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데이 카운트 (2)
오후 4시쯤이 되자, 모두들 체력이 방전됐다.
간식을 먹으며, 체력을 보충하고 있는데 노아가 연습실안으로 들어온다. 그러고 보면 저 녀석이 들어오는 시간은 매번 이 맘 때쯤이다. 어깨가 축 처져있고, 피곤한지 얼굴색도 별로 좋질 않다. 마치 불만이 가득한데 꾹꾹 눌러 담고 있는 듯한 표정.
뭐지? 왜 저런 표정을 짓고 있지?
그러고 보니 어제도 혼자 늦게까지 연습을 하다가 숙소로 돌아온 것 같던데······.
아침에도 가장 빨리 일어나서 식사준비를 하고, 학교 갔다가 연습실 와서 춤 연습하고. 공부는 대체 언제 하나 몰라. 아니, 공부할 시간이 있긴 있을까?
“노아 학교에서 무슨 일이라고 있었나? 표정이 왜 저래?”
노아가 탈의실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있자, 김태현이 다가와 옆에 앉는다.
“글쎄요. 부모님이랑 싸웠나?”
“부모님?”
“쟤 부모님이 연예인하는 거 엄청 싫어하시거든요. 노아가 법대나 의대 진학하길 원하세요. 부모님이 두 분 다 교수, 의사시래요.”
“아···.”
진짜로 엘리트 핏줄이라는 게 따로 있긴 있나 보구나. 어쩌면 내가 공부를 싫어하는 것도 유전일지도 몰라······.
김태현의 말에 의하면 숙소에서 노아의 학교까지는 대략 1시간정도가 걸린다. 그냥 평범한 일반 인문계 학굔데, 이것도 학교 측에서 연습생 활동을 할 수 있게 시간을 빼준 거라고 한다. 사실 연예인이 목표인 학생은 예술 고등학교로 가는 게 최선이다. 예술 고등학교는 비교적 일반 학교에 비해서 수업일수와 시간이 상대적으로 자유롭기에 대다수가 많이들 그렇게 진학을 한다.
부모님의 완강한 반대를 무릅쓰고, 자기의 꿈을 위해 포기 하지 않는 청소년이라.
멋지다. 분명 글자만 놓고 봤을 때는 멋지지만.
내 머릿속엔 한 가지 궁금증이 자리 잡는다.
쟤··· 저러고 하루에 몇 시간이나 자는 거지?
그 후 내 눈길은 계속 노아를 향하고 있다. 그냥 나도 모르게 눈이 계속 간다. 동족일지도 모른다는 그런 기분··· 은 아니고. 그냥 좀 안쓰러워 보여서.
“자자, 쉴 만큼 쉬었으면 또 열심히 춰야지? 아, 노아 왔구나.”
레슨선생이 들어와 박수를 치며 독려한다.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멤버들이 비척비척 일어선다.
나도 자리에 일어났다. 어느새 옷 갈아입은 노아가 맨 가장자리로 붙는다.
“자, 시이이- 작.”
하나, 둘, 하나, 둘. 구령에 맞춰 멤버들이 몸을 움직인다. 도대체 똑같은 동작을 몇 번째 반복하고 있는 거냐. 오늘만도 진짜 뻥 안치고 스무 번은 넘게 췄겠다. 진짜!
레슨선생이 내 속마음이라도 들었는지 손뼉을 딱딱 치며 말한다.
“지겹다고 생각하지 말고. 열심히들 춰. 첫방 때 무대 올라가서 카메라 돌고 그러면 긴장해서 노래고 순서고 다 뒤죽박죽되니까. 몸이 기억한다는 말 알지? 무조건 많이 춰. 백 번이고 천 번이고.”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천 번은 너무 하잖아.
“태현이 팔 더 뻗고, 진우 정면 보고, 원투 발 차고, 턴··· 그렇지! 거리 간격 유지하면서 왼쪽으로 이동하고.”
순간 레슨선생의 박수소리가 허공에서 멎는다.
음악 소리가 끊기고, 그녀의 날카로운 시선이 노아를 향하고 있다.
“노아. 그게 아니지. 옆에 진우랑 거리 간격 유지하란 말 못 들었어? 지금 너만 반보는 떨어져 있잖아. 대충 추려고 하지 말고. 정확하게! 칼 군무가 뭐야? 조금도 어긋남이 없이 동작을 정확하게 맞추는 게 칼 군문데, 사람들이 널 보면 정확하다고 하겠어?”
“죄송합니다.”
“네 실수는 팀원전체까지 욕먹게 할 수 있다는 걸 명심해.”
“죄송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노아가 연달아 고개를 숙인다.
그러고 보면 노아가 가장 많이 지적받고, 틀리기도 제일 많이 한다. 풀이 죽을 만한데도 늘 씩씩 한걸 보면 스트레스를 적게 받는 타입인가 싶기도 하고.
저녁 8시가 조금 넘은 시간.
탁, 탁, 탁. 회사내 불이 대다수 꺼지고, 멤버들은 하얗게 불태운 얼굴로 짐을 챙긴다. 헌데, 노아는 여전히 연습실에 남아있다. 전면 거울을 보며 오늘 지적받은 동작들을 다시금 점검한다. 장요한이 신발을 갈아 신으며 노아에게 묻는다.
“오늘도 남아서 연습하게?”
“네, 매번 지적받는데 놀 순 없잖아요. 형들 따라가려면 열심히 해야죠.”
“그래, 수고하고. 어, 근데 형은요? 같이 안가세요?”
장요한의 시선이 이번에는 벽에 기대 퍼져 있는 나에게로 향한다.
아, 기운 없어. 배고파.
내가 손을 내저었다.
“먼저들 가. 나는 조금만 쉬다가 갈 테니까.”
내 말에 다른 멤버들도 힐끔하더니 이내 등을 돌린다. 녀석이 주억거린다.
“그러세요, 그럼.”
연습실 밖으로 나가는 멤버들을 향해 노아가 박력 있게 고개를 숙이며 외친다.
“오늘도 다들 수고하셨습니다!”
“그래그래.”
멤버들이 나간 후, 노아는 곧장 음악 플레이어 쪽으로 다가가더니, 나를 힐끔 쳐다본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음악 틀고, 연습해도 되요?’ 라는 표정이길래.
“편하게 연습해. 난 신경 쓰지 말고.”
“네.”
노아가 음악을 재생시키자 하루 종일 들은 그 노래가 다시 한 번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온다. 베이스음이 강렬한 빠른 비트 음이 고막을 사정없이 때린다.
녀석이 심호흡을 하더니, 이내 음악에 맞춰 몸을 움직이기 시작한다. 나는 가만히 앉아 그 모습을 물끄러미 구경했다.
그 녀석, 참 열심히도 추네.
내가 봤을 땐 절대 춤 고자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는 아니다. 이 회사에서 눈이 몇 갠데, 그런 애를 데뷔 반에 넣었다가는 큰일 나게?
무대 의상 입혀놓고, 무대 올라가서 조명빨 좀 받고, 폭죽이나 플래쉬 터트려주면 확실히 간지가 날거다. 멤버들 중 나이도 가장 어린데다가 공부도 잘하니 방송만 타면 엄친아니 뭐니 해서 주목도도 높을 거고.
헌데, 조금 안타까운 게 춤을 환장하게 잘 추는 정도는 아니다. 재능이 아예 없어 보이는 건 아닌데, 그게 막 소름 끼칠 정도는 아니라서···. 멤버들과 같이 있으면 묻혀가고 있다는 느낌이 없지 않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퍽.
퍽?
잠깐 다른 생각에 정신이 팔려 있는 사이, 뭔가 깨지는 소리가 들린다.
이게 무슨 소리지?
고개를 들어보니, 노아가 마룻바닥에 대자로 뻗어있다.
헐. 쟤 지금 춤추다가 넘어진 거야?? 내가 다급히 일어나 노아에게 다가갔다.
“괜찮아?”
“아으윽. 괘, 괜찮아요. 다리가 걸려서 넘어졌어요.”
괜찮을 리가 없지. 얼굴부터 떨어진 것 같은데.
바닥에 엎어져있던 노아가 꿈틀대더니, 이내 잠시 뒤 얼굴을 부여잡고 서서히 몸을 일으킨다.
언뜻 보니 불빛아래 비친 코가 빨갛다.
“잠깐 다리에 힘이 풀려서 그랬어요. 이젠 괜찮아요.”
“야, 괜찮긴 뭐가 괜찮아. 코가 빨간데. 이러다 또 다칠라, 오늘은 그만해.”
내가 말렸다. 노아가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젓는다.
“아니에요. 더 할 수 있어요. 저 때문에 팀원들한테 민폐 끼칠 수는··· 아.”
녀석이 멈칫하더니, 이내 손으로 코를 쥐고는 고개를 든다. 손 끝에 피가 묻어있다.
“너, 코에서 코피······.”
“괜찮아요. 형, 죄송한데 휴지 좀 가져다주시면 안돼요?”
“어? 되지. 잠깐만!”
내가 급하게 휴지를 뽑아다주자, 그것을 태연하게 코에 가져다대며 말한다.
“제가 원래 코피가 좀 잘 나는 체질이라···.”
과로해서는 아니고?
녀석이 비척거리며 벽에 등을 대고 기댄다. 나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옆에 나란히 앉았다.
그러고 얼마나 지났을까. 어디선가 코 훌쩍이는 소리가 나서 가만히 옆을 보니 녀석의 뺨이 움찔거리며, 조그만 어깨를 들썩이고 있다. 난 아파서 그런가 싶어서 봤는데, 녀석의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뭐, 뭐야. 갑자기 이 느닷없는 상황은?
“왜 울어? 아파서 그래?”
“아, 안 울어요.”
“병원이라도 갈래?”
“아니에요. 좀 있으면 괜찮아져요.”
넘어진 곳이 아파서 우는 줄 알았다. 헌데, 눈가에 젖어있는 눈물을 훔치는 녀석의 표정을 본 순간 나도 모르게 입술을 꾹 물었다.
정리 안된 말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뭐라 말을 해주고 싶지만 입술만 움찔거릴 뿐 말이 나오진 않는다.
이 상황에서 내가 뭘 뭐라고 그래?
돈 없고, 실력은 안 늘고, 동기들은 앨범을 낸다, 방송을 나간다 신나서 떠들어댈 때, 나 혼자 쓸쓸히 집에 돌아와 샤워할 때 거울 안에 있던 내 모습, 내가 짓던 표정······.
지금 노아의 표정이 딱 그랬다.
알만하다. 분하고, 원통하고, 서러운데 이런 내 맘은 아무도 몰라주고 뭐, 그런 거지. 저 맘을 내가 왜 모를까. 방구석에 혼자 쳐 박혀 훌쩍거린 세월이 얼만데.
내색을 하지 않는 스타일이니 남들에겐 말을 못하고, 속에 잔뜩 쌓아뒀다가 뜻하지 않게 터진 거지. 미련한 녀석.
머릿속엔 한 가지 궁금증이 자리 잡는다.
도대체 왜? 대체 뭐가 부족해서···?
멤버들보다 춤 좀 못 추는 거?
그렇게 따지면 어지간한 아이돌 지망생 애들은 모두 다 나가 죽어야 되게? 아니면 노래가 안돼서? 녀석의 포지션은 서브 래퍼. 서브 보컬이다. 솔로음반을 내기에는 노래솜씨가 좀 딸려도 평균이상은 되고, 랩 실력은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다. 김태현이 메인 래퍼가 되는 바람에 서브래퍼로 밀리긴 했지만, 결코 모자라진 않는다. 오히려 나이를 생각하면 발전가능성이 더 있다고 봐야지. 헌데, 왜?
“끅··· 끄윽.”
멈춘 줄 알았던 녀석의 어깨가 다시 들썩 거린다. 노아는 아예 얼굴을 무릎사이에 파묻으며 숨죽여 울고 있다.
나는 진심으로 당황했다.
아, 미치겠네. 진짜.
다 큰 남자애가 울 땐 뭐라고 하며 달래줘야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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