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데이 카운트 (3)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엉거주춤 앉아 있다. 연습실안에 틀어놓은 음악소리와 녀석의 숨죽여 우는 울음소리만 들려온다. 때마침 노래가 끝나고, 정적이 찾아온다.
한참 후에야 녀석이 파묻은 얼굴을 들었다.
얼굴이 엉망이다. 다행히 코피는 멎었지만 눈은 붕어처럼 부어 있고, 코는 빨갛다. 흘린 피를 제대로 안 닦아서 뺨 끝에는 여기저기 피가 묻어있고.
휴, 완전 전쟁터가 따로 없네.
나는 휴지 몇 장을 뽑아 노아에게 내밀었다. 노아가 휴지를 받아들더니 고개를 숙인다.
“고맙습니다.”
“고맙기는 뭘. 우니까 좀 개운해?”
“후우······.”
노아의 입에서 나오는 건 대답 대신 길고, 엷은 한숨뿐이다.
하긴, 저런 감정들이 운다고 해결될 리가 없지. 괜한 걸 물었네.
도대체 저 조그마한 속안에 뭘 저렇게 가득 집어넣고, 틀어막고 있는 걸까?
“갑자기 울어서 죄송해요. 넘어진 데가 아파서. 그만.”
노아가 밝은 목소리를 낸다.
분위기를 돌려보려는 듯이. 허나, 그런 것이 아니란 것쯤은 나도 잘 안다.
“왜, 학교에서 무슨 일이라도 있었어?”
무슨 말을 해줄까 고민하다가 툭 내뱉은 말에, 녀석이 단번에 얼어붙었다. 벌어졌던 입술 끝이 다시 굳게 다물어진다. 그맘때 쯤 고민이 뭐가 있겠어. 여자문제는 아닌 것 같으니, 집, 아니면 학교. 둘 중 하나라고 짐작한 거지.
나는 노아가 입을 열 때까지 잠자코 기다렸다.
한참동안이나 입을 열까 말까 망설이던 입술이 마침내 슬그머니 벌어졌다.
“오늘 학교에서 진학상담이 있었어요. 부모님이랑 같이 하는.”
“그런데?”
“그걸 생각하니 숨이 막혀서요. 저희 부모님은 제가 가수가 되는 걸 싫어하세요. 공부해서 의대나 법대가길 원하시지.”
그건 김태현에게 들어서 나도 이제 알고 있다. 두 분이 교수, 의사시랬지.
“학교에서도 진로를 확실히 정하는 게 좋겠대요. 고3이 되면 더 이상 다른 학생들 공부하는데 분위기 해칠까봐 편의 봐주기도 힘들다고 하고. 인문계 학교라 야자까지 하면 저녁 일곱 시는 되야 끝날 텐데···. 부모님은 당장 연습생 생활 그만뒀으면 하는 눈치세요. 이젠 공부만 해도 시간이 모자라다면서···. 아, 저 진짜 어떻게 하죠?”
말하면서 머리를 벅벅 긁는다.
아프게 깨물린 입술. 녀석의 내적 갈등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남들 눈에는 모든 걸 완벽히 해내는 엄친아일지 몰라도 한 걸음 물러서서 보니, 그 자리에는 현실에 지치고, 고민 많은 청소년이 서 있다.
하긴, 법대나 의대 진학이 장난은 아니지. 이제야 고민이 뭔지 짐작이 간다.
슬슬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할 시점이 다가온 거다.
녀석의 고민을 듣자, 예전 내가 했던 고민들이 떠오른다.
연예인이 되고자 꿈을 키우는 청소년들은 모두가 몇 번씩은 해봄직한 고민.
연예계의 화려한 데뷔와 성공이 바로 코앞까지 다가온 것 같고, 손만 뻗으면 그것을 움켜쥘 수 있을 것 같은데···. 현실 속에서는 그게 또 생각처럼 안 되니, 답답하고, 짜증나고 그런 거지.
아직 나이가 어리니 도전해보고, 안되면 다른 길을 찾아보라고 조언할 수 있다. 하지만 이맘때쯤 이들이 겪는 진로에 대한 고민은 결코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가볍지가 않다. 내가 그렇게 고민하고, 진통을 겪으며 성장을 했으니까 아주 잘 알지.
헌데, 아쉽게도 뭔가 말을 해주고 싶은데··· 위로도, 조언도 아낌없이 해주고 싶은데도··· 딱히 해줄 말이 없다.
남의 인생을 내가 대신 살아줄 수가 없으니까.
결국 감당과 인내. 선택 또한 본인의 몫이다.
나는 그저 내가 들었던 말들을 조금 바꾸어 그대로 돌려줬다.
그것이 조금이나마 마음의 응어리를 풀 수 있는데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램으로.
“뭐가 걱정이야? 곧 방송도 하고, 앨범도 내고 할 텐데. 그때가 되면 넌 결코 이 길을 선택한 걸 후회하지 않을 거야. 그때가 되면 부모님도 아마 너를 되게 자랑스러워하실 걸?”
“진짜요?”
“그러엄.”
내가 확신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여전히 녀석의 얼굴 한구석에는 근심이 똬리를 틀고 있다. 손가락을 한참동안이나 꼼지락거리더니, 툭하고 내뱉는다.
“헌데요. 이건 진짜 만약인데요···. 그래도 잘 안되면 어떻게 하죠?”
“그렇게 되지 않길 잘 해야지. 헌데, 걱정 하지 마. 절대 그럴 일은 없을 테니까. 지금 멤버로는 망하기가 더 힘들 테니까.”
“아··· 진짜 그랬으면 좋겠다. 방송도, 앨범도 모두 다.”
내와의 대화가 녀석의 마음의 짐을 더는데 조금은 도움이 됐는지 표정이 조금 밝아졌다.
“전 다른 형들이 부러워요. 가수한다니까 반대하는 사람은 저희 부모님밖에 없는 것 같아요. 부모님들이 반대만 안하셔도 숨통이 트일 것 같은데··· 형은 어땠어요?”
“뭐가?”
“형네 부모님은 형 가수하는 거 반대 안하세요?”
“나? 딱히 반대 안하시는데?”
오히려, 잘되라고 팍팍 밀어주시지. 항상 응원과 격려의 말씀을 보태서.
그러고 보니 전화 드린 지도 오래됐네. 두, 세 달쯤 됐나?
“형, 저 그러면 저 연습 좀 더 할게요.”
노아가 부스스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러더니 한결 가벼워진 몸으로 음악에 맞춰 다시 몸을 움직인다.
조금은 내 말이 도움이 됐나?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돌연 핸드폰으로 문자 한통이 도착했다.
[Web발신]
농협 입금 300,000원
9/22일 8:37 216028-56****19 잔액 415,567원
“어?”
웬 돈이지 싶어서 조회를 하니, 형의 이름으로 이체된 돈이다.
나는 복도로 나와 통화버튼을 눌렀다.
-어, 강민아.
“웬 돈이야? 방금 돈 들어왔던데.”
-아, 그거? 이번에 추석보너스가 조금 더 들어와서 붙였어. 그래도 명절인데, 맛있는 거라도 사먹으라고. 직접 줄까 했는데, 너 이번 추석에도 안 내려올 거 같아서.
“형도 돈 없을 텐데 뭐 이리 많이 부쳤어?”
-인마. 나 그만큼은 벌거든? 괜히 돈 없다고 다른 애들한테 기죽고 그러지 말아. 돈 더 필요하면 형한테 전화하고. 티비 같은데 아이돌 나와서 하는 이야기 들어 보니까 다들 연습생 생활 7년 8년씩도 한다고 하더라. 이번에 빵뜬 여자 아이돌 그룹 리더. 걔 누구냐. 보글보글인가? 걔도 연습생 생활 10년 동안 했다더라. 그러니까 내 말은··· 너 이제 고작 4년차니까 조금 더 해보라고. 해보고 싶을 때까지. 적어도 후회는 안 남겨야지.
감동받아야할 부분에서 나는 그만 빵 터졌다.
형이 말한 그룹이 꼭 게임 이름 같아서.
“형. 보글보글이 아니라 버블버블이거든?
-인마, 그게 뭐 중요해? 그거나 그거나지. 별일은 없고?
있지. 그것도 아주 많이. 요 근래 내가 겪은 일들이 아마 4년 동안 겪은 일을 다 합친 것보다 더 파란만장할 거다.
“나 기획사 옮겼어.”
-뭐? 왜? 어디로?
“더 크고 좋은 데로. 곧 방송도 나갈 것 같아. 앨범도 내고.”
의심 가득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혹시 회사에서 사기 치려고, 돈 달라고 하고 그러는 건 아니야? 너 그런 거 잘 알아봐야 돼. 절박한 심정에 그런 말에 혹 넘어가는 애들 많다고 하더라. 만약 그런 거라면···.
“걱정 마. R&N이라고 크고 좋은 회사야. 본투비란 그룹 알지? 시크릿 라벨이란 걸그룹도 여기 소속이고. 이름만 대면 알만한 배우들도 많아. 배우 심봉래 선생님이랑 여윤희 선생님도 여기 소속이시고.”
-아, 진짜? 그 회사에 들어간 거야? 잘됐네.
자기 일처럼 기뻐하는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들려온다. 나는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어,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 회사에서 숙소도 마련해줘서, 거기서 나 잘 지내고 있으니까.”
-이제 일이 좀 술술 풀리려나보다. 부모님이 아시면 무척 기뻐하시겠다. 부모님께는 네가 직접 말씀드리고······.
통화 너머로 아이 울음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온다. 형의 목소리가 다급해진다. 마치 전쟁 소식을 들은 병사처럼 분주해진다.
-야야, 예림이 깼다! 분유 타야 하니까 아무튼 그렇게 알고 그만 끊자.
하긴, 잘 자고 있던 애가 깼다면 그건 전쟁 난거나 다름없지.
“예림이는 잘 크지?”
-말도 마라. 하루가 몰라보게 커. 너도 한 번 보러와. 그래도 명색이 삼촌인데 가끔 조카얼굴도 봐주고 그래야지. 아참, 그리고 부모님한테 안부전화도 종종 하고. 부모님들은 너 부담 줄까봐 전화도 못하시고, 기다리고만 계시더라. 다른 게 효도가 아니야. 전화 자주해드리는 게 효도지.
“알았어. 전화 드릴게.”
-그럼 진짜 끊는다.
나는 형과의 전화를 끝내고, 잠시 망설이다가 어머니께 전화를 걸었다. 그동안은 매번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는 아들내미 안부전화 받아봤자 속 터지실 것 같아서 최대한 전화를 자제했다. 필요한 일이 있으면 형이랑 톡을 하든가 전화를 하던가 했지.
그래도 오늘은 왠지 해야 할 것 같았다.
형의 당부도 있었지만, 노아의 부모님을 생각하다보니, 우리 부모님들이 나를 얼마나 아끼시고, 사랑하시는지 조금이나마 느껴져서.
그동안 늘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는 아들이 얼마나 속 터지고, 답답하셨을까.
생각해보니 여지껏 불효만 했네.
-여보세요?
주무시다가 일어났는지 들려오는 목소리가 조금 잠겨있다.
“주무시고 계셨어요? 저예요. 둘째 아들.”
갑자기 목소리가 밝아진다.
-어, 아니야. 밥은 잘 챙겨먹고 다니고?
“엄마는 맨날 밥 먹었냐고만 물어보더라.”
나는 웃으며, 조금 전 형과 했던 이야기를 들려줬다. 물론 영삼이에 대한 이야기는 빼고.
방송에 나간다고 했더니, 어머니는 아주 자기 일처럼 좋아하셨다.
-그러면 이제 너 티비에서 볼 수 있는 거냐?
“아직은요. 3개월 후에 촬영 들어가니까 내년 초쯤에는 볼 수 있을 거예요.”
-잘 됐네. 나온다는 프로그램이름이 뭐라고?
“케이팝 리그 챌린지요.”
-케이··· 뭐?
“케이팝 리그 챌린지요. SBN채널에서 하게 될 거예요. 제가 그때가면 다시 한 번 말씀드릴게요.”
-그래그래. 아참, 너 돈은 있고? 엄마가 돈 좀 붙여줄까?
“아니요. 아직 남았어요. 그리고 형이 용돈도 줬는걸요.”
-그래, 돈 떨어지면 부담 갖지 말고, 엄마한테 재까닥 말해. 괜히 타지에서 고생하는데 돈까지 없으면 서럽고 막 그래.
들려오는 목소리에는 나에 대한 걱정, 근심이 고스란히 묻어나온다.
아, 코끝이 찡해 온다. 이럴까봐 내가 전화 안 하려고 했는데.
“엄마. 그만 끊을게요. 나 이제 그만 들어가봐야 돼. 아직 연습실이라···.”
-어? 어, 그래그래. 우리아들 힘내고. 항상 엄마가 옆에 있다는 거 잊지 마.
“응. 내년에는 돈 많이 벌어서 엄마 꼭 효도시켜드릴게.”
-내 걱정은 하지 말고, 네 걱정이나 해. 엄마는 엄마가 알아서 잘 살 테니까.
“···알았어요. 그만, 끊어요.”
전화를 끊은 나는 어두운 복도 벽에 기대 한숨을 쉬었다.
가슴 속이 가랑비에 젖은 바닥처럼 첨벙거린다.
새삼 부모님의 고마움이 느껴진다.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가수한다고 서울 간다고 했을 땐 분명 속도 상하고 그러셨을 텐데. 올 추석에도 분명 내 안부를 묻는 친척들에게 들들 볶이느라 정신없으시겠지?
생각해보면 내가 이만큼 버티고 올수 있었던 건 순전 가족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풍족한 살림살이는 아니지만 근면성실 한 부모님과 늘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무심한 듯 챙겨주는 형. 작년에 새 식구가 된 형수와 그리고 올해 태어난 조카.
늘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내게 울타리이자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는 그들. 생각해보니 여지껏 해준 거 없이 받기만 했네.
아, 진짜 성공해서 돈 많이 벌어서 몇 배로 갚아줘야지. 부모님한테 2층 전원주택 하나 사드리고, 형한테도 멋진 차 한 대 선물해주고, 형수한테는 용돈도 드리고, 그리고 조카한테는 호화스러운 럭셔리 인형의 집을 선물을··· 아, 아직 분유 먹고 있지 참.
어쨌든···.
가족 생각하니까 울적하고 콧잔등이 시큼해지고 그러네. 애잔한 음악이라도 깔리면 딱 인간극장 같을 텐데.
-원하시면 BGM깔아 드릴까요?
“아씨, 깜짝이야! 놀래라.”
영삼이가 느닷없이 말을 걸어온다. 나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컴컴한 복도에서 보이지 않는 녀석이 말을 걸어와서 진짜 놀랐다. 무슨 전설의 고향 찍는 줄 알았네.
-원하시는 것 같아서.
꺼져라 인마.
나는 음악소리가 새어나오는 연습실안으로 들어갔다. 노아가 거울을 보며, 열심히 안무를 추고 있다. 오늘 배운 걸 그새 까먹었는지 동작 연결 부분에서 버벅거리고 있다. 쟤는 공부를 잘하는걸 보니 분명 머리도 좋을 텐데, 왜 저렇게 춤 동작을 못 외우는지 몰라.
열심히 하려는 게 눈에 보여서 그런지 안쓰럽고, 측은하고, 짠하고 그렇다.
내가 딱 일주일전만해도 저런 비슷한 고민을 4년 동안이나 갖고 있었는데······.
마룻바닥위로 올라가 녀석의 옆에 나란히 섰다.
“나도 연습이나 좀 더 하다가 갈까 해서.”
그 말에 노아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묻는다.
“형은 안무도 다 외우셨잖아요? 하나도 안 틀리고 잘 추시던데.”
“어차피 집에 가봤자 잠도 오지 않을 것 같고······.”
내가 어깨를 으쓱거리자, 녀석의 입 주위가 씰룩거리더니, 이내 환하게 벌어진다.
“네, 그래요. 그럼!”
“일단 한곡 같이 맞춰보자.”
춤을 추는 도중 언뜻언뜻 나를 보는 녀석의 시선이 느껴진다. 간혹 나를 보며 ‘아, 이렇게 구나.’하는 중얼거림도 들려오고.
녀석을 보는 내 입가에 자그마한 웃음이 스민다.
아마 우리 형이 나를 보는 심정이 꼭 이랬겠지?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형과 부모님이 나한테 그랬던 것처럼 나도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
힘들어 포기하고, 주저앉고 싶을 때마다 우리 형과 가족들이 내게 손길을 내밀어 붙잡아줬던 것처럼, 큰 도움은 아니라 해도 이 애에게 관심과 온정을 담은 손길이 얹혀 진다면, 얘도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지금보다 더 행복하게 살순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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