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팝 리그 챌린지 (1)
D - day.
드디어 손꼽아 기다리던 방송 녹화 첫날이 다가왔다.
그런데 어째 가장 화사한 얼굴로 아침을 맞이해야할 멤버들의 눈 밑이 모두 먹구름 낀 하늘 마냥 우중충하다.
그럴 수밖에······.
어제 저녁부터 장요한은 정서불안장애 걸린 애처럼 거실과 방만 계속 들락날락거렸다. 박진우와 김태현은 거실에서 방송 이야기하느라 날 밤을 샌 거 같고, 방에서 공부하는 줄 알았던 노아는 아침에 공책을 봤더니, 필기대신 동그라미만 빼곡하게 그려져 있었다.
그것도 몇 페이지씩이나.
잠을 못잔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소풍가기 전날 초등학생이 된 것 마냥 설레서 도통 잠을 잘 수가 있어야지.
그래도 다행인 게 잠은 못 잤어도 다들 눈빛만은 초롱초롱하다.
승합차를 타고, 30분을 달려 sbn방송국 앞에 도착했다. 주차장 들어가는 입구 중,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여학생들이 잔뜩 몰려있는 게 보인다. 응원 메시지가 담긴 플랜카드까지 들고 있는 게, 꼭 누구의 팬들 같다.
장요한이 그걸 보더니 뒷좌석에서 앉아 잔뜩 들뜬 목소리로 말한다.
“오늘 음방 녹화하는 날도 아니잖아? 설마, 케리챌 출연자들 보려고? 그러면 우리 팬들도 혹시······?”
“인마. 김칫국 마시지 말고 잘 봐. 눈깔은 폼이냐? 저기 쓰여 있잖아. 샤인 김은우라고. 아마 이중 절반 이상은 걔 팬일걸?”
박진우가 심드렁한 표정으로 대꾸 한다.
그 말은 진짜였다.
기존에 슈퍼스타M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준우승까지 간 애가 있는데, 걔를 주축으로 만든 그룹이 바로 샤인(shine)이다. 듣기로는 벌써 팬 카페 회원수가 1만 명을 넘어섰다고 하던데, 벌써 저렇게 쫓아다니는 팬들이 생겼을 줄이야.
“헐, 그거 반칙 아닌가? 이미 방송 탄 애가 왜 또 나오는 건데?”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정 궁금하면 피디님한테 직접 물어보든가.”
승합차를 주차장에다가 세워놓고, 본관 쪽으로 걸어갔다. 발을 동동거리고 있는 팬들의 모습이 보인다. 추운 겨울 두툼한 장갑을 끼고, 플랜카드를 흔들어대는 게 보기에도 진짜 지극 정성이다.
대구 얼짱 진성운, 부산 심쿵 이종혁. 티비에서나 보던 문구들이 한 가득이다. 얼씨구, 저기는 아주 지 혼자 연애까지 하는 중이다. 내 여보는 또 뭐야?
남자 아이돌 그룹의 주 팬덤층은 10대가 가장 많다고는 하지만 이건 생각 그 이상이다. 중간 중간에 20대로 보이는 여대생, 회사원도 보이지만 10대 무리들에 밀려 기도 못 펴고 있다.
“아, 저기 우리 팬도 있네요. 플레어.”
장요한이 매의 눈으로 우리를 응원하러 온 팬들을 찾아냈다.
삼일 밤낮을 멤버들과 머리를 맞대고 고민한 끝에 지어진 우리의 그룹 명.
직접 제작한 것으로 보이는 하드보드지에 알록달록 색칠까지 한 플랜카드를 우리가 나타내자 기분 좋게 흔들어댄다.
뭔가 얼굴이 간지럽고, 가슴이 몽글몽글하다.
가뜩이나 추운 겨울날, 생전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가 우리를 위해 이른 아침부터 나와 저런 관심을 보여준다는 게 사실 보통일은 아니지.
“뭐해? 어서 가서 사진이라도 한방 찍어주지 않고. 그래도 기념적인 팬들과의 첫 만남인데.”
차조영 실장이 우리들의 어깨를 툭 하고 밀친다. 장요한이 제일먼저 팬에게 다가가 추운데 왜 나와 있냐, 얼굴이 완전 다 얼었네, 다정한 말을 건네주자. 애들이 감동받아 얼굴이 터지려고 한다.
와, 이제 봤더니 쟤 팬서비스 잘하네.
우리는 기념으로 단체사진까지 찍어줬다. 여학생 한 명은 눈물까지 글썽거리며 가보로 간직하겠다고 했다. 그리고는 꼭 공식 팬 카페가 생기면 대문에 걸어놓을 거라는 말과 함께 전했다.
케리챌 스튜디오 안으로 들어온 우리는 인사를 하기 위해 심사위원 대기실에 찾아갔지만, 이미 심사위원단 대기실 밖은 인산인해를 이뤘다. 출연하는 애들은 전부 이곳으로 몰려온 모양이다.
그래도 인사는 해야겠다 싶어서 구깃구깃 들어갔다. 마치 아이돌로 가득 찬 던전 안을 헤집는 기분이다. 가까스로 심사위원들에게 얼굴 도장만 찍고 나왔다. 그리고는 곧장 지정해준 대기실로 들어갔다.
대기실은 독방이 아니라 3팀 4팀이 함께 쓰는 공동 대기실이었다. 덕분에 의자에 앉지 못한 채 서서 40여 분간 대기를 했다. 바닥에 그냥 엉덩이를 붙이고 앉는 애들도 있었다. 잠시 후 스텝들이 대기실을 돌아다니며 스탠바이를 알린다.
“10분 후 녹화 들어갑니다!”
한쪽 구석에서 거의 기립자세로 서 있던 메이크업 아티스트와 스타일리스트들의 행동들이 분주해진다. 뭔가를 얼굴에 또 찍고, 옷매를 수정해준다.
차 실장이 시계를 보더니, 이내 우리들에게 알린다.
“자, 시간 됐다.”
멤버들은 저마다 서로의 얼굴을 확인하며, 심호흡을 가다듬었다. 흥분, 긴장, 열망. 복합적인 표정들이 얼굴에 떠올랐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대기실 통로는 이미 민족대이동이 시작되고 있었다.
평균 한팀당 5명꼴이라고만 잡아도 총34팀이니까 도대체 이게 인원이 몇 명이야?
대기실 통로를 빠져나가자 넓은 공개홀과 세트장이 펼쳐진다. 무대는 거의 어지간한 소규모 콘서트장보다 크고 화려했다. 우리는 다른 팀들과 마찬가지로 공개홀 관람석에 앉아서 차례를 기다렸다.
부산하게 소리치며 움직이는 스텝들, 여기저기 눈부신 빛을 내뿜고 있는 조명들, 그 소란스러운 무대 정면 앞에는 심사위원 네 명이 단상 위 의자에 앉아 있다.
작곡가이자 프로듀서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허진. 보이그룹출신으로 솔로 앨범으로 빌보드 차트까지에 올랐던 보컬 차승민. 그리고 힙합과 랩의 황제라 불리는 언더독. 최정상급들의 가수들만 상대한다는 안무가 홍유라.
최소한 한두 번씩은 전부 오디션 프로그램을 했던 경험 있는 베테랑들이다.
이윽고, 첫 팀이 무대에 오르고, 드디어 기다리던 케리챌의 첫 미션 녹화가 시작됐다.
“으아, 우리 차례도 아닌데 왜 내가 다 떨리냐.”
그걸 보고 있던 장요한이 옆자리에서 부산을 떤다. 아닌 게 아니라 대부분 다른 팀들도 분위기는 마찬가지였다. 얼굴에는 숨길 수 없는 긴장감과 초조함이 가득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이제 곧 무대 위에서 펼칠 5분 30초의 시간이 향후 그들의 미래를 좌지우지할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예선을 치루는 방식은 간단하다. 이미 케리챌 측에서 참가팀들에게 다섯 곡을 선정해줬는데, 당일 날 뽑기를 해서 나온 한곡을 부르면 된다.
예선전은 점수제로 평가를 매겨, 34팀중 절반을 탈락시키고, 그 다음은 8팀, 본선은 4팀을 뽑고, 그리고 남은 팀들끼리 미션을 수행해서 최종 우승팀을 가리면 되는 거다.
그러니까 총 우승을 하려면 주최 측에서 내준 네 번의 미션을 수행하면 된다. 최종 우승팀에게는 음악방송에서 데뷔곡을 부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고.
첫 팀이 뽑은 곡은 ‘투 헤븐’으로, 2014년도에 투썸이라는 남자그룹이 불러 히트가 된 곡이다.
파워풀한 안무와 경쾌한 리듬. 음역대도 다소 낮은 관계로 다른 팀들에게도 선호도가 높은 곡.
헌데, 곡을 뽑아놓고, 한참동안을 대기하고 있는데도 음악이 나오질 않는다. 무대 위에 올라가 있는 팀은 물론 관객석에서도 웅성거림이 흘러나온다.
뭐지? 혹시 MR이 준비되지 않은 건가? 혹시 방송사고?
그때 허진이 마이크를 켜고, 말했다.
“뭐해요? 어서 시작 안 하고?”
“아, 음악이 안 나와서요.”
참가팀의 대답에 허진이 피식거리고, 다른 심사위원들도 따라 웃는다.
왜 웃는 거지? 그것도 잠시 뿐.
다음 이어지는 허진의 말에 나는 물론, 관객석에 앉아 있는 전원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이거 주최 측에서 재미있으라고, 말을 안 해줬나 보네. MR나오길 기다리나본데. 우리는 그런 거 없어요. 예선전은 무반주로 치를 거예요.”
이번에는 차승민이 마이크를 켜고 말했다.
“그래도 노래와 춤은 둘 다 볼 거예요. 물론 박자도. 뭐해요? 어서 시작하지 않고.”
그 말은 이곳에 있는 참가팀들 전원을 멘붕에 빠트렸다. 세상에 맙소사. 숨길게 따로 있지. 어떻게 그런 중요한 걸 안 알려줄 수가 있지?
무대 앞 한켠에서 그 반응을 지켜보고 있던 김철중 피디눈가에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옆에 있는 스텝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보인다. 표정을 보아하니 아예, 처음부터 작정을 하고 숨긴 모양이다.
카메라 한 대가 소리 없는 아수라장이 담긴 관객석의 풍경이 고스란히 담는다.
나는 그걸 보고 생각했다.
와, 방송의 세계는 진짜 가차 없구나.
결국 첫 번째 팀은 멘탈이 탈탈 털린 상태로 올라가 최악의 성적으로 내려왔다. 평균 4점대의 점수와 함께 심사위원들의 독설받이가 돼서 내려왔다. 개중에는 억울하다고 우는 멤버도 있었다.
저걸 보니 왠지 남의 일 같지가 않다. 헌데, 아무리 무반주라고 해도 저 팀은 내가 봐도 너무 했다. 아무리 맨붕 상태인 걸 감안한다고 해도 적어도 음정, 박자정도는 맞춰줄 줄 알아야지. 따지고 보면 독설을 내 뱉는 심사위원을 탓할게 못된다.
그 뒤로도 연달아 올라간 팀들이 줄이어 독설에 격파당한 채 내려온다. 심사위원들은 재미 붙인 것 마냥 계속해서 자극적인 말들을 쏟아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은 것 같아요. 다른 일을 찾아보세요.
-얼짱 출신이라더니, 얼굴만 가꾸고, 춤과 노래는 연습을 안했나 봐요? 외모에 신경 쓸 시간이 있으면 차라리 연습을 한 번 해요. 연습을.
-기대순위는 가장 높은 데, 실력은 가장 밑바닥이네요. 도대체 왜 이렇게 인기가 높은 거죠? 누가 말 좀 해 볼 사람?
-뭐, 저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네요. 돌아가셔서 더 노력하세요.
그걸 보고 있는 멤버들의 얼굴도 거무죽죽 변해간다. 우리 팀의 순서는 열두번 번째. 한 팀이 무대 오르고 미션수행하고, 평가까지 받는데 걸리는 시간은 대략 12-13분정도. 따지고 보면 30분정도쯤 남은 셈이다.
헌데 끝자리에 앉아 있던 노아가 화장실에 간다고 나간 지 한참이 됐는데도 돌아오지 않고 있다. 슬슬 걱정이 들었다.
“노아, 얘 왜 아직도 안와?”
“아마 어디 짱 박혀서 춤 연습하고 있을 거예요. 미션도중 춤 틀릴까봐 계속 걱정하던 눈치던데.”
“그래? 그러면 내가 찾아서 데리고 올게.”
내가 일어서자 노아 옆자리에 앉아 있었던 김태현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을 보탠다.
“얘가 부담감이 큰 것 같아요. 앞 팀 평가받을 때마다 안절부절못하는 것 같더라고요. 걱정 하지 말라고 말은 계속 하긴 했는데······. 부탁해요,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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