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듀스 나노머신-38화 (38/124)

4라운드 미션 (2)

다음 날, only카페 사장 형과 통화 후, 나는 지하철을 탔다. 다음 미션 때문에 아무래도 기타 세션이 필요할 것 같아서 양동이 밴드 형님들이랑도 통화를 했다. 다음 라운드에 세션으로 참가 해 달라고 했더니, 일단 only카페로 오라고 해서 이렇게 오랜 만에 홍대에 가는 중이다.

오랜 만에 가져보는 일상생활.

지하철도 케리챌 방송 출연한 이후로 처음으로 타보는 거다.

그동안은 집, 연습실, 집, 연습실의 반복이었으니 딱히 어디 갈 데가 있나?

시간되면 꼬박꼬박 매니저형이 승합차로 날라다주고, 데려와주고 했으니 딱히 대중교통을 이용할 일이 없었지. 만일 늦은 시간까지 연습을 한다하더라도 숙소가 버스 세 정거장위치에 있는 거리라 걸어 다니든가, 정 기운이 없으면 택시를 타면 됐으니까.

덜컹거리는 지하철 손잡이를 잡고 한참가고 있을 무렵, 옆옆옆쪽에 앉아 있는 교복 입은 여학생 둘이 날 보고 수군거리고 있다.

그런데 목소리가 꽤 커서 뭐라고 하는지 나한테까지 다 들린다.

“맞지. 맞지?”

“어, 맞는 거 같기도 한데? 와, 얼굴 존나 잘 생겼네.”

얘, 얘들아. 그래도 명색이 여학생인데, 바르고 고운 말을 써야지. 존나는 조금 그렇지 않니?

자주는 아니더라도 이런 식으로 나를 알아봐주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바로 케리챌 애청자들. 비록 연령대는 10대 중후반에서 20대 중후반정도까지로 갈리지만, 그래도 이런 식으로 알아봐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역시나 기분 좋은 일이다. 또 다른 내일을 위해 달려 나가는 원동력이 된다고나 할까?

교복 입은 여학생들이 핸드폰을 꺼내 띄워놓은 사진과 내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더니, 여학생 한명이 쭈뼛거리며 조심스럽게 다가온다.

“저기··· 혹시요. 케리챌에 나온 플레어의 최강민 오빠······.”

“응, 맞아.”

“꺅.”

내 대답에 여자애가 괴성을 지르더니, 손으로 입을 틀어막는다. 혼자 골목길을 걷다 누가 흘린 만 원짜리 지폐를 주은 얼굴이다. 그리고 잠시 후, 다시 소리를 지른다.

“저 완전 팬이에요! 강민이 오빠!”

“고마워.”

“저기··· 괜찮으시다면 같이 인증샷 한 방 부탁드려도 될까요?”

“그래. 이리와.”

나는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매니저형도 초반에 팬 관리를 잘해야 한다고 사인을 해달라거나 인증샷 정도 부탁은 웬만하면 다 들어주라고 했으니까.

여자애가 쭈뼛거리며, 내 옆으로 다가와 친구에게 손짓한다. 친구가 쪼르르 다가오자 자신의 핸드폰을 건네준다. 가까이서 보니 좋아서 얼굴이 달아오르다 못해 터질 것 같다. 그 같은 작은 소동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뭔가 싶어 우리들을 쳐다본다.

“김치.”

찰칵.

친구가 찍은 사진을 찍고, 건네주자 좋아 죽으려고 하는 여자애가 사진을 확인하더니, 얼굴이 급격히 어두워진다.

“나 오징어 됐······. 야, 넌 사진을 발로 찍었냐?”

도착역에 도달했기에 투닥거리는 팬들을 뒤로 한 채 나는 손을 흔들어주고 지하철을 빠져나왔다.

그때 호주머니에 넣어두었던 핸드폰이 진동한다. 장요한이다.

“여보세요?”

-형, 어디세요?

“나 지금 3번 출구로 나가는 중.”

-저희도 곧 도착하니까 거기 3번 출구에 있는 피자가게 앞에서 만나요. 한 10분? 그쯤이면 도착해요.

“어, 알았어. 조금 이따가 봐.”

only에 가기 위해 4시쯤 연습실에서 나왔는데 무슨 영문인지 잠시 후, 전화가 걸려왔다.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멤버들이 전부 카페에 같이 가자면서. 더군다나 매니저 형까지 대동을 하고.

멤버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매니저 형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러자고 한 건지 이해가 안 간다. 너무 집, 연습실, 방송국만 왔다갔다하니까 애들 기분전환이라도 시켜주려고 그러나?

뭐, 아무튼.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3번 출구 출입구로 올라가자 찬바람과 함께 겨울분위기가 물씬 뿜어져 나오는 홍대의 거리가 보인다.

*

검은색 스타킹에 하얀색 모직코트를 예쁘게 차려입은 늘씬한 여성. 어깨 위를 살포시 가리고 있는 고은 생머리는 얼마나 관리를 했는지 비단결마냥 곱다. 주위의 시선을 절로 모으는 외모.

강예슬. D&M엔터테인먼트 소속. 배우 지망생이다.

아니나 다를까 오고가는 남자들이 한 번씩은 그녀 앞을 지나갈 때면 어김없이 힐끔거리며 지나간다.

그런 그녀가 피자가게 앞에서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자신의 핸드폰을 내려다보고 있다.

[배우 한준혁. 벌금 200만원. 1년 만에 음주운전 또!]

지난달 음주 운전으로 적발된 배우 한준혁이 약식기소 됐다.

서울동부지검 형사5부(부용한 부장검사)는 19일 한준혁을 도로교통법 위반(음주운전)혐의로 벌금 200만원에 약식 기소했다고 밝혔다.

그는 지난달 20일 오전 1시경, 명동에 위치한 클럽에서 술을 마신 뒤 약 7km가량 운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차량이 도로위에서 움직이지 않는다는 차량 운전자들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신호 대기 상태에서 잠들어 있는 한준혁을 체포했다.

당시 보조석에는 술에 만취한 상태로 잠들어 있는 여성이 탑승해 있었으며, 당시 그의 혈중 알코올농도는 면허정지 수준인 0.081%로 나타났다.

한준혁은 2016년에도 이미 한차례 음주운전으로 인해 약식기소를 받은 적이 있으며, 이번이 두 번째다.

사진 = 주간연예일보J

잘 다듬어진 예쁜 눈썹이 위로 치켜 올라간다.

짜증이 얼굴에 가득 묻어 있다.

왕자님인줄 알고 잡았던 놈이 술 주정뱅이였다니. 더군다나 보조석에 있던 만취녀는 또 뭔데? 그게 자신이었다면 덜 억울하기라도 하지.

나쁜 새끼. 집안 행사가 있다고 구라치고, 클럽에 가서 술을 먹고 여자를 차에 태워?

그리고 매섭게 치켜뜬 눈이 그 아래에 있는 기사로 향한다.

요즘 케리챌에서 한창 뜨고 있는 그룹 플레어.

그녀의 시선이 다섯 멤버들의 사진으로 향했다. 정확히는 센터에 서 있는 최강민을 향해.

화려한 조명아래에서 무대의상을 입고 있는 그는 비주얼그룹이라는 플레어 멤버들 속에 파묻혀 있는 와중에도 빛이 났다. 왠지 억울하고 분했다.

지금 이 기세라면 분명히 앞으로도 계속 승승장구 할 것 같은데, 그런 숨은 진주를 알아보지 못하고 차버린 꼴이라니.

믿고 있었던 한준혁은 음주 운전으로 거의 연예계에서 매장되다 시피 되어가고, 딴 여자 꽁무니나 졸졸 쫓아다니고 있고.

“어후. 이렇게 잘될 줄 누가 알았나? 그리고 얼굴은 왜 이렇게 잘 생겨 졌대. 그나저나 얘는 왜 이렇게 안와. 벌써 10분이나 지났······”

만나기로 한 친구를 기다리던 강예슬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순간 멈칫했다.

어디선가 많이 본 얼굴이 눈앞에 있길래.

“어?”

방금 핸드폰 사진에서 본 얼굴.

플레어의 최강민.

바로 자신의 전 남친.

그녀의 동공에서 지진이 일어났다.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해? 갑자기 이렇게 느닷없게 만나게 될 줄은···.’

강예슬은 급히 건물 뒤로 몸을 숨기며 발을 동동 굴렸다. 순간 무수히 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며 지나간다. 너무 급작스럽고 당황해서 일단 숨긴 숨었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근데 내가 왜 숨지? 뭐 잘못한 게 있다고?’

자신이 그렇게 모질게 차버리고, 한준혁을 부채질해서 최강민을 D&M에서 쫓아낸 건 생각하지 않고, 그녀는 자신 합리화에 빠졌다.

‘헤어진 거야 쌍방 합의하에 헤어진 거고, 소속사에서 쫓겨난 거야 한준혁이 한 일이니.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잖아?’

맞네. 그러네.

자신이 쫄릴 이유가 전혀 없다.

‘그래, 이건 하늘이 주신 기회야. 남자들은 마지막 사랑을 못 잊는다고 했으니까 어쩌면 나한테 아직도 미련이 남아 있을지도 몰라. 사귀는 동안 내가 지한테 좀 잘했어? 내가 지한테 갖다 바친 김밥이 몇 줄인데?’

생각을 그렇게 고쳐먹자, 움츠려들었던 어깨가 다시 펴지고, 턱이 저절로 치켜 올라간다. 급히 거울을 꺼내 자신의 상태를 확인했다.

이정도면 쓸 만하다. 화장도 오늘따라 유난히 잘 먹은 것 같고.

강예슬이 입술을 질끈 깨물고, 목표지점을 향해 걸음을 내딛었다. 주변에 몇몇 사람들이 그를 알아본 듯 힐끔거리고 있다.

그의 앞에 서서 작게 헛기침을 하며, 말을 걸었다.

“오빠. 그동안 잘 지냈어?”

*

“어······ 어. 안녕?”

이런 만남은 진짜 생각도 못했는데.

나는 얼떨결에 인사를 받았다.

별로 떠올리기도 싫은 이름의 주인공. 강예슬.

“잘 지냈어? 요즘 티비에 자주 나오더라?”

“어··· 뭐.”

“보기 좋네. 잘 지내는 거 같아서.”

헤어질 때만해도 얼굴에 독기 품은 장미 같더니, 지금은 서글서글하게 웃는 게 남자 꼬셔 간이라도 빼어먹을 구미호처럼 군다. 얘가 이럴 만한 이유가 딱 한 가지 떠오른다. 나도 얼마 전에 한준혁에 관한 기사를 봤으니까.

걔랑 잘 안될 것 같으니까 다시 한 번 나랑 붙어먹어보겠다는 거지.

“있잖아. 오빠. 내가 그날 이후 많이 생각해봤는데······.”

슬슬 본론을 꺼내려는지 말꼬리를 흐린다. 내 눈치를 살살 보더니 입술을 잘근잘근 씹는다. 그리고 마침내 결심했다는 표정으로 내게 말한다.

“나, 아직도 오빠 좋아하는 거 같아. 우리 다시 한 번 만나볼래?”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동자는 뭔지 모를 기대감에 서려있다.

그리고 그녀의 눈동자를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욕설이 튀어나올 뻔했다.

미친 년.

도대체 저 작은 머릿속 안에는 뭐가 들어있길래 저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거지? 저건 진짜 뇌를 열어 해부해봐야 한다. 아니면 정신병원에 집어넣던가. 틀림없이 다중인격장애 뭐 그런 비슷한 정신질환 판정을 받을 것 같다.

지가 나한테 한 짓을 벌써 잊은 건가?

근데 생각해보면 별로 놀랄 일만은 아니지. 따지고 보면 얘는 원래 이런 애였으니까.

남자를 자신의 성공 도구로 삼으려는 기회주의자. 나는 도대체 이런 애가 뭐가 좋다고 그토록 쫓아다닌 거지?

“어, 형!”

그때 누군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오길래 내가 고개를 돌렸다. 저 만치서 멤버들이 자석처럼 끌어당기듯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 모으며 다가오고 있다.

훤칠하고 길쭉길쭉한 네 명이 몰려다니니, 지나가는 사람들마다 고개를 돌리며 힐끔거린다. 방송에 출연해서 사람들이 알아보는 것일 수도 있지만, 그런 사람은 열 명 중 한명 꼴도 되지 않는다. 그냥 애들이 워낙 신체비율도 좋고, 잘 생기다보니 저절로 사람들의 시선이 가는 거다.

“매니저 형은? 같이 온다며?”

“주차하고 온대요. 매번 주차하는 곳이 있다고 잠깐 여기 있으래. 아, 근데 날씨 되게 춥다.”

장요한 녀석이 하얀 입김을 입에서 뿜어내며 손을 비비며, 옆에 있는 강예슬에게로 시선을 옮긴다. 강예슬은 얼빠진 표정으로 멤버들과 나를 번갈아 쳐다보고 있다. 갑자기 멤버들이 한꺼번에 몰려오니 당황한 표정이다.

“근데 형. 옆에는 누구? 혹시 아는 분?”

강예슬이 잔뜩 기대한 눈으로 나를 쳐다본다. 자신을 어떻게 소개시켜줄까 기대하는 눈초린데······.

미안하지만 난 그러고 싶은 생각은 눈꼽만큼도 없다.

“몰라. 팬이시라길래.”

“아, 진짜?”

장요한이 팬이라는 말에 눈이 동그래져가지고, 강예슬에게 묻는다.

“사인해 드릴까요?”

강예슬이 그 말에 부들부들거리더니, 나를 한껏 째려보고는 고개를 홱 돌려 사라진다. 장요한이 그걸 보고, 고개를 갸웃한다.

“형, 내가 뭐 잘못했어요?”

왜 그러냐고 쫓아가서 강예슬을 잡고 물어볼 기세라 나는 서둘러 녀석을 말렸다.

“됐어. 그나저나 여긴 왜 쫓아온 건데?”

“어······.”

장요한이 뺨을 긁적거리며 말했다.

“형, 오늘 생일이라면서요?”

“어? 내 생일 아직 한 달도 더 남았는데?”

뭔 소리냐는 내 물음에 옆에서 누군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어, 아닌데. 오늘이 맞는데.”

어느새 노아가 내 옆에 찰싹 달라붙어 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웃고 말았다. 비니 모자를 깊게 눌러쓴 노아가 커진 눈만 내놓은 채 물끄러미 나를 쳐다보고 있다. 이제야 알 것 같다. 얘가 축하해주자고 선동했구나.

“나 음력 생일 쇠는데? 아직 좀 남았어.”

“아.”

저 만치서 매니저형이 생일 케이크를 들고 오면서 뛰어오는 게 보인다. 그새 빵집이라도 들렸나 보네.

그걸 보며 나는 웃으며 말했다.

“까짓 거 양력, 음력 다 쇠지 뭐.”

그리고 우리들은 케이크를 들고 only 카페를 찾았다. 사장 형은 환호하며 우리를 맞이해줬고, 예전 약속대로 단체 사진과 멤버들의 사인을 각각 벽에 남겼다. 모처럼만에 찾아온 달콤한 휴식을 멤버들은 마음껏 누렸다.

하긴, 그러고 보면 그동안 정신없이 달리기도 많이 달렸지. 새삼 이곳에 손님으로 앉아 있으니 감회가 새롭다.

아, 그리고 양동이밴드 형님들과도 이야기를 잘 끝냈다. 흔쾌히 다음 라운드에 세션으로 참가해주기로 했다. 그러고 보니 박진우도 부모님이랑 이야기를 해본다고 했는데, 그건 어떻게 됐나 모르겠네.

말이 없는 걸 보니 혹시, 이야기가 잘 안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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