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듀스 나노머신-23화 (23/124)

디데이 카운트 (1)

연습실로 들어가서 얼마 지나지 않은 후, 박호영 팀장이 들어왔다. 중대 발표할 것이 있다고 애들을 모으자, 반원 모양으로 동그랗게 앉아 귀를 기울인다.

“다들 이야기 들었지? 케이팝 리그 챌린지 프로그램에 나가기로 한 거. 그거 확정됐어. 그 방송 나간 다음 곧장 1집 앨범 발표할거야. 그렇게들 알고들 있어.”

“예스.”

그와 동시에 멤버들이 저마다 주먹을 움켜쥐고, 조용히 환호성을 삼킨다.

데뷔라는 무대가 성큼 앞당겨져서 그런지 멤버들의 눈동자에 생기가 돋아났다.

그때 장요한이 손을 번쩍 든다.

“팀장님. 근데 저희 6인조로 가는 건가요? 센터 포지션은 누가해요?”

홱. 동시에 멤버들의 시선이 일제히 장요한에게로 쏟아진다.

장요한이 순진무구한 눈빛으로 박호영 팀장을 바라본다. 박호영 팀장은 난처한 표정으로 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목덜미만 긁적이고 있다.

저, 저···. 없다없다 하더니 눈치가 진짜 없긴 없구나.

“야, 멍청아. 손 내려.”

옆에 앉아 있던 박진우가 녀석의 옆구리를 찌른다. 장요한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더니, 슬그머니 손을 내린다. 김태현의 묘한 시선이 잠시 나에게 머물렀다 박호영 팀장에게로 향했다. 잠시 동안이지만 불편한 침묵이 맴돈다.

“그게······.”

잠시 머뭇거린 박호영 팀장이 빠르게 말을 이었다.

“아마 5인조로 가게 될 거야. 그리고 승우는······ 오늘부로 팀에서 빠졌다. 회사도 옮길 예정이야. 그렇게들 알아둬.”

아. 결국 어제 엿들은 통화내용대로 흘러가게 됐구나.

“네에? 왜요!?”

“··· 넌 그냥 좀 닥치고 있어.”

그런 장요한을 보며, 박진우가 혀를 내찬다.

다른 멤버들은 예상했다는 듯이 묵직한 고개만 끄덕인다.

“자자. 아무튼 그렇게 됐으니까. 이제 5인조로 잘해서 대박 한 번 터트려보자고! 알았어, 몰랐어!?”

박호영 팀장의 활기찬 목소리에 다운됐던 분위기가 다시금 일어난다.

힘찬 대답이 흘러나온다.

“네에!”

“그리고 최강민. 넌 대표님이 보자시니까 나 좀 잠깐 따라오고.”

“저를요?”

*

“그냥 인사야. 긴장하지 말고. 웬만한 연습생들은 한 번씩 다 대표님 뵀어.”

“아, 네.”

대표실로 가는 길 박호영 팀장이 엘리베이터 안에서 긴장 푸라며, 내 어깨를 두드리며 말한다.

아, 그런 거구나. 난 또.

“대표님. 들어가겠습니다.”

이윽고 대표실 앞.

노크소리와 함께 문을 두드린 박호영이 문을 열었다.

새하얀 화이트칼라 톤의 인테리어. 화려하고, 고급스럽다기보다는 깨끗하고, 세련된 분위기가 연상되는 실내가 드러난다.

대신 사무실 안은 어마어마하게 컸다. 한쪽 구석에 골프연습을 해도 충분할 정도로.

이렇게 크고, 아늑하고, 좋은 사무실에서 즐기는 대표의 삶이란 어떤 것일까? 상상도 가질 않는다. 나야 뭐. 여지껏 살아온 하루하루가 궁상그자체여서 말이지.

“데리고 왔습니다.”

서류를 내려다보고 있던 대표가 얼굴을 든다.

바로 이곳 R&N의 대표 정도운.

누구와도 결코 타협하지 않을 것 같은 강인한 느낌. 세련된 분위기. 책상 위에 놓인 아메리카노를 손에 쥐고 마시는데, 그 모습이 마치 화보 속 한 장면 같다. 마치 커리어가 쌓인 중년 남자의 성공한 라이프를 보여주는 듯 했다. 아마 기획사 대표가 아니라 연기자를 했어도 성공했을 얼굴이다. 모르긴 몰라도 사장님 역이란 역은 죄다 쓸어담았을 거다.

그가 부드러운 미소로 둘을 반긴다.

“어서 와.”

미소만큼이나 부드러운 목소리. 진짜 세상 다 가졌다. 저런 사람 밑에서 일을 한다면 직원들도 일할 맛나겠다. 나도 만약 나이가 들어 중년이 된다면 저렇게 품위 있게 늙을 수 있을까?

그가 호출 벨을 누른다.

비서가 들어오자 미소 띤 얼굴 그대로 나에게 묻는다.

“커피 괜찮지?”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러면 강비서 커피 두 잔 부탁해. 자, 우리는 잠시 저기 가서 앉지.”

차를 시킨 정도운 대표가 일어나 소파가 놓여있는 곳으로 가자고 손짓한다. 나는 박호영 팀장과 함께 맞은 편 소파에 앉았다.

그가 느긋한 표정으로 깍지를 낀 채 나를 한참동안이나 보더니 소파에 기댄다.

“실물이 더 잘생겼네. 화면으로 볼 때보다 더. 아주 여자 팬들 좋아서 난리 나겠어. 안 그래, 박 팀장?”

“하하하, 대표님. 그렇게 말하시면 얘 설레서 잠 못 잡니다.”

“에이, 설마. 그런 이야기 많이 듣고 자랐을 거 같은데······.”

많이는 아니고 조금요. 말은 하지 않았지만 이만큼 잘생겨진 건 며칠 안 되서 말이죠.

사실 나도 일어나서 거울을 볼 때마다 깜짝깜짝 놀란다. 어렸을 때는 한창 시골 뒤뜰에서 뛰놀고 자란 촌놈이라 기미, 잡티 같은 것이 조금 있었는데, 지금은 마치 원래 없었던 것 마냥 흔적도 없다. 피부도 조금씩 하얘지는 느낌이고.

오늘 버스타고 오는데 요한이가 묻더라. 형 무슨 화장품 쓰냐고.

내가 아무것도 안 바른다고 하니까 다들 달라붙어 내 얼굴을 관찰하느라 난리도 아니었지.

“어때. D&M에 있었다고 들었는데, 여기서는 지낼 만하고?”

정도운 대표가 묻는다.

“네. 신경써주신 덕분에 잘 지내고 있습니다.”

“그거 다행이네. 아참, 그리고 어제 승우 때문에 곤란한 일이 있었다며?”

그건 또 어떻게 알았지? 내 얼굴에 그렇게 글씨가 쓰여 있나?

정도운 대표가 웃으며 대답한다.

“아까 승우랑 변호사가 계약서 정리한다고 다녀갔거든. 걔 얼굴에 멍이 들어있더라고. 그래서 추측해봤지. 그런데 자네 얼굴은 비교적 멀쩡하네? 적어도 몇 대는 맞았을 줄 알았는데. 혹시 운동했어?”

“네? 조금요.”

정도운 대표가 고개를 끄덕거린다.

“이 바닥에서 오래 버티려면 꾸준히 운동해주는 게 좋아. 나도 옛날엔 많이 싸우고 그랬어. 이왕 싸울 거라면 맞는 것보단 때리는 쪽이 낫지. 안 그래?”

이쯤 되자 그가 왜 나를 보자고 했는지가 궁금해졌다. 이런 시답잖은 이야기나 하려고 나를 부른 건 아닐 테고.

비서가 차를 가지고 오자, 나는 눈치를 보며 커피 한 모금을 홀짝였다.

느긋한 태도로 나를 관찰하듯 쳐다보고 있던 그가 질문을 하나를 툭하고 내던졌다.

“대충 돌아가는 상황은 이제 다 알 테고···. 내가 왜 승우와 자네 중에서 자네를 선택 했을까?”

순간 망치로 머리를 맞은 것처럼 멍해졌다.

뭐?

아니, 뭐는 반말이고. 네?

맞은편에 앉아서 정도운 대표를 바라봤다. 시커멓고, 속내를 알 수 없는 눈동자가 나를 보며 반짝인다.

희미한 미소가 걸려 있는 그의 입 꼬리가 슬그머니 벌어지더니, 속삭이듯 묻는다.

“······궁금하지 않아?”

그러고 보면 승우를 R&N에서 내보낸 건 내가 아니라 대표였지. 깜빡 잊을 뻔했다.

처음 김승우와 아버지와의 통화내용을 엿들으면서 나는 속으로 엄청 궁금해 했다.

도대체 대표란 작자는 김승우와 그의 아버지와의 비즈니스. 두 마리 토끼를 버리고 왜 나를 선택한 걸까?

고작 영상 한 번 본 것으로? 일면식도 없는데? 말이 안 된다. 도대체 정도운 대표는 나에게서 뭘 봤길래 그런 선택을 한 거지?

실내에 무거운 침묵이 맴돈다. 나는 어떠한 대답도 하지 못한 채 꾹 다문 입술만 움찔거렸다.

그가 다행히 대답을 기대하진 않은 듯 빙긋 웃었다.

처음 들어와서 본 그 미소지만, 왠지 느낌이 묘하게 달랐다.

“승우가 내게 그랬지. 자기가 꼭 성공해서 R&N을 대표하는 간판스타가 되어 보겠다고.”

정도운 대표가 테이블위에 턱을 괴더니, 다른 한쪽 손가락 끝으로는 테이블 위를 툭툭 건드린다.

수백 명의 소속 연습생들의 존망여부를 결정지을 수 있는 손가락이라고 생각하니, 그 무게감이 왠지 남다르게 느껴진다. 그가 상체를 천천히 내 쪽으로 기울이더니 내게 물었다.

“이번에는 강민군이 대답해봐. 자네는 목표가 어디까진지.”

*

대표실에 나온 박호영 팀장이 시원하게 웃음을 터트린다.

“푸하하하! 뭐? 제2의 잭 윈스턴 같은 사람이 되겠다고? 대표님 앞에서 그렇게 말한 놈은 네가 처음이다. 아무리 배포가 크다고는 하지만 이거 아주 웃긴 놈일세. 보통 음방 1위요. 그것도 아니면 기껏해야 한국 가수 이름 대면서 그 사람이 롤 모델이라고, 그렇게 되고 싶다고 말하던데··· 너 잭 윈스턴이 누군지나 알고 말한 거야?”

그 말이 그렇게 웃겼나? 나름 진지하게 대답 한 건데.

“알죠. 1993년에 첫 앨범을 시작으로 2010년까지 세계적으로 사랑을 받았던 팝 아티스트잖아요. 앨범 판매량이 5억 5천만장, 7번의 그레미상을 수상했고, 7번의 넘버원 싱글을 수상. 팝의 황제라고도 불렸잖아요.”

“그걸 아는 놈이 그런 말을 했다고?”

박호영 팀장 눈이 휘둥그레진다.

“꿈은 크게 가져야죠.”

“꿈이야 크면 좋지. 헌데, 너무 크니까 문제지. 아무튼 너 마음에 든다. 내가 요 근래 웃을 일이 별로 없었는데, 덕분에 크게 한 번 웃기도 하고.”

그가 내 어깨를 탁탁 두드린다.

“아무튼 대표님도 너 마음에 들었는지 팍팍 밀어준다고 했으니까, 이제 열심히 연습하는 일만 남았네. 어서 가봐 연습실에. 제 2의 잭 윈스턴씨."

그러더니 또 배를 잡고 한참동안 웃는다.

아씨, 괜히 그렇게 말했나? 놀리니 재밌냐, 이 양반아?

연습실에 돌아오자 안무를 가리키는 레슨 선생이 오디오를 점검하는 게 보인다. 멤버들은 저마다 바닥에 앉아서 몸을 풀고 있고.

나를 보더니 레슨 선생이 손가락으로 비어있는 멤버들 중앙을 가리킨다.

“강민이는 바로 들어가. 다른 멤버들은 원래대로 가고. 승우가 했던 부분은 강민이가 대체할거야. 혹시 불만 있는 사람?”

레슨 선생이 멤버들을 하나씩 훑어본다.

모두들 조용히 입을 다문다. 이견 없다는 표정이다.

레슨 선생이 고개를 끄덕인다.

“좋아. 그러면 그렇게 결정하는 걸로 하고··· 아참. 케리챌 확정된 건 알지? 세 달이다. 세 달! 남은 기간 동안 빡세게 레슨 갈 거니까 각오 단단히 들 해둬. R&N에서 내보낸 연습생들 허접하다고 네티즌들이 입방아에 오르면 너네들은 진짜 그날로 다 죽을 줄 알아. 알았어!?”

“네, 넷!”

“뭐해? 빨리 시작 안 하고? 벌써 1분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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