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듀스 나노머신-47화 (47/124)

< 새로운 도약을 위한 시간 (3) >

뒤늦게 달려온 차조영 실장이 자신의 핸드폰을 꺼내더니, 기사를 확인했다.

-신인 보이그룹 샤인이 첫 번째 미니앨범 'yoo-ho'발매와 함께 기념 쇼 케이스를 개최한다고 밝혔다.

샤인은 2017년 케이팝 리그 챌린지에 출연을 하여, 최종 우승을 하는 저력을 보였으며, 엔틱 엔터테인먼트에서 심열을 기울여 야심차게 준비하고 있는 6인조 보이그룹이다. 가창력과 댄스는 물론 수려한 외모를 겸비했다고 평가가 자자하다.

화제의 그룹 샤인은 다음 달 3월 5일 오후 5시. 서울 한남동 레드스퀘어 공개홀에서 만나볼 수 있다.

“이런. 씨···.”

차조영 실장은 저도 모르게 욕설을 내뱉으려다가 멤버들이 보고 있다는 사실에 아차 싶어 얼른 입을 다물었다.

궁금함을 이기지 못한 장요한이 제일 먼저 물었다.

“실장님. 이거 저희한테 나쁜 거 맞죠?”

“어? 아니야. 그런 거. 너희는 그냥 너희 하는 것에만 집중하면 돼. 잠깐 나 전화 좀 하고 올게.”

말은 그렇게 했지만 차조영 실장의 표정이 썩어 일그러져 있다. 당황하는 게 내 눈에도 보인다.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려는 듯 우리를 피해 한쪽 구석으로 사라진다. 아마도 회사사람에게 전화를 하는 거겠지?

멤버들도 차조영 실장이 사라지는 것을 물끄러미 쳐다본다. 얼굴은 화창한 날에 갑자기 먹구름이 낀 것처럼 잔뜩 흐려져 있다.

“원래 보통 앨범 발표 같은 건 서로 날짜 조율해서 좀 비껴서 내고 그러지 않나?”

“그러니까.”

“샤인 앨범 발표한 직후라면 좀 그런 거 같은데? 아무래도 언론, 대중 관심이 다 그쪽에 몰려 있을 테니까.”

“아씨······. 걔네는 진짜 왜 이렇게 하는 거마다 우리 앞에서 태클인건데? 전생에 우리랑 뭐라도 있었나, 진짜?”

볼멘 가득 한 표정을 짓던 멤버들도 기어이 다들 한마디씩 던진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의욕이 넘쳐서 주체를 못하던 녀석들이 진열대 위에 올라가 있는 죽은 생선 마냥 축 늘어져 있다. 제일 심한 건 장요한이다. 얼굴표정이 꼭 장례식 장에 온 조문객 같다.

“야, 멍청아! 얼굴 펴. 누구 돌아가셨냐?”

비뚜름하게 장요한을 쳐다보던 박진우가 못마땅한 듯 소리를 지른다. 박진우가 얼굴을 매만지다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는 표정으로 눈을 껌뻑이고.

“어? 나 표정 괜찮은 거 같은데?”

“괜찮긴. 너 지금 표정 완전 썩었거든? 그 얼굴로 뮤비 촬영할래?”

순간 그 말을 듣자 정신이 번쩍 든다.

그 말이 마치 장요한이 아닌 나와 멤버들에게 하는 말 같아서.

그래, 지금은 그걸 걱정할 때가 아니지. 회사에서도 이 사실을 알았으니 뭔가 대책을 세우지 않겠어? 우리가 지금 걱정해야할 일은 샤인의 쇼케이스 날짜일이 아니다. 뮤직비디오를 찍는 거지. 우리가 걱정한다고 상황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고.

장요한은 아니라고 펄쩍 뛰지만 얼굴에는 여전히 먹구름이 가득했다. 박진우가 앉아 있는 장요한의 정수리에 자신의 팔꿈치를 대고 콱콱 누른다.

인상을 찌푸리던 장요한이 벌떡 일어서며 소리를 지른다.

“뭐하는 거야! 아프다고!”

대답대신 박진우가 빤히 장요한을 쳐다봤다. 허리춤에 팔을 척하고 올리더니,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인 자세로 장요한을 내려다본다.

“네가 지금 분위기 다 흐리고 있잖아. 이번 앨범에 그렇게 자신이 없냐? 유명인 됐다고 좋아할 때는 언제고, 이제는 꼭 건어물가게 있는 오징어처럼 축 늘어져가지고는, 쯧쯧. 샤인이 뭐 별거냐? 우리도 이제 걔네한테 안 꿀려. 인지도도 쌓을 만큼 쌓았고,

강민이형이 만든 타이틀곡도 잘 빠졌고. 걔네도 우리 이길 자신이 없으니까 치사한 짓을 하는 거라고. 그래봤자. 우리한테는 안 되겠지만.”

“어? 그, 그거야 그렇지만.”

예기치 못한 말에 당황한 듯 장요한이 말을 더듬거린다.

“뭐야! 이중에서 그렇게 생각하는 건 나뿐인 거야?”

박진우가 소리를 빽 지르며, 주위를 둘러본다. 그리고는 멤버들의 의견을 구하듯 선명한 시선으로 멤버들의 얼굴을 하나하나씩 확인한다. 한껏 굳어져있던 멤버들의 얼굴에 점차 생기가 실린다.

입술을 꽉 깨물던 김태현이 가장 먼저 입을 떼었다.

“그래, 네 말이 맞네. 차라리 잘됐어. 이참에 케리챌에서 못 다한 설욕전을 해주자고.”

김태현의 말에 옆에 앉은 노아도 쉴 새 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결의를 다지고 있는 모습이 꼭 표정이 전투를 앞둔 병사 같다.

“오늘부터 잠도 안자고 더 연습할 거예요!”

여기서 더 연습을 한다고? 너 그러다가 진짜 죽을지도 몰라.

그리고 생각났다는 듯이 한마디를 덧붙인다.

“아, 맞다.”

응?

“저··· 그리고 예술 고등학교로 편입하기로 했어요.”

뭐냐. 이 갑작스러운 깜짝 발표는.

“진짜?”

내가 놀란 표정으로 묻자 목도리를 칭칭 감고 있던 노아가 주억거린다.

“네. 앞으로 연예계 활동을 하려면 아무래도 그렇게 하는 게 좋겠다고 부모님들이······.”

“와, 진짜 잘됐네!”

멤버들도 노아의 목을 걸고, 옆구리를 치고 난리도 아니다. 모두 자기 일처럼 좋아해준다. 얘가 그동안 공부 때문에 받은 스트레스를 옆에서 지켜본 사람이면 당연한 반응이지.

노아가 격한 환영에 헤실헤실 웃는다. 얼굴에는 뿌듯함이 떠올라 있다.

그래. 그러고 보면 얘는 부모님의 반대도 무릅쓰고, 엄청, 그것도 죽도록 노력해서 부모님을 실망시키지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포기하지도 않고, 가장 좋은 결과를 이끌어냈지.

남이야 어쨌든 간에 우리는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최선을 다해서 하면 되는 거다. 노아가 여지껏 그래왔던 것처럼.

그걸 잊을 뻔했네. 하마터면 막내보다 못한 형이 될 뻔 했다.

그런 생각을 갖자 굳어져있던 안면이 서서히 풀어진다.

노아를 보고 있던 멤버들의 표정들이 어째 다 나와 비슷해진다.

“플레어, 다시 촬영 들어갈게요!”

조연출의 외침에 멤버들이 하나둘씩 엉덩이를 떼며 일어섰다. 조금 전까지와는 다른 그 무언가가 멤버들 얼굴에 차올라 있다.

“오, 다들 지금 표정 좋은데요?”

카메라 앞에선 멤버들을 본 촬영 감독이 좋다는 사인과 함께 소리를 친다.

그래. 지금은 당장 할 수 있는 일부터 하자.

걱정은 그 다음에 해도 늦지 않으니까.

*

다음 날 아침.

차조영 실장은 눈이 뜨기가 무섭게 회사로 출근을 했다. 이미 전화통화를 해서 상황을 모두 알고 있는 장선영 팀장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 보아하니 홍보팀 전체가 비상이 걸렸는지 8시도 안된 시간인데, 이미 모두가 출근을 끝마친 뒤였다.

“이런 상도덕도 없는 놈들. 엔틱 그렇게 안 봤는데, 이렇게 치사하게 나와도 되는 거야? 본부장님은? 본부장님은 뭐라셔?”

“그렇지 않아도 어제 엔틱에 전화를 걸어서 한바탕 뒤집어 났대요. 듣자하니 난리도 아니었다고 하던데.”

“그래? 그쪽에서는 뭐라고 하는지도 들었고?”

“앨범 제작이나 준비 시간부터 줄곧 겹쳐 왔는데, 이제 와서 새삼 쇼 케이스 개최일 좀 비슷한게 무슨 상관이냐는 반응이던데요?”

그 말을 들은 차조영 실장이 씩씩거렸다.

“그게 말이야 막걸리야? 그러면 지들이 우리보다 더 늦게 발표하면 되지, 왜 우리보다 이틀 앞서는 건데?”

“이 바닥 생리 모르는 것도 아니고, 그냥 플레어를 견제하는 거죠. 신경 쓰이니까 이틀 먼저 발표해서 차트 그래프 좀 올리고, 기사 좀 터트린 다음에 경쟁하자는 거겠죠.”

“이틀이면··· 음원순위에 영향이 좀 있겠지?”

“당연하죠. 샤인이나 플레어나 방송타서 팬들 좀 모았다고는 하지만 기성 보이그룹들에 비하면 거의 뭐 인지도가 바닥인수준이나 마찬가지니까요. 신규 팬 층을 확보하는 게 시급한데, 발표가 늦을수록 샤인 쪽으로 넘어갈 확률이 더 크죠. 게다가 샤인은

음방에서 데뷔 무대까지 펼치는 거라···.”

“그러면 쇼케이스 날짜를 바꾸는 건? 이참에 샤인보다 며칠 더 앞당겨서 엿 한번 제대로 주는 거지. 그렇게는 안 되나?”

“하려면야 못할 것도 없죠. 하지만 전 반대예요.”

“모양새가 좀 그러나?”

“그렇죠. 아마 그렇게 한다면 샤인팬들이 가만히 있겠어요? 엔틱 쪽에서 플레어 까 내리는 기사도 엄청 내보낼 거고. 타 그룹 의식해서 쇼 케이스나 앨범 출시 날짜 조정하는 거야 늘 있었던 일이긴 하지만, 이미 발표해놓은 날짜를 또 변경하는 건 다른 문

제니까요. 누가 봐도 샤인 때문에 바꾸는 꼴이라 이미지상 바꿔봤자 좋을 게 하나도 없어요.”

대화를 하다 보니, 딱히 이렇다 할 대책마련이 없다.

차조영 실장이 머리를 벅벅 긁으며 물었다.

“대표님은. 대표님은 이 사실 알고?”

“어, 아셔.”

때마침 문이 열리며, 김관수 본부장이 안으로 들어왔다.

한손에는 가득 채운 커피를 들고, 넥타이를 비뚜름하게 끌어내린 채 피곤하다는 얼굴로 고개를 좌우로 꺾는다.

“좀 전에 대표님 뵙고 오는 길이야.”

까슬까슬하게 돋아난 수염이 손질도 안 된 채 그대로 방치되어 있다. 그걸 본 박호영 팀장이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어휴, 본부장님. 얼굴이··· 어제도 술 드셨어요? 그 몰골로 대표님을 만나 뵙고 오셨다고요?”

“인마. 그러면 오늘 출근하자마자 바로 보고 받으시겠다는데 어쩌냐? 눈곱만 떼고, 브리핑 해드리고 왔지. 나 오늘 2시간도 못 잤어.”

누가 보면 술 마시고, 지하철역에서 자다가 막 일어난 노숙자 같다. 행색이 아주 가관도 아니다. 와이셔츠나 재킷에도 구김이 잔뜩이다.

그걸 보고 있던 장선영 팀장이 질렸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예 집을 안 들어 가셨나 본데요? 어제 입은 옷 그대로신거 같은데. 혹시 사모님이랑 싸우셨어요?”

김관수 본부장이 대답대신 커피를 호로록 거린다. 따뜻한 것이 목으로 넘어가자 살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며, 이내 고개를 끄덕인다.

“어, 이러다가는 진짜 싸울 판이야. 나 벌써 집에 못 들어간 지 삼일 째야, 삼일 째. 와이프도 이젠 그러더라. 그냥 집에 들어오지 말고, 여기 숙직실에서 살래.”

“어휴, 단단히 화가 나셨나보다. 그래도 잠은 집에서 들어가서 주무시지 그러셨어요?”

“어제 술 마시다가 새벽 4시에 풀려났어. 그 꼴로 집에 들어가 봤자 잔소리밖에 더 들어? 들어오랄 때는 언제고 또, 들어가면 잠 깨웠다고 잔소리를 해대는데··· 나참, 나보고 뭘 어쩌라고? 그런데 더 웃긴 건 뭔지 알아?”

“그게, 뭔데요?”

불쑥 김관수 본부장이 내뱉은 말에 모두의 얼굴에 호기심이 어린다. 김관수 본부장이 행여 와이프가 들을 세라 은밀한 어조로 말한다.

“실은 이제는 집보다 숙직실이 더 집 같고 편해. 큭큭. 나 이러다가 과로사하면 여기 지박령되는 거 아닌지 몰라.”

그 말에 듣고 있던 직원들이 모두 배를 잡고 웃었다.

헌데, 박호영 팀장은 웃지를 못했다.

왠지 저게 자신의 10년 뒤 미래를 보는 것 같아서.

김관수 본부장이 한마디를 덧붙인다.

“호영이 너는 절대 결혼 같은 거 하지 마. 그냥 일하고 결혼을 해. 그게 훨씬 편하고, 좋으니까.”

“어휴, 본부장님. 무슨 그런 악담을 하십니까? 앞길 창창한 젊은이에게.”

박호영 팀장이 기겁을 한다. 이야기 주제가 이상한 곳으로 새자 직원 하나가 주제를 다시 끌고 들어왔다.

“본부장님. 그런데 대표님이 뭐라고 하셨어요? 좀 전에 대표님 뵙고 오셨다면서요?”

“아, 그거?”

김관수 본부장이 까치집을 짓고 있는 머리를 긁적거리더니, 이내 남은 아메리카노를 입안에 털어 넣으며 말했다.

“전쟁이시라던데?”

“전쟁이요? 그렇다면 혹시 날짜를···?”

김관수 본부장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일정날짜는 그대로 진행할 거고. 대신 다른 게 좀 바뀔 거 같아.”

“다른 거 뭐요? 조금 더 자세히 좀 말씀해 봐요.”

< 새로운 도약을 위한 시간 (3) > 끝

ⓒ 윤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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