해.”

“그쪽이랑도 이야기 다 끝냈대요.”

“휴, 우선은 다행이네. 혹시나 거절하면 어떻게 할까 걱정했는데.”

수화기를 내려놓은 장선영 팀장이 발을 굴려 의자를 회전시켰다. 그녀의 시선이 곧장 박호영 팀장을 향한다. 이른 아침 시간이라 얼굴이 부스스하게 보였지만 눈만큼은 초롱초롱하게 빛난다. 죽상을 하던 조금 전까지와는 완전히 대조적인 얼굴이다.

“그나저나 추모 공연이라니, 생각지도 못했는데요? 좀 뜬금없긴 해도 나쁘지 않은 생각 같아요. 어차피 샤인쪽 한 거보니까 뭘 어떻게 해도 성공적으로 개최했다는 말은 듣기 힘들 것 같고. 그럴 바에는 이미지 메이킹 하는 쪽으로 방향을 트는 게 낫죠. 개

념 그룹이다 뭐다해서 여론 평가도 좋을 것 같고. 그렇게만 되면 저절로 샤인과 대조적으로 비교가 될 테니까요. 네티즌들이 알아서 좋게 평가해줄 거고.”

뒤에 있던 직원이 덧붙였다.

“일석이조가 아니라 일석 삼조쯤 되겠네요.”

“그렇지.”

“누구 아이디어래요? 혹시 차 실장님?”

“아니, 최강민 아이디어래.”

“그래요? 와, 어떻게 그런 생각을 다 했지?”

“그러게. 나도 생각지도 못했는데··· 아, 저기 오네. 일단 빨리 회의부터 하자고. 의논해야 할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니.”

*

급하게 마련된 회의자리다.

영상기획 한민아 팀장과 홍보팀 장선영 팀장, 그리고 박호영 팀장과 차조영 실장. 같이 일을 진행해줄 직원 넷과 그 외 우리 다섯 멤버가 대회의실에 모여 앉았다.

한민아와 장선영 팀장의 주도하에 대부분의 회의가 흘러갔다.

“그래도 명색이 쇼 케이스 무대인데, 박남길씨 노래를 너무 많이 부르는 거 아니에요? 세곡은 좀 많은 느낌인데. 팬들이 플레어 노래 듣자고 찾아온 거지, 추모 곡을 듣자고 오는 건 아니잖아요. 안 그래요?”

여직원의 발언에 장선영 팀장이 곱게 눈을 흘긴다.

“플레어곡이 너무 많으면 추모 공연이라고 부를 수도 없지. 괜히 돌아가신 고인 끌어들여 생색내기 한다고 비난받을 수도 있고. 이건 절대 플레어 곡이 더 많이 들어가서는 안 돼.”

“음, 그것도 그러네요.”

여직원이 바로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저건 나도 같은 의견이다. 그래서 내가 제시한 것이 일곱 곡이다.

플레어 곡과 박남길 곡 세 개씩. 나머지 한곡도 플레어 앨범수록곡이긴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어울릴법한 노래니 이건 논외로 하고.

회의가 돌아가는 걸 가만히 지켜보다 나는 입술을 몇 번씩이나 움찔거리다가 다물기를 반복했다.

또 다른 의견하나가 머릿속에 맴도는데, 이게 너무 일을 크게 만드는 것 같아서 말을 꺼내기가 좀 망설여진다.

“왜? 강민이 좋은 의견이라도 있어? 있으면 말해 봐.”

박호영 팀장이 그런 나를 보며 말한다.

연예계 바닥에서 10년 구르면 눈칫밥으로 산을 쌓는다고들 말하는데, 정말로 눈치가 장난이 아니다. 내 이름이 호명되자 다들 눈이 반짝반짝 해져서는 나를 주목한다.

“어··· 이건 제 생각일 뿐인데요.”

“뭔데? 어차피 이 아이디어도 네가 낸 거니까 부담 없이 말해봐.”

박호영 팀장의 말에 나는 조심스럽게 말을 끄집어냈다.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차라리 비공개인 쇼 케이스 무대를 오픈으로 전환하는 건 어때요?”

순간 모두가 붕어가 된 듯 입을 다물고는 눈만 껌뻑거린다.

이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반응인데.

“오픈 무대요? 조금 더 자세하게 말해 봐요.”

한민아 팀장이 이채 섞인 눈빛을 하더니, 좀 더 적극적인 태도로 안경테를 치켜 올리고는 상체를 내 쪽으로 비튼다.

“어··· 그래도 추모공연은 돌아가신 분을 그리며, 생각하는 자리인데, 관객이 너무 팬 위주로만 되어 있는 것 같아서요. 의미 있는 자리니 한분이라도 더 함께 할 수 있다면 좀 더 뜻 깊은 자리가 되지 않을까요?”

“음.”

한민아 팀장이 곰곰이 생각하는 표정을 짓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인다.

“듣고 보니 아무래도 팬 회원들만 있으면 그림이 좀 안 살긴 하겠네요. 연령층도 너무 어린 것 같고.”

“아마 대부분은 박남길씨가 누군지도 모를걸요?”

옆에 앉은 여직원이 말을 받는다.

“오늘 박남길씨 발인도 끝났겠다. 입장권도 무료로 배포했으니 공개로 돌린다고 해도 큰 문제는 없을 것 같고. 추모 공연 소식이야 기사로 내보내면 금방 퍼질 테니······ 이거 괜찮은 아이디어 같은데?”

말을 하던 한민아 팀장이 감이 왔다는 표정으로 무릎을 탁 친다. 여직원도 따라서 재잘거린다.

“오늘 뉴스 보니까 발인 후, 묘지 이장하는 곳까지 따라가는 추모 행렬도 어마어마하다는 것 같은데, 혹시 그분들도 다 오시는 거 아니에요?”

“이번에 섭외한 곳이 드림시티 라이브 홀이지? 거기 좌석이 총 몇 개지?”

“3천명이요.”

장선영 팀장의 물음에 여직원에게 대답한다.

“이건 뭐 쇼 케이스가 아니라 거의 미니콘서트 수준이네. 곡수나 관객 수로 보나.”

“처음에는 데뷔 쇼 케이스 무대치고는 좀 큰 곳이다 싶었는데, 오히려 잘됐네요. 대표님이 선경지명이 있었나 봐요!”

3천 명.

갑자기 확 늘어난 관객 숫자에 멤버들이 눈이 동그래진다. 표정이 딱딱하게 얼어붙는 게 눈에 보인다.

그러거나 말거나 팀장들과 직원들은 대화하는데 여념이 없다.

일정이 바뀐 만큼 조율해야할 것도 많다.

“그러면 일단 추가로 2천명은 더 받을 수 있다는 거네. 가만 있어보자. 그러면 이벤트는 어떻게 하지? 다른 건 몰라도 도시락이 문젠데, 준비된 게 천 명분 밖에 안 돼서. 누군 주고 누군 안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건 어떻게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거래하고 있는 곳이 여러 군데 있으니까 다 연락을 넣어서 분담해서 준비를 해달라고 하면···.”

“그래도 메뉴가 틀리잖아요.”

“예정에 없던 일이라고 양해를 구하면 되죠. 추모행사 온 사람이 설마 도시락 후진 걸 주냐고 따지기야하겠어요?”

“하긴. 그런데 갑자기 예산이 확 늘어버리는데? 이거 돈이 만만치 않게 깨지겠는데?”

어, 그런데 이거 이대로 괜찮은 건가?

내 의견을 제시했을 뿐인데, 생각보다 반응이 더 뜨겁다. 주거니 받거니 의견 몇 개를 교환하더니, 다들 바쁘게 앞에 놓인 메모지에 뭔가를 적어 넣는다.

갑자기 뜨거운 시선이 느껴져 뭔가 싶어 봤더니, 박호영 팀장이 입을 꾹 다문 채 가만히 나를 들여다보고 있다. 턱수염이 듬성듬성 난 30대 남성이 나를 빤히 쳐다보자 뭔가 기분이 이상하다.

“왜, 왜 그런 눈으로 쳐다보세요. 팀장님!?”

느릿하니 박호영 팀장의 입이 벌어진다.

“아니, 그냥 신기해서.”

“뭐가요?”

“추모공연을 하자고 했을 때만 해도 이건 추진해도 밑지지는 않겠다 싶었는데, 그걸 더 대박아이템으로 바꿔 버리니까. 가만 보면 신기한 구석이 한두 가지가 아니야.”

“아이디어는 괜찮은가요?”

내 물음에 한참동안 뭔가를 종이에 휘갈겨 넣던 장선영 팀장이 고개를 들며, 말을 넙죽 받는다.

“이건 괜찮은 정도가 아니죠. 대박이에요. 대박!”

외부 미팅에 나가있는 본부장에게 상황중계를 해야겠다며, 박호영 팀장이 전화를 위해 자리를 비우고, 그 사이 회의는 본격적으로 더 진행됐다.

“우선 곡선별을 해야겠어요. 박남길씨 곡 중에서 어떤 곡을 부를 예정이에요? 상대측 회사와도 이야기를 해놔야 하는 부분이라서요.”

순간 회의실에 있는 시선들이 나에게로 다다닥 꽂힌다.

나는 심호흡을 한 후, 일단 생각하고 있던 곡 세 개를 말했다.

“노을빛 풍경, 물안개 피어오를 때, 달밤의 노래. 이렇게 세 곡이요.”

지금 상황과 어울릴만한 한 곡과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두 곡.

내 말에 한민아 팀장이 깜짝 놀란 표정을 짓는다.

“노을빛 풍경. 그 노래도 알아요? 나머지 두 곡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그 곡은 별로 대중적으로 알려진 곡도 아닌데.”

“저희 부모님이 박남길 선배님의 팬이셔서 어려서부터 들었어요.”

나는 제일 만만한 부모님의 이름을 팔았다. 그리고 그건 제대로 먹혀 들어갔다. 별 의심 없이 넘어갔다. 한민아 팀장의 눈에 이번에는 멤버들에게로 향한다.

“그러면 멤버들은요? 멤버들도 노래 다 알아요?”

멤버들이 마치 짜기라도 한 듯 고개를 설레설레 흔든다.

故박남길 이 노래를 발표했을 때에는 멤버들 대부분이 태어나지도 않았을 테니까 모르는 게 당연하다. 나야 영삼이의 데이터가 있으니까 조금은 특별한 경우고.

그거에 관한 건 이미 멤버들과 상의를 끝마쳤다.

나는 미리 대화한 내용들을 전했다.

“노을빛 풍경은 저 혼자 솔로로 부를 거고, 나머지 두곡은 멤버들과 함께 부를 거예요. 대충 들어는 봤다고 하니까, 지금부터 연습해도 가능할 거예요.”

“반주는요? MR준비해놔야 해요?”

“아니요. 둘 다 반주도 직접 할 거예요. 현장 느낌이 더 살게. 세곡 다 기타랑 건반만 있어도 되는 반주들이라··· 기타는 제가 치고, 요한이가 건반을 치기로 했으니 악보만 있으면 될거 같아요.”

“그러면 곡 준비는 그렇게 하는 걸로 하고··· 아참, 그리고 노래 부르는 순서는 어떻게 하실 거예요? 박남길씨 노래를 먼저? 아니면 앨범 곡 노래를 먼저?”

“댄스 곡 부른 다음에 추모 곡은 조금 그럴 것 같아요. 그냥 추모 곡 먼저 끝내놓고, 양해를 구한 다음에 노래를 이어가는 게 나을 것 같은데요.”

여직원 한명이 내 의견에 말을 더 보탠다.

“음, 그러지 말고, 아예 1부 2부 파트로 나눠서 진행을 하는 건 어때요? 모양새로 보면 그게 더 나을 것 같기도 한데.”

“그것도 좋을 것 같네요.”

장선영 팀장이 우려된다는 목소리를 말했다.

“이건 MC 역할이 중요하겠는데요? 노래 분위기가 아무래도 상반되다보니. MC는 심현섭씨가 맡기로 하셨죠?”

“네.”

“좀 걱정되긴 하네요. 그분이 평소 좀 까불까불한 이미지라.”

차조영 실장이 동조하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헌데, 어쩔 수 없어요. 지금 당장 다른 MC를 모실 수도 없는 형편이라. 제가 바뀐 부분을 전화로 말씀드리면서, 최대한 점잖게 멘트 쳐달라고 말씀드려볼게요. 그분 갑자기 일이 이렇게 커진 거 알고는 당황하시는 거 아닌가 모르겠네.”

그때 본부장과 통화를 하러 나갔던 박호영 팀장이 다시 회의실로 들어왔다.

“본부장님이 뭐라세요?”

“대표님 반응도 좋고. 필요한 거 있으면 적극 지원 줄 테니 어디 마음껏 해보라신다.”

“진짜요!?”

“그래, 그러니까 빨리 홍보자료부터 작성해서 돌리고, 인터넷에도 기사 올리고. 각자 맡은 업무 다시 체크해서 서둘러 진행시키자고.”

두 팀장이 직원들을 채근한다.

“들었지? 뭐해? 다들 빨리들 일어나. 할 일이 태산이니까.”

“홍보팀은 사무실로 들어가기 전에 화장실부터 들렸다가 가. 자료 돌리고 기사 나가면 전화통 붙잡고 있느라,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을 테니까.”

시간이 없기는 우리 쪽도 마찬가지다.

“팀장님 저희 몇 시에 출발해야 해요?”

“늦어도 1시정도에는 나가야지. 샵에 들려서 머리, 메이크업하고 가야 하니까.”

대략 남은 시간은 3시간.

“우리도 얼른 연습실로 내려가서 연습하자.”

내가 자리에서 일어서자 멤버들이 내 뒤를 따랐다.

10분 후. R&N의 공식 홈페이지와 SNS에는 조금 전 회의에서 말한 내용들이 담긴 공고문이 기재됐다.

그리고 장선영 팀장의 말대로 홍보팀 사무실의 전화가 일제히 울렸다.

< 뜻 깊은 무대 (1) > 끝

ⓒ 윤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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