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라운드 미션 (8) <- 여기부터 유료입니다. >
대형 화면에 각 팀이 받았던 각 라운드의 점수 평가와 평균 점수가 떠오른다.
그리고 사전 온라인 투표가 그 뒤에 자리 잡는다.
1위. 39.2%. 샤인
2위. 34.8%. 플레어
3위. 16.6%. 블루 울프
4위. 9.4%. 노블 크루
와, 많이 따라잡았네. 전광판을 보고 나는 깜짝 놀랐다. 첫 라운드 때까지만 해도 온라인 투표 차이가 어마어마했는데······.
내 논란 때문에 인터넷이 뜨겁게 달궈진 탓일까?
사람들이 실시간 검색어에 떠 있는 내 이름을 보고, 뭔가 싶어 클릭했다가 플레어의 무대 영상보고, 팬 됐다는 사람이 의외로 많았으니까. 또 그런 영상들은 입소문을 타고 sns나 커뮤니티사이트를 통해 퍼져나가고.
아까 쉬는 시간에 인터넷 창을 켜봤다. 오늘 아침 회사 측에서 적극적으로 내보내준 기사와 캐리챌측에서 해명영상을 틀어준 덕분에, 논란은 거의 수그러져 있었다.
물론 여전히 나를 좋지 않게 보는 댓글들도 있었지만, 그러한 댓글에는 여지없이 쉴드를 쳐주며, 옹호하는 댓글이 달린다. 간간히 그런 댓글 신경 쓰지 말라고, 마지막 라운드에 집중해서 최선을 다하라는 응원 메시지도 보이고.
아참, 문자투표 꼭 하겠다는 글들도 봤다.
곧이어 심사위원 평가 점수가 화면에 떠오른다.
1위. 9.8. 플레어
2위. 9.3. 샤인
3위. 8.9. 블루 울프
4위. 8.4. 노블 크루
MC가 화면을 보고 안타까운 한탄 섞인 소리를 낸다.
“아, 이거 블루 울프와 노블 크루로서는 조금 아쉽게 됐네요. 두 팀은 문자 투표를 아무리 많이 받는다고 해도 종합 점수 상 샤인과 플레어의 점수 미치지가 않네요. 두 팀은 아쉽게도 탈락입니다. 내려가셔도 좋습니다. 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
박수 소리와 함께 두 팀이 무대에 내려가는 것을 지켜보고 있던 장요한이 내게 가만히 속삭였다.
“형형, 종합점수로 보자면 이거 우리도 해볼 만한 거 아니에요? 얼추 보니까 샤인이랑 별로 차이도 안 나는 거 같은데?”
“김칫국을 아주 사발로 퍼 드셨네.”
박진우가 혀를 내차며 끼어든다.
“투표는 전부 팬덤빨인 거 몰라? 그리고 어딜 봐서 저게 기대할만한 점수냐? 심사위원이랑 온라인 사전투표 결과 보니까 지금 점수가 거의 우리랑 비슷한데. 우리가 샤인 이기려면 문자 투표에서 걔네보다 더 표를 많이 받아야 돼. 네가 보기엔 그게 가능
하겠냐?”
박진우의 말에 장요한이 단번에 찌그러지면서 입을 삐죽거린다.
“쳇, 그걸 누가 몰라서 그러나? 그래도 아쉬우니까 그렇지.”
말은 그렇게 했지만 전광판을 보는 멤버들의 눈이 초롱초롱 하다. 물론 가장 초롱초롱한 건 장요한이다. 멤버들의 얼굴에 혹시나? 하는 실낱같은 기대감 번들거린다.
사실 말은 안했지만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박진우의 말대로 우리가 이길 가능성은 거의 없다. 플레어라는 이름을 어느 정도 알리고, 실검 1위도 해봤으니 사실 이정도 성과만 해도 훌륭하다.
그래도 이왕 여기까지 온 거니 기대라도 한번 해보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논란도 어느 정도 수그러든 것 같고, 반응들도 나쁘지 않은 거니, 혹시 또 모르는 거지.
기적처럼 판세를 뒤집고, 한편의 감동 드라마가 탄생할지도.
그때 스텝으로 보이는 누군가가 MC한조민을 부르더니, 그가 무대 옆으로 다가가 뭔가를 건네받았다. 고개를 끄덕이고, 스텝이 임무를 마치고 등을 돌리자 그가 원래 위치에 있던 곳으로 되돌아 왔다.
“아, 지금 막 문자투표 결과가 나왔습니다. 오, 이거 놀라운 결과인데요?”
결과지를 보고 있는 MC한조민의 눈이 동그래진다. 카메라가 보고 있는 관객들과 시청자들을 궁금하게 해서 죽이려는 듯 줌을 땡겨 그 섬세한 표정의 변화를 잡아낸다.
보고 있는 입장으로서는 속이 터진다.
대체 뭐가 놀랍다는 거지?
혹시 우리가 투표를 더 많이 받았나? 어차피 온라인과 문자투표에서는 샤인이 훨씬 앞설 거라는 게 지배적이었으니, 놀랍다는 건 그 결과가 뒤집어졌다는 소리밖에 없는데.
저 짧은 한 문장으로 사람의 속을 이렇게 애 닳게 만들 수 있는 것도 재주라면 재주다. 달리 직업이 MC가 아니다.
순간 장내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MC한조민에게 쏠린다. 아마도 그의 얼굴이 다트 판이었으면 시선에 구멍이 났을지도 모른다.
빨리 말하라는 무언의 시위가 담긴 눈초리에 그가 담대한 웃음을 터트렸다.
“모두 결과가 궁금하시죠?”
말해 뭐 해.
“네에에에에!!!”
뻔히 알면서 묻는 질문에, 반항이라도 하듯 함성이 들려온다.
큐카드를 손에 쥐고 내려다보고 있는 MC한조민의 얼굴에 장난스러운 미소가 얼핏 스치듯 떠오른다.
“저도 빨리 발표를 해드리고 싶지만···! 아직 미처 나가지 못한 영상이 있어서요.”
에라이, 내 저럴 줄 알았다.
김이 팍 샌다.
왜 꼭 MC들은 중요한 순간에 저러는지 몰라.
그런데 영상? 뭔 영상?
“두 팀을 위해 힘을 내라고, 깜짝 응원 메시지를 보내주신 분들이 계십니다. 참으로 고마운 분들인데요, 말로 설명하기보다는 직접 영상을 통해 뵙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플레어를 응원하는 영상 메시지부터 만나 보겠습니다!”
그가 뒤를 돌아보며 화면을 손으로 가리킨다.
이내 화면에 인물 영상이 떠오른다.
가장 먼저 눈에 보인 것은 R&N회사 소속 직원들이다. 그리고 연습생들, R&N소속의 연예인들까지. 1초 만에 얼굴이 순삭당한 이도 있는 반면, 좀 인지도 있는 소속 연예인은 짤막한 인사까지 덧붙인다. ‘플레어 파이팅.’ ‘꼭 우승하세요.’ 뭐 그런 말들.
언제 또 이런 걸 준비 했나 몰라.
몇 달 회사 연습실에 그렇게 들락날락거렸지만, 저런 연예인이 있다는 건 화면을 통해 오늘 처음 알았네.
누가 보면 친분이라도 있는 줄 오해하기 딱 좋겠다. 저게 다 회사 이미지 메이킹이겠지?
헌데, 이게 계속 보고 있으니 기분이 좀 이상하다.
시청자 입장에서 볼 때는 뭐 저런 쓸데없는 걸 하냐 싶었는데, 이게 또 응원을 받는 당사자가 되니 기분이 색다르다. 조금 오글거리기는 해도, 마음이 간질간질 거리고, 뭉클해진다. 괜히 처음 본 얼굴도 정감 들어 보이고.
나중에 만나면 꼭 고맙다는 인사를 해야지.
그 다음에는 어느 나이 들어 보이는 중년 부부가 화면에 비친다. 척 보기에도 일반인이다. 혹시 멤버들 중 누구의 부모님인가? 싶었는데, 맞았다. 장요한이 눈이 동그래진 채 화면을 쳐다본다. ‘우리아들 파이팅. 플레어 파이팅’을 외치며, 다음 장면으로 넘
어간다.
다음에 잡힌 화면 속 인물은 우리 부모님이다. 배경은 우리 집이고. 형과 아이를 안고 있는 형수님의 모습도 영상 속에 보인다.
진짜 깜짝 놀랐다. 아무런 언질조차도 없었는데······.
카메라 팀이 직접 가서 찍어 온 건가?
와, 조카 녀석 엄청 많이 컸네. 목소리가 우렁차다.
멤버들의 가족들이 차례대로 나오고, 이내 화면이 검게 물든다.
MC한조민의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자, 다음은 샤인을 응원하는 메시지를 보시겠습니다.”
순간 나는 조금 어리둥절했다. 설마 이대로 끝난 건가 싶어서.
내가 김태현을 힐끔 쳐다봤다.
왜, 김태현네 가족은 왜 안 나오는 거지? 녀석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화면 속에 나오는 남의 가족을 지켜보고 있다.
그걸 보며 생각했다. 짐작은 했지만 확실히 얘는 가족사에 문제가 있나보구나. 그러니 카메라 팀도 영상을 찍어 오질 못했겠지.
도대체 무슨 사연이 있길래······.
대략 팀마다 30초씩 정도 되는 응원메시지 영상이 끝이 나고, MC한조민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지금까지 이 무대를 위해 노력을 해주신 플레어, 샤인 두 팀에게 뜨거운 박수를 쳐주시길 바랍니다.”
함성 소리와 박수소리가 뒤섞여 장내를 가득 메운다.
그리고 소리가 잦아질 무렵, MC한조민의 목소리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자! 이제 진짜 발표하도록 하겠습니다. 문자 투표의 결과에 따라 우승팀이 정해집니다. 문자 투표의 결과지는 지금 제 손안에 있고요. 아, 발표를 하는 저까지 다 떨리는 심정입니다. 자, 그러면 투표 결과를 공개하겠습니다! 보여주세요!”
드디어 고대하던 문자 투표의 결과가 화면에 떠올랐다.
총 문자 콜 수 627,456
1위 273,011 샤인 43.5프로
2위 238,805 플레어 38프로
3위 70,121 블루 울프 11.1프로
4위 45,519 노블 크루 7.2프로
아.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구나.
잠깐이나마 기대했던 게 허망해지는 결과다.
아쉬운 듯 장요한 녀석 입에서 바람 빠진 풍선소리가 났다. 얼굴을 보니 내심 기대를 하긴 했나보다.
“화면에 나타난 문자 투표의 퍼센트는 소수점 두 번째 자리를 반올림한 결과입니다. 자, 그러면 심사위원 점수와 온라인 투표, 실시간 문자 투표를 모두 더한 최종 결과를 보도록 하겠습니다. 최종 우승자를 보여주세요!”
놀라운 결과라는 MC한조민의 말은 역시나 기대감을 주려고 하는, 뻔한 거짓말로 밝혀졌다.
곧이어 종합순위가 화면에 떠오른다.
종합점수
1위 샤인.
2위 플레어.
3위 블루 울프
4위 노블 크루.
역시나 이변은 없었다.
거짓말쟁이 MC 같으니라고.
“샤인! 우승 축하드립니다.”
음방 무대 1위를 방불케 하는 폭죽과 환호소리, 그리고 MC의 축하 인사가 차례로 전해진다. 순간 모든 스포트라이트가 샤인에게로 향한다. 마치 그들이 이 공간 속의 주인공인 마냥.
샤인 애들은 모두 짠 것처럼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벅찬 감동에 말조차도 잇지 못한다.
나와 멤버들은 축하한다는 짤막한 인사를 남기고, 무대에서 내려왔다.
뭔가 아쉽고, 서글프고, 억울하다.
불과 스무 걸음도 떨어지지 않은 무대 위와 무대 아래의 공간. 그 선명한 온도 차이를 느끼며, 나와 멤버들은 서로를 바라봤다.
우리가 못했다거나 무대 위에서 실수를 해서 좋지 못한 점수를 받았다면 그러려니 이해라도 했을 텐데, 이건 그런 게 아니었으니까.
만약 인지도를 조금만 더 쌓고, 팬이 지금보다 더 많았더라면 결과는 지금과는 완전히 달라졌을까? 멤버들도 다 나와 같은 마음 일 거다. 그래서 더 결과가 아쉽게 느껴진다.
무대에서 내려온 장요한이 가장 먼저 눈물을 글썽인다. 그리고 뒤이어 노아도. 박진우도 속이 상한 듯 괜히 눈시울을 붉히고 있고. 멤버들 중 멀쩡한 건 김태현 뿐이다.
그때 차조영 실장과, 박호영 팀장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누구라 할 것 없이 끌어안으며, 등을 두들겨준다.
“아쉽지만 잘했어. 2등이 어디야. 그리고 이번 기회에 아예 없다시피 한 플레어 인지도를 이만큼 끌어올렸으면 성공한 거지. 울기는 왜 울어?”
“오늘 무대 진짜 멋졌어. 몇 달 고생했는데, 오늘 회포 제대로 한번 풀어보자. 오늘 먹고 싶은 거 원 없이 마음껏 먹여줄게!”
그게 오히려 멤버들의 눈물샘을 더 자극했나보다. 찔끔거리던 녀석들이 아주 대놓고 질질 짜고 있다.
“그래. 울어라. 너희들 기분이 뭔지 아니까.”
그동안 우리와 거의 같이 생활하다시피한 차조영 실장이 속상한 표정으로 한숨을 내뱉는다.
사실 두 매니저의 말이 맞다.
엄밀히 따지고 보면 이게 울건 아니지. 이번 기회로 플레어라는 그룹을 대중들에게 알리고, 실검에도 몇 차례나 이름을 올렸으니까.
데뷔를 하고 1, 2년이 지나도록 회사에서 홍보를 아무리 때리고, 음반을 내도 실검에 이름 한번 올리지 못한 그룹들이 발에 채일 만큼 널렸다. 우리는 아직 앨범 발표도 안한 상황에서 팬클럽도 생겼고, 인지도를 이만큼 쌓았으면 이미 넘칠 만큼 성공한 거
다.
불과 세달 만에 이뤄낸 쾌거치고는 대단한 성과지, 암.
그래, 이건 울 일이 아니야. 웃자.
어느 정도 마음이 진정됐는지 장요한이 손등으로 눈물을 닦아내며 묻는다.
“저기, 그런데 오늘 먹고 싶은 거 원 없이 먹게 해준다는 말··· 진짜예요?”
“어, 어? 뭐, 까짓 거! 뭐 먹고 싶은데?”
소겠지.
“소고기요!”
그래, 역시나.
잠깐 박호영 팀장이 망설이더니, 이내 호탕하게 소리친다.
“좋아! 내가 명색이 팀장인데, 내 새끼들 먹고 싶다는 거 그거 하나 못 사줄까? 가자. 오늘 원 없이 먹여줄게!”
“진짜요? 아싸!”
장요한이 환호성을 지르자 박진우가 어이없다는 듯이 녀석을 툭 건드린다.
“멍청아. 너 부모님 오셨잖아. 부모님이랑 같이 안가?”
“아···.”
순간 장요한이 망연자실한 표정을 짓는다.
그러고 보니 다들 가족들이 응원한다고 찾아왔지?
“아, 맞다. 그러네. 멀리서 오신 분들이니 같이 식사라도 해야지. 갈 사람은 가고, 남을 사람은 고기 먹으로 가고 하면 되겠네.”
박호영 팀장의 말에 내가 주위를 둘러봤다.
오늘 가족이 오지 않은 건 나와 김태현 뿐인가?
멤버들이 응원 온 가족들과 전화통화를 하며, 만날 장소를 정하고는 인사와 함께 뿔뿔이 흩어진다.
뭐, 하는 수 없이 나와 김태현 둘이라도 배터지게 먹어야겠다고 생각하는데, 걸어가던 김태현의 발걸음이 우뚝 멈춰 섰다.
“어···?”
김태현의 시선이 통로 한 켠에 서 있는 세 사람에게로 향해 있다.
마흔 정도 되어 보이는 어느 단아하게 생긴 여성과 8살 남짓한 남녀꼬마들.
김태현을 본 꼬마 둘이 동시에 김태현에게 달려든다.
“혀엉!”
“오빠!”
< 4라운드 미션 (8) <- 여기부터 유료입니다. > 끝
ⓒ 윤민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