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듀스 나노머신-29화 (29/124)

하늘에서 뚝 떨어진 곡 (1)

첫 방송이 끝난 직후, 멤버들과 나는 모처럼 여유로운 일요일 오전을 느긋하게 만끽 중이다.

김태현은 방안에 틀어 박혀 프라모델을 조립중이고, 노아는 늘 그렇듯 공부 중이다. 나와 박진우는 소파에 앉아 티비를 시청하고, 장요한은 늘 그렇듯 러그 위에서 굴러다니고 있다.

티비에서 자막과 함께 연예가 정보가 흘러나오고 있다.

-[투데이 연예가 뉴스]

작곡가 청담동 날파리가 작곡가로서의 위엄을 뽐내고 있다.

한 달 수입 육천만원 이상.

지난 8일 한국음악저작권협회가 발표한 ‘2016 작곡가 수입 집계’에 따르면 청담동날파리는 해당 해 음악 저작권으로만 8억 원을 벌어 수입5위로 조사됐다.

청담동 날파리는 지난 2014년과 2015년에도 저작권 수입 10위안에 랭크되어, 20대 프로듀서로서는 가장 많은 수입을 벌어들이는 작곡자가 되어, 많은 이들의 눈길을 끌었다.

“와, 20대인데? 소득이 8억? 우와···. 부럽다.”

티비를 보고 있던 장요한이 배 아파 죽으려고 한다.

사실, 저건 나도 좀 부럽다.

“작곡가가 원래 저렇게 돈을 많이 벌어?”

“그럼요. 음원으로 출시만 해놓으면, 그게 다 돈인데요. 가수야 그 곡이 아무리 히트를 친다고 해도 곡에 대한 수입은 거의 없잖아요. 전부 작곡, 작사가랑 회사가 가지고 가지. 간혹 방송 같은데서 지나간 히트 곡 한번 불러줘서 음원순위에 재진입만 하면 또 다시 돈 왕창 들어오고, 어디 프로그램에서 노래 한번 불러주면 또 돈 들어오고. 연금 같은 거죠.”

오호, 그렇단 말이지?

나는 엉덩이를 슬그머니 떼고,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진작 왜 이 생각을 못 했나 몰라.

“영삼아. 너 혹시 작곡도 가능해?”

-창조적인 활동은 불가능합니다. 단, 도움을 드릴 수는 있습니다.

완전 단호박이네. 좋다 말았다. 자판기처럼 곡만 쭉쭉 뽑아낼 수 있다면 돈방석에 앉는 건 일도 아닐 텐데. 그래도 도움이라는 말에 귀가 솔깃해진다.

“어떤 도움?”

-내적 악상을 기호화할 수 있게끔 도와드릴 수 있고, 음악적 법칙성에 따른 구성요소 보정시킵니다. 차후, 악보화한 멜로디에 따른 악기연주를 듣는 것도 가능합니다. 그리고 떠올리는 악상에 멜로디를 입힐 수도 있습니다.

나도 모르게 ‘오.’하는 감탄성이 나온다. 그래도 이정도면 제법 쓸 만한 거 아닌가?

그러니까 요약하자면 머릿속에 떠오르는 걸 바로 멜로디화 할 수 있다는 소리지?

이것만으로도 분명 대단한 일이다. 작곡의 기본은 내적 악상을 기호화 하는 것부터 시작하는데, 그것을 생략할 수 있으니까.

순간 일 년 후, 내 미래에 돈방석에 앉아 있는 모습도 추가됐다. 입이 헤벌쭉 벌어진다. 김칫국이 사발 째 입안으로 들어온다.

“좋아. 그러면 간단한 것부터 한번 시작해볼까? 발라드. 좋아! 첫 곡은 발라드로 해봐야겠다.”

이제부터 돈을 긁어모으는 일만 남았구나!

그 후로 2시간 뒤.

연습실에 가기 위해 멤버들이 하나 둘, 거실로 나오길래 내가 나가기 전 멤버들 앞에 USB메모리를 슬쩍 내밀었다.

“내가 곡을 한번 만들어봤는데, 한 번 들어보고 갈래?”

“형, 작곡도 할 줄 알아요?”

멤버들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아직 40초짜리 밖에 못 만들었는데, 어떤가 한번 들어봐.”

내가 노트북을 가지고와 연결시켰다. 재생 버튼을 누르자 멜로디가 흘러나온다.

첫 소절을 듣는 순간 몰입감이 확 돼서 눈물을 뚝뚝 흘릴 것 같은 애잔함이 멜로디에 배어있다. 인트로부터가 예술이다.

가슴에 살며시 스며드는 어쿠스틱 기타 선율. 크으···.

피아노 반주. 크으···.

내가 만들었지만 눈물이라도 뚝뚝 흘려야할 것 같다. 헌데, 40초가 지나고, 재생된 부분까지 모두 들었지만 멤버들의 표정이 뭔가 미묘하다.

“왜, 왜? 별로야?”

내가 기대감에 잔뜩 찬 목소리로 멤버들에게 물었다.

박진우가 무뚝뚝한 표정을 유지한 채 신발을 신고 나간다.

뒤이어 장요한이 같은 표정으로 뒤따르고, 그리고 김태현도···. 뭐지?  노아가 나가려고 하기에 내가 얼른 노아의 팔을 붙잡았다.

“왜, 어떤 데? 말을 해줘야 알지!!!”

“그게요···.”

우물주물거리더니 노아가 눈치를 보며 말한다.

“인트로 부분이 ‘사랑 그때 또다시’랑 많이 비슷한 거 같아요. 간주도 쓸데없이 길고. 멜로디는 마치 90년대 발라드 듣는 기분? 그냥 전부 다 별론 거 같아요. 죄송해요. 먼저 나가보겠습니다.”

그러면서 고개를 꾸벅 숙인다.

계속된 팩트 공격에 나는 멘탈이 그만 너덜너덜해졌다.

유약하고, 어리게만 봤는데 이제 보니 할 말은 다 하고 사는 애였구나···.

“하하하. 괜, 괜찮아. 내가 처음 해봐서 그래.”

아, 작곡이 결코 쉬운 게 아니구나. 어쩐지 너무 쉽게 뚝딱하고 만들어지더라. 그렇다고 여기서 포기할 순 없지. 원래 실패는 성공이 어머니라잖아.

다음에는··· 그래! 발라드는 나랑 좀 안 맞는 거 같아.

댄스! 댄스곡을 만들어보자.

그 후로 나는 틈만 나면 작곡에 들이댔다. 방송 녹화, 미션 연습. 레슨 등. 갑자기 늘어난 스케줄에 하루가 고단했지만, 황금 알을 낳는 거위가 내 머릿속에 들어있는데 이걸 포기할 수는 없지.

실제로 작곡을 하려면, 시간도 오래 걸리고, 멜로디 화 할 수 있는 여러 악기와 장비들이 동원되어야 하지만. 나는 조용히 생각할 장소만 있으면 되니, 언제 어디서든 작곡이 가능했다. 그야말로 마법 같은 일이었다.

“이건 어때?”

-시끄럽기만 하고 별로예요.

“이건?”

-이것도 노우. 짜깁기의 끝판 왕 같은데요? 이러다가 고소 들어와요.

“이번 건 진짜 다를 거야. 새로운 감성을 갈아 넣었거든.

-이거··· 혹시 동요예요?

나쁜 놈들. 어째 칭찬하는 놈 하나 없네. 그럴 때마다 나는 칠전팔기란 사자성어를 대뇌이며, 스물 한 번째 곡을 만들어 김태현에게 들려줬다.

그래도 개중에는 이 녀석이 제일 평가가 정확하고, 솔직하게 들리는 데로 잘 말해주는 것 같아서.

“어, 이거는 괜찮은 거 같은데요?”

만들다 만 2분짜리 곡을 듣고서는 처음으로 칭찬 비슷한 말이 나왔다.

“진짜?”

“네. 농담이 아니라 진짜요. 뭔가 중독성 있게 계속 리듬이 귀에 꽂히는 거 같고. 처음에는 진짜 못 들어주겠던데.”

당연히 나는 웃음이 입가에 걸렸다. 헌데, 녀석의 이어지는 말소리에 나는 그만 뜨끔해졌다.

“그런데 형. 요즘 틈만 나면 방안에만 틀어박혀 계시던데. 방안에서 작곡하시나 봐요? 기계 장치나 뭐, 악기 그런 거 없어도 작곡이 가능한 거예요?”

“어··· 어? 노트북 있잖아. 노트북. 요즘에는 미디 프로그램이나 작곡 관련된 프로그램들이 워낙 많아서 컴퓨터만 잘 다뤄도 다 돼.”

“아, 그래요? 제가 그런 쪽은 전혀 몰라서. 형은 그런 거 잘 아시나 봐요?”

“조금? 내가 원래 작곡 쪽에 관심이 좀 많았거든.”

“아······그러셨구나.”

속으로는 조금 뜨끔했지만, 나는 태연하게 말했다.

이제 봤더니 나 연기에도 조금 소질이 있는 것 같다. 저 의심 많은 김태현이 아무런 의심 없이 넘어가는 걸 보니.

헌데, 이거 눈속임용으로 방안에 악기라도 좀 들여놔야하나?

어쨌든 이번 건 좀 괜찮다는 소리지? 그러면 뒷부분도 작업해봐야지. 혹시 또 알아? 세상을 떠들썩하게 할 어마어마한 곡이 나오게 될지?

*

점심시간이 끝난 직후. 회의실안 4명의 인원이 모여 있다.

의자에는 차조영 실장과 홍보팀 장선영과 영상기획팀 한민아 팀장이 나란히 앉아 있다.

박호영 팀장이 노트북에 usb메모리를 꽂아 넣으며 말한다.

“이번에 A&R팀에서 넘어온 곡들이에요. 개중에서 쓸 만해 보이는 곡 3곡 추린 건데, 뭐가 제일 나은지 들어보고 의견 좀 말해줘요.”

“타이틀곡 정하게요? 방송 끝나고, 앨범 내는 거니까 아직 시간 좀 남은 거 아니에요?”

장선영 팀장의 말에 박호영 팀장이 고개를 흔들었다.

“이젠 정해야 돼요. 방송 끝날 때쯤에는 앨범 낼 준비를 하고 있어야하는데, 타이틀곡이라도 미리 확실하게 선점해놔야 집중해서 연습이라도 시켜놓죠. 또 혹시 알아요? 케리챌 방송 나가고, 운 좋아 다른 방송 스케줄이라도 잡히게 될지? 그러면 시간 부족해서 안돼요.”

“하긴, 그건 또 그러네. 괜찮은 곡은 있어요?”

“여기저기서 다 받아봤는데, 이것들보다 좋은 곡이 딱히 없어요. 알잖아요. 원래 지금이 곡 비수기 시즌인거. 그래도 내부적으로 괜찮은 평가들을 받은 곡이니까. 이중에서 골라봐야죠.”

“하긴, 이맘 때쯤 곡 들어오는 게 뜸하긴 하죠. 일단 들어보고나서 이야기하죠.”

박호영 팀장이 노래를 재생시켰다. 멜로디가 흘러나오고, 5분 20초짜리 곡의 재생이 멈추자 그가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두 팀장의 반응을 살폈다.

“어때요?”

“음. 나쁘진 않은데요? 멜로디가 쉽고, 랩과 노래부분도 적절히 조화도 잘되고.”

“저도요.”

둘이 거의 비슷한 의견을 냈다.

“그래? 그러면 두 번째 곡 틀게요.”

두 번째 곡이 끝나자 두 팀장이 골똘히 생각한 표정을 짓더니, 고개를 좌우로 흔든다.

“이거보단 첫 번째가 낫겠네요. 몽환적인 느낌이 나긴 한데, 이게 또 호불호가 갈릴 수 있거든요.”

그리고 세 번째 곡이 끝이 나자 두 팀장은 알쏭달쏭한 표정을 지었다.

“이게 끝이에요?”

“응, 마지막 곡은 좀 애매하죠?”

“딱히 나쁜 건 아닌데 좋지도 않네요. 뭔가 밋밋하다고 할까. 그래도 아이돌 그룹 노래에는 후렴구쯤에 뭐가 딱 꽂히는 부분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게 없네요. 이거 누구 곡이에요?”

“BOB곡요.”

“그 사람 곡 잘 뽑는 작곡가 아니에요? 이번 곡은 왜 이런데요?”

“그러게요. 뭐, 작곡이라는 게 자기 맘대로 매번 잘 뽑히는 건 아니니까. 어때요, 두 분 생각은?”

“그래도 셋 중에서는 첫 번째 곡이 제일 낫네요. 근데 막··· 좋고, 그러진 않아요. 수록곡이라면 모를까. 타이틀곡으로 가져가긴 좀 아쉬운 느낌?”

장선영 팀장이 대답하고, 한민아 팀장도 고개를 끄덕인다.

박호영 팀장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역시 듣는 귀는 다 비슷하구나.”

그의 얼굴에 실망스러운 기색이 떠오른다. 보는 이들도 맥 빠지긴 매 한 가지다. 첫 데뷔곡인 만큼 그 중요성은 백번설명해도 부족하다.

곡 하나로 그룹전체가 빵 뜨느냐, 지느냐가 결정된다는 건 너무 잔인한 일인 것 같지만, 실제로 이 바닥이 바로 그런 곳이니까.

음원 하나가 대박이 나면 인지도가 올라가는 건 당연한 일이고, 각종 방송섭외 광고요청까지 들어온다. 반면에 음원이 묻히면 노래를 불렀던 가수들 또한 듣보잡이 되어 진흙구덩이 속에 파묻혀버리기도 하고.

그 때문에 좋은 곡 하나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갖은 청탁, 부탁, 심지어는 술수를 부려 뺏어오는 일도 이 바닥에선 비일비재하다.

장선영 팀장이 잠시 고민하는 표정을 짓더니, 뭔가 생각났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지 말고 윤선생님한테 부탁 한 번 드려보는 건 어때요? 그분 1년을 주기로 히트곡 하나씩 뽑아내시니까, 지금쯤 나올 타이밍 안됐어요? 본투비 데뷔곡도 그 선생님 곡으로 재미 좀 봤잖아요.”

차조영 실장이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이미 가봤죠. 가봤는데··· 이미 다른 팀에게 넘기셨더라고요.”

“아, 진짜요?”

“그러니 미치죠. 윤선생님이랑 같이 작업하는 프로듀서한테 들으니 꽤 잘빠진 거 같다고 말하던데. 근데, 뭐. 어쩔 수 있나요. 이미 다른 곳에 넘어간걸.”

박호영이 박수를 치며 시선을 모았다.

“자자, 그러면 의견 모아보자고요. 아무튼 셋 중에서는 첫 번째 곡이 제일 낫다는 거죠?”

“네. 헌데, 낫 베드정도?”

“아, 어디 괜찮은 곡 하나 하늘에서 뚝 하고 안 떨어지나?”

누군가의 중얼거림에 다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기성 작곡가도 연이은 밤샘 작업에 영혼을 탈탈 갈아 넣고, 수십 곡씩 만들어봐야 그중에서 겨우 쓸 만한 곡 한, 두개를 건지는 거다. 그렇게 나온 곡을 수정하고, 다듬고 하는 반복된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대중에 내놓을 만한 곡 하나가 탄생하고.

기성 작곡가들이 그러는데 하물며 신인 작곡가들은 오죽하겠는가?

그런데 괜찮은 곡이 하늘에서 그냥 뚝 떨어져?

말도 안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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