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듀스 나노머신-21화 (21/124)

니가 가라. 하와이 (4)

강남에 위치한 유명한 일식 집.

“··· 뭐? 방금 그 이야기 다시 한 번 해봐, 정 대표. 승우를 팀에서 빼겠다고?”

“네. 아무래도 승우는 지금 있는 팀에서 빼는 게 낫겠네요.”

다 늦은 밤 불러내서 한다는 소리가 기껏 이런 개소리라니.

김백만 사장은 앞에 놓인 소주잔을 기울여 입안에 털어 넣었다.

알싸한 액체가 목구멍을 통해 넘어간다.

“크으, 센터 가지고 경쟁시키는 것도 모자라, 이젠 아예 팀에서 빼겠다고? 정 대표. 지금 혹시 나 놀려? 혹시 내가 낮에 사무실 쳐 들어가서 지랄 좀 한 거 가지고 이래?”

안주를 씹지도 않은 채 김백만 사장이 맞은 편에 앉아 있는 정도운 대표를 노려보며 말했다.

“그럴 리가요. 그냥 지금 있는 팀이랑 승우랑은 컨셉이 안 맞는 거 같아서요. 일단 팀에서 빼고, 다음 데뷔 팀 준비할 때 참여시키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이런 일 연습생들한테는 허다해요. 잘 아실 텐데요.”

“좋아. 그렇다고 쳐. 헌데, 그 최강민인가 하는 자식이 오기 전까지만 해도 문제가 없었잖아. 갑자기 없던 문제가 생긴 이유가 뭔데? 혹시 김승덕 감독 영화에 들어가는 배우들 오리온쪽 배우들로 조인 시켜줘서 그래? 아니면 삼거리빌딩 옥외광고에 정대표네 배우 빼서 그러냐고!”

한껏 목이 핏대를 세운 것이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소주잔으로 한 대 칠 기세다.

정도운 대표가 목덜미를 긁적였다.

“그런 거 아닌데요.”

“그러면?”

“최강민보다는 승우를 빼는 게 낫겠다고 하더라고요. 직원들이.”

“야! 정 대표!”

기세가 장난이 아니다. 아마 눈빛만으로 사람을 난도질할 수만 있었다면 정도운은 이미 몸이 너덜너덜해졌을 거다. 헌데, 정작 당사자인 정도운 대표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이다. 마치, 이 작금의 사태가 자신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것 마냥. 그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스치듯 떠올랐다 사라진다.

그걸 본 김백만 사장이 인상을 찌푸렸다.

“······웃어?”

씰룩거리던 정도운의 입꼬리가 서서히 벌어지더니, 이내 치아가 훤히 보일정도로 만개한다. 이젠 아예 어깨까지 들썩거린다.

“너··· 제정신이야?”

“큭큭큭. 재미있어서요. 방금 한 20년은 어려진 기분이 들었거든요. 그때는 제가 참 여기저기 얕보이기도 많이 했죠. 뒤통수치려던 사람도 많았고, 이용하려고 들던 사람도 많았고. 그래도 R&N대표자리에 오른 이후로 그런 사람들은 사라졌다고 생각했는데······.”

동시에 들썩거리던 어깨가 멎고, 웃음도 사라졌다.

“헌데, 아직도 있네요. 그런 사람이.”

“너어······.”

김백만 사장은 뭔가 말을 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속을 알 수 없는 무표정한 두 개의 눈이 그를 응시한다. 묵직한 침묵이 목을 죄듯 졸라온다.

그래 저놈은 원래 이런 놈이었지. 등 따습고, 배에 기름이 끼니 잠시 착각했다.

맹수가 양의 탈을 쓰고 있다고, 본연의 성질까지 양이 되는 건 아닌데···. 잠시 잊고 있었다.

그가 어떻게 R&N을 지금의 회사로 만들었는지를.

김백만 사장은 입술까지 부들부들 떨더니, 이내 입술을 꽉 깨물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김백만 사장이 씨근덕거리며 정도운 대표를 노려본다. 거친 호흡을 꽉 누르며, 입술을 꽉 깨물고 서 있다. 반면 정도운 대표는 표정하나 변하지 않고 담담하기 그지없고.

“승우. 내가 빼 갈 거야. 계약 문제 생기지 않게 정리 잘해줘.”

“그러죠. 본부장한테 잘 정리해놓으라고 할게요.”

기다렸다는 듯이 답변한다.

“또···보지.”

“멀리 안 나갑니다.”

“두고 봐. 오늘 일은 반드시 잊지 않을 테니까!”

정도운 대표는 대꾸도 없이 다시 술잔을 기울였다. 김백만 사장은 그런 그를 홱 한번 쏘아보고는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주차장에서 담배를 피며, 대기하고 있던 김관수 본부장이 그런 김백만 사장을 보고, 고개를 숙였다. 찬바람이 쌩쌩불다 못해 그의 얼굴은 차갑게 얼어붙어 있다. 본채 만 채 그는 인사도 안 받고, 자신의 차를 탄 채 휭 하고 가버렸다.

그걸 보고 그는 깨달았다.

아, 결국 우려하던 일이 벌어졌구나.

김관수 본부장이 예약 잡아놓은 방을 찾아 신발을 벗고 올라섰다. 좀 전에 김백만 사장의 얼굴을 보니 사단이 나도 단단히 난 것 같은데, 정도운 대표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 마냥 느긋하기 그지없다. 잔을 채우고 술을 마시길래 김관수 본부장이 맞은편에 앉아서 물었다.

“대표님. 아니,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셨길래, 김 사장님이 저런 표정으로 나갑니까?”

“김 선배 표정이 어떤데?”

“그야 뭐어어어···.”

김관수 본부장이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한다.

“똥을 삽자루로 퍼 먹은 표정?”

“그것 참 적절한 표현이네.”

정도운 대표가 웃는다.

“왜요. 기름칠 좀 하셔서, 부드럽게 말씀 해보시지.”

“내가 그런 쪽은 좀 약해서. 그리고 잘 해결됐어.”

“네? 진짜요?”

“어, 승우 빼가기로 했거든. 회사 돌아가면 계약서 잘 정리해줘.”

헐.

정도운 대표를 보고 있는 김관수 본부장의 표정이 딱 그랬다.

헐.

아니, 이게 어딜 봐서 잘 정리된 건가? 혹시 자신도 모르는 사이 해결이라는 단어가 다른 의미로 변질된 건가?

“아니, 도대체 어떻게 말씀을 하셨길래··· 하아, 대표님. 승우 이렇게 회사에서 내보내면 김 사장님하고의 관계는 앞으로 어쩌시려고요.”

“상관없어.”

“그래도 TA프로덕션은 저희 회사에서도 큰 비중이 있는 파트너 회사인데···. 그리고 김승우 걔도 이런 식으로 내보내기는 너무 아깝습니다. 회사에서 걔한테 들인 공이 얼만데요.”

“뭐, 김승우야 어쩔 수 없지. 걔 아버지가 빈정 상해서 빼겠다는데 그걸 어떻게 막아. 그렇다고 계약 위반이라고 위약금이라도 달라고 할까?”

김관수 본부장의 속은 타 들어가는데, 대표란 사람은 태평한 소리만 골라한다.

“대표님.”

“그렇다고 최강민을 뺄 수는 없잖아. 자네가 그랬잖아. 둘 중 선택해야한다면 최강민을 선택하겠다고.”

분명 그랬다. 그랬지만.

“그래도 TA프로덕션과의 관계는······.”

“아. 이젠 그것도 상관없어.”

“네? 그건 또 무슨 소리세요? 좀 알아듣기 쉽게 설명을 좀······.”

“중국 쪽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오더라고.”

정도운 대표가 툭하고 내뱉는다.

김관수 본부장이 답답한지 주먹으로 가슴을 내리쳤다.

늘 이랬다. 정도운 대표와의 대화는. 알쏭달쏭한 힌트만 툭 던져주고는 제멋대로 해석하라고 내버려둔다. 그리고 그것을 관찰한다. 마치 그 풀이과정을 지켜보는 호기심 많은 소년처럼.

“그게 도대체 무슨 소리세요? 혹시 중국 쪽에서 TA프로덕션 쪽 안 좋은 소문이라도 들으신 거예요?”

“응. 들리더라고. 그러니 차라리 잘됐지. 나는 내심 고민했거든. 그래도 20년간 같이 해온 의리가 있는데 튀기는 똥물을 좀 막아줘야 하나 말아야하나 생각했거든.”

“아······.”

“그러니 걱정 말고 자네도 회나 먹어. 회가 아주 싱싱하네.”

*

“야! 너는···!”

김승우가 매섭게 노아를 째려본다.

“미안해요. 다시 잘해볼게요.”

노아가 꾸벅 고개를 숙이고 다시 자리를 잡는다. 음악이 흘러나오고, 안무가 시작된다. 그러나 이내 1분도 지나지 않아 김승우가 음악을 다시 끈다.

적막함 속에 김승우의 목소리가 허공을 가른다.

“같은 부분만 계속 틀리고 있잖아. 정박이 아니라, 엇박이라고. 엇박! 박자감이랑 리듬 감각이 이렇게 없어서 너 댄스 가수를 어떻게 할래? 이게 그렇게 안 돼? 너 데뷔하고 무대에서도 혼자 그렇게 틀릴 거야? 잘하지는 못할망정 팀원들한테 피해는 주지 말아야할 거 아니야!”

한숨소리와 함께 김승우가 노아를 매섭게 몰아친다.

그럴수록 분위기는 더욱 싸늘해진다.

저러다 애 울겠네, 진짜.

혹시, 전화 통화로 말했던 춤 고자가 노아를 말하는 거였나?

다행히 염려했던 울음소리는 나지 않았지만, 노아는 물론 멤버들까지도 표정이 굳어진다. 마치 연습실이 시베리아 한복판 같다. 분위기 한 번 끝내주네.

김승우는 작정이라도 한 듯 노아를 들들 볶았다. 마치 스트레스를 풀 대상이라도 찾은 것처럼.

보아하니 이런 식으로 노아를 많이 괴롭혀왔는지 노아는 죄송하다는 말만 연신 반복한다. 아예 틀리지를 않았으면 할 말이라도 있겠는데, 그래도 조금씩은 틀리는 게 분명하니 변명의 여지가 없긴 하다.

레슨시간이 끝나고, 선생이 나가면 그때마다 김승우는 리더 겸 센터역할을 하며, 애들을 쥐 잡듯이 잡았다.

완벽하게, 무조건 잘해야 하는 강박 관념 걸린 환자처럼.

어쩌다 동작하나가 틀리면 막 뭐라 하는데, 누가 보면 꼭 돈 떼어먹은 채무자한테 지랄하는 채권자 같다. 그러니까 긴장한 애는 더 긴장해서 또 틀리고. 악순환의 반복인거지.

나도 경험해봐서 아는데, 저럴 때는 옆에서 뭐라고 하면 더 안 된다. 쟤는 왜 그걸 모르지?

내가 끼어들어 뭐라고 하고 싶지만 틈이 없다. 이제 막 팀에 들어온 애가 무슨 말을 해. 가뜩이나 아까 그 일 이후 나를 보는 김승우의 눈이 곱지가 않는데······.

너도 어디 너 하나만 틀려봐라 내가 생 지랄을 해줄 테니까. 하는 눈빛으로 쳐다보는데. 어휴··· 상상만으로도 소름 끼친다.

그리고 그날 저녁.

나는 땀에 절여진 채 집으로 돌아왔다. 하아, 진짜 연습 스케줄 한번 살벌하다. 앞으로 데뷔 때까지 매일 이 짓을 해야 한다는 거지?

좋다. 꿈에도 그리던 데뷔 반인데 어찌 안 좋을 수가 있겠는가? 하지만 힘든 건 힘든 거다. 신체적으로 좋아진 나조차도 힘든데, 얘들은 오죽할까.

아니나 다를까 현관문이 열리자마자 한 녀석이 기절한다.

장요한이.

“야, 들어가서 자.”

녀석을 박진우가 발로 툭툭 건드린다. 그래도 일어나지 않자 녀석의 다리 한 짝만 잡고 질질 끌어다가 방에다가 던져 놓는다.

박진우는 연습생이 되기 전까지 농구부에 있었다고 하던데, 그래서인지 체력이 멤버들 중 가장 좋다. 만일 성공적으로 데뷔를 하고, 더 잘 되서 아이돌 농구대회 같은 예능프로그램에 나가게 된다면 MVP는 맡아놓은 당상일거다.

김태현도 묵묵히 자기 맡은 일은 해내는 스타일인거 같고···.

제일 걱정되는 건 노아다. 자긴 연습실에서 조금 더 연습하다가 온다고 하던데, 그래도 나올 때보니 제법 씩씩해 보이긴 했다. 아까 슬쩍 이야기를 해보니 그렇게 혼나고, 깨져도 학교에서 공부하는 것보단 재밌다더라. 전국에서 논다는 모범생도 그렇게 말하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내가 그 지겨운 고등학교를 어떻게 다녔는지 몰라.

집에 들어와서 닭장만한 방을 열어본 나는 깜짝 놀랐다.

분명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없었던 침대가 방안에 떡하고 자리 잡고 있길래···.

아싸, 침대다.

싱글이지만 옥탑 방에 무늬만 스프링이 달려있는 싸구려 몇 만원짜리 침대가 아닌 제대로 된 침대.

나는 침대에 앉아 매트리스를 꾹꾹 눌렀다. 희한하게도 손으로 매트리스를 누르는데, 엉덩이 쪽은 흔들리지 않는다. 이게 말로만 듣던 최첨단 독립 스프링. 뭐 그런 건가? 슬그머니 웃음이 난다. 침대 좋네.

“너지? 아까 그거.”

욕실에서 나온 김승우가 어깨에 수건을 걸치며 방으로 들어오며 말을 건다.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마치 취조실에 들어와 있는 취조관 같다. 순식간에 침대 때문에 좋았던 기분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친다.

친한 척 말 걸지 마. 재수 없는 자식아!

“뭐가?”

“아까 그 녹음 파일.”

“무슨 말 하는 건지 잘 모르겠는데?”

내가 능청스럽게 대꾸했다.

녀석이 쏘아본다. 온 종일 이놈하고 신경전을 벌이느라 체력소모가 두 배로 든다.

그래도 나름 성격 좋은 편이라는 소리를 많이 듣고 다녀선지, 누구랑 딱히 불편하게 지낸 적은 없었는데 대놓고 싫어하는 놈을 만나니 스트레스가 장난이 아니다.

저놈도 딱 나만큼 정도만 불편함을 느끼고 있다면 좋으련만.

그러면 적어도 손해는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녀석이 전화가 왔는지 핸드폰을 손에 들고 방에서 나간다.

“여보세요? 네, 아빠.”

중요한 전화인지 베란다 밖으로 나가서 문을 닫고 통화를 한다. 아빠? 도대체 무슨 전화길래 저렇게 나가서 통화를 하지?

나는 호기심에 영삼이를 불렀다.

통화중인지 말소리가 들려온다.

-숙소냐?

-네.

-당장 짐 싸서 그 숙소에서 나와. 정 대표랑은 이야기 다 끝났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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