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서 뚝 떨어진 곡 (3)
고대하던 케이팝 리그 챌린지의 첫 방송 날.
나와 멤버들은 모두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거실에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으아, 형 너무 떨려요. 어떡해! 어떡하지!?”
장요한이 손톱을 물어뜯으며, 중얼거린다.
“가만히 좀 앉아 있어. 너 때문에 티비 소리가 안 들리잖아!”
“불안해서 그렇지! 나 오늘 티비에 나온다고 주위에 다 자랑해놨단 말이야! 부모님들도 방송 보고 계실 텐데, 나 막 이상하게 나오는 건 아니겠지?”
“걱정하지 마. 넌 원래 이상하니까.”
“이게, 진짜!”
장요한과 박진우는 늘 그렇듯 투닥거리고 있고, 김태현은 가만히 내려앉은 눈동자로 티비를 주시하고 있다. 노아는 러그에 쭈그리고 앉아 숨을 졸이며, 고개를 들고 있고.
10분간 이어진 광고가 드디어 끝이 나고, 누군가의 외침소리와 함께 장면이 전환된다.
“시작한다!”
심사위원과 아이돌 34팀의 사진들이 빼곡히 화면을 가득 메우고, 불빛이 소등되듯 한 장씩 사라진다. 이내 큰 화면이 떠오르고, 각 팀들의 짤막한 인사들이 시작된다. 출연 팀들의 각오를 다지는 멘트들과 함께 인사들이 뒤따르고, 팀 인사가 끝이 나자 건물 밖에서 캐리챌을 응원하기 위한 팬들의 인터뷰로 넘어간다.
누구 오빠 파이팅, 떨지 말고 잘해요. 늘 응원할게요. 등등.
출연 팀들을 위한 훈훈한 응원 메시지가 전달되고, 마침내 첫 라운드 미션을 위한 첫 번째 팀이 무대 위에 등장한다.
척 보기에도 긴장감이 줄줄 흐르는 듯한 표정들.
-MR나오길 기다리나본데. 우리는 그런 거 없어요. 예선전은 무반주로 치를 거예요.
허진 심사위원의 말에 참가팀 전원이 얼음이 됐다. 카메라가 멤버들의 얼굴을 확대해서 잡아내고, 그 감정들이 고스란히 화면을 통해 전달된다.
다시 봐도 황당하다. 진짜 저때 현장 분위기는 난리도 아니었지.
관객석에 앉아 있는 팀들의 수근거림, 첫 번째 팀들의 그 넋이 나간 모습. 편집으로 리액션 장면들을 기가 막히게 붙여 놨다. 그 같은 생생한 표정들이 카메라를 타고 고스란히 전국에 전파되어 나갔다.
이렇게 티비로 편집된 영상들을 보니 그때 받았던 기분이 더 생생하게 느껴진다.
드디어 첫 번째 팀의 무대가 시작되고, 그때부터 도장깨기도 아닌, 멘탈깨기 식의 심사위원들 혹평이 폭풍처럼 몰아친다.
그리고 각 팀의 무대 후의 반응들이 인서트로 지나간다. 이어서 VJ가 따낸 무대 후의 인터뷰 영상도 삽입된다. 다들 실력의 절반도 발휘를 못했다며 울고불고, 난리도 아니다. 세상에 이런 법이 어딨냐면서.
정말 형편없는 팀들의 무대 분량은 정말 30초도 채 되지 않았다. 잘하는 팀도 길어야 2분을 넘지 않았고.
그리고 드디어 기다리던 우리의 무대 차례가 됐다.
나의 사인과 함께 무대가 시작되고, 그것을 긴장한 채로 보고 있는 멤버들이 잠시 후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어어··· 지금 3분은 족히 지난 것 같은데? 우리 건 왜 편집 안했지?”
“2절로 벌써 넘어갔어. 우리 것만 엄청 길게 나와!”
우리는 5분 20초짜리 무대는 편집 하나 없이 고스란히 방송에 나갔다.
그리고 중간 중간 우리의 무대를 지켜보고 있는 다른 팀들의 반응과 심사위원들의 리액션 컷이 삽입되며, 흥분과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그리고 무대를 끝낸 후 심사위원들의 극찬을 담은 모습까지.
특히나 차승민이 가만히 소름 돋은 팔뚝을 쓸어내리는 장면은 그야말로 압권이었다. 그의 표정이 플레어의 무대가 얼마나 훌륭했는지를 말해주고 있다.
마지막으로 무대에서 내려오며, 질질 짜고 있는 장요한의 인터뷰 모습이 보인다.
플레어 무대가 끝이 난 후, 캐리챌 홈페이지 채팅창에는 글들이 홍수처럼 쏟아진다.
-오, 방금 그팀 뭐예요? 완전 대박.
-플레어요. 개 잘하죠?
-완전 넋 놓고 봤음. 이정도면 더할 필요도 없이 그냥 우승이겠는데요?
-얼굴도 다 존잘임. 특히 센터 최강민 완전 심쿵. 나 덕통사고 당했음. 구급차 빨리.
└옆에서 구경하다가 나도 사고 당함. 22222
-헐, 지금 샤인 무시함?
-샤인은 김은우 빼고 볼거나 있나? 솔직히 실력은 잽도 안 되지. 인정할건 인정하셈.
글들이 읽을 틈들도 없이 휙휙 사라진다. 대체적으로 다 좋은 반응들이다.
거실은 그야말로 흥분의 도가니였다.
애들이 서로 얼싸안고 난리도 아니다. 그도 그럴 것이 누가 봐도 다른 팀과는 반응이 극명하게 갈리니까.
넷상에 올라와 있는 글들도 하나같이 나쁜 글들이 없다.
그리고 반응은 외부에서도 왔다.
가장 첫 번째로 터진 건 박진우의 핸드폰이었다.
그리고 정말 10초도 되지 않아 두 번째, 세 번째 벨소리가 연달아 들려온다.
멤버 녀석들의 부모님, 친인척, 학교 동기, 연습생 친구들.
물론 내 핸드폰도 난리가 났다. 개인 톡, 단체방 톡, 문자 등등. 숫자가 너무 빠르게 치고 올라가는 통에 확인할 엄두도 나질 않는다.
방송 잘 봤다. 축하한다. 이제 뜨는 일만 남았구나. 등등. 기분 좋은 메시지와 응원 말들이 가득하다.
핸드폰을 들고, 방으로 들어간 노아가 잠시 후 거실로 나왔다. 뭔 일인지 얼굴이 발갛게 상기되어 있다. 내 앞에 척하고 앉더니, 할 말 있는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본다.
핸드폰을 쥐고 있는 손가락이 쉴 새 없이 꼼지락 거린다.
“저어··· 형.”
“왜, 나한테 뭐 할 말 있어?”
“엄마 아빠가 방송 잘 봤대요.”
“그래?”
“저··· 칭찬받았어요. 잘한다고.”
주체할 수 없는 웃음이 얼굴에 가득 떠올라 있다. 꾹 다문 입술 끝자락이 계속해서 움찔거린다. 나는 웃으면서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그래, 잘했어.”
*
고대하던 케이팝 리그 챌린지의 첫 방송이 나갔다.
첫방 시청률 10. 3%. 예상대로 꽤 순조로운 출발이었다.
덕분에 언론 홍보팀사무실은 플레어를 찾는 전화로 아침부터 활기가 넘쳤다.
“네. R&N 언론 홍보팀입니다.”
-YWN의 오늘의 신인 코너 작가인데요. 케이팝 리그 챌린지에 출연한 플레어를 섭외하고 싶은데요.
“오늘의 신인 코너요? 네, 잠깐만요.”
-조이방송입니다. 대구에 있는 지역채널방송. 플레어라는 그룹이 R&N소속 가수 맞나요? 섭외 때문에 연락 드렸는데.
“네, 잠깐만요. 플레어 담당 매니저님 연락처 알려 드릴게요.”
-오늘의 패션잡지 담당 팀인데요. 혹시 플레어 잡지 인터뷰 가능한가요?
“네네, 인터뷰 날짜 일정은 차후 매니저와 조율해 보셔야할 거예요. 담당 매니저님 전화번호가······.”
-부산에서 농수산홍보행사가 있는데, 플레어를······.
“행사요? 아, 당장 행사는 무리예요. 아니, 안하겠다는 말이 아니라 못해요. 부를 곡이 없어서. 네네, 다음에 다시 전화주세요.”
전화기를 내려놓은 홍보팀 여직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방송 나가더니 갑자기 플레어 찾는 전화가 많이 오네요.”
“몸값 오르기 전에 미리 섭외해놓겠다는 거지. 지금이야 뭐 불러주면 어디든지 가야 하는 형편이니까. 모르긴 몰라도 아마 다른 회사들도 다 마찬가지일걸?”
“다른 건 모르겠는데, 행사 전화 까는 건 조금 아깝네요. 으, 남들은 스케줄 안 잡혀서 못한다고 난린데.”
장선영 팀장이 웃으면서 말했다.
“어쩔 수 없지. 앨범 한 장 내지 않은 가수가 행사장 가서 뭘 불러? 커버 팀도 아니고, 다른 가수들의 노래를 부를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러니까요. 빨리 정식앨범이 나왔으면 좋겠네요. 그리고 이왕이면 대박 났으면 더더욱 좋겠고!”
“걱정 붙들어 매셔.”
툭 내던진 장선영 팀장의 말에 직원이 은근한 눈초리로 달라붙었다.
“팀장님. 이번에 플레어 타이틀곡 정해졌다면서요? 그거 최강민 자작곡이라는데 사실이에요?”
“어.”
“진짜요? 노래는 어때요? 팀장님은 들어보셨으니까 알거 아니에요. 언질 좀 해줘요. 진짜 궁금해서 그래요!”
“아직은 안 돼.”
“와, 단호박! 제가 어디 가서 막 떠들고 그런 스타일은 아닌 거 아시면서.”
직원이 입술을 삐죽거리며 눈을 곱게 흘긴다.
“아무튼 안 되는 건 안 돼. 본부장님이 적당히 기회 봐서 알린다고 했으니까 자기도 입 꾹 다물고 있어.”
“그러면 딱 한 가지만 알려줘요. 노래는 어때요? 좋아요?”
직원이 기대에 가득 찬 눈으로 장선영 팀장을 올려다봤다. 궁금증 가득한 직원을 보며, 최강민의 자작곡을 슬그머니 떠올려본 장선영 팀장의 입꼬리가 저절로 말려 올라간다. 그녀가 눈치를 보다가 작게 소곤거렸다.
“어, 대박 날 거 같아.”
“진짜요!?”
“그러니까 아무튼 대행사 관계자들 전화는 최대한 친절하게 전화 잘 받아놔. 앨범이 나오기만 하면 다 우리 고객님들이 될 테니까.”
“넵! 아. 그런데 애들은 어디 있어요?”
“오늘 두 번째 방송 날이잖아. 방송국에서 촬영하고 있겠지.”
“아, 오늘도 진짜 잘하고 왔으면 좋겠다. 그쵸!?”
*
[투데이 일보]
케이팝 리그 챌린지에 참가 중인 플레어가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뛰어난 비주얼과 실력을 내세워 무반주로 센세이션을 부른 플레어 팀은 가히 상대가 없을 정도의 독보적인 무대를 꾸려내며 평균 9.3의 점수를 받아 1위에 올랐다. 최강민, 김태현, 장요한, 박진우, 노아로 구성된 이들 다섯 명은 오는 토요일 저녁 7시 10분 sbn채널에서 만나볼 수 있다.
ㄴ플레어 1위하자♡
ㄴ플레어 1위하자♡최강민
ㄴ플레어 1위해서 음방에서 만나요!♡♡♡
ㄴ꼭 1위 해 주세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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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크업을 하기 위해 의자에 가만히 앉아 있는데, 옆에 앉아 있던 장요한이 핸드폰으로 보고 있던 기사를 내민다.
“형형! 형은 벌써 팬이 생겼나봐. 형 이름에 하트도 붙었어.”
“어, 그래?”
벌써 저 말만 다섯 번째다.
“누구지? 학생일까? 아니면 여대생?”
저 말도.
지 혼자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하늘거리는 생머리에 하얀색 블라우스와 H스커트를 입고 있는 단정하고, 세련된 여대생의 모습을.
나중에는 상상 속의 팬과 함께 팬미팅을 하고 있다.
나는 가만히 있는데, 왜 지가 더 난리야?
녀석에게는 요즘 한 가지 취미가 생겼다. 그것은 바로 댓글 읽기, 기사 찾아보기. 그리고 호들갑 떨기.
도대체 저 기사만 몇 번째 보는 거냐고! 읽은 거 또 읽고, 추가로 달린 댓글 또 읽고, 답장까지 달 기세다. 그걸 멤버들이 뜯어말리느라 한참동안 씨름했지.
하여간, 첫 방송이 나간 이후로 녀석은 연습실이든 숙소든 간에 틈만 나면 핸드폰을 꽉 쥐고, 놓질 않고 있다.
하긴, 그건 따지고 보면 멤버들도 마찬가지다. 지금 이 순간에도 핸드폰을 쥐고 있는 멤버들의 시선은 온통 쥐고 있는 핸드폰으로 가 있다.
화제가 되어 네티즌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걸 싫어할 연예인 지망생들은 아무도 없으니까.
잠시 동안 잠자코 있는가 싶더니, 이내 또 뭔가를 발견했는지 목소리 톤이 높아진다.
“형형, 그 사이 댓글 하나 더 달렸는데, 이분이 뭐라 했는지 제가 읽어줄까요!?”
“저기요! 좀 가만히 있어주면 안돼요? 분장이 안 되잖아요. 분장이!”
장요한을 담당하고 있던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참다못해 눈을 치켜뜬다. 금세 녀석이 쭈그러든다.
“아, 미안요. 너무 좋아서···.”
어깨를 늘어트리는 것도 잠시, 또 그새를 못 참고 핸드폰을 힐끔거리고 있다.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뭐라고 하지는 못한 채 입을 꽉 다물고 있고, 그 모습을 보고 멤버들과 다른 스텝들이 숨죽여 웃는다.
그리고 30분 뒤.
두 번째 무대를 알리는 FD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촬영 시작 10분 전입니다. 출연자 분들 나와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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