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듀스 나노머신-42화 (42/124)

4라운드 미션 (6)

심사위원 대기실.

방송 시작 전 심사위원들이 저마다 대본을 들여다보든가 다과를 즐기며, 저마다 담소를 나누고 있다. 핸드폰으로 뭔가를 한참동안 들여다보고 있던 차승민이 형님뻘인 허진의 옆으로 다가와 슬쩍 말을 건다.

“형님, 이야기 들으셨죠?”

“뭘?”

“최강민 작곡 이야기 말이에요. 다들 그거 때문에 난리던데. 형님은 현역으로 프로듀서로 활동하고 있으니까 좀 아실 거 아니에요?”

주변을 의식하듯 어조가 은근해진다.

“사실 미션곡이야 회사에서 프로듀서 붙여줘도 그냥 예능프로그램이니까 좀 띄워주려나 보다하고, 그러려니 했는데 앨범 타이틀곡이 자작곡이라는 건 좀 억지스럽지 않아요? 무슨 곡이 기계 찍듯이 꾹 찍어내면 나오는 물건도 아니고.”

“어휴, 남의 일에 관심 끄고 네 일이나 잘해. 너도 곧 앨범 나온다며?”

“그러니까 그렇죠! 저도 이번 앨범에 자작곡 하나 실었는데, 비교될까봐.”

허진 심사위원이 한심하다는 듯 혀를 내찬다.

“어이고, 차승민씨. 장르가 달라요 장르가. 팬 층도 다르고. 그리고 이미 소속사 대표 인터뷰까지 나온 마당에 우리가 왈가불가해서 뭐할 건데?”

“아, 형님. 누가 그걸 몰라서 그러나? 안 믿겨지니까 그렇지.”

“다른 건 몰라도 내가 그 김호준 작곡가는 좀 아는 데, 그 사람 이런 일로 절대 거짓말하고 그럴 사람 아니야. 프라이드가 아주 대단한 사람이라고. 혹시 최강민이 회사 외부에 있는 누군가에게 몰래 조력을 받았다면 모를까.”

“외부 사람 누구요?”

“아,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외계인이라도 숨겨뒀나 보지.”

가만 보니 어느새 다른 심사위원들까지 하던 일을 멈추고, 둘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금붙이를 어깨, 팔에 주렁주렁 매달고 있던 언더독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저희도 궁금하긴 한데, 그러니까 허진 형님 말씀은 최강민이 혼자 그걸 다 곡 작업했다는 건 불가능하다는 말씀이시죠?”

언더독의 그 같은 물음에 차승민을 포함한 심사위원 네 명의 시선이 전부 허진에게로 쏠린다.

“허, 참.”

그걸 본 허진이 쓴웃음을 삼켰다. 남의 이야기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떠드는 걸 좋아하는 건 외부 사람들인 줄만 알았더니, 알고 봤더니 내부에도 한 가득이다.

허진이 잠시 곰곰이 고민하는 표정을 짓더니 이내 말했다.

“불가능하지. 나이를 생각하면.”

옆에 앉아 있던 차승민이 옳다구니 무릎을 탁 친다.

“그렇죠!?”

“하지만 꼭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야.”

차승민의 표정이 기괴해진다.

“아, 뭡니까!? 이랬다저랬다!?”

“최강민이 천재라면 말이야. 왜 있잖아. 백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한 천재들. 나야 그런 범주에 속하지 않은 평범한 사람이니 알 수가 있나? 작곡이라는 게 갑자기 샤워하다가 말고, 떨어지는 물방울보고 갑자기 멜로디가 툭 튀어나오기도 하고, 떨어지는 낙엽을 보다가도 불현 듯 영감을 얻고, 그러는 건데. 나 같은 일반인이야 그렇지만 최강민 머릿속은 조금 더 다를 수 있지 않겠어?”

애매모호한 말.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종처럼 갈피를 잡을 수가 없다.

“아, 형님!”

차승민의 외침에 허진이 손사래를 치며 고개를 내저었다.

“아, 그만해. 남의 일에는 그만 신경 쓰고, 대본이나 한 번 더 봐. 오늘 생방송이라잖아. 괜히 말실수해서 망신당하지 말고.”

*

이 날을 위해 특별 초청된 MC한조민 대기실에 김철중 피디가 방문했다. 대본을 보며, 대사를 중얼거리던 한조민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반긴다.

“어, 피디님.”

“한조민씨.”

과거에 몇 차례 프로그램을 같이 해본 적이 있기에 둘은 안면이 있다.

얼굴 좋아졌네. 요즘 하는 프로 잘보고 있다등의 반가운 인사와 형식적인 안부가 오고 갔다.

그리고 인사 후에 김철중 피디가 대기실을 찾아온 목적을 밝혔다.

“다름이 아니라 오늘 플레어 무대 펼치기 직전에 내보낼 영상이요···.”

“아, 최강민 작곡 해명에 관한 영상 말씀하시는 거죠?”

“네. 그거요.”

“나도 아까 살펴보기는 했는데, 그거 내보내면 다른 팀에서 말 나오겠던데? 너무 한 팀만 돋보이게 해주는 것 같잖아요. 꼭 프로그램에서 플레어 기획사를 대변해주는 것 같은 뉘앙스고.”

“그러니까 그런 뉘앙스가 안 나오게끔 잘 좀 해달라는 거죠.”

“에이, 제가 뭐 할게 있나요? 나야 뭐 대본대로 하는 거지. 헌데, 갑자기 영상은 왜 넣는 건데요?”

김철중 피디가 어깨를 으쓱거린다.

“국장님 지시에요.”

“국장님이?”

“며칠 전에 R&N대표가 방송국에 들어왔거든요. 뭔 이야기가 오고 갔는지는 몰라도, 그러라는데 별수 있나요? 나 같은 월급쟁이가 위에서 까라면 까야죠.”

알았다는 듯이 MC한조민이 고개를 끄덕인다.

“뭐, 일단 아무튼 알았어요. 사실 프로그램 마지막 날인데 논란거리가 있으면 프로그램 차원에서도 매듭짓고 가는 게 좋긴 하죠. 좋은 게 좋은 거라고. 걱정 마요. 내가 아주 멘트 찰지 게 쳐줄 테니.”

잠시 후, 방송이 시작되고.

이날을 위해 특별 초청된 MC한조민이 진행을 위해 마이크를 손에 쥔 채 무대로 걸어 나온다. 컴컴해진 무대 위 밝게 빛을 내는 조명 하나가 MC한조민을 따라다니며 그를 비춘다.

“모두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안녕하세요. 한조민입니다.”

“와아아아아!!!”

방청객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무대가 떠나가라 함성을 내지른다.

그리고 그 순간 우리는 불이 꺼진 무대 뒤에서 한조민의 목소리를 들으며 호흡을 고르며, 대기 중이다. 나는 천천히 주위를 둘러봤다. 오늘을 위해 한복을 예쁘게 잘 차려입은 국악 소녀들과 정장을 한껏 멋들어지게 빼 입고 온 양동이밴드 형님들. 그리고 긴장어린 표정으로 숨만 간신히 쉬고 있는 멤버들의 모습이 보인다.가장 긴장되고, 흥분되는 순간.

수 만 가지 온갖 상념이 머릿속을 스친다.

곧 이어 스피커를 통해 MC한조민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최종 우승자를 선발하는 과정과 당부사항, 그리고 출연 팀들의 이전 성적들에 대해 차례대로 설명을 해준다. 현재 종합 1위는 아주 미세한 차이로 우리 팀이 앞서고 있다. 그야말로 미세한 차이다.

그거 때문에 최종 라운드의 평가는 실시간 문자 투표로 인해 판가름이 날거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현재 첫 번째 출연 팀인 플레어가 무대 뒤에서 준비 중인데요. 그 전에 앞서 그동안 플레어의 활약상을 화면을 통해 먼저 보시겠습니다!”

무대 벽면에 걸려 있는 대형 화면이 껌뻑거리더니, 이내 커다란 영상이 자리 잡는다.

그리고 1, 2, 3라운드 때 우리가 보여줬던 하이라이트 부분들이 빠르게 지나간다.

노래하고 춤을 추는 장면, 환호하는 멤버들의 모습, 심사위원들의 짧은 평. 그리고 그동안 찍어갔던 영상들이 순차적으로 떠올랐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이어서 휘몰아치듯 하나의 장면이 커다랗게 자리에 잡는다.

내가 누군가와 중얼거리며 대화를 하는 장면, 침대에 누워있다 갑자기 벌떡 일어나 건반을 두들기고, 기타를 연주하는 장면. 화면 아래로 R&N측에서 소속 프로듀서들과 A&R팀 직원들의 코멘트와 반응들이 인서트로 들어간다.

-저 정도면 신들렸다고 보시면 돼요. 예술 하는 사람들 중에 저런 사람들 많아요.

-천재라고 불러야죠, 저 정도면. 저희도 최강민이 처음에 곡 만들었다고 했을 때 깜짝 놀랐어요. 장난인줄 알고. 근데 들어보고 얼마나 놀랐는데요.

-누가 대신 만들어준 거 아니냐고요? 대체 어느 정신 나간 작곡가가 그러겠어요? 말 같지도 않은 소리에요. 그런 말들은 시기, 질투하는 누군가가 만들어낸 말이겠죠.

R&N측에서 나를 위해 만들어준 영상이다. 그렇게 30초짜리 코멘트를 담은 영상들이 넘어가고, 이어서 국악소녀들과 양동이밴드, 그리고 우리멤버들이 연습실에서 모여 연습하고 있는 장면이 떠오른다.

그리고 그 속에서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잘못된 부분을 짚어주고 있는 내 모습, 그리고 세션들과 의견을 교환하며, 종이에 끊임없이 뭔가를 적는 모습. 고민에 잠긴 모습 등이 연달아 화면위에 자리 잡는다.

영락없이 창작의 고통 속에서 몸부림 치고 있는 작곡가의 모습이다.

그리고 언제 따왔는지 팬들의 반응도 흘러나온다.

-오늘 장르가 퓨전음악이라면서요? 무척 기대 돼요. 플레어 파이팅!

-꺅! 꺅! 최강민 오빠. 너무 좋아요! 오늘 무대 꼭 보면서 열심히 응원할게요. 저 친구들한테도 전부 플레어 문자 투표하라고 전해놨어요!

-꼭 1등해요. 플레어 사랑해요!

마지막에 나온 어느 여고생의 모습이 정지화면으로 나오고, 이내 화면이 팟하고 꺼진다. 그리고 화면에 플레어라는 이름이 크게 떠오르며 자리 잡는다.

기다렸다는 듯이 무대의 조명들이 일제히 밝아지면서 MC한조민의 목소리가 떠나갈 듯 울려 퍼진다.

“리더인 최강민씨가 이번 무대를 위해서 또 한 번 야심차게 준비했다고 합니다. 그 무대가 이제 시작됩니다! 플레어!”

다시 한 번 관객들의 함성이 고함을 지른다.

“플레어! 플레어! 와아아아아!”

*

꽉 막힌 도로 위.

택시 안, 뒷좌석에 앉아 있는 중년 여성이 시계를 들여다보며, 운전석에 앉아 있는 기사에게 말을 건넨다.

“기사님, 도착하려면 아직 멀었나요?”

“거의 다 왔어요. 차량 통행량이 많은 구간이라 좀 막히네요. 요 앞 사거리만 지나서, 조금만 더 가면 방송국이 나옵니다.”

“네.”

대답을 듣기는 했지만 중년 여성은 연신 손목에 찬 시계를 들여다보며 안절부절못하는 표정이다. 무슨 급한 일이라도 있는 걸까? 보다 못한 옆에 앉아 있는 중년 남성이 한마디를 쏘아붙인다.

“어휴, 여보. 진정 좀 해. 당신이 그런다고 차가 더 빨리 가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 급하면 준비나 좀 서두르지.”

중년 남성의 말에 옆에 앉은 아내가 잠시 어이없는 표정을 짓더니, 이내 도끼눈을 뜨고 쏘아붙인다.

“이게 다 누구 때문인데요? 당신이 차키 찾는다고만 시간 지체 안했어도 지금쯤 차 몰고 나와서 벌써 도착해 있을 거라고요. 아니, 도대체 멀쩡한 차키는 어디다가 팔아먹고 왔대? 혹시 어제 술 먹었다더니, 거기에 놔두고 온 거 아니에요?”

“어, 어···?”

아내의 대꾸에 중년 남성의 입이 쏙 들어갔다.

그러더니 슬그머니 아내의 눈치를 보며 차창 밖으로 시선을 돌린다.

운전기사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백미러를 힐끔 보고는 물었다.

“방송국에서 일하시는 분은 아니신 거 같고, 아는 분이 방송 출연이라도 하시나 봐요?”

“아, 우리 아들이 케리챌 출연자거든요. 오늘 마지막 라운드라서 응원해 주려고 가는 길이에요.”

“아하! 그 심사위원들이 나와서 아이돌 그룹 평가하는··· 맞죠?”

“네. 맞아요. 그거에요.”

“저희 집 애들도 순전히 그런 것만 즐겨보는 터라 저도 본 것 같네요. 플레어? 맞나? 저도 딸  자식만 둘인데, 둘 다 그 그룹을 좋아하더라고요. 그런데 아드님 재능이 대단한가 봐요. 하긴 두 분을 뵈니 딱히 인물 걱정도 없어 보이는데. 아참, 그런데 아드님이 속해 있는 그룹이 뭐에요? 성함이······?”

“제 아들 노아예요. 플레어의 장노아.”

“플레어요!? 엇! 혹시 그 막내···?”

택시 운전기사가 멈칫하며, 두 눈이 동그래진다.

그걸 본 뒷좌석에 앉은 중년 여성의 입가에 웃음이 가득 걸린다. 안 듣고 있는 척 차창을 내다보고 있던 중년 남성의 주름진 입 꼬리도 슬그머니 올라가고.

“맞아요. 걔예요. 제 아들이.”

택시 운전사의 눈이 커지며, 세상 신기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와, 이런 우연이? 이거 영광이네요. 참으로 훌륭하신 아드님을 두셨어요.”

잠시 후, 택시가 서서히 정지를 하며, 앞에 보이는 건물을 가리킨다.

“저기 보이네요. 방송국. 어서 들어 가보세요.”

중년여성과 중년 남성이 택시에서 서둘러 내리고, 안내 표시를 따라 서둘러 공개홀 입구를 찾는다.

“어머, 여보. 벌써 시작했나 봐.”

희미한 음악소리가 복도 저 너머에까지 전해지고 있다. 그리고 신명나는 태평소 소리도 들려온다.

표정이 다급해지고, 걸음걸이가 점차 빨라진다.

중년 여성이 발을 동동 굴리며, 두터운 방음처리가 된 문을 연 순간 ‘와.’ 하는 엄청난 함성이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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