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듀스 나노머신-48화 (48/124)

< 새로운 도약을 위한 시간 (4) >

이틀 뒤. 플레어의 공식 팬 페이지에는 공고문 하나가 기재됐다.

-안녕하세요. 플레어입니다.

2018년 플레어 쇼 케이스 초대 이벤트 안내입니다.

플레어의 공식 팬클럽인 1기 여러분들이 참여 가능한 이벤트 이니 아래 내용을 상세히 확인 후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플레어가 여러분에게 선보이는 첫 번째 무대인만큼 입장권은 무료로 배포되오니, 많은 신청 부탁드립니다.

-당일 쇼 케이스 현장에 참석하지 못하는 팬 분들을 위해서 쇼 케이스 생중계도 진행 예정이니, 플레어의 컴백 신호탄을 알리는 쇼 케이스에 많은 관심과 응원 부탁드립니다.

일시 2018년 3월 7일 (수)

시간 오후 8시

초대인원 1000명

장소 : 드림시티 라이브 홀

티켓가격 : 전석 무료 (1인 1매)

신청방법 공식 팬 페이지를 통해 본인 인증 후 신청가능.

플레어만의 특별한 이벤트 하나.

공식 팬 페이지에 가입하신 여러분들 중 100명을 대상으로 추첨을 통하여, 플레어의 스페셜 미니 화보집을 증정해드립니다.

다섯 명의 멤버가 모두 들어 있는 여러분을 위해 마련한 특별한 플레어의 모습과 만나보세요.

플레어만의 특별한 이벤트 둘.

공식 팬 페이지에 플레어에게 응원 메시지를 남겨주세요.

플레어에게 힘이 되는 응원메시지를 남겨주신 500명에게 추첨을 통하여, 플레어 멤버들이 직접 녹음한 모닝콜 MP3를 드립니다.

플레어만의 특별한 이벤트 셋.

쇼 케이스 참가를 위해 먼 곳에서부터 오신 고마운 팬 분들을 위해 플레어가 3단 고급 도시락을 준비했습니다. 허기진 배는 잠시 내려놓으세요. 식사 후, 간단한 팬 사인회를 개최할 예정입니다. 많은 참석 부탁드립니다.

공식 팬 페이지에 기재된 한 장의 공고문은 SNS와 각종 커뮤니티 사이트란을 통해 빠른 속도로 확산되어 나갔다.

-와, 님들. 어제 플레어 공식 홈에 뜬 거 봤어요? 쇼 케이스 입장권 무료라는데?”

-진짜요?

-와, 기획사 돈 많네. 드림시티 라이브 홀이면 쇼 케이스 할 수 있는 무대 중에서는 제일 크고, 비싼데 아니에요?

-이벤트 내용도 괜찮은 것 같아요. 신인 그룹 쇼 케이스인데, 내용은 거의 뭐 10년차 아이돌급 대우임. 회사에서 엄청 신경 쓰는 티가 남.

-이건 아예 밀어주기로 작정했다고 봐야죠. 그런데 샤인도 쇼 케이스도 그 무렵쯤이지 않나요?

-플레어보다 이틀 더 빨라요.

-근데 좀 비교되긴 하네요. 샤인 쇼케이스는 입장권 2만원인가 그렇죠? 이벤트도 딱히 별거 없고.

-저 샤인 팬클럽 회원인데, 이참에 그냥 탈퇴하고, 플레어로 본진 갈아타려고요. 솔직히 케리챌이후 샤인 좀 그래졌음. 이제는 플레어가 더 정감이 감. 사실 말이 나와서 하는 소린데, 케리챌 시청률 플레어가 다 끌어올린 거 아니에요? 실력으로 봐도 플레

어 우승 각이었는데.

-어, 저도 어제 탈퇴하고 나왔어요. 샤인 신규 회원들에게서도 말이 좀 나오더라고요. 이번 쇼케이스 날짜도 플레어 발표이후 바로 확정된 것도 보기 좀 그렇고. 그리고 김은우빨 효과가 떨어질 때도 되긴 했어요. 이 정도면 많이 버텼지.

-그런데 솔직히 얼굴로만 따지면 플레어 최강민이 더 낫지 않아요? 비교짤 돌아다니는 거 보니까 김은우 완전 묻히던데.

-인정. 최강민이 개 잘생기긴 했죠.

-그냥 플레어 애들이 다 존잘임. 최강민은 특존잘.

-그런데 팬 사이트에 가입만 해놔도 화보랑 MP3 주는 거예요?

-아마 그럴걸요? 저도 좀 전에 가입하고 옴.

R&N에서 내건 플레어의 쇼 케이스 공고문은 샤인과 플레어사이에서 갈팡질팡하던 팬들과, 그리고 입문할 보이그룹을 찾는 신규 회원들의 마음속의 불씨를 지펴놓았다.

거대하고, 눈에 띌만한 커다란 변화는 아니었지만 분명 넷상에서는 변화의 물결이 소리 없이 요동치고 있었다.

그리고 3월 5일.

샤인의 쇼 케이스 개최일 당일.

AM 6:10분.

속보라는 표시를 해놓은 짤막한 뉴스 기사가 인터넷에 올라왔다.

[속보] 가수 박남길(63) 교통사고로 숨져.

차량 전복 사고 뒤 차량 화재 추정

오늘 오전 5시 반, 서울 여의도부근에서 사고

사고 직후 병원으로 이송했으나, 결국 숨져

경찰 “정확한 사고 경위 파악 중”

자세한 소식은 곧 이어집니다.

첫 번째 기사가 올라오고, 5분도 되지 않아 두 번째 기사, 세 번째 기사가 연이어 올라온다. 순식간에 포털 검색어에는 박남길, 박남길 사망이라는 단어가 올라가기 시작하고, 연이어 네티즌들의 추모의 물결이 온라인을 잠식했다.

-헐, 박남길씨가 사망하셨다네요.ㅠㅠ

-이게 뭔 일이래요. 우리 어머니가 진짜 팬이신데, 어쩌다가······.

-가요계의 큰 별이 졌네요. 삼가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각종 언론사, 신문사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박남길에 관련된 기사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사고 소식뿐만이 아니라 과거 그가 이룩해놓은 업적과 행적, 그리고 음반에 관한 내용들이 주를 이뤘다.

몇 년도에 최초로 단일 앨범 100만장을 돌파했고, 통산 음반판매가 2천만장, 서양의 음악을 한국적 정서에 맞게 재창조해서 한국인의 깊은 정서를 음악에 잘 녹여낸 아티스트. 후배들의 귀감 등. 서로 앞을 다투어 박남길이 얼마나 훌륭하고, 대단한 가수

였는지는 설명해준다.

그리고 그런 기사아래에는 여지없이 박남길의 팬들을 자처하는 네티즌들의 댓글이 달린다.

-그분 40주년 콘서트에 간 게 엊그제 일 같은데, 돌아가셨다니ㅠㅠ

-너무 슬퍼서 눈물이 앞을 가리네요ㅠㅠ 내 청춘이 그분의 노래와 함께 했었는데.

-부디 좋은 곳에 가셨기를 바랍니다. 삼가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삼가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박남길과 같은 소속사 후배가수들은 대부분 일정취소가 가능한 스케줄들은 모두 취소한 다음 장례식장으로 달려가 빈소를 지켰다. 비단 가수뿐만이 아니라 그와 같은 움직임은 개그맨, 연기자, 가수 구분 없이 두루두루 미쳤다.

그리고.

샤인의 팬 페이지에도 비상이 걸렸다.

연달아 엔틱 엔터테인먼트 쪽에 문의전화가 걸려왔으며, 팬 페이지에는 쇼 케이스에 관한 질문 글이 끊임없이 올라왔다.

-오늘 샤인 쇼 케이스 어째요? 예정대로 하는 거 맞죠?

-당연히 해야죠. 오늘을 위해서 지방에서 올라오는 사람도 있는데. 그 사람들은 어쩌라고요?

-그래도 오늘 같은 날은 뭘 축하하는 무대는 좀 그렇지 않나요?

-그러게요. 하필이면 오늘 이런 일이 생겨 가지고.

샤인 측은 결국 예정된 쇼 케이스를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상황이 이러다보니 유쾌하고, 즐거워야할 쇼 케이스 무대가 중간 중간에 침통함으로 다운되기가 일쑤였고, 끝난 후에도 웃고 있는 샤인 멤버들의 사진들이 넷상에 떠돌아다니며, 그것을 꼬집는 좋지 않은 댓글들이 달렸다.

그리고.

3월 7일. 플레어의 첫 쇼케이스 날이 마침내 다가왔다.

잔뜩 흐린 하늘이다. 새벽 무렵부터 비가 부슬부슬 내리더니, 아침 무렵에 다행히 비는 멎었다. 하지만 먹구름이 캄캄하게 끼고, 당장이라도 뭐가 하늘에서 떨어진다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는 날씨다.

날씨 한번 끝내주네.

고인이 가시는 날이라 하늘도 슬퍼하는 모양이다.

연예 뉴스 란에는 여전히 故박남길의 관한 기사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3일 동안 내내 추모의 물결이 계속 이어지고 있어,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대부분 기사 내보내는 것을 자제하고 있다. 연예계에 발을 걸친 모든 이들이 살얼음판위를 걷듯 조

심조심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그도 그럴 것이 간혹 예능 프로그램에 관련된 웃긴 짤같은게 돌아다니면 여지없이 비난의 덧글이 달린다.

그 덕분인지 원래 같았으면 어제쯤부터 서서히 달궈놓아야 할 쇼 케이스 관련 홍보기사도 몇 줄 보이지가 않는다.

거의 뜬 눈으로 날을 새다시피 한 나와 멤버들은 거실 소파에 거무죽죽한 낯빛으로 앉아 있다. 안절부절 한 표정으로 베란다창문을 통해서 밖을 내다보고 있던 장요한이 걱정 가득한 표정으로 입술을 잘근잘근 깨문다.

“아씨, 날씨까지 왜 이래. 어제까지만 해도 멀쩡하던데. 형형, 진짜 괜찮을까요?”

내 대신 박진우가 대답한다.

“그만 좀 물어봐라. 그 말 만 오늘 열 번째거든?”

“걱정 되니까 그렇지. 우리도 샤인처럼 욕먹을까봐.”

“그러면 이제 와서 취소 하냐? 아마 그러면 더 난리 날걸?”

“아. 진짜 하필이면 이런 일이 생겨가지고··· 아니지. 이런 말은 돌아가신 분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 취소취소.”

고개를 흔든 장요한이 자신의 입을 찰싹찰싹 때린다.

그러더니 뒤돌아서서 금세 또 한숨을 쉰다.

박진우의 말처럼 지금 상황에선 딱히 다른 방법이 없다.

그랬으니 샤인 측에서도 강행돌파를 한 거지.

장요한이 한참동안이나 입술을 잘근잘근 씹더니, 초조한 눈빛을 내게 보낸다.

“형, 저희 진짜 오늘 쇼 케이스 무사히 마칠 수 있을까요?”

“열한 번째.”

이제는 말리기를 포기한 듯 시큰둥한 표정으로 박진우가 손가락 하나를 더 접는다. 김태현도 굳은 표정으로 티비만 바라보고 있고, 노아는 한참 전부터 쭈그리고 앉아 손가락만 꼼지락거리고 있다.

나라고 딱히 뾰족한 방법이 있는 건 아니다.

이런저런 생각들만이 머릿속에 혼란스럽게 떠올랐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티비 속에는 故박남길의 이야기와 발인장소, 그리고 상복을 입은 채 행렬을 따라가는 연예인들의 모습. 눈물을 훔치는 모습들이 비춰지고 있다.

그 모습을 반복적으로 쳐다보고 있으니 왠지 가슴이 애잔해진다.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게 세상일이라고는 하지만 사람이 죽었다. 그것도 가요계의 큰 거목이라 불리던 이가. 죽음이라는 단어 앞에서는 누구나 숙연해질 수밖에 없기에 그래서 더욱 착

잡한 지도 모른다. 마음도 싱숭생숭한데, 숙연해져야하는 날 신나는 댄스 가요 곡을 춤을 추기에는 나조차도 조금 꺼려지는 게 사실이다.

아, 이건 좀 아닌 거 같은데 싶다가도, 그렇다고 일정을 취소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아마도 샤인도 이런 고민을 하다가 예정대로 진행을 한 거겠지? 결국 우리도 최소화시킨 쇼 케이스 무대를 해야······.

어, 잠깐.

순간 티비를 보다말고 뭐가 머릿속에 번득하고 떠올랐다 사라진다.

차라리 이왕 이렇게 된 거 쇼 케이스를 좀 다른 형태의 무대로 변환을 시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너희들 혹시 박남길 선생님 노래 좀 아는 거 있어?”

내가 멤버들에게 묻자 다들 고개를 갸웃한다.

“그게 무슨 소리에요? 갑자기 뜬금없이.”

“어차피 쇼케이스 정상적으로 치루기는 힘들 거 같은데, 이참에 이렇게 한번 해보는 건 어때?”

멤버들이 귀를 쫑긋거리며, 모여든다.

“어떻게요?”

*

수화기 너머로 차조영 실장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러니까 故박남길씨의 추모 공연을 하고 싶다는 거지?”

“네. 원래 예정대로 부를 총 다섯 곡에서 3곡을 빼고, 대신 그 3곡을 박남길 선배님의 노래로 대체했으면 좋겠어요.”

“어······.”

한참동안 대답이 들려오지 않는다.

갑자기 예정도 없고, 뜬금없는 소리라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긴 하겠지.

하긴 나라도 갑자기 저런 소리를 들었으면 당황하긴 하겠다. 밝고 생기발랄한 에너지를 가득 내뿜어줘야 할 쇼 케이스 행사에서 느닷없이 추모곡을 부르겠다는데 누가 대뜸 어 좋네. 라고 하겠어.

“나는··· 괜찮은 것 같은데?”

그런데 생각보다 더 빨리 대답이 들려왔다.

“그런데, 이건 내가 결정할 문제가 아니라서. 일단 대표님께 전화 한 번 드려볼게. 잠깐만 기다리고 있어. 내가 대표님이랑 통화하고 금방 다시 전화 줄 테니까.”

“네.”

전화가 끊겼다.

과연 대표님이 어떤 대답을 들려줄까 싶었는데, 기다린 지 5분도 채 되지 않아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지금 숙소지?”

“네.”

“대표님은 괜찮을 거 같다 말씀하시는데, 이게 그렇게 되자면 해결해야할 문제가 몇 가지가 있거든? 일단 같이 회사로 들어가 보자. 그래서 어떤 식으로 컨셉을 잡고 나갈지 곡은 무슨 곡을 부를지. 이벤트나 전반적인 것들에 대해서 회의를 같이 해보자고.”

“저도요?”

“그럼. 네 아이디어니까 너도 참가해야지. 아무튼 15분 안에 도착할 테니까 애들하고 같이 준비하고 있어.”

< 새로운 도약을 위한 시간 (4) > 끝

ⓒ 윤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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