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듀스 나노머신-45화 (45/124)

< 새로운 도약을 위한 시간 (1) >

조막만한 녀석 둘이 거의 날듯이 김태현의 품안으로 들어간다. 당황한 듯 해도 김태현이 두 녀석을 반갑게 맞이해 주고 있고.

동생들인가? 그런데 저렇게 멀쩡하고 귀여운 동생이 둘이나 있는데, 왜 여태 말을 안했던 거지?

헌데, 저 여성분은 혹시 어머니신가? 그러기에는 어째, 조금 젊은 것처럼 보이는데.

김태현이 허리를 숙여 꼬마 둘의 눈높이에 시선을 맞춘다.

“어떻게 된 거야? 너희들이 여긴 어떻게 알고.”

“우리가 형 보고 싶다고 졸랐어!”

“응, 맞아. 우리가 졸랐어!”

남자애가 대답하고 여자애가 주먹만 한 머리통을 주억거린다.

중년여성이 부드러운 웃음을 지으며, 김태현에게 다가선다.

“하도 얘들이 보고 싶다고 해서······. 갑자기 찾아와서 놀라지 않았나 모르겠네.”

“아, 아니에요. 제가 진즉 찾아뵙었어야 했는데.”

“바쁜 거 뻔히 아는데 뭐. 네 모습은 티비를 통해서 잘보고 있어. 이렇게 밖에서 보니까 진짜 좋다.”

김태현이 멋쩍게 고개를 긁적거린다.

박호영 팀장과 차조영 실장이 예의 바르게 중년여성에게 다가가 정중하게 고개를 숙인다. 상대 중년 여성분도 미소를 띠며, 고개를 같이 숙이고.

“이야기 나누고 천천히 나와. 밖에서 커피라도 마시고 있을 테니까.”

그리고 두 매니저는 주차장을 향해 걸어 건다. 두 사람의 표정을 보니 뭔가 아는 눈치인거 같은데, 나는 여전히 갈피가 잡히질 않는다. 그런데 꼭 모양새가 자리를 피워주는 거 같은데, 나도 같이 따라가야 하나?

그런 고민을 하고 있는데 김태현이 나를 보더니, 중년 여성을 소개시켜 준다.

“형, 인사하세요. 절 거의 키워주시다시피 한 분이요.”

어, 가만. 지금 내가 뭘 잘못 들었나? 뭘 했다고?

“희망 보육원에 계시는 정혜원 수녀님이세요.”

“안녕하세요.”

상대가 나를 보며, 웃으며 고개를 숙인다.

전혀 생각도 못한 상황이라 조금 얼떨떨하다. 아, 김태현이 보육원 출신이었구나. 그래서 여지껏 그렇게······.

아차, 내 정신 좀 봐.

나도 서둘러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최강민이라고 합니다.”

“예, 티비에서 뵀어요. 성격 고약한 형이 나가고, 성격 좋은 분이 들어왔다고 하던데, 그분이시죠?”

“어··· 수녀님 제가 또 언제 그런 말을.”

당황한 김태현이 가늘어진 눈으로 정혜원 수녀를 흘겨본다. 그런 김태현을 보며, 정혜원 수녀가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소리 죽여 웃는다.

“왜, 저번에 전화 통화했을 때 그랬잖아. 아, 이거 설마 우리 둘만의 비밀 뭐 그런 거야?”

김태현이 진짜 당황한 듯 얼굴까지 붉어졌다.

아, 이 녀석이 이런 표정도 지을 줄 아는 구나. 조금 놀랐다.

그 어느 때도 항상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던 녀석이라 종종 애늙은이처럼 보일 때가 있었는데, 이렇게 보니 이제야 제 나이처럼 보인다.

그런데 저 수녀님 진짜 대단하다. 아주 말 몇 마디로 김태현을 쥐락펴락하는 구나.

왠지 그 모습이 보기가 좋다. 김태현이 꼼짝도 못하는 사람은 처음 보는 터라 조금은 신기하다. 녀석이 머리를 긁적이며 나를 돌아보더니 말한다.

“사실 일부러 숨기려고 한건 아니고 괜히 멤버들이 신경쓸까봐 그냥 말 안했어요. 이제는 슬슬 말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회사에서는 알고?”

“네, 알고 있어요. 실장님, 팀장님도.”

“그렇구나.”

문득 내 머릿속에는 한 가지 궁금증이 자리 잡는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회식은 어떻게 되는 거지? 나 혼자 가야 하나?

김태현 다리에 매달린 꼬마 두 녀석이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본다.

요 녀석들 참 귀엽게 생겼네.

*

잠시 후, 넷은 근처 고기 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박호영 팀장이 자신이 갖고 있는 카드를 주며, 맛있는 거를 사먹으라고 했다. 물론, 영수증도 꼭 가지고 오라는 말과 함께. 자신들이 끼면 불편하고, 분위기도 흐려진 다나 모라나.

“많이 드세요. 너희들도 많이 먹고.”

지글지글 타오르는 불판위에서 고기를 뒤집으며, 내가 수녀님과 두 꼬마 녀석에게 말했다.

솔직히 내가 여기 왜 와 있는지 모르겠다. 김태현 녀석이 같이 밥 먹자며, 나를 붙잡았다. 수녀님도 그렇게 하기를 원하시는 눈치인거 같고.

얘는 가끔 가다가 진짜 뜬금없을 때가 있다니까. 뭐, 나도 딱히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니니까 그러자고 했지만.

잘 익은 고기를 뒤집고, 가위질을 해주자 꼬마 녀석 둘이 낼름낼름 잘도 주워 먹는다. 꼭 먹이를 쪼아 먹는 비둘기 새끼들 같다. 그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고 있는데, 정혜원 수녀가 나에게 물었다.

“혹시 태현이가 말썽은 안 부리던가요?”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말썽은커녕 꼭 필요할 때 아니면 말도 몇 마디 안하는 녀석인데요.

“멤버들과는 잘 지내고요?”

“네. 잘 지내요. 걱정 마세요.”

정혜원 수녀가 내 대답에 안심이라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걸 본 김태현이 핀잔을 늘어놓는다.

“어휴, 수녀님. 제가 무슨 어린애인가요?”

정혜원 수녀가 말없이 미소를 짓는다. 표정이 다 말해주고 있다. 희망 보육원 최고 말썽꾸러기는 다름 아닌 김태현이었다고.

“형, 나 쉬 마려운데 어뜩해.”

남자 애가 인상을 찌푸리며, 칭얼대자 김태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준영이 데리고,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김태현이 준영이라는 꼬마를 데리고 자리를 떴다. 불판 위, 고기는 거의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수녀님은 배가 부른지 아까부터 젓가락을 놓고 있었고. 슬슬 계산을 해야 할 타이밍인가 생각하고 있는데, 대뜸 정혜원 수녀가 나를 보며 말했다.

“좋아 보여요. 태현이. 실은 걱정 많이 했는데.”

“네?”

“태현이가 처음에 연예인이 되겠다고 했을 때 제가 엄청 말렸거든요.”

이건 또 무슨 소리래.

“그래요? 태현이 만큼 재능 있는 래퍼도 찾기 힘들어요.”

이건 듣기 좋으라고 하는 말이 아니라 사실이다.

랩의 황제라 불리는 언더독도 평가 때마다 김태현의 랩을 칭찬 했지. 객관적으로 내가 들어도 어지간한 기성 래퍼들보다 랩 딜리버리나 리듬감이 훨씬 좋다. 앞으로 지금보다 더 잘될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내 말을 정혜원 수녀가 쑥스러운 듯 웃어넘긴다.

“제가 뭐 그런걸 아나요. 그냥 랩을 한다길래 그런가보다 했죠.”

“아, 네.”

나는 딱히 할 말이 없어 적당히 맞장구를 쳤다.

“태현이가 보육원에서 나가 독립을 하고 싶은데, 갈 곳이 없어서 회사에서 먹여주고 재워주고 다 해준다니까, 그래서 가는가 싶어서 걱정 했거든요.”

“아······.”

“그런데 오늘 무대 위에서 노래하고 있는 태현이를 보니까 그게 아니라는 걸 알았어요. 그렇게 즐거워하는 태현이 모습은 처음 봐요. 얼마나 멋있고, 빛나 보이던지.”

하긴, 김태현이 가장 빛날 때는 무대 위에서 랩을 하고 있을 때지. 이건 김태현 뿐만이 아니라 다른 멤버들에게도 모두 적용되는 해당사항이다.

연습실에서도 힘없이 축 늘어져 있다가도 노래만 틀면 자양강장제를 사발로 마신 것처럼 눈이 반짝거리며 팔팔해지는 게 멤버들이다.

정혜원 수녀가 가지런히 손을 모으며, 상체를 약간 앞으로 기울인 채 나지막하게 말한다. 그녀의 얼굴에는 태현이를 향한 걱정, 염려가 가득했다.

“앞으로 우리 태현이 잘 좀 부탁드려요.”

“딱히 제가 도움이 될 만한 것도 없는 것 같은데요. 태현이가 워낙 알아서 척척 잘하는 애라.”

내 대답에 정혜원 수녀가 고개를 가로 젓는다.

“태현이가 지금은 저래도 예전에는 나쁜 친구들도 많이 사귀었고, 못된 짓도 많이 하고 돌아다녔어요. 그리고 여태까지 보육원 출신이라는 게 알려질까 봐 부끄러웠는지, 누군가를 소개시켜준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네?”

그녀의 입꼬리가 기분 좋게 올라간다.

차분하게 가라앉은 눈동자 위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얼굴에는 따뜻한 미소가 맴돈다.

“태현이가 형 분을 믿고 의지하는 게 보여요. 누굴 따르고 그러는 애가 절대 아닌데.”

이게, 어딜 봐서요?

내가 묻기도 전에 나갔던 김태현이 꼬마 애의 손을 잡고 들어왔다. 정혜원 수녀가 언제 그랬냐는 듯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그녀의 시선은 들어오고 있는 김태현을 따라 움직인다. 착 가라앉아 있던 그녀의 눈빛에는 어느새 말랑말랑한 포근함이 깃든다.

“무슨 이야기 하셨어요? 설마 저 없다고 제 흉보신건 아니죠?”

김태현이 물었다.

뭐, 그 비슷한 걸 하긴 했지.

“아니, 그럴 리가.”

시치미를 잡아뗀 정혜원 수녀의 시선이 김태현에게서 나에게로 옮겨왔다.

알까말까 한 모를 미소를 지으며.

저 미소의 의미는 아마도 방금 전의 이야기는 둘만의 비밀로 하자는 뜻이겠지?

*

“다들 이거 한 잔씩 마시면서 일들······”

다음날 아침, 박호영 팀장이 커피 몇 잔을 손에 들고, 홍보실에 들어오다가 멈칫했다. 비교적 한가할 줄 알았던 홍보실이 여기저기 들려오는 전화 벨소리가 가득하다. 그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왔어요?”

전화기를 붙잡고 있던 장선영 팀장이 웃으면서 반긴다.

“어, 이게 무슨 일이래? 아침부터 바쁘네?”

장선영 팀장이 앞에 내려놓은 커피 케이스에서 커피 한 잔을 쏙 하고 빼내간다. 그리고는 뒤처질세라 직원들도 하나씩 고맙다고 말하며, 커피를 한 잔씩 빼간다.

장선영 팀장이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내려놓으며 말했다.

“이게 다 플레어 때문이죠. 생각보다 반응이 더 괜찮은데요?”

“우승도 못했잖아?”

“그러니까요. 난 2등 했다길래 무슨 상가 집 분위기마냥 축축 늘어질 줄 알았는데, 꼭 그런 것만은 아니더라고요. 인터넷 반응도 나쁘지 않고, 오히려 2등을 해서 옹호해주는 그런 여론이 일고 있어요.”

“진짜?”

“사실 좀 짠하잖아요. 팬덤 싸움에서 밀린 건데, 일반사람들이 보기에는 그 모습이 왠지 실력은 있는데 실력 없는 팀에게 밀린 것처럼 보이니까.”

“그러고 보니 또 말이 그렇게 되네.”

“팬덤 끌어 모으는 것도 실력이라고는 하지만 그거야 우리들이 보는 관점이고, 일반인들이 뭐 그런걸 아나요? 방송을 보고 뭔가 불합리하다고 느낀 거죠. 요즘 세상이 팍팍하다보니 그런 불합리한걸 보면 못 참는 사람들 많잖아요. 그걸 제대로 건드린 거

죠.”

“정정당당 코리아. 뭐 그런 건가?”

“그렇죠. 이거 한번 봐 보세요.”

장선영 팀장이 앞에 놓인 노트북 화면을 돌려 내밀었다.

[플레어! 아쉬운 1위 같은 2위!]

[훌륭한 무대. 단 한 번도 심사위원 평가1위를 놓치지 않은 플레어!]

[플레어의 정규앨범 벌써부터 기대감!]

“정규앨범 언제 나오느냐고 다들 난리에요. 문의 전화도 계속해서 들어오고 있고요. 기자들도 쇼케이스 언제 할 거냐고 계속 물어봐요.”

저장되어 있는 커뮤니티 사이트 몇 군데를 클릭했다.

글들이 주르륵 보인다.

-아씨, 진짜! 플레어 2등해서 너무 속상해요. 가족들 꺼 핸드폰 다 빌려서 문자투표까지 했는데!

-그러게요. 무대가 구렸으면 말도 안 해. 누가 봐도 샤인보다 잘했는데.

-진짜 팬덤이 깡패네요. 깡패. 더럽고 치사해서 진짜.

-그래서 오늘부터 본격적으로 영업 시작하려고요. 이러다가 만약 음원 발표 할 때 또 샤인이랑 만나서 밀리면 진짜 속 터질 거 같음.

-저도 그렇지 않아도, 어젯밤부터 커뮤니티 사이트 돌아다니면서 영업하느라 밤 샜음. 그런데 영업 글 올리다보니 플레어에 더 빠지게 됐어요. 플레어 진짜 넘 조아 ㅠㅠ

-저도 본진은 따로 있는데, 어제 방송보고 서브로 플레어 덕질 시작했어요. 잘 부탁드립니다.

-어서 와요. 대 환영! 우리끼리라도 안에서 똘똘 뭉쳐보자고요!

노트북 화면을 보고 있던 박호영 팀장이 고개를 들며, 물었다.

“이거 분위기 나쁘지 않은 거지?”

“나쁘긴요. 엄청 좋죠. 아마 분위기는 샤인 그쪽보다 더 좋을 걸요? 무대 영상 조회 수도 꾸준히 상승하고 있고. 아참, 우승한 샤인보다 플레어 무대 영상 조회 클릭수가 훨씬 더 많은 거 아세요?”

얼른 확인을 해 본 박호영 팀장이 기괴한 표정을 짓는다.

“어, 진짜 그러네? 거의 2배나 차이 나는데?”

“그러니까요. 살다보니 이런 일도 다 있네요. 아참, 그런데 앨범 준비는 얼마나 준비됐어요? 이제 슬슬 쇼케이스 스케줄 잡아야 하는 거 아니에요?”

박선영 팀장이 들고 있는 커피를 호로록 거리며 물었다.

박호영 팀장이 고개를 끄덕거리며 대답했다.

“그러지 않아도 다음회의 때 의논해보려고. 다음 달 첫 번째 주? 그 정도가 적당할거 같은데.”

“딱 좋네요. 그러면 대략 한 달 정도 남은 건가요?”

“그렇지.”

“빨리 앨범이 나왔으면 좋겠네요. 여기 직원이라서가 아니라 개인적으로도 엄청 기대 되는 거 있죠?”

박호영 팀장이 웃으며 대답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라고.”

< 새로운 도약을 위한 시간 (1) > 끝

ⓒ 윤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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