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듀스 나노머신-28화 (28/124)

케이팝 리그 챌린지 (2)

나는 가장 먼저 화장실로 갔다. 역시나 예상대로 없다. 복도를 따라 이리저리 둘러보고, 비상구도 살폈다. 슬슬 내 얼굴에도 초조함이 묻어난다. 또 어디 짱 박혀서 울고 있는 거 아닌가, 아니면 나쁜 일에 휘말린 건 아닐까? 별의 별 생각이 다 든다. 혹시나 싶어 마지막에 대기실 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아니나 다를까 녀석이 소파에 앉아 발개진 눈으로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다.

“노아야.”

내가 안으로 들어가자 노아가 얼굴을 들며, 급히 눈물을 닦으며 얼굴을 든다.

“혀엉.”

“뭐야. 왜 여기서 이러고 있어? 곧 시작할 텐데.”

“아, 그래요? 어서 나가요.”

노아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하지만 말과는 달리 부들거리는 다리를 한 발자국도 떼어 놓지 못했다. 다리에서 시작된 경련이 전염병처럼 전신으로 번졌나간다. 녀석은 사시나무처럼 흔들거리는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리더니, 이내 도로 의자 위로 주저앉았다.

그리고는 고개를 무릎 위로 파묻는다.

말소리에는 울음기가 잔뜩 섞여 있다.

“아··· 혀엉. 진짜, 저 어떡하면 좋아요?”

“뭐가 걱정이야? 연습은 제일 많이 해놓고. 늘 하던 대로 하면 되지.”

“알아요. 저도 그러고 싶은데······.”

다시 눈가에 맺힌 그렁그렁한 눈물이 아래로 똑똑하고 흐른다. 노아가 손등으로 눈물을 훔쳐내며 중얼거린다.

“아씨, 미치겠네, 진짜. 나 왜 자꾸 이러지?”

이제 봤더니 저번에 연습실에서 일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참 속이 복잡한 녀석이다. 뭐든지 참고 견뎌내는 거에 익숙한 녀석이라 겉으로는 강해 보이는데, 알고 보면 한없이 여리고, 겁도 많다. 이번에는 틀림없이 중압감 때문이겠지. 무조건 잘해야 한다는······.

나는 급한 대로 거울 앞에 놓여있는 티슈 몇 장을 꺼내 내밀며 말했다.

“왜, 무대 위에서 실수할까봐 걱정돼?”

울먹거리며 노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진짜 이날만을 기다리며, 연습하고, 또 연습했는데··· 진짜 잘해야 하는데. 그런데 앞 팀 애들이 하는 거 보니까······ 너무 겁나고 무서워요. 저도 그렇게 무대 위에서 틀리면 어떻게 하죠? 아씨, 부모님들도······ 볼 텐데, 진짜.”

이럴 땐 뭐라고 위로해줘야 할까 고민하는데, 등 뒤로 말소리가 들려온다.

“인마, 뭐 무대는 너 혼자 하냐?”

뭔가 싶어 봤더니, 멤버들이 대기실로 들어오고 있다. 김태현과 장요한, 마지막에 들어온 박진우가 어깨를 으쓱거린다.

“하도 안 오길래요. 뭔 일이라도 생겼나 싶어 걱정 돼서요.”

형들을 본 노아의 두 눈이 커졌다.

“형들···.”

김태현이 혀를 내차며 말한다.

“제일 쪼그만 녀석이 근심걱정은 다 혼자 짊어지고 있네. 영감이냐? 힘들면 힘들다고 말을 하고, 형들한테 의지도 하고 그래도 돼. 때로는 짐이 있으면 나눠지고도 하고, 그러는 게 팀이니까. 넌 꼭 나이도 어린 게 제일 어른인척 하려고 들더라? 네가 이러고 있으면 형들 꼴이 뭐가 돼?”

“아니. 저는, 그게 아니라···.”

박진우도 옆에서 거들었다.

“빨리나와 인마. 무대 위에서 실수해도 뭐라고 안 할 테니까. 그리고 실수를 하더라도 요한이같은 녀석이 하겠지, 설마 네가 하겠냐? 그리고 설령 실수 좀 하면 어때? 다 그러면서 성장하는 거지. 오늘 못하면 다음에 잘하면 되지. 안 그래?”

“맞아. 맞아.”

지 흉을 보는 데도 장요한이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친다.

갑자기 멤버들이 나타나서 나도 놀라기는 했지만, 덕분에 노아 녀석의 눈물이 쏙 들어간 것 같아 다행이다.

내가 노아의 어깨를 툭툭 두들기며 작은 말로 속삭였다.

“내가 전에 말했지? 부모님이 너를 자랑스러워하게 될 날이 올 거라고.”

“네?”

“바로 그게 오늘이 될 거야.”

아. 말해놓고도 좀 오글거린다. 그래도 말하길 잘한 것 같다.

내 위로 덕인지 아니면 멤버들의 응원 덕인지는 모르겠지만 눈썹에 눈물을 대롱대롱 매달고 있던 노아의 얼굴이 봄꽃처럼 환하게 피어났으니까.

“만약 박자를 못 맞추겠다 싶으면 딴데 보지 말고 내손을 잘 봐. 내가 신호를 줄 테니까. 알았지?”

내가 손가락을 펼쳐서 사인을 만들어 보냈다.

노아가 그걸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알았어요.”

그리고 마침내.

“플레어 팀, 무대 위로 올라가주세요!”

관객석으로 돌아온 우리에게 스텝의 외침이 들려오고.

“가자. 원 없이 보여주고 내려오는 거야!”

우리가 무대 위로 첫발을 내딛었다.

*

심사원들끼리 멤버 프로필정보를 읽으며, 의견을 나누고 있다.

“이 팀은 비주얼이 다 그냥 끝장나네요. 누구하나 빠지는 애가 없네. 이 팀도 기대 팀 중 한 팀이죠?”

“네. 온라인 사전인기 득표수도 꽤 높아요. 아무렴 R&N인데 아무나 막 내보냈겠어요? 회사 명성이 있는데.”

“홍보 영상 찍으러 갔던 팀들 말로는 이 팀이 가장 눈여겨볼만하다고 하더라고요. 실력으로 따지면 적어도 세 손가락 안에는 들 거라면서.”

차승민이 플레어에 관한 정보를 뒤적거리다가 특이점을 발견하곤 말했다.

“근데, 이 팀은 좀 특이한 애가 있네요. 최강민? 얘는 포지션이 왜 이러죠? 메인보컬, 메인댄서. 메인 포지션을 두 개나 차지하고 있네요? 리베로 뭐 그런 비슷한 건가?”

“개인적으로도 가장 눈여겨보고 있는 친구에요. 작가들 말로는 이 친구가 참가자들 중에서 제일 잘한대요.”

“그래요? 우선 한번 보자고요.”

플레어가 무대에 올라가는 순간 심사위원들은 생각했다.

와, 얘 네는 실력이 조금만 받쳐주면 아주 팬들을 쓸어 모으겠구나.

특히나 그들중 한 사람에게로 유독 시선이 많이 쏠린다. 봐도봐도 감탄할 수밖에 없는 비주얼이다.

“와, 쟤는 진짜···.”

다른 애들이 나쁘다는 게 아니라 그냥 저절로 눈길이 간다. 기럭지, 옷태, 얼굴까지. 무엇하나 빠지는 게 없다. 프로필사진을 봤을 때는 그저 유독 잘생긴 애들 중 하나구나 싶었는데, 실제로는 그야말로 헉소리가 난다. 가만히 서 있어도 그냥 달력에 나오는 모델화보 같다.

사전 인기 득표수를 가장 많이 차지한 샤인의 얼짱 김은우도 쟤한테는 상대가 안 될 것 같다. 그리고 이내 한 가지 궁금증이 자리 잡는다.

도대체 어디서 저런 애가 튀어 나온 거지?

멤버들이 무대 위에 자리를 잡고, 오르자 허진이 늘 그랬듯이 마이크를 켜고 말한다.

“플레어 팀. 곡 추첨하세요.”

그의 말에 스텝 한 명이 옆면을 가린 아크릴 상자를 들고 다가온다. 나는 상자 안으로 손을 넣어 공을 뽑았다. 뽑힌 공 표면에는 센세이션이라는 곡명이 적혀 있다.

“축하드려요. 센세이션을 뽑으셨네요.”

심사위원 말과 동시에 희비가 엇갈렸다. 관객석에 앉아 있는 이들의 입에서는 다소 안도 섞인 탄식이 들려온다. 반면에 멤버들의 낯빛은 어두워지고 있고.

그 이유는 간단하다. 바로 이 앞 팀이 이 곡으로 독설을 한바가지나 퍼먹고, 좌절하며 내려갔으니까.

리드미컬한 리듬과 한 호흡도 쉬지 않고 계속해서 이어지는 노래. 적절하게 라임처럼 섞여 나오는 랩과, 경쾌하면서도 다양한 종류의 춤사위가 볼만한 신명나는 댄스곡이다. 한 마디로 숨 쉴 틈도 없이 계속 뭔가를 보여줘야 하는 곡.

뽑을 수 있는 다섯 곡 중 난이도가 최상급이다.

하지만 난이도가 있는 만큼 잘해내기만 한다면, 그 어떤 다른 팀보다도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을 거다.

“괜찮아. 충분히 연습했잖아.”

내가 나지막하게 멤버들을 다독였다.

허진 심사위원의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온다.

“플레어팀. 시작하세요.”

정적에 휩싸여 있는 무대 위.

나는 심호흡을 크게 들이마신 뒤, 슬쩍 멤버들을 쳐다봤다. 다들 연습했던 대로 자신들의 위치를 굳건히 지키며, 내 신호를 기다리고 있다. 따지고 보면 이것이 나에게도, 그리고 멤버들에게도 첫 무대인 셈이다.

나를 주위를 둘러봤다. 몇 번씩이나 바라고, 바래왔던 무대 위.

몇 번씩 꿈속에서나 봤던 광경들이다.

현실에서는 눈앞에는 환호해주는 관객들 대신 나를 잡아먹을 듯 지켜보는 맹수 넷과 라이벌의 실패를 바라는 하이에나 떼들이 우글대지만.

영삼이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심장 박동 수치가 크게 높아졌습니다.

알아. 인마.

-흥분 상태입니다.

그것도.

-심신 안정화 모드를 실행시키겠습니다.

응.

푸시시. 들뜬 마음과 흥분이 삽시간에 가라앉는 것이 느껴진다.

우황청심환을 한 100개쯤 먹으면 이런 기분이 들려나? 이건 또 이건 나름대로 기분이 좀 이상한데.

멤버들과 눈짓을 한 후, 나는 짧게 숨을 들이쉰 뒤 나는 오른손을 들었다.

내 손에 멤버들의 시선이 집중된다.

셋, 둘, 하나.

손이 내려감과 동시에 나직하면서 숨결같이 간질이는 울림이 마이크를 통해 퍼져나간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이 그 위로 박진우의 화음이 입혀진다. 나와 박진우의 입에서 퍼져나가는 기분 좋은 목소리가 공개홀을 사정없이 두드린다.

그리고.

리드미컬한 퍼포먼스가 시작됐다. 허공을 찢는 발차기와 절제된 웨이브, 그리고 한 치의 오차도 흔들림도 보이지 않는 칼 군무. 다섯 명의 움직임이 마치 한명이 추는 것처럼 동일한 움직임을 보인다. 때로는 강렬하게, 때로는 부드럽게.

“와아······.”

반주대신 누군가의 입에서 시작됐는지도 모를 탄성이 베이스처럼 낮게 깔린다. 쉬지 않고 이어지는 노래와 퍼포먼스. 그리고 폭풍처럼 몰아치는 김태현의 랩 파트가 나오자 신명나는 지 저마다 어깨를 들썩거리고 있다.

숫제 리듬을 갖고 놀고 있다. 물 흐르듯 흘러가는 리듬 속에 박자를 쪼갠 가사들을 담는데, 랩의 황제라 불리는 언더독도 놀라는 기색이 다분하다.

랩 파트가 끝나기가 무섭게 다시 퍼포먼스와 노래가 이어진다. 격렬한 춤동작으로 인해 호흡이 거칠어질 만도 한데, 여전히 노래는 일말의 흔들림도 없다.

미션 곡을 지켜보는 이들의 표정이 한결 같아진다. 딱 그 표정이다.

-반주도 없는데, 어떻게 저렇게 물 흐르듯 노래가 이어질 수 있는 거지?

몇몇 이들은 기가 질린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쟤네들 R&N 맞지?”

“무반주에 라이븐데 저렇게 춤추면서 노래가 된다고? 저게 말이 돼···?”

노아가 혹시나 박자를 놓칠까 걱정했지만, 다행히 우려하던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새로운 파트가 이어져서 춤 동작이 나올 때쯤엔 어김없이 내손을 힐끔거리고 있다.

그리고 이어지는 하이라이트 부분.

귓가를 찢어놓을 듯한 어마어마한 고음이 스피커를 타고 공개홀을 떠나가라 가득 메운다. 그저 소리를 내지르는 게 전부가 아닌, 내면의 그 무언가가 담겨져 있는 깊은 울림이 있는 목소리다.

“어후··· 야.”

심사위원 중 한명이 소름 돋은 팔뚝은 가만히 쓸어내렸다.

영원할 것 같았던 5분 20초짜리 곡이 끝이 나고, 멤버들이 무대 위에서 저마다 거친 숨을 몰아 내셨다. 잠깐 동안의 정적이 찾아왔다.

가장 첫 번째로 마이크를 켠 사람은 허진이었다.

“이건 뭐. 5분 20초짜리 곡이 이렇게 짧다고 느껴지긴 오랜만이네요. 좀 더 보고 싶었는데 아쉽네요. 노래와 퍼포먼스. 뭐 하나 부족한 게 없었어요. 진짜 아마추어 팀 맞아요?”

“저 마지막에 소름 돋았어요. 최강민군 맞죠? 이 팀은 보컬의 색이 뚜렷해서 좋네요. 받쳐주는 박진우군의 목소리도 듣기 좋고. 이 팀은 앞으로 노래 걱정은 안 해도 되겠어요. 훌륭한 무대 아주 잘 봤습니다.”

허진에 이어 차승민의 평가도 후했다.

“랩 했던 사람이 김태현군인가요? 리듬에 스웩이 살아있네요. 라임도 좋고. 훌륭한 랩 잘 들었습니다.”

계속되는 언더독의 평가와.

“멤버들의 구성이 너무 훌륭하네요. 특히나 센터에 최강민군이 절묘하게 팀 균형을 맞춰줘요. 보통 다른 팀 센터들은 자신이 부각되어야한다는 생각에 좀 과하게 행동하는 부분들이 많은데, 최강민군은 그런 점이 없어서 좋네요. 오히려 여유 있게 팀원들을 챙기는 모습도 보기 좋고. 좋은 신체조건, 인물, 춤, 노래 뭐 하나 빠지는 구석이 없네요. 이러면 진짜 팬들이 환장할 수밖에 없어요. 첫 방 나가고 나면 난리 나겠는데요?”

홍유라의 솔직한 평가까지.

평균 9.3점으로 최고점을 받았다.

현재 받은 2등이 8.6점인걸 감안하자면 그 차이가 어마어마하다.

예스. 됐어.

나와 멤버들은 저마다 주먹을 움켜쥐며, 무대에서 내려왔다.

해냈다는 뿌듯함과 예선을 통과했다는 기쁨. 아직 채 가시지 않은 무대 위의 열기가 고스란히 얼굴에 떠오른다. 특히나 장요한은 눈물까지 글썽거리고 있다.

저거, 어째 모양새가 톡 건드리기만 해도 쏟아질 것 같은데?

노아가 뭔가 잔뜩 할 말 있어 보이는 표정으로 슬금슬금 다가오기에 내가 잘했다고 어깨를 두들겨줬다. 무대 전 봤던 긴장감에 잔뜩 휩싸였던 얼굴은 온데간데없다. 나를 보며 노아가 활짝 웃는다.

무대에서 내려오자 vj가 따라붙으며 그런 우리들의 얼굴을 카메라에 담으며 우리에게 말을 건네 온다.

“최고점을 받으셨는데, 소감 한 말씀만 해주세요. 지금 기분이 어떠세요?”

정확히는 장요한을 향해서.

눈물 젖은 인터뷰를 따내겠다는 의도가 보인다.

vj의 말이 스위치를 켰는지 그렁그렁하게 맺힌 눈물이 뚝뚝 아래로 떨어졌다.

“가암사합니다. 훌쩍, 아아프로 어··· 열심히 하는 플레어가 되겠습니다.”

그 모습에 나도 웃고, 멤버들도 웃었다. 뒤따라 장요한도 눈물을 흘리다 말고 따라 웃는다.

이렇게 다 같이 홀가분하게 웃어본 게 얼마 만일까?

내일이면 또 다른 해가 뜨고, 또 다른 목표를 위해 달려 나가야겠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모두 잊고, 마음껏 기쁨을 누리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그것은 또 다시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해주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좋아하는 멤버들을 보니, 콧잔등이 시큰하다. 나는 괜히 콧등을 쓱쓱 문질렀다.

그리고.

그 같은 사이좋은 모습들이 vj의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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