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듀스 나노머신-40화 (40/124)

4라운드 미션 (4)

곡 작업은 돛을 단 배처럼 큰 어려움 없이 순항 중이다.

원래 베이스가 될 만한 곡은 ‘태양을 향한 질주’란 곡이었는데, 이게 악기를 바꾸고, 멜로디에 변화를 줬더니 아예 다른 곡이 돼 버렸다.

악기로 연주할 부분은 세 차례에 거쳐서 채보해서 바로 토스해줬다. 연주자들은 악보라도 있어야 미리 연습이라도 할 수 있으니까.

악보를 받아본 양동이밴드 형님과 국악소녀들도 꽤나 흡족해하는 눈치였다.

그리고 마침내 곡이 완성됐다.

합주 연습 시간을 조율하기 위해 국악소녀들과 양동이밴드형님들에게 전화를 돌리고, 차조영 실장에게도 전화를 넣었다.

케리챌 측에서 4라운드 홍보 영상을 위해, 모두가 함께 합주하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싶다고 하는데, 곡이 완성이 되질 않았으니 방법이 있나.

결국 첫 합주 연습날 때 촬영하기로 약속을 미뤘는데, 곡 완성 소식을 들은 김서연 피디가 시간에 맞춰서 카메라 팀과 오겠다고 했다.

그리고 첫 합주 연습 날이 다가왔다.

원래 연습실은 외부인에게 출입 금지구역이었지만, 회사 측에서 특별히 장소를 제공해줬다.

가장 먼저 도착한 것은 저번에 봤던 카메라 팀이다.

김서연 피디가 차조영 실장과 인사를 나누고, 나와 멤버들에게 번갈아가면서 안부를 주고받는다. 그 사이 같이 온 사람들이 카메라를 거치한다.

그래도 몇 번 얼굴을 본 사이라서 그런가 왠지 느낌이 친근하다.

“총 5분짜리와 2분짜리 영상을 따로따로 촬영할 거예요. 2분짜리는 클립으로 만들어서 홈페이지에 올리고, 5분짜리는 방송 직전에 나갈 티저 영상으로 만들 거예요. 시청자들도 최종 라운드 때 선보일 곡이 어떤 느낌인지 살짝 맛을 봐야 반응이 더 좋을 테니까.”

“네.”

“그런데 듣자니 이번에도 전부 강민씨가 편곡을 했다면서요? 실장님 말로는 편곡이 아니라 거의 작곡을 한 수준이라고 하던데요?”

내가 멋쩍게 머리를 긁적였다.

“만들다보니 그렇게 됐어요.”

“와, 저번에도 편곡하는 거 보고 보통 재주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퓨전 음악? 이런 것도 만들 줄 알아요? 진짜 보면 볼수록 사람 놀라게 하는 재주가 있네.”

그러더니 김서연 피디가 나에게 한발자국 다가와 작게 소근거린다.

“혹시 이번에 나올 앨범 타이틀곡이 최강민씨 자작곡이라는 소리가 있던데. 그 소문이 사실이에요?”

갑자기 말문이 턱하고 막힌다.

이건 또 어디서 들은 거래.

내부적으로는 비밀로 하자고 모두 입을 닫은 사항인데.

“그건······. 아, 저기 연주자들 오네요.”

때마침 국악소녀들이 들어오기에 나는 황급히 자리를 피했다.

의심쩍은 김서연 피디의 시선이 따라붙었지만 나는 못 본 척 했다.

“앗, 오빠.”

가장 먼저 들어오던 박안나가 자기 오빠에게 손을 흔든다. 그리고는 친구들을 소개시켜주면서 멤버들과도 인사를 나눈다.

전부 예술고등학교 출신들이라 그런지 이제 막 수능을 치룬 애들이라고는 볼 수 없는 성숙미가 넘쳐난다. 화장을 해서 그런 건가? 박안나는 누가 보면 샵이라도 다녀온 줄 알겠다. 얼굴부터 머리까지 아주 풀 메이크업 상태다.

들어올 때는 카메라 팀들을 보고 잔뜩 얼어있더니, 들어와서는 우리를 보고 좋아서 꺅꺅대며, 어쩔 줄 몰라 한다.

사진 찍고, 사인을 받고서는 그것들을 흐뭇한 눈으로 한참동안이나 들여다본다. 이렇게 보니 꼭 소녀 팬들 같다.

“와, 이게 웬 꽃밭이야?”

그 다음에 들어온 것은 양동이밴드 형님 세 명이다.

이 형님들도 촬영소식에 잔뜩 머리와 의상에 힘을 준 티가 난다. 무스탕에, 가죽 재킷에, 머리까지 빳빳하다. 꼭 조폭 와이프 영화에 나오는 건달 형님들 같다.

게다가 덩치는 또 오죽 커야지.

덩치가 자신들의 두 배는 됨직한 김형돈과 황동일이 걸어 들어오자, 국악소녀들이 움찔거린다. 하긴 남자인 나도 처음에 저런 반응을 보였지.

“반가워요. 같이 연주할 연주자예요.”

덩치를 보고 놀란 소녀들이 순박한 이웃집 형님 웃음을 보고야 마음이 풀어진다. 소녀들이 수줍게 인사를 건넨다.

“네, 반가워요. 오빠들.”

“캬. 이게 얼마 만에 들어보는 오빠소리냐.”

두 사내, 아니 세 사내의 입가에 아주 웃음이 걸렸다.

오빠소리에 아주 좋아 죽으려고 한다.

자고로 미인의 웃음과 쓰디쓴 술은 사내를 남자로 만들어준다고 했거늘, 연주에 모든 열정을 쏟아 붓겠다는 두 형님들을 보니 그 말이 꼭 틀린 말은 아닌 모양이다.

양동이밴드와의 인사도 끝낸 후, 내가 장내를 돌아보며 말했다.

“어, 오실 분들 다 오신 것 같으니까. 이제 연습 시작해 볼까요?”

악기세팅이 진행되는 동안, 나는 곡을 준비했다. 왼쪽 편에는 국악소녀들이 오른 쪽 편에는 양동이밴드가 자리 잡았다. 중앙은 멤버들 자리다.

국악소녀들이 재잘거리며 악기에 앰프를 꽂고 조율을 하고 있고, 양동이밴드 형님들은 그런 소녀들을 흐뭇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다.

그리고 첫 합동연주가 시작됐다. 나는 일단 처음인 만큼 한쪽에 빠져서 문제점이 뭔지를 지켜보기로 했다.

퉁퉁퉁퉁- 가죽을 울리는 장구 복판에서 울리는 특유의 울림소리에 멤버들이 중앙에서 저마다 준비해놓은 안무를 선보인다. 대단한건 아니고, 문 워크와 관절 꺾기 정도. 시선을 집중시키기 위한 용도다. 환한 연습실안에서는 좀 밍밍하지만, 어둠이 깔린 조명아래에서는 이것보다 확실한 시선 끌기 용이 없다.

장구 소리가 점진적으로 커지기 시작하면서 어느 순간 해금 켜는 소리와 가야금 현 뜯는 소리. 대금의 합주가 경쾌하게 울려 퍼진다. 거의 105bpm에 맞춘 템포의 빠르기다. 국악 음악에서는 결코 찾아볼 기 힘든.

바로 인트로 부분이다.

이 부분에 나는 가장 많은 신경을 썼다.

국악은 보통 지루하고, 재미없다는 선입감이 많다. 그것은 변화가 거의 없고, 격조가 거의 발생하지 않는 천편일률적인 멜로디 때문인데, 나는 최대한 국악악기로 현대 가요느낌이 나게 끔에 주력했다.

사실 현대가요를 국악악기로 연주하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특히나 멜로디를 국악악기에 맞게 악보화 하는 작업은 어지간한 사람들은 엄두도 못 낼 작업이다.

그것은 각 악기마다 낼수 있는 음이 한정되어 있고, 그것을 파트화시켜서 적절하게 분배하는 것은 각 악기들에 대한 이해도가 따라오지 않고는 불가능한 작업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가능하다.

만능 치트키 같은 녀석이 있으니까.

혹시 국악소녀들 연주 실력이 못 따라오면 어떻게 하나 내심 걱정 했는데, 그러한 걱정을 한 게 무색할 만큼 연주 실력들이 좋다. 대부분 초등학교 입학하면서부터 악기를 만지고 놀았다니 그 말은 진짜였다.

“태양이 우리를 비춰, 찬란하게 떠오르는 다이아몬드와 같은······.”

그리고 국악악기의 소리가 점차 사그라지면서, 노래가 시작됐다.

나는 밴드연주는 최대한 억누르는 연주를 부탁해 놨다.

특히 드럼연주는 절반이상이 고스트음이다. 악보에도 강조해 놨다. 그리고 대체할 수 있는 부분은 장구소리로 대체했다. 의외로 일렉 기타와 장구 조합이 또 듣기가 괜찮았다. 노래가 랩 파트로 넘어가고, 너무 들리는 악기소리가 많으면 집중이 안될 것 같아서 필요할 때에만 끼어들게 했다.

랩 파트는 신시사이저, 샘플러, 미디를 사용해 반주를 깔았다.

그리고 2절로 넘어가는 간주마디에는 어깨가 들썩거리는 신명나는 태평소 소리가 치고 나온다.

그렇게 첫 합주가 끝이 났다. 중간 중간 틀린 부분들이 몇 가지 보였지만 그건 비단 한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모두가 공통으로 겪는 문제사항이라서.

나는 드러난 문제를 메모지에 적고 있는데, 김형돈이 내게 다가왔다.

“와, 대단한데? 이걸 강민이 네가 만들었다고?”

“네. 어때요?”

“이건 뭐 말이 안 나오는데? 난 솔직히 불협화음이 날거 같아서 몇 번 악보를 고쳐야할 거라고 생각 생각했거든. 합주곡 악보 만드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니까. 그런데 생각보다 화음이 잘 맞네?”

나야 뭐, 영삼이를 통해 이미 수십 번이나 들어봤으니까. 하지만 그렇지 못한 이들은 하나같이 다 그런 비슷한 생각을 했던 모양이다.

옆에서 있던 황동일도 말을 거든다.

“그러게. 나도 작곡 좀 해본다고 깔짝이고 있는데, 이정도 곡 만드는 솜씨면 거의 메인 프로듀서급 아니야? 너 진짜 대단하다. 이런 건 또 언제다 공부했어? 전문적으로 교육을 받은 거야?”

“어··· 그냥. 어려서부터 관심이 좀 많아서 공부한 정도에요.”

“설마 인터넷 보고?”

아니, 영삼이한테 물어서.

국악소녀들 사이에서도 대체적으로 반응이 좋다.

그리고 몇 번 더 합주를 해보고, 발견된 문제점을 서로 의논하고, 조율하며 네 시간 정도를 연습실에서 보냈다.

미션 전까지 두 번 정도 더 만나서 합주를 맞춰보기로 하고.

그리고 그 광경을 김서연 피디가 카메라에 담아갔다.

*

-[케리챌] 샤인! 최종 라운드 연습영상 입수! 그동안 보여주지 못한 샤인 만의 매력을 보여주겠다!!!

-[케리챌] 블루 울프! 짐승들의 올 파격 상의 탈의!

-[노블 크루] 진정한 한국 힙합의 색채를 보여주겠다. 호언장담!

클립영상이 걸리자 기다렸다는 듯이 해당 팀들에 대한 기사가 나가기 시작했다. 모두 각 팀에 대한 영상 소감이나 기대감을 나타내는 홍보성 글들이다. 아마도 해당 기획사 홍보팀 측에서 내보낸 기사들이거나 친한 기자들에게 부탁해서 쓴 기사들임이 분명했다. 그 후로도 내용이 살짝 바뀌거나 추가된 어뷰징 기사들도 줄줄이 올라온다. 순식간에 샤인과 블루 울프, 노블 크루가 실시간 검색에 위에 오른다.

그중 역시나 가장 화력이 쌘 것은 샤인이었다.

샤인의 기획사인 엔틱 측에서는 막바지 샤인 홍보에 총력전을 다할 생각인지 거짓말하나 안 보태고 일 분마다 한 번씩 기사가 올라온다.

오늘 하루 실검 1위를 독식하겠다는 굳은 의지가 보인다.

그리고 실검 검색어에는 우리 팀명 보인다.

2위 - 플레어.

그리고 내 이름도 슬금슬금 20위권에서 얼굴을 내비친다.

19위 - 최강민 작곡.

그런데 이름 뒤에 붙어 있는 단어가 묘하게 눈에 거슬린다.

작곡이라는 단어가 왜 붙어 있는 거지?

검색어란의 내 이름을 쳤더니, 관련된 기사가 주르륵 뜬다.

그중 가장 맨 위에 있는 기사를 확인했다.

-플레어의 최강민. 천재 작곡가?

클릭을 안 해볼 수 없게끔 만드는 문구다.

-플레어의 리더이자 메인보컬, 메인댄서를 맡고 있는 최강민은 케리챌의 3라운드 때 보여준 편곡실력을 4라운드 최종 미션 때도 유감없이 보여줄 계획이다. 국악과 댄스라는 장르를 섞은 퓨전 음악을 새롭게 프로듀싱 해서 선보일 계획이며, 이 곡으로 한류열풍의 주역으로 서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 곡에 대한 전반적인 프로듀싱은 최강민이 전부 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여기까지는 별 문제가 없어 보인다. 문제는 아래에 달린 댓글 들이다.

-스무 세살에 저게 가능하기나 함? 모차르트가 환생해도 저건 불가능함.

-다 회사 언플 아님? 소속 프로듀서들이 적당히 만져준 거 토스해서 하는 척만 하는 걸 수도 있음.

-프로듀싱관련 종사자인데, 저건 진짜 불가능함. 백퍼 회사에서 띄워주기 하려고 언플 하는 거임. 거기에 내 손모가지 건다.

나참, 기가 막혀서.

내가 맨 마지막에 손모가지 건 놈 아이디까지 봐뒀다.

만약 만나게 되면 진짜 가만 안 두려고.

멤버들도 댓글을 보고 씩씩거린다.

잠시 후, 인터넷 반응 체크를 하고 있었는지 차조영 실장한테도 전화가 왔다. 최종 미션이 얼마 남지 않아서 타 팬덤에서 신경을 긁기 위해 작정하고 달려드는 거라면서.

그리고 내 작곡 솜씨를 두고, 네티즌들의 갑론을박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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