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듀스 나노머신-33화 (33/124)

플레어, 꽃길 걷자 (2)

SBN 예능국 로비 테이블.

목에 사원 증을 걸고 있는 두툼한 점퍼를 입은 안경 쓴 사내와 코트를 입은 단발머리 여성이 테이블 의자에 앉아 있다.

남자는 케이팝 리그 챌린지의 연출을 총괄하고 있는 김철중 피디고, 나머지 한명은 김서연 피디다. 주변에는 카메라 팀들이 촬영 장비를 늘어놓은 채 대기 중이고, 부산하게 움직이는 모습들이 보인다.

김철중 피디가 김이 모락모락 나는 자판기 커피를 홀짝였다. 뜨거운 김 때문에 안경에 서리가 끼자 그가 안경을 벗어 티셔츠를 잡아당겨 안경 알을 문질렀다.

“결정했어? 어느 팀 따라갈지?”

“선배는요?”

“나야 뻔하지. 샤인.”

오늘은 미션카드봉투를 전해줌과 동시에 해당 팀들의 멤버들의 생활을 관찰하기 위해 카메라 팀을 파견하는 날.

각 팀마다 작가들이 한명씩 붙기는 하겠지만, 연출자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은 현장 분위기에서부터 조금씩 차이가 있다. 그래서 우승이 가장 유력한 두 팀에 피디둘이 붙기로 한 것이다.

현재 케이팝 리그 챌린지 종합 평가 1위는 샤인이고, 2위는 플레어.

1, 2위가 우승자리를 놓고 각축전을 벌이고 있는 상황이고, 3위부터 나머지까지는 도저히 실력이나 인지도 면에서 두 팀에게 상대가 되질 않는다.

잠정적으로는 이들 두 팀을 제외한 다른 팀들은 분량을 뽑기 위한 땔감 같은 존재들로 내부적으로 결론 났다.

종합평가점수는 심사위원단의 평가점수가 50프로, 온라인 인기투표를 50프로로 반영해서, 점수를 합산되는데, 플레어가 심사위원들한테 가장 좋은 평가를 받긴 했지만, 온라인투표 현황은 샤인이 압도적으로 1위다.

거의 2배 이상의 차이다. 그건 비단 플레어뿐만이 아니라 참가 전원 팀들에게도 해당되는 말이다.

아마 참가했던 서른 세 팀의 팬보다 김은우의 팬이 더 많을 거라는 이야기까지 나돌 정도였으니까.

“김은우가 워낙 강력하잖아. 아마 플레어가 심사위원단 평가점수에서 계속 1등을 받는다고 해도, 종합점수로는 샤인한테는 안 될걸?”

“글쎄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요. 예선전부터 플레어를 유심히 지켜보고 있는데, 얘네 들이 뭔가 한건 해낼 거 같단 말이죠.”

그 말을 들은 김철중 피디가 웃는다.

“누가 드라마 국에서 온 사람 아니랄까봐 웬 반전을 그리 좋아해? 설마 촬영도 드라마처럼 찍어 올 건 아니지?”

“어? 지금 비꼬시는 거예요? 그리고 언제 적 이야기를 하시는 거예요! 그거 벌써 3년 전이거든요!?”

농담 섞인 그의 말에 김서연 피디가 눈을 흘기며, 김철중 피디의 팔뚝을 철썩철썩 때린다.

“아야, 농담이야, 농담. 발끈하기는. 아파!”

“그러니까 맞을 짓을 왜 해요? 그거 내 아킬레스건인 거 잘 아시면서!”

두 사람은 대학 2년차 선 후배로, 나란히 SBN사에 입사했다.

김철중 피디는 예능국으로 김서연 피디는 드라마 국으로. 헌데, 잘나가는 김철중 피디와는 다르게 김서연피디는 벌써 드라마 2개를 시원하게 말아먹고, 후배 밑에서 미니시리즈 연출자, 혹은 짤막한 단막극 메인피디나 맡는 신세가 됐다.

그걸 본 김철중 피디가 예능이나 같이 찍자며 살살 꼬드겨 데리고 온 게 벌써 3년 전이다.

맞은 부위를 문지르는 김철중 피디를 보며, 김서연 피디가 넌지시 묻는다.

“선배는 샤인이 우승할 것 같아요?”

“당연한 거 아니야? 걔네들이 플레어보다 실력이 조금 딸리긴 해도, 그 정도면 볼만한 정도고, 그리고 무엇보다 인지도가 있잖아. 첫 방 나가고 김은우 걔네 팬클럽 회원 수가 벌써 2만 명이 넘었어. 그 정도면 벌써 어지간한 연예인 급이야. 인정할 건 인정해 줘야지. 플레어는 걔네한테 안 돼.”

“음, 그래도 인지도는 좀 낮아도 실력이 있으니 충분히 승산 있지 않아요? R&N회사 빨 이름도 있고. 최종라운드까지는 아직 시간이 있으니, 쌓을 시간은 충분하잖아요? 혹시 또 알아요? 촬영도중 뭔가 하나가 팍! 하고 터져 줄지?”

“뭐 샤인은 회사가 밀려? 엔틱도 R&N못지않은 큰 회사라고. 게다가 그쪽은 이번 미션 듣고, 스타 작곡가까지 미리 세팅해놨다고 하더라.”

“누굴요?”

“최정 작곡가.”

김서연 피디의 얼굴에 놀란 표정이 떠오른다.

“와, 쎄다. 최정 작곡가라면 지금 외국에 있는 거 아니었어요? 듣기로는 A.윌리스랑 앨범 작업 중이라고 하던데?”

“그거 잠깐 스톱시키고, 모셔 왔다고 하더라. 그것도 왕복 VIP항공 티켓까지 줘가면서. 아무튼 내가 봤을 땐 게임 끝났어. 최정 작곡가 그래도 예능 몇 번해 봐서 잘 하잖아? 그 양반 나올 때마다 시청률 팡팡 터지는데.”

“아.”

“R&N에서 어느 작곡가를 섭외해놨을지는 몰라도, 아마 최정한테는 안될 거야.”

*

“안녕하세요. 카메라 팀입니다.”

아침 10시쯤 차조영실장과 함께 케리챌 VJ팀이 숙소로 찾아왔다. 문을 열어주자, 카메라를 들고 있는 남자들이 인사와 함께 거실, 방, 부엌을 돌아다니며 소형 관찰카메라를 달아 놓는다. 차조영 실장이 한참동안 그것을 지켜보더니, 멀뚱히 서 있는 내게 다가와 작은 말로 속삭였다.

“나도 주의를 주겠지만, 너도 멤버들 잘 챙겨야 돼. 시청자들한테 책잡힐 말들은 절대 하면 안 돼. 알았지?”

“걱정 마세요.”

뒤늦게 신발을 벗은 김서연 피디가 숙소 안으로 들어왔다. 붙임성 좋은 생글생글한 미소를 띤 채 나와 멤버들에게 고개를 숙인다.

“안녕하세요. 김서연 피디입니다. 최강민군이죠? 제가 운 좋게 플레어를 맡게 됐네요.”

“아, 네.”

“카메라는 3일 동안 달아놓을 예정이에요. 화장실을 제외한 모든 곳에 카메라를 설치해놓을 거예요. 그러니 혹시 옷 갈아입으시거나 그러실 때는 사각지대나 화장실을 이용해주세요. 혹시나 불편한 일이 있거나 외출하실 때는 꺼놓으셔도 돼요. 카메라 작동 법을 알려드릴게요.”

담당피디의 웃는 낯에도 멤버들은 카메라라는 말에 벌써부터 얼어 있었다. 김서연 피디가 카메라 작동법과 주의사항을 말해주고 있지만, 내가 봤을 때 넋 나간 채 고개만 끄덕거리는 게, 나중에 다시 물을 확률 백 프로였다.

“아, 맞다. 미션봉투.”

설명을 마친 김서연 피디가 품속에서 자그마한 봉투를 꺼내 내게 내민다. 어느 틈엔가 그 장면을 찍기 위한 카메라가 따라 붙었다.

“이게 뭐에요?”

“열어보세요.”

멤버들의 기대 속에 내가 그것을 열자, 봉투 정면에는 큼직한 글씨고 ‘In your dreams’ 라는 곡명 쓰여 있다.

“이번 3라운드 미션 곡이예요. 이것을 팀 분위기에 맞게, 편곡을 해서 불러주시면 돼요. 참고로 곡은 스텝들끼리 무작위 뺑뺑이를 돌려서 추첨했어요. 공정성을 위해서 추첨하는 장면도 나중에 방송에 내보낼 거예요.”

김서연 피디의 말이 이어진다.

나는 가만히 미션봉투에 쓰여 있는 글씨를 쳐다봤다. 멤버들도 그것을 내려다보고 고개를 갸우뚱 거린다. 모두가 똑같은 표정이다.

In your dreams.

도대체 이게 누구 노래지?

*

“누구 곡인지 아시겠어요?”

김서연 피디가 묻는다.

“어······. 음.”

나는 잠깐 고민했다.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솔직히 말하자면 몰랐다··· 가 맞다.

처음 제목 명을 봤을 때 한 3초 동안 멍 때렸으니까.

헌데, 그것을 인지하는 순간 그에 관련된 정보들이 머릿속에 삽시간에 스치듯 지나간다. 이건 모두 영삼이의 데이터베이스 안에 들어있던 정보겠지. 그리고 그 데이터는 고스란히 내 머릿속에 떠올라 입을 거쳐, 밖으로 빠져 나간다.

“베드 보이즈 노래 아니에요?”

“어? 베드 보이즈를 아세요?”

‘오.’하는 감탄성이 담긴 표정이 얼굴에 떠올랐다 사라진다.

내가 입가에 미소를 띠운 채 말했다.

“미국 밴드 그룹으로, 1996년 1집 앨범을 내고 1999년, 2000년도에 아메리칸뮤직 어워드, 올해의 아티스트, 앨범, 그룹 상을 탔고. 2012년도에 마지막 앨범을 끝으로 활동 중단했잖아요. 대표곡으로는 leaves, all about me가 있으며, In your dreams은 3집 수록 곡이었잖아요.”

“와.”

멤버들은 물론 담당 피디도 입을 떡 하고 벌린다.

놀랐겠지. 아마 놀랐을 거다.

이 장면이 방송에만 나가게 된다면 내 대중적인 이미지는 단순한 아이돌에서 음악을 많이 아는 지적인 아이돌로 업그레이드 될 게 분명하다. 방송이 별거 있어? 이런 식으로 차근차근 이미지를 구축해 나가는 거지.

“의외네요. 강민군 나이또래들은 이 밴드를 잘 모를 텐데. 락 좋아하시나 봐요?”

“음악이라면 장르가리지 않고, 다 좋아합니다.”

그때 이곳저곳에 카메라를 설치하던 스텝의 음성이 들려왔다.

“카메라 설치 다 끝났습니다!”

거실 한켠에서 시계를 들여다본 차조영 실장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저기, 피디님. 카메라 설치 끝났으면 회사 연습실로 슬슬 이동하시죠. 곧 애들 연습 시간이라서요.”

“네, 그러시죠.”

우리들은 숙소에서 나와 승합차에 올라탔다. 김서연 피디와 VJ한 명이 카메라를 들고 따라붙는다. 가만 보니 승합차 내부에도 소형 카메라 2대가 설치되어 있다. 이건 또 언제 달아놓은 거야?

내가 카메라를 보고 있자 김서연 피디가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말한다.

“카메라는 신경 쓰지 말고, 평소 하시던 대로 하시면 돼요. 편집은 저희가 알아서 잘해드릴 테니, 너무 걱정 마시고.”

그런데 그게 말처럼 잘 되나? 내 일거수일투족이 방송을 통해서 나오게 된다는데, 신경이 쓰이지 않는다면 말이 안 되지. 멤버들은 하나같이 뻣뻣한 자세로 정면만 바라보고 있다. 평소에는 잘 까불기도 하는 장요한마저도 벙어리마냥 입을 꾹 다물고 있고.

뭐라도 해야겠다 싶어서 내가 멤버들을 돌아보며 물었다.

“다들 미션 곡 모르지? 혹시 들어본 사람 있어?”

다들 눈만 껌뻑거릴 뿐, 손드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나는 음원사이트에 들어가서 해당 음원을 재생시키고, 핸드폰 볼륨을 높였다.

“그러면 가는 길에 우선 노래나 좀 들어보자.”

샤샤샥.

사방에서 귀가 모여든다.

탁탁탁. 드럼스틱소리와 함께 시작된 곡이 차 안에 울려 퍼진다.

누가 밴드 곡 아니랄까봐 시작부터 80, 90년도에 한참 부흥했던 특유의 밴드 감성노래가 진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인트로 부분이 끝이 나고.

지징거리는 일렉 기타의 소리와 함께, 광란의 도가니가 시작됐다.

고막을 계속 후려치는 듯한 파괴적인 선율, 드럼과 일렉기타는 누구 소리가 더 큰지 시합을 하고 있다. 그리고 보컬의 목소리가 두 악기를 찍어 누르려는 기세로 끼어든다.

꺄오오오오오. 샤우팅 창법이 더해지며 노래가 절정에 도달한다. 노래에 쓰여 있다. 이것이 바로 로큰롤이다! 다 덤벼! 이 새끼들아!!!

가히, 영혼까지 끌어 모은 외침이다.

그때 당시는 파괴적이고, 고막을 후려치는 듯한 락 음악이 성행하던 시절이라 대부분 밴드 음악이 다 이랬다. 그것이 제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절규라 할지라도 예외는 아니다. 곡  속의 남자도 그렇다. 감미로운 세레나데를 불러줘도 시원찮을 판국에 연인에게 저렇게 소리만 질러대니, 도대체 무슨 생각인거지?

재생이 끝나자, 멤버들이 입이 벌린 채 눈만 껌뻑거린다. 아주 넋이 나가 있다.

얼굴에는 모두 다 똑같은 표정이 떠올라 있다. 초등학생이 엄마손 잡고 귀신의 집에 들어갔다가 나왔을 때 딱 그 표정이다.

어···.

음···.

그러니까 이걸 편곡을 해서 우리들의 색깔로 다시 불러야한다는 거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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