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듀스 나노머신-30화 (30/124)

하늘에서 뚝 떨어진 곡 (2)

방송 날짜가 코앞이라 그런지 온라인상에 케리챌에 대한 기사가 자주 보인다.

저건 아마도 케리챌 측에서 막바지 홍보기사를 계속 쏟아 붓고 있는 거겠지?

그와 더불어 케리챌에 나가게 될 그룹에 대해서도 네티즌들의 관심이 모아진다. 총 서른 네 팀의 클립영상이 홈페이지에 공개됐는데. 이게 벌써 20만뷰 조회 수를 기록 중이다.

물론 그중에는 나와 멤버들이 찍은 홍보용 영상도 있다.

멤버들끼리 도란도란 대화하고 있는 모습, 춤을 춘 후 손으로 땀을 훔치는 모습, 그리고 무대의상을 입고, 춤을 추고 있는 설정 샷. 누구에게 날리는지도 모를 환한 미소.

다른 팀들도 나오는 영상들이 다 비슷비슷하다.

보기만 해도 낯 뜨거워지는 인위적인 그런 영상들.

그런데 반응이··· 생각보다 더 뜨겁다.

솔직히 조금 놀랐다. 홈페이지에 클립영상이 걸리던 말든 네티즌은 별 관심 없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반응이 폭발적이다.

어디지역 얼짱이네, 쇼핑몰 모델이네, 인기 VJ등. 이미 팬층을 확보한 이들이 속해있는 그룹들은 벌써 실시간 검색어에도 오르고, 기사도 언급됐다. 반면 작고, 인지도 없는 회사들의 그룹은 한 줄의 기사도 언급도 되지 않고.

우리 그룹도 나름 비주얼그룹으로 실검에 오르기도 했다. 15위에 링크돼 2시간 만에 광탈 당했지만, 그게 어디냐.

장요한 녀석이 캡쳐도 해 놨다.

이 역사적인 순간은 기념을 해야 한다면서.

“전체 그룹이 비주얼을 담당해도 좋을 만큼 뛰어난 외모를 자랑한다. 플레어는 퍼포먼스, 댄스를 주무기로 장착한 신인그룹으로 칼 군무는 기본이고, 가창력과 뛰어난 랩 솜씨를 겸비했다. R&N에서 야심차게 준비해 내놓은 그룹으로 2018년 섬광 같은 발자국을 가요계 남기겠다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그만 읽어 멍청아. 몇 줄 되지도 않는 기사 읽을 게 뭐있다고. 나도 다 외우겠다.”

“이런 건 계속 봐줘야 돼. 그 아래 덧글도 달렸는데 내가 읽어줄까? n401님이 덧글 단 건데 오빠들 짱 멋져요. 제가 팬1호 해드릴게요. 특히 진우 오빠 완전 내 스타일. 야, 네가 완전 걔 스타일이래. 큭큭.”

“아, 이 미친놈아 작작 좀 하라고!”

박진우가 장요한의 목에 팔을 건다. 녀석은 살려달라고 켁켁 거리고.

쟤네들은 붙여만 놓으면 항상 저 난리다. 이쯤 되면 사이가 좋은 건지 나쁜 건지······.

한심한 눈으로 둘을 쳐다보고 있던 김태현이 슬그머니 나에게 묻는다.

“형, 요즘 작곡하고 있는 거 어떻게 돼가요? 저번에 저한테 들려준 그 곡.”

“아, 아임 베스트?”

“벌써 제목도 지었어요?”

“어, 거의 다 완성됐는데, 한번 들어볼래?”

“네. 근데, 형 있자나요···.”

목덜미를 긁적이던 김태현이 갑자기 배를 잡고 구른다. 왜 그런가 싶었는데, 노아가 옆에서 그 이유를 알려준다.

“the를 빼먹으신 거 같은데요. 아임 더 베스트.”

아, 그래서 저렇게 웃었구나.

뭐, 그거나그거나. 뜻만 통하면 됐지.

회의실 안에 노트북이 있기에 나는 usb메모리를 끼워 넣고, 볼륨을 높였다.

“자, 튼다.”

내 목소리와 동시에 떠들썩한 회의실 안이 순간 조용해졌다. 멤버들의 눈동자가 반짝거린다. 이번 곡은 꽤 쓸 만하게 나왔다는 소리에 기대 반 흥미 반이 섞인 표정들이다.

쿵쾅거리는 베이스와 더불어 흘러나오는 일렉기타의 지징거림이 흘러나오자 멤버들이 저마다 조용히 눈을 감았다.

모두가 입을 꾹 다문 시간. 아직 가사가 붙지 않은 멜로디에 내가 중간 중간 넣은 허밍소리만이 회의실 안을 가득 메운다.

*

“어, 이게 무슨 소리지?”

회의실에 들어가려던 박호영 팀장은 어디선가 음악 비슷한 소리가 들려오기에 고개를 갸웃했다. 노래 소리다. 그것은 회의실 안 살며시 열어져있는 문 틈 사이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후렴구 부분이 흘러나오는 지 반복된 비트음이 귓가에 속속 틀어박힌다. 뒤이어 경쾌하면서도 밝은 에너지가 느껴지는 멜로디가 쭉 하고 이어진다.

“애들이 노래라도 듣고 있나?”

문을 열고 들어가자 멤버들이 반사적으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박호영 팀장이 앉으라고 손짓하며 물었다.

“노래 듣고 있었어? 곡 좋네. MR이야?”

“그쵸? 팀장님이 듣기에도 괜찮아 보이죠?”

“어, 누구 노랜데?”

“이번에 강민이형이 작곡한 곡이에요.”

박호영 팀장이 순간 멈칫했다. 순간 이름을 잘못 들었나 싶어 되물었다.

“······누구라고?”

“강민이형이요. 여기 앉아 있는 최강민형.”

순간 박호영 팀장의 눈이 커진다. 이내 그의 시선이 자석 끌리듯 나에게 틀어박힌다. 입이 아닌 눈으로 묻고 있었다.

지금 내가 들은 말이 사실이냐고.

내가 어깨를 으쓱거리며 대답했다.

“그냥 한번 만들어봤어요. 요즘 작곡하는 게 재미있기에. 시끄러우면 그만 끌까요?”

“아냐. 그냥 놔둬. 그런데 진짜 강민이 네가 작곡했다고? 이곡을?”

“네.”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뭐, 누군가에게 약간의 도움을 받긴 했지만··· 일단 제가 다 한건 맞아요. 그런데 왜 오늘 이곳에 모이라고 한 거였어요? 하실 말씀 있으시면 연습실에서 하셔도 되는데.”

“어··· 그게. 원래는 타이틀곡이 나왔다고 말하려고 했는데······.”

“와, 저희 드디어 타이틀 곡 나왔어요!?”

박호영 팀장의 말에 멤버들의 눈이 금세 초롱초롱해진다. 얼마나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타이틀곡인가? 데뷔와 동시에 생과 사의 운명을 갈라놓을 수 있는 타이틀 곡. 기대가 없다면 그것은 거짓말일 거다.

헌데, 나를 쳐다보고 있는 박호영 팀장의 얼굴에 뭔가 말하기 힘든 미묘함이 깃들어있다.

“헌데··· 그보다 잠깐만. 그 전에 강민이가 작곡했다는 곡 다시 한 번 들어 볼 수 있을까?”

“네?”

“한 번만 다시 들어보자고. 처음부터 다시.”

*

팀장 3인방이 회의실에 다시 뭉쳤다.

“어때요?”

박호영 팀장이 물었다. 곡을 다 듣고 난 후 두 팀장은 말없이 입을 꾹 다물고 있다. 뭔가를 생각하는 것 같기도 하고, 또 곡을 듣고 난 후, 여운을 음미하는 것 같기도 하고.

두 팀장의 반응을 기다리는 그의 얼굴에 초조함이 서려있다.

심각한 표정을 짓던 한민아 팀장의 얼굴이 먼저 들렸다.

분홍빛이 도는 엷은 입술이 달싹이듯 움직인다. 쌍꺼풀 없는 눈 꼬리가 내려가며 입가에 웃음기가 자리 잡는다.

“좋은데요? 이게 진짜 최강민이 만든 곡 맞아요?”

“네. 확인해본 바로는요.”

“와, 걔는 진짜··· 여러모로 사람 놀라게 하는 재주가 있네요.”

장선영 팀장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을 잇는다.

“개인적으로는 우리가 들었던 그 첫 번째 곡보다 이게 더 좋네요. 중독성도 있는 것 같고. 마지막 후렴부분. 특히 이 부분은 상당히 좋아요. 따라 부르기도 좋고.”

“그렇죠? 저도 그때 그 곡은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이 강했는데, 이건 아주 귀에 팍팍 꽂히더라고요. 애들 이미지랑도 잘 어울리는 것 같고.”

박호영 팀장은 자신이 듣고 싶어 하는 대답이 두 팀장에게서 흘러나오자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본부장님한테 가서 한번 여쭤보세요. 노래 어떤지. 전 개인적으로 이곡으로 타이틀로 미는 것 나쁘지 않다고 봐요. 곡도 곡이지만 작곡이 가능한 멤버가 팀에 있다는 건 엄청난 홍보가 될테니까요.”

박호영 팀장이 노트북에서 usb를 빼며 물었다.

“그래야 겠네요. 혹시 본부장님 지금 어디계신지 아세요?”

“아마도 대표실? 아까 대표님이랑 엘리베이터타고 올라가는 것 같던데요.”

*

“어, 그래? 알았어. 내가 내려가서 한번 들어볼게.”

김관수 본부장은 전화를 받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맞은편에 앉아 있던 정도운 대표가 궁금하다는 표정을 묻는다.

“왜? 무슨 일 있어?”

“강민이 있잖아요. 최강민. 기억하시죠?”

“물론. 내가 그걸 기억 못할까?”

“걔가 이번에 곡을 하나 만들었다고 하네요. 그런데 생각보다 곡이 좋다고 와서 한번 들어보라고 난리에요. 박 팀장이.”

정도운 대표의 얼굴에 놀라움이 슬쩍 서리다 사라진다.

“그 친구가 작곡도 할 줄 안다고?”

“듣자하니 그렇다네요. 저도 들어본 적은 없지만. 다른 팀장들한테도 들려줬는데, 반응이 꽤 좋다고 하던데요?”

“호오, 그래?”

“그러면 저는 그만 내려가 보겠습니다.”

고개를 숙인 김관수 본부장이 자리에서 일어서려고 하자 정도운대표가 고개를 내젓는다.

“아니야. 그러지 말고 박팀장 보고 이리로 올라오라고 그래.”

“네?”

“나도 갑자기 궁금해지네. 최강민 걔가 어떤 곡을 만들었는지.”

*

대표실 안. 무거운 침묵만이 대표실 안에 맴돌고 있다.

박호영 팀장이 가지고 온 최강민의 자작곡의 재생은 진작 끝이 났다.

톡톡.

아까 전부터 정도운 대표는 미간을 조금 찡그린 채 손끝으로 소파 팔걸이를 건드리고 있다. 그가 생각에 잠겨 있을 때 나오는 표정이다. 맞은편에 앉아 있는 둘은 연신 그런 대표의 눈치를 살피느라 여념이 없다.

“으음···.”

얇고, 가느다란 신음성이 그의 입가에서 흘러나오더니, 이내 대표가 고개를 들었다.

드디어 침묵의 종식을 알리는 음성이 그의 입에서부터 흘러나왔다.

“이거 생각보다 더 괜찮은데?”

“그, 그렇죠? 저도 들어보고 깜짝 놀랐다니까요!”

박호영 팀장이 맞장구를 치고, 김관수 본부장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걸 진짜 최강민이 만들었다는 거지?”

“예, 멤버들 말로는 그렇답니다. 본인도 그렇게 말을 했고.”

“이거 금덩이인줄 알고 주웠는데, 알고 봤더니 다이아몬드쯤 됐나보네.”

정도운 대표가 나지막이 웃었다. 그리고는 뭔가 생각났다는 표정으로 김관수 본부장을 쳐다보며 물었다.

“전에 말한 그 실장. 최강민을 데리고 왔다던······.”

“아, 최형식 실장이요?”

“맞아. 그 친구. 그 친구 보너스는 어떻게 됐어? 내가 그때 지시했잖아.”

“네, 특별 보너스로 백만 원 지급했습니다.”

“음. 백만 원?”

정도운 대표의 미간에 자그마한 주름이 생긴다.

“······너무 작은데?”

“네?”

“이번 달에도 백만 원 더 얹어서 줘. 그래도 다이아몬든데, 백만 원은 너무 적지. 안 그래?”

“네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조치하겠습니다.”

“다른 팀장들이랑 조금 더 상의를 해보고, 다들 괜찮다 싶으면 최강민이 만든 곡 타이틀곡으로 채택 진행해봐. 프로듀서 팀이랑도 상의해서 곡 다듬어볼 부분 있나 논의해보고.”

“네.”

“그리고 이걸 홍보기사로 어떻게 써먹을지도 한번 연구해봐.”

“홍보기사요?”

“이 좋은 기회를 그냥 날려버릴 수는 없잖아. 이제 막 데뷔하는 신인그룹이 타이틀곡을 자작곡으로 들고 나왔어. 이보다 더 좋은 홍보가 또 있을까? 어떻게든 써먹어 봐야지.”

김관수 본부장이 생각에 잠기더니 이내 말했다.

“듣자하니 3라운드 미션때 편곡해서 곡을 만드는 부분이 있는데, 방송에 최강민의 작곡실력에 대한 부분이 어필이 되고, 그 곡으로 좋은 평가를 받게 되면 그때 언론에 흘리는 게 어떨까 싶습니다.”

박호영 팀장도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친다.

“네,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아직은 초기라 작곡가로서의 이미지를 구축하는 것보다는 실력이나 외모에 오롯이 집중되게 하는 편이 더 나을 것 같고, 그때쯤이면 앨범작업도 어느 정도 진행된 터라 타이밍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신인에게 붙을 작곡가 타이틀.

대중들에게 냉정하게 평가받아야 될 신인. 그것도 아이돌에게 작곡가 타이틀이 어떤 영향을 끼칠지는 아무도 모른다. 자신들이 들었을 때는 분명히 좋았던 노래가 대중들에게는 또 어떻게 들릴지 장담할 수 없으니까.

“음, 그것도 그러네.”

정도운 대표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내 두 사람을 쳐다보는 그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서린다.

“일 잘해. 두 사람.”

“칭찬 감사합니다.”

“아니야. 진짜 두 사람이 없었으면 이 회사가 어떻게 돌아갔을까 몰라.”

김관수 본부장이 호탕하게 웃으며 농담으로 화답했다.

“그렇게 생각하시면 월급을 조금 더 올려주시던가요.”

“지금보다 더? 음···. 그러면 그래줄까?”

정도운 대표가 턱을 괴고 진지한 표정을 짓는다. 그 모습을 보고 오히려 두 사람이 더 놀랐다.

“어이쿠, 농담입니다. 농담. 무슨 농담을 그렇게 진지하게 받으십니까?”

두 사람이 사색이 되자, 정도운 대표가 말없이 웃었다.

“음. 나도 농담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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