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가 가라. 하와이 (5)
가만, 저게 무슨 소리야?
김승우가 황당하다는 듯이 되묻는 소리가 들린다. 솔직히 나도 좀 놀랐다.
-아버지, 도대체 그게 무슨 말이에요? 숙소를 나오라니요?
-아까 정 대표 만났다. 이번 데뷔 컨셉이 너랑은 잘 안 맞대. 너 빼고 다섯 명으로 가는 게 좋겠다고 하더라.
쩌쩌쩌쩌저억.
김승우 멘탈에 금가는 소리가 들려온다.
왁, 나는 웃음을 터트렸다가 얼른 두 손으로 입을 막았다. 맙소사, 지금 내가 무슨 소리를 들은 거야!?
한참 후에야 떠듬거리며 김승우가 묻는다.
-그러면··· 저는요?
-다음 보이그룹 만들 때 컨셉 짜서 넣어준다고 하더라. 나참 기가 막혀서. 그래서 내가 알아봤는데, 가온 엔터테인먼트라고 알지? 아빠 대학 후배가 이사로 있는. 마침 거기 보이그룹 준비 중이라더라. 너랑 컨셉도 잘 맞고, 팀원도 모집 중이라니까 그리로 옮겨. 차라리 잘됐지. 그렇지 않아도 R&N에서 손 떼고, 중국 쪽이랑 연계해서 일 좀 해보려고 했는데, 네가 R&N에 인질처럼 있는 거 같아서 영 신경 쓰였거든. 지금 내 말 듣고 있는 거야···? 왜 대답이 없어!?
대에에에박.
웃음이 자꾸 새어나와 꾹 다문 입술이 움찔거린다.
내가 지금 헛것을 들었나?
핸드폰을 들고, 방으로 되돌아오는 살벌한 녀석의 얼굴을 보니 제대로 들은 것 같기도 한데······.
녀석의 기세가 장난이 아니다. 가슴 속에 한 품은 원한령 같다. 성큼성큼 나에게로 다가오더니 칼 뽑듯 주먹을 쥐고 날린다. 방비고 뭐고 없던 찰나의 순간이라 안면을 그냥 내줬다. 한 대 맞고 나니 정신이 번쩍 든다.
아, 제대로 들은 게 맞긴 맞구나. 난 또 현실감 없는 이야기라 잘못들은 줄 알았지. 근데, 생각해보니 어이가 없네?
아빠 빽으로 날 쫓아내보려고 했는데, 오히려 그 빽이 너보고 나가라니까 화가 났나? 근데 왜 새끼는 내가 만만한 가 다짜고짜 주먹부터 날리네. 날리기를!
“이 미친 새끼가!”
그 순간 나도 정신 줄을 놨다. 왕년에 나도 좀 놀았다고!
움켜쥔 주먹으로 녀석의 오른쪽 안면을 노렸다. 녀석이 한 대 맞고 비틀거리더니 나에게 달려든다. 그 다음부터는 뭐···. 좁아터진 방구석에서 서로 뒤엉켜 주먹질하고 발길질하고 난리가 낫지.
그래, 되지도 않는 신경전으로 멘탈을 좀 먹힐 바에는 차라리 나도 이쪽이 속 시원하다고.
죽어! 죽어! 이 새끼야!!!
간만에 신나게 손과 발을 날리는데 멤버들이 달려들어 뜯어 말린다.
“뭐, 뭐야! 형들 왜 그래!”
“시발, 이거 놔. 이거 안 놔!? 이 새끼들이!”
녀석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패악질도 저 정도껏이지 저 정도면 미친개다. 근데 시발, 왜 엄한 나는 왜 물고 지랄이야, 지랄은. 내가 대체 뭘 잘못했다고.
남, 북 삼팔선 줄그어 논 거 마냥 멤버들에 의해 김승우와 나는 갈라졌다. 녀석은 독 품은 독사처럼 나를 한참동안이나 째려보더니, 씩씩거리며 들고 가방 속에 옷가지를 쑤셔 넣고, 숙소에서 나가버린다. 닫힌 대문을 바라보며, 멤버들이 고개를 갸웃한다.
“뭐야? 저 형 갑자기 왜 저래?”
“나도 모르지.”
멤버들은 하나같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열린 대문과 나를 반복해서 쳐다본다.
나는 어깨만 으쓱했다.
내가 이런 상황에서 뭐라고 대답해. 할 말 없지 난.
그나저나 설마, 이대로 끝난 건가? 저 녀석 이제 이곳으로 안 돌아오는 건가?
그리고 그날 밤.
그리고 아침이 되도록 김승우는 돌아오지 않았다.
*
평온한 아침. 푹신한 침대.
옆으로 돌아누웠다. 옆에 텅 비어 있는 침대를 보니 여백의 미가 느껴진다.
진짜 나갔구나.
그래도 따지고 보면 내가 쫓아낸 모양샌데 미안함이라도 조금 가져야하나··· 싶은데 그런 마음은 눈곱만치도 안 든다. 미안함은 개뿔. 그놈 얼굴 안 보니 비로소 마음의 안식을 찾은 기분이다. 이런 평화로움이라니.
그놈은 지금쯤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혹시 밤에 길을 가는데 뒤에서 습격을 해온다던가 그런 짓은 하지 않겠지?
아 몰라몰라. 당분간은 멤버들이랑 같이 다니면 적어도 위험하진 않겠지.
방문을 열고 거실로 나왔다. 역시나 제일 부지런한 노아가 아침밥상을 차리고 있다. 어제 저녁에 들어오는 것도 못 보고 잠들었는데, 도대체 언제 들어온 거지? 혹시 김승우가 숙소에서 나간 사실은 알고 있나? 혹시나 해서 물었다.
“혹시, 너 승우······.”
“네, 들어서 알고 있어요.”
대답이 바로 들려온다.
“아, 들었어?”
“새벽에 들어왔는데, 태현이형이 이야기해줬어요. 승우 형이랑 싸웠다면서요?”
“어, 뭐···.”
나는 대꾸할말이 없어져 콧잔등을 긁적였다.
“이제 막 들어온 놈이 괜히 분란만 일으키는 거 같아서 미안하네.”
“아니에요. 어제도 먼저 맞았다면서요? 맞은 데는 괜찮아요?”
“응, 내가 보기보단 좀 튼튼하거든.”
진짜다. 혹시라도 멍이라도 들을까 걱정했는데, 멍 자국 하나 없더라. 뭐, 영삼이 덕분인가 싶기도 하고.
“그보다 내가 뭘 좀 도와줄까?”
내가 팔을 걷어 부치며, 기웃거렸다. 그래도 연속 이틀 동생한테 아침밥상만 받고 있자니, 염치가 없게 느껴져서 말이지.
싱크대 옆에 큰 볼과 계란이 꺼내있는 게 보인다. 아하, 오늘 메뉴가 뭔지 알겠다!
“오늘도 계란 부칠 거지? 그거 내가 할게.”
“형이요?”
내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나 이래 뵈도 자취만 4년째야. 한번 맡겨봐.”
노아가 영 못미더운 눈으로 쳐다봤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인다.
“네, 그러면 부탁드릴게요.”
그리고 잠시 후, 내가 만든 계란말이··· 아니, 계란말이를 빙자한 엉성한 스크램블이 접시위에 담겨졌다. 그걸 본 노아가 눈살을 찌푸린다.
“······형.”
“미안, 생각보다 어렵네. 그래도 뭐 뱃속에 들어가면 다 똑같은 거 아냐? 하하하.”
계란··· 아니, 계란 비슷한 몽글몽글한 것들을 보고 있는 노아의 표정이 자못 심각하다. 저걸 먹어야하나 버려야하나 중대한 결정의 기로에 서 있는 것처럼.
알았어. 제발 그런 표정 짓지 마! 앞으로는 부엌주위는 얼씬도 하지 않을게!
그래도 결국 다른 멤버들은 맛만 좋다고 잘만 먹었다.
김승우가 없으니 그것도 꿀맛이더라.
학교 잘 가라고 노아한테는 손을 흔들어주고는 설거지를 하고, 연습실로 가기 위해 옷을 갈아입었다. 어제와는 달리 반찬도 해주고, 설거지도 같이 하고 그래선 가 어제보다는 왠지 조금은 멤버들이랑 가까워진 것 같은 느낌도 든다.
연습실을 가기 위해 신발을 신고 나가려는데, 현관문에서 김태현과 툭하고 부딪혔다.
“아, 미안.”
내가 반사적으로 말했다.
헌데 김태현이 내게 뭔 할 말이 있는 지 가만히 서서 목덜미를 긁적인다.
“나한테 무슨 할 말 있어?”
“그게요.”
녀석이 툭하고 내뱉는다. 무슨 양심고백을 하는 것처럼.
“······사실 저도 싫었어요.”
“뭐?”
“승우 형이요. 회사에서 하라니 어쩔 수 없이 팀 짜긴 했는데, 저도 마음에 안 들었다고요. 그 형.”
근데 갑자기 이런 말을 나에게 왜 해주는 거지?
“그러니까 괜히 그 형 나간 거에 부담 갖지 마시라고요. 형이 아니더라도 언젠가 한 번쯤은 제가 들이받았을 지도 모르니.”
아.
“저도 대충 회사 돌아가는 분위기는 알아요. 눈치가 있지. 멤버들도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아마 다 알걸요? 아, 요한이 걔만 빼고요. 워낙 눈치 없는 애니. 승우 형 아예 나간 거 맞죠? 그래서 어제 짐 싸들고 나간 거잖아요.”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까 하다가 그냥 고개만 끄덕였다.
“···그럴 줄 알았어.”
녀석이 중얼거린다.
그리고는 어깨를 으쓱거린다.
“그냥 그렇다고요.”
말을 마친 김태현이 앞서 걸어 나간다.
나는 가만히 서서 녀석의 뒷모습을 지켜봤다. 솔직히 이런 이야기를 들을 줄은 몰랐다. 그것도 김승우 다음으로 나를 안 좋아하는 줄 알았던 김태현에게.
말은 하지 않았지만 이 녀석도 김승우에게 불만이 잔뜩 쌓여있었나 보다. 다만, 표정변화가 얼굴에 잘 드러나지 않는 녀석이라 티가 안 났을 뿐.
아마도 김승우가 팀원 중 큰 형이고, 아버지가 R&N내에서 어깨에 힘 꽤나 주고 다닌다고 하니 부딪히기 싫어서 몸을 사린 거겠지. 헌데, 이런 이야기를 내게 해준걸 보니 그래도 내가 김승우만큼 싫진 않나보다. 내가 신경쓸까봐 미리 말도 해주고.
이거 좋은 신호 맞지? 근데 어째 좀 간질간질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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