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어, 꽃길 걷자 (3) (수정)
반응을 카메라에 담고 싶었는지 김서연 피디가 멤버들에게 감상평을 묻는다. 멤버들이 짜기라도 한 듯 떨떠름한 표정을 짓더니,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좋네요.”
그새 짰냐?
“푸흡.”
근데 대답하는 데 영혼이 없다. 김서연 피디가 소리 죽여 웃는다.
“락 장르는 안 들으시죠? 요즘 10대, 20대 감성이랑은 잘 안 맞아서 그래요. 좀 매니아적인 장르라···. 그래도 아직 언더 쪽에서는 꾸준히 인기가 있어요.”
문득 궁금증이 하나 떠올랐다.
“혹시 다른 팀들 노래도 전부 이런 락 장르인가요?”
“아니요.”
김서연 피디가 고개를 젓는다.
“락, 디스코, 재즈, 힙합, 발라드, 댄스등 다양해요. 좀 더 다양한 볼거리를 시청자들에게 제공하려는 게 이번 라운드의 목표니까요.”
그 말을 들으니 이왕이면 좀 더 접근성이 좋은 힙합, 댄스 같은걸 뽑았으면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뭐, 그래도 이왕 뽑은 거 물릴 수도 없으니 어쩔 수 없지.
김서연 피디가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물어왔다.
“그런데 같이 곡 작업해 줄 사람은 섭외 됐어요? R&N하면 떠오르는 소속 프로듀서가 여럿인데. 그분들 중 누구랑 같이 작업할 거예요?”
“어··· 꼭 그래야하나요?”
내가 잠깐 망설인 다음 목덜미를 긁적거리며 대답했다. 김서연 피디가 뭔 그런 질문을 하느냐는 표정으로 반응한다.
“당연하죠! 미션을 하려면 편곡을 해야 하니까요. 회사에서 아무 말도 안 해줬어요? 이런 건 미리 사전에 회사에서 다 조율해 줬을 텐데요?”
최근 예능 판은 전문적인 지식으로 무장해서, 출연자들을 도와주는 감초역들이 재미를 보고 있다. 매일 예능 판에서 돌아가는 얼굴들이야 불 보듯 뻔한 것이어서, 시청자들은 늘 신선한 얼굴에 목말라한다.
만일 새로운 얼굴이 등판해서 출연자들과의 케미만 잘 맞으면 바로 시청률 상승으로 이어지니까.
실제로도 그렇게 방송계에 데뷔한 프로듀서들도 여럿 있다.
만일 신선한 얼굴이 아니더라도, 예능 베테랑 프로듀서, 작곡가가 나와도 최소한 중박 이상은 된다. 이미 그 사람들은 어느 정도 예능에 특화되어 있는 반 예능인들이라 시청률 하락도 크게 걱정 없고, 그렇게 다듬어진 곡들은 전부 음원으로도 잘 팔린다.
전문성과 예능 성을 동시에 잡는 것.
이번 라운드 미션에서 연출진들이 노리는 게 바로 그거였다.
설마, 아이돌중 누군가가 편곡작업을 직접 할 거란 생각은 전혀 하지 못한 채.
하긴, 나 같아도 예상 못했겠다. 아직 정식데뷔도 하지 못한 이제 갓 스물 넘은 아이돌이 직접 편곡을 할 거라고 생각이나 했겠는가?
“음. 미션 곡 제가 직접 편곡을 할 건데요.”
내가 대답했다. 자꾸 대화가 어긋나고 있다는 기분이 들어서.
“네? 뭐라고요?”
순간 잘못 들었다고 생각했는지 김서연 피디가 다시 되묻는다.
“제가 직접 편곡할 거라고요.”
“에에엑!?”
눈동자가 확장과 수축을 반복한다. 곱게 펴진 눈썹과 미간이 움찔거리더니, 이내 코평수가 넓어진다. 얼굴 표정이 지진이라도 만난 듯 허둥거리더니, 이내 한 가지 표정이 얼굴에 자리 잡는다.
세상에 맙소사. 방송이 장난이냐?
김서연 피디 얼굴에 딱 그렇게 쓰여 있다.
갑자기 목이 타는지 입술에 침을 묻히고는 김서연 피디가 말했다.
“그러니까 이건 제 개인적인 견해인데, 그냥 전문 프로듀서를 섭외하는 건 어때요? 음, 최강민군 실력을 의심하는 편이 아니라··· 그래도 짧은 시간에 편곡을 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니까··· 그러니까 제 말은······.”
전혀 예측하지 못한 상황이라 말까지 버벅거린다.
김서연 피디가 옆 좌석에 앉아 있는 차조영 실장을 쳐다보며, 도와달라는 눈초리를 보낸다.
헌데, 차조영 실장은 이 작금의 사태와 자신은 아무런 상관도 없다는 것 마냥 사람 좋은 웃음을 허허하고 짓는다. 안되겠다 싶었는지 김서연 피디가 상체를 옆으로 기울이며, 차조영 실장에게 소곤거렸다.
“진짜로 최강민씨가 편곡을 직접 하게 놔둘 거예요? 회사에서 그렇게 하래요?”
“네. 내부적으로는 그렇게 하기로 했어요.”
“아무리 그대로 그건 좀 무리수지 않아요? 방송도 생각해 주셔야죠. 그래도 옆에서 도와줄 프로듀서 한 명 정도는 붙여줄 거죠?”
“음. 글쎄요. 강민이가 원하면?”
그래도 매니저라면 말이 통할 줄 알았는데, 이건 더 말이 안 통한다.
그녀의 얼굴에 초조함이 묻어난다.
플레어가 여지껏 보여준 무대가 너무 좋았기에 시청자들의 기대치도 꼭대기까지 올라가있는 상태인데, 이번 라운드에서 김빠진 탄산수 같은 곡을 선보인다면?
오, 마이 갓! 이건 시말서 백장 각이다.
깜지 쓰는 것도 아니고 이 나이 먹고 그럴 순 없다는 생각에 어떻게든 말려보려는데, 차조영 실장이 걱정 말라는 표정으로 느긋한 미소를 짓는다.
“우선 좀 지켜보시죠. 정 안되겠다 싶으면 피디님 말씀처럼 할 테니. 아, 다 왔네요.”
*
그리고 그날 저녁. 나는 방안에 틀어박혔다.
편곡 방향에 대해서 영삼이와 의논을 해야 할 것 같아서.
헌데, 영삼이에게서 뜻하지 않은 정보를 건져냈다.
“뭐? 원래 이 노래가 로큰롤이 아니었다고?
-네.
“확실해?”
-베드 보이즈가 결성되기 전 제임스 리가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만든 솔로 곡인데, 원래 곡명은 ‘Meet your mother in a dream’이었습니다. 1994년 음반을 냈습니다. 가수 명도 ‘존’이란 이름이었고. 그때 당시 음반 판매량이 거의 없어 그대로 사장됐다가 베드 보이즈란 밴드를 결성하고 난 후, 리메이크를 해서 3집 수록 곡에 넣은 것입니다.
영삼이의 데이터가 거짓말을 할리는 없으니 이건 사실일 것이다. 영삼이의 데이터베이스 안에 없는 음원이란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을 테니.
제임스 리가 청년 시절, 한국에 있는 얼굴도 모르는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만든 자작곡이 로큰롤이라는 포장지에 쌓여 진 채 세상에 발표되다니, 이건 좀 놀랍다.
“흠. 그렇단 말이지? 그렇다면 원래 원곡이 어떤지도 혹시 들어볼 수 있을까?”
-물론입니다.
LP판에서 재생되는 특유의 노이즈 소리와 함께 투박한 어쿠스틱 기타소리가 배경음악처럼 낮게 깔린다. 튀는 것 하나 없이 읊조리듯 잔잔하게 흘러가는 멜로디. 그 위로 세계적인 락 밴드의 보컬 제임스 리가 아닌 미국으로 입양된 존의 쓸쓸한 목소리가 덧입혀진다.
어떠한 이유에 핏덩이 같이 작은 나를 먼 타지까지 보내게 되었는지, 누구에게 묻는지도 모를 울음 섞인 질문과 얼굴도 알지 못하는 생모를 그리워하는 절절한 마음이 전해지는 곡.
행복하게 잘살고 있다. 이렇게 훌륭한 아들이 됐다. 살아는 있는 거냐. 죽기 전에 한 번이라도 좋으니 보고 싶다.
은유적인 표현보다는 직접적인 마음을 전달하기 위해 노력한 가사들.
산들바람이 잔잔한 수면을 첨벙거리고 지나가듯. 존의 목소리가 내면 깊을 곳을 적시며 지나간다. 듣다 보니 왜 음반이 망했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이건 곡이 아니다. 존의 진심이 담긴 편지지.
갑자기 가슴이 뭉클해진다.
나는 콧잔등을 쓱쓱 문질렀다.
“흐음. 원래는 이런 곡이었단 말이지?”
나는 고민에 잠겼다.
몰랐다면 모를까 In your dreams이 이미 리메이크 된 곡이라는 걸 안 이상 편곡에 신중을 기할 필요성이 있다.
편곡은 곡의 해석방향이 중요한 것인데, 이미 한 번의 편곡으로 원곡의 본질이 많이 훼손되었으니까.
그래, 이건 존이 어머니를 위한 생각으로 만든 곡이니, 그 느낌을 살리는 방향으로 편곡해보자. 원곡인 Meet your mother in a dream에 현대장르에 걸 맞는 트렌드한 감성과 멜로디를 집어넣고, 랩 파트도 추가해서 대화를 주고받는 다는 느낌으로······ 편곡 방향을 잡으려고 했는데, 그러자니 한 가지 문제점에 봉착했다.
편곡은 작곡의 의도를 해치지 않은 선에서 이루어져야하는데, 심사위원들이나 시청자들은 In your dreams라는 곡만 알지 Meet your mother in a dream라는 곡은 알지를 못하니까.
물론 설명을 해주고, 원곡을 듣게 해줘도 되는 일이기는 하지만 뭔가 밍밍하다.
인생이라는 게 내가 겪은 일은 비극이고, 남들이 보기에는 희극일 수가 있으니까. 그냥 아, 그런가보다 하고 말겠지.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해서는 그 감동을 최고로 이끌어내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단순히 곡을 부르는 그 이상의 무엇인가가 필요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게 바로 제임스 리다.
만약 제임스 리를 심사위원석에 앉혀 놓고, 이 곡을 듣게 한다면? 내 의도대로 편곡만 잘 이루어진다면 노래 듣고 눈물 흘릴 확률 백 프로다. 내면 가장 깊숙이 쳐 박혀 있는 한을 건드리는데, 누가 안 울고 배겨?
만약 그런 장면이 연출 되면, 이건 그냥 게임 셋이다.
세계적인 락 밴드의 보컬리스트가 한국에서 방영되는 오디션프로그램에 특별 심사위원으로 초대 된 것도 이슈가 될 만한 일인데, 플레어의 무대를 보고 눈물을 흘린다?
아주 난리가 날거다. 생각만 해도 절로 흐뭇해진다.꼭 그렇게 하고 싶은 열망에 이글거린다.
“영삼아, 뭐 좋은 방법 없을까? 제작진 측에 요청해서 섭외를 좀 해달라고 해볼까?
-그러지 마시고, 직접 해보는 건 어떠십니까?
“직접?”
“아······!”
영삼이의 말을 듣는 순간 문득 머릿속에 기똥찬 생각이 퍼즐 맞추듯 짜 맞추어진다.
“그래! 직접! 그러면 되겠네! 혹시 제임스리의 메일주소, 연락처 이런 거 알 수 있어?”
-물론입니다. 지구상의 존재하는 데이터화된 정보들은 언제든지 열람 가능합니다. 마침 지금 제임스리는 한국에 들어와 있군요. 정기적으로 입국을 해서 아직도 어머니의 행방을 찾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일이 술술 풀리려니까 타이밍도 기가 막히다.
“좋아. 그러면, 메일을 발송해줘. 음, 내용은··· ‘당신을 특별 심사위원으로 초대 합니다. 플레어가 당신을 위한 무대를 마련했습니다.’ 정도로 짧게 해주고, 편곡한 인트로 부분에서 1절까지 이어지는 한 30초 정도까지만. 조금 듣고 감질나서 궁금해서 미쳐버리게끔. 그거 음악파일로 변환해서 메일에 첨부해 줄 수 있지?”
-네.
“아, 그리고 내용에 한국 예능프로그램 케이팝 리그 챌린지 제작진이라고도 넣어줘. 혹시 스팸메일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니까. 이 정도만 적어놔도 매니저나 기획사를 통해서 연락 하겠지. 설마, 이렇게 밥상까지 차려줬는데, 제작진 측에서 떠먹지도 못하진 않을 테고.”
제임스리가 메일을 받고, 놀라서 방송국에 전화를 거는 것과 그리고 캐리챌 무대에 초대되어 오는 것. 내 편곡을 보고, 눈물을 흘릴 장면까지······.
좋아. 완벽한 시나리오다.
주먹을 불끈 쥔 나는 방구석 천장에 달려 있는 관찰카메라를 힐끔 쳐다봤다.
아, 저걸 잊고 있었네.
그래도 뭔가를 보여주긴 보여줘야겠지?
*
서울에 위치한 론노호텔에서 묶고 있는 제임스 리는 샤워를 끝낸 후, 메일을 확인하다가 문득 어느 지점에서 시선이 멈췄다. 처음 본 메일주소다.
“뭐지? 방송국인가?”
아무 생각 없이 보이는 메일을 클릭했다.
종종 이런 식의 섭외메일이 들어올 때도 있으니까.
헌데, 두 줄밖에 안 되는 짤막한 내용을 보는 순간 그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리고 첨부되어 온 음악파일을 듣는 순간. 눈동자가 정신없이 흔들린다.
“어, 이건!?”
다시 재생 하고, 또 다시 재생 하고. 3번을 듣고 난 후에 제임스 리는 탈진한 사람 마냥 비척거리다가 의자에 털썩 앉았다.
이건 분명히 Meet your mother in a dream이다.
자신이 아주 오래전에 작곡을 했던.
단지 기타하나로 연주했던 인트로 부분에 건반이 추가되고, 멜로디 구간이 바뀌긴 했지만 분명했다. 누가? 대체? 왜? 이런 메일을 나한테 보낸 것일까?
내용이 눈에 들어온다.
“나만을 위한 무대라. 케이팝 리그 챌린지? 플레어?”
제임스리는 노트북을 펼쳐 포털 사이트에 플레어란 단어로 검색을 했다.
해당 기사가 주르륵 뜬다.
무대 동영상도 몇 개 있길래 클릭을 해서 봤다.
그리고는 생각에 잠긴다.
“흠. 한국 아이돌 그룹이라.”
기사 몇 개를 클릭해본 제임스 리가 핸드폰을 손을 쥐어 매니저에게 전화를 걸었다.
“톰. 혹시 한국에 케이팝 리그 챌린지라는 프로그램 알아?”
잠시 후 대답이 들려온다.
-아, 거기? 얼마 전에 In your dreams곡 편곡해서 방송프로그램에 내보내고 싶다고 연락 왔었는데. 왜 무슨 문제라도 있어?
“그냥 뭐 좀 알아볼게 있어서.”
-한국에서 방영하는 음악 오디션 프로그램이야. 요즘에 한국에서 그런 포맷으로 프로그램 많이들 하더라고.
“뭐 이상한 걸 찍거나 내보내는 프로그램은 아니고?”
-아니야. 알아보니 괜찮은 프로그램이야. 방송국도 메이저급이고. 헌데, 갑자기 그건 왜?
“그러면 혹시 나 여기 좀 나가볼 수 있을까?
-어, 어!?
당황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제임스 리가 다시 되묻는다.
“안 돼?”
-뭐,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어서 그런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싶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네가 출연하겠다고만 하면 그쪽 프로그램에서야 당연히 좋다고 하겠지. 헌데, 갑자기 엉뚱한 소리를 하니까 그렇지. 왜. 혹시 거기 프로그램 하는 사람들 중에 아는 사람이라도 있어?
“아는 사람은 아니고. 거기에 출연 팀 중에서 궁금한 팀이 있어서 그래.”
-하여간 엉뚱해. 아무튼 알았어. 내가 그쪽 프로그램 관계자랑 통화를 해볼게. 그보다 한국에 갔던 일은 어떻게 됐어?
제임스 리가 어깨를 으쓱거린다.
“늘 그렇지 뭐.”
-알았어. 모처럼 간 거니까 푹 쉬고, 내가 알아보고 연락 줄게.
“어, 기다릴게.”
*
다음 날 아침, 로비에서 촬영팀과 대기 중이던 김서연 피디에게 김철중 피디가 다가와 캔커피를 내밀면서 말을 건넸다.
“왜 아침부터 죽상이야? 그쪽 촬영이 생각처럼 잘 안 돼?”
“어땠냐고요? 어후···.”
김서연 피디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말도 마세요. 이번에 들어갈 편곡 미션··· 프로듀서도 섭외 안하고, 본인이 직접 편곡하겠대요.”
“직접? 멤버들 중 작곡할 줄 아는 사람이 있어?”
“최강민요.”
“오호, 걔가 곡도 만들어?”
“네. 만든 다네요. 본인이 직접.”
김철중 피디의 눈에 이채가 서린다.
“하긴, 요즘에는 실력 있는 싱어송 라이터들은 편곡도 직접 하고 그러더라. 시즌1에서도 그런 참가자들 있었잖아.”
“그건 혼자 부르는 발라드나 가능한 거죠. 난이도가 다르잖아요, 난이도가. 밴드 음악 편곡이 어디 쉬워요? 들어가는 악기가 몇 댄데. 그거 다 다룰 줄 알아야 편곡도 가능한 거라고요. 그런데 최강민이 그게 되겠어요?”
“하긴, 그것도 그러네. 그런데 실력은 어떤데? 어제 작업하면서 직접 봤을 거 아니야?”
물어보는 질문에 은근한 어조가 떠오른다. 식스센x급 반전 스토리라도 기대한 모양인데, 반전은 개뿔.
김서연 피디는 어제 일을 떠올리며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헝클어트린다. 얼굴빛이 거무죽죽하다.
“촬영은요 무슨···. 하나도 못 찍었어요!”
“왜?”
“방에서 혼자 작업하겠대요.”
“작업실에서 안하고?”
“방에서 작업을 해야 영감을 잘 받는대요. 선배 저 완전 망한 거 같아요. 분량도 하나도 안 나올 것 같고. 아니, 그것보다 곡 자체가 안 나오면 어떻게 하죠? 으아, 난 완전 망했어! 망했다고! 부장님이 날 죽이려들 텐데!”
김서연 피디가 절규하며 테이블 위로 쓰러졌다. 김철중 피디가 테이블에 엎어진 채 어깨만 들썩 거리는 불쌍한 후배의 자그마한 어깨를 툭툭 두들긴다.
“힘내라고. 설마 삼일을 찍는데 고작 10분짜리 분량이 안 나오겠어?”
그 후로 김서연 피디는 이틀 동안 죽자 살자 플레어를 쫓아다녔다.
이건 생존이 달린 일이라······.
원래 계획했던 것과는 조금 방향이 틀려졌지만, 그래도 쓸 만한 장면 몇 개는 건져내는 데 성공했다.
특히 그것들 중 최강민과 노아를 붙여놓은 투 샷은 꽤나 볼만 했다. 아마도 이게 방송에 나가게 되면 노아 쟤는 누나 팬들이 꽤나 붙을 것 같다.
-강민이형 어딨어?
-강민이형 어디 갔어?
-강민이형······.
말도 몇 마디 안하는 얘가 입만 열었다하면 최강민부터 찾는다.
“형, 화장실 갔어. 화장실.”
애타는 부름에 박진우가 대신 대답한다.
“아.”
그러더니 언제쯤 돌아오나 출입문을 계속 힐끔거리고 있다. 하루 종일 엄마 뒤꽁무니만 졸졸 쫓아다니는 세 살 배기 막내 놈 같다.
그걸 보고 있는 김서연 피디 머릿속에 노아가 예전에 했던 인터뷰가 떠오른다.
-연습 때 형들이 잘 챙겨준다는 말.
저 힐끔 거리는 부분을 그 인터뷰 장면에 인서트로 삽입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김서연 피디는 다시 정면을 쳐다봤다.
‘이 팀은 팀원들끼리 사이가 좋네. 안 그런 팀들도 많은데······.’
어차피 원하던 그림과는 방향성이 많이 달라졌다. 어쩔 수 없이 촬영 포인트 지점을 멤버들 간의 케미로 선회했다. 그러자 의외로 볼 것들이 풍성해졌다.
끊임없이 투덜거리면서 말로 치고 박는 장요한과 박진우와의 관계라던가, 가끔씩 툭툭 내뱉는 말로 촌철살인을 저지르는 김태현의 어록이라든지, FM급 청소년의 삶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노아의 생활이라든지.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김서연 피디는 한 가지 걱정이 계속 머릿속에 떠오른다.
최강민 얘, 편곡을 하고 있기는 한 건가? 작업하는 걸 한 번도 못 봤는데?
안되겠다 싶었는지 마지막 날 김서연 피디가 최강민을 붙잡고 물었다.
“미션 곡 편곡은 잘 돼가고 있어요?”
“네. 거의 다 완성됐어요. 이제 연습만 하면 돼요.”
“아, 그래요?”
자신만만한 대답에 못내 불안하긴 했지만, 그래도 대답을 듣고 나자 무거워진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진다. 병아리 오줌만큼.
그래도 뭔가를 하기는 하고 있구나.
그 과정이 궁금하긴 했지만, 그건 관찰 카메라 테이프를 수거해서 살펴보면 된다. 어차피 촬영이 끝나고 나면 할 일이 그것밖에 없으니까.
“그런데 편곡 방향은 어떻게 잡았어요? 어··· 잠깐만요.”
때마침 전화가 걸려오기에 그녀가 양해를 구하고, 핸드폰을 손에 쥐었다.
“어, 선배. 무슨 일로 전화를······ 뭐라고요!?”
갑자기 김서연 피디의 눈이 점차 커지더니, 진짜예요? 라는 소리만 몇 번이나 내뱉는다. 기쁨, 환희, 좋아 어쩔 줄 모르겠다는 표정이 그녀의 얼굴에 순차적으로 떠오른다.
전화건 사람은 김철중 피디였다. 그녀의 전화 대화를 슬쩍 듣고 있던 최강민은 제임스 리의 섭외가 잘 이루어졌다는 걸 알아 차렸다.
전화를 끊고, 그녀가 붉게 상기된 표정으로 말했다.
“와, 대박사건! 제임스 리 아시죠?”
“모를 리가 없죠. 이번 미션 곡의 보컬인데.”
“제임스 리가 이번 라운드 플레어 공연에 특별 심사위원자격으로 참가한다고 하네요. 와, 도대체 어떻게 섭외를 했지? 진짜 이런 건 생각지도 못했는데.”
그녀를 보고 있던 최강민의 얼굴에 슬쩍 미소가 떠오른다.
“잘됐네요. 진짜.”
“아참, 그런데 우리가 어디까지 이야기를 했죠?”허둥거리던 김서연 피디가 손뼉을 쳤다.
“아, 맞다! 편곡 방향! 원곡자를 초청한 만큼 진짜 편곡이 잘 나와야 될 텐데요. 어떤 식으로 편곡을 했는지 좀 알려주시겠어요?”
“발라드에요.”
“네?”
“감미로운 발라드로 편곡 방향을 잡았다고요.”
순간 김서연 피디의 눈이 커졌다.
*
김서연 피디는 촬영팀과 철수하기 직전 여기저기 설치해놓은 관찰카메라를 수거했다. 그리고 그날 저녁 SBN방송국 편집실에 똬리를 틀었다. 발라드란 소리를 듣고, 걱정 되서 잠을 잘 수가 있어야지.
32G메모리 카드 12개 분량을 확인하려면, 오늘은 꼬박 밤을 새도 모자란다. 찍어놓은 분량을 빨리 확인해야 편집 점을 어떻게 잡을지, 그림을 어떻게 이어붙이고 자막을 넣을지 구도가 나오게 되는 거니까.
첫 번째 메모리카드를 넣었다. 필요 없는 부분은 빠르게 돌리고, 최강민이 방안에 들어간 다음부터 재생을 했다.
화면 속 최강민이 기타와 미니건반을 들고 방 안으로 들어온다. 그리고 책상 위에 노트북을 올려놓는다. 포털 사이트에 떠있는 이것저것을 클릭해보더니, 이내 방밖으로 나간다. 그리고는 한참 후가 지나도록 들어오질 않는다.
김서연 피디는 옆에 놓여있는 메모리 카드 박스에 거실 촬영 분이라고 붙여 있는 박스를 열어, 2번 슬롯에 넣고 재생시켰다.
옆 화면에서 거실로 나간 최강민이 멤버들과 수다를 떨고 있는 장면이 나온다. 뭔 얘기를 나누나 싶어 봤더니, 흔한 주변잡기 이야기다. 며칠 전에 컴백한 걸 그룹, 게임에 대한 이야기, TV에서 나오는 방송인들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들.
그러다가 잠시 후, 멤버들이 자기들 방으로 한명씩 들어가고, 최강민도 방으로 되돌아 들어온다. 침대에 잠시 걸터앉더니, 이내 벽 한쪽에 세워놓은 기타를 잡는다. 다시 김서연 피디의 시선이 원래 화면으로 향한다.
“이제 뭔가를 좀 보여 주려나?”
김서연 피디가 턱을 괴고, 상체를 모니터 쪽으로 기울였다. 화면 속 최강민이 튜닝을 하려는지 줄감개를 몇 번 만지더니, 이내 손가락을 현에 대고 튕겨내기 시작한다. 듣기에도 꽤 좋은 솜씨다.
오, 쟤 이제 봤더니 기타 좀 치는구나.
최강민이 튜닝을 끝낸 기타를 내려놓더니, 의자를 밀고 건반 앞에 선다.
그러더니 건반을 천천히 두들긴다. 헌데, 듣다보니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듯한 멜로디다.
김서연 피디는 한참을 듣다가 고개를 갸웃했다.
어, 이거 In your dreams이랑 상당히 비슷한데?
재생을 일시정지 시키고, 핸드폰을 꺼내 음원을 재생했다.
비교해서 들으니 보다 확실해졌다. 파괴적인 선율이 감미롭게 재해석 되어 있고, 덤비라고 소리 지르던 샤우팅 구간이 듣기 좋은 멜로디로 바뀌어 있다.
순간 김서연 피디의 눈동자에 놀라운 이채가 서린다.
점점 최강민의 행동이 이상해진다. 명상을 하듯 눈을 감더니, 누구랑 대화를 하듯 끊임없이 중얼거리고 있다. 때론 허공을 악보지라고 생각하듯 손을 휘젓기도 하고.
간혹, 예술을 하는 사람들 중에 저런 유형들이 있다. 흔히 접신 왔다고 하는.
그 어떤 사차원적인 세계의 존재에게 예술적 영감을 받기 위해 하는 행동들. 실제로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곡가들 중에도 작업을 할 때 저런 기이한 행동들을 보이는 이들이 있다.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천재 작곡가로 알레리노 그레토가 딱 저랬다.
한참을 그러더니 또 건반을 신나게 두들긴다. 마치 미친놈처럼.
그리고 그 멜로디에 가사를 실어 넣기 시작한다. 듣기 좋은 허밍음이 들려오는 순간···.
갑자기 화면이 치직거리며 노이즈가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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