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데이 카운트 (4)
R&N본관 3층.
ㄹ 모양으로 이어진 복도에는 영상기획팀과 신인개발팀, 언론 홍보팀이 자리해 있다.
영상기획팀은 아티스트 영상 기획, visual기획, 포토 촬영 등을 도맡아 하는 부서로 보통 R&N에 소속되어 있는 연예인들의 홍보물을 제작한다. 신인 개발팀은 신인 캐스팅, 트레이닝을 맡고 있고, 언론 홍보팀은 소속 아티스트들의 홍보를 전담한다.
신인개발팀의 부서와 중간에 위치한 B회의실 안.
점심 후, 커피를 마시며 박호영 팀장과 한민아 팀장, 그 밑의 직원 둘이 테이블에 앉아 있다.
서른 살쯤으로 보이는 하얀색 뿔테안경을 쓴 여자가 다리를 꼰 채 다리를 까딱거리고 있다.
영상기획 팀장을 맡고 있는 한민아 팀장이다.
“그러니까 그쪽에서 프로그램 홍보영상을 제작하겠다는 거죠? 팀마다 만든 30초에서 40초짜리 클립 영상을 이어 붙이는 방식으로.”
박호영 팀장이 고개를 끄덕인다.
“맞아. 어제 김철중 PD랑 잠깐 통화했는데, 홍보 어떻게 할 거냐고 물어봤더니, 그런 식으로 진행할거라고 얘기하더라고. 그쪽도 이런 저런 아이디어 짜면서 머리 굴리고 있나 봐. 아직 확실히 정해진 건 아니고. 일단 기획사들 찔러보고 반응 본 다음 추진하겠다는 거지.”
“요즘에는 클립 영상으로도 홍보 많이 하니까요. 짤막해서 임팩트도 있고, 몰입감도 좋고. 가만 있어보자. 참가 팀이 얼마나 되죠? 서른 셋? 넷?”
“서른 넷. 우리 포함.”
“그러면 30초짜리로 제작해서 돌린다고 하면 17분. 중간 중간 자막 넣어주고, 적당히 시간 좀 끌어주면 한 30, 35분짜리 홍보영상이 나오겠네요. 근데··· 좀 기네요. 그 짧은 시간에 스토리 넣는 건 불가능할거 같고, 아무래도 집중도가 떨어지지 않을까 싶은데.”
“그래서 인서트 컷으로 삽입해서 영상 돌릴 건가봐. 2, 3개씩 띄워놓고 나오는 팀들 서로 비교되게끔.”
“와, 못됐다. 그거 편집 잘못 되서 나가면 큰일나겠는데요? 비교당하는 팀은 뭔 죄람. 뭐 해보기도 전에 언플에 완전 묻히겠네.”
“초반 몰이 하겠다는 거지. 띄울 팀은 확실히 띄우고, 묻을 팀은 확실히 묻고. 그림판을 어떻게 잘 이어서 붙이냐가 관건이긴 한데······.”
두 사람의 표정이 사뭇 진지하다.
여직원 한 명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시즌1때 김철중PD 편집 어떻게 했었죠? 프리스타일 랩 프로할 때는 편집가지고 욕 좀 먹지 않았어요?”
“아, 그땐 다른PD가 편집 한 거고. 김철중PD는 안 그래. 워낙 오디션 프로그램이 자극적이고 멘트 쎈 걸로만 나가다보니 악마의 편집이니 뭐니 욕을 먹긴 해도, 일부러 대놓고 엿 먹이고 그런 스타일은 아니야. 실력도 괜찮고.”
“아, 그렇구나.”
박호영 팀장의 대답에 직원들이 고개를 주억거린다.
한민아 팀장이 커피가 들어 있는 잔을 들이키며 내려놓는다.
“그러면 영상은요? 우리 쪽에서 찍어요. 아니면 그쪽에서?”
“글쎄. 아직 구체적으로 이야기가 오고 간 건 없어서 잘 모르겠네. 일단 내일 저녁에 김철중 PD랑 술 한 잔하기로 했으니까 내가 좀 만나서 이야기해보고 올게.”
“또 술이에요?”
한민아 팀장이 웃으며 묻는다.
박호영 팀장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어휴, 말도 마. 나라고 뭐 좋아서 마시겠어? 듣자하니 그 양반 요즘에 이혼을 하네 마네 하면서 짠내 풀풀 난다고 하던데 술 좀 먹이면서 하소연도 좀 들어주고 그래야 조금이라도 잘 봐주고 그러지. 이건 뭐, 팀장 달면 술 좀 덜 먹을까 싶었는데, 오히려 더 먹어. 야근도 잦고. 서러워서 빨리 진급을 하던가 해야지.”
“인마. 본부장 달면 더 해. 나 얼마 전에 병원 갔다 왔다. 의사가 응급실에 실려 오기 싫으면 술 좀 그만 먹으래.”
문이 열리며 김관수 본부장이 모습을 나타냈다.
두 팀장과 직원들이 자리에 일어선다.
“됐어들. 그냥 앉아. 커피나 한잔 하러 왔다가 뭔 얘기 하나 들어와 본 거니까.”
그의 말에 일어섰던 부하직들이 슬그머니 다시 제자리로 앉는다.
“본부장님도 어제 술 드셨어요?”
박호영 팀장의 말에 본부장이 손 사레를 쳤다.
“어제 외부 미팅 갔다가 붙잡혀서 양주 푸다가 새벽에 풀려났어. 아오, 이제 이 짓도 체력 떨어져서 못하겠다. 이제는 새벽까지 달리는 건 무리야. 너도 혹시 본부장자리에 관심 있으면 튼튼한 간이라도 미리 하나 마련해 둬. 이건 사람이 앉아 있을 자리가 못되니까.”
“어휴, 됐어요. 지금도 죽을 것 같은데. 그냥 사양할게요.”
박호영 팀장의 너스레에 모두들 큭큭거리며 웃었다.
“아, 그보다 한 팀장. 얘들 포토 촬영 스케줄 잡혔다면서?”
김관수 본부장이 한민아 팀장을 쳐다보며 물었다.
그녀가 고개를 끄덕인다.
“네. 오늘 오후요. 지금쯤 차 실장님이 애들 데리고 샵에 가있을 걸요?”
“그래그래. 아으, 이제 슬슬 시작되는 구나. 부디 잘 돼야 할 텐데.”
*
움직이던 승용차가 서서히 정지한다.
“도착했다. 여기야, 내려.”
차조영 실장의 말에 멤버들이 문을 열고 하나둘씩 내린다. 척 보기에도 엄청 고급스러워 보이는 샵이 강남 건물 숲 한가운데 떡하니 자리 하고 있다.
멤버들이 차에서 내려서도 길 잃고 엄마 기다리는 아이처럼 멀뚱멀뚱 서있자 차조영 실장이 박수를 치며 멤버들을 앞에 보이는 샾 안으로 밀어 넣는다.
“뭣들 해? 어서 들어가.”
멤버들이 들어가자 차조영 실장을 본 데스크에 있던 직원이 일반 룸이 아닌 예약 룸으로 멤버들을 안내해주고, 비어있는 의자에 앉자 곧 헤어 디자이너 다섯이 멤버들에게 붙었다. 그중 내게 붙은 담당자는 마흔이 족히 되어 보이는 남자였는데, 언뜻 보니 명찰에 JANG실장라고 쓰여 있다.
“얘네 들이예요. 잘 부탁드려요 장 실장님.”
장 실장이 멤버들을 하나씩 훑어보며, 담당 디자이너들에게 헤어스타일에 대해서 이것저것을 지시한다.
죄인마냥 의자에 앉아 뻣뻣하게 앉아 있는 멤버들을 보며, 차조영 실장이 웃으며 말한다.
“방송 나가고, 데뷔하게 되면 여기 샾에 올 일이 많아질 거야. 장 실장님이 전담해서 잘 해주실 거니까 불편한 거 있으면 실장님에게 이야기하고.”
“네.”
우리는 말 잘 듣는 병아리처럼 동시에 대답했다.
그걸 보고 장실장이 아빠미소··· 는 아니고 삼촌 미소를 지으며 웃는다.
“후후, 파릇파릇하니 좋네요. 근데 뭐 부탁하고 말게 뭐 있나? 늘 하던 대로 하는 거지. 자, 이제 일 시작해볼까?”
다른 디자이너에게 지시를 끝낸 장실장이 내 머리를 보더니 진지한 표정으로 머리 여기저기를 뜯어본다.
“얼굴 본판이 좋네. 피부도 깨끗하고. 이것저것 만질 거 없이 염색 좀 하고, 볼륨감만 살리면 되겠어. 자기는 이 상태서 머리를 조금만 더 길러. 알았지?”
의자에 앉은 다음부터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망부석 마냥 넋 놓고, 멀뚱멀뚱 앉아 있는 게 고작이었다.
남자 헤어스타일링은 그나마 여자들에 비해서 짧은 거라고 하는데, 앉아 있는 시간이 2시간이 넘어가자 나는 왜 그렇게 연예인들이 샵에서 자고 있는 장면이 화면에 많이 잡히는지를 알았다. 할 게 진짜 아무것도 없다. 연예인들은 보통 하루일과가 샾에 오는 것으로 시작한다고 하던데, 이 지겨운 걸 매일 어떻게 하는지 몰라.
충분히 자고 나왔는데도 잠이 스르르 온다.
머리가 끝나자 이번에는 소속 메이크업아티스트들이 달라붙었다.
유심히 얼굴여기저기를 쳐다보더니, 붓을 꺼내 뭔가를 바르기 시작한다. 두드리고, 바르고, 칠하고. 마치 그림을 그리는 장인 화가 같다.
졸린 눈으로 거울을 슬쩍 봤는데, 그 속에는 나 아닌 전혀 모르는 사람이 앉아 있다.
아, 이상해.
그렇게 또 한 시간이 지나갔다.
샵에서 나온 뒤, 멤버들은 서로를 보며, 다들 자기 모습이 아닌 것 같다며,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그 와중에도 이건 인생사진이라며 셀카 찍는 놈들도 있고.
준비된 옷으로 갈아입고, 다시 승합차에 구겨지듯 타서 스튜디오로 이동했다. 스튜디오에 도착해서 안에 대기하고 있는 스텝들과 사진작가의 이런저런 요구에 맞춰 정신없이 포즈를 취한다.
광고, 홍보를 위한 스틸, 스냅, 증명사진 등등. ENG카메라로 촬영도 했다. 농담이 아니라 사진은 진짜 천장도 넘게 찍었다.
병풍이 된 기분으로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고 있기는 한데, 솔직히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다. 시간이 지날수록 멤버들의 표정들이 한결같아 진다. 모두 넋이 가출했다.
거울을 보진 않았지만 나도 딱 저런 표정이겠지?
조명은 뜨겁고, 빛은 눈부시고, 나중에는 포즈를 취해도 몸에 감각이 없어져 내 몸이 내 몸이 아니다. 모델들은 보통 사진 촬영을 하면 이런 식으로 밤새 촬영도 한다던데, 내가 해보니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겠다.
나는 문득 궁금해졌다.
저렇게 많이 찍고 과연 쓸 만한 사진 몇 장이나 건질까?
어느새 밤이 찾아왔다.
솔직히 하루가 어떻게 갔는지도 모르겠다. 뭔가를 많이 한 것 같긴 한데, 넋을 놓다 깨어보니 밤이 되어 있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누가 내 머리채를 잡고, 하루 종일 질질 끌고 다닌 기분······.
돌아오는 길, 승합차 안에서 멤버들이 저마다 녹초가 된 표정으로 퍼졌다.
의자 끄트머리에 간신히 엉덩이만 걸친채 반쯤은 누워있던 장요한이 거울을 꺼내 얼굴을 이리저리 뜯어본다.
“으, 답답해. 얼굴에 가면쓰고 있는 기분이야. 방송시작하면 매일 이렇게 분장을 해야한단 거지?”
“투덜대지마. 아까 샵에서 직원들 하는 소리 못 들었어? 남자들은 여자들에 비해서 시간도 훨씬 짧다 자나.”
박진우의 대꾸에 장요한이 눈길을 홱 돌린다.
“누가 뭐래? 이상하다고 그랬지 누가 싫대!?”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노아가 뒷좌석에서 슬그머니 상체를 내밀며 대화에 끼어든다.
“그래도 저는 오늘 되게 좋았어요. 진짜 연예인이 된 거 같은 기분도 들고. 하루라도 빨리 방송해서 이렇게 형들이랑 차타고 돌아다녔으면 좋겠어요.”
“그건 동감.”
멤버들이 이구동성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차조영 실장이 운전대를 잡은 채 웃으며 말했다.
“걱정 하지 마. 이제 고작 3개월밖에 남지 않았으니까. 말이 좋아 3개월이지 그거 금방이야.”
노아는 3개월 뒤의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고 있는지 엷은 웃음을 입가에 띄며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저 방송 나가면 진짜 진짜로 열심히 할 거예요!!!”
가벼운 흥분과 열기에 휩 쌓인 노아의 말을 시작으로 여기저기서 ‘나도. 나도’란 추임새가 덕지덕지 붙는다.
그 후에 한참동안이나 방송이 나간 후에 대한 미래를 그려보며 소박한 이야기들이 오고 갔다. 데뷔를 하면 알아보는 사람이 있는지 확인하러 명동거리를 활보할 거라는 지, 대형 음식점에 사인하고 나올 거라든지, 행사 하루 10개씩 뛰어서 돈 많이 벌겠다는 놈도 있다.
그건 무리야. 인간의 몸으론 그럴 수 없어!
“형은요? 형은 데뷔하고 나면 뭐하고 싶어요?
장요한이 불쑥 나에게 묻는다.
“나?”
“형도 뜨고 나면, 하고 싶었던 게 있을 거 아니에요.”
시선이 내게로 집중된다. 내가 머리를 긁적였다. 모두들 한마디씩 하고 있는데 왜 나만 안하냐는 그런 눈초리다. 뭐, 진실게임 비슷한 건가? 아, 이거 말하기 좀 창피한데. 그래도 뭐··· 지금 분위기라면야.
“난······ 고향집 들어가는 입구에 플랜카드 걸고 사인회?”
“네? 그게 뭐에요?”
“아버지가 동네 이장님이시거든. 그게 꿈이시래. 서초리가 낳은 대한건아. 그 정도 멘트는 붙지 않을까 싶은데?”
멤버들이 킬킬거리며 웃는다. 나도 따라 웃었다.
마지막에는 장요한이 내년 겨울, 첫 눈 오는 날 다 같이 홍대거리를 걸어보자는 의견을 냈다. 과연 이중에서 누가 제일 인기 있나 확인해보자며.
그 말에 진우가 비웃음을 날렸다.
“확실한 건 넌 아니야.”
그 말에 멤버들이 또 킬킬거린다.
아직은 확실한 것 하나 없는 불확실한 미래.
나는 달리는 차안에서 생각 했다.
과연 일 년 후의 미래에서는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서 있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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