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가 가라. 하와이 (3)
연습실로 가는 길, 어째 마주친 사람들마다 보내는 눈초리가 이상하다. 연습생들도 그리고 직원들도 나를 바라보는 시선들이 어째, 화톳불에 올려놓은 고구마를 보는 표정들이다.
뭐지? 저 알 수 없는 표정들은?
궁금증이 밀려오기도 전에 나는 배를 움켜잡았다. 아까부터 배가 살살 아프다. 숙소생활을 하니 한 가지 안 좋은 점이 있다. 화장실은 한 갠데 쓸 사람은 넘쳐 난다는 거. 괜히 숙소 첫날부터 냄새나 풍기는 애로 찍히기 싫어 참았더니, 아주 뱃속이 난리다.
“나 화장실 좀 들렸다가 갈게. 먼저들 가. 그런데, 화장실이 어디···?”
“1층 맨 끝에요. 거기가 직원 전용이라 제일 깨끗해요.”
“응, 땡큐땡큐.”
장요한의 대답에 알았다고 고갯짓을 하며 서둘러 화장실을 찾았다.
“으, 급하다. 급해.”
볼일을 보러 화장실에 들어가려는데, 순간 어디선가 말소리가 들려온다.
무심코 지나치려는데, 그 속에 최강민이라는 단어가 언뜻 섞여 있는 것 같다.
뭔가 싶어 봤더니 외부로 이어진 흡연구역 안에서 남자 직원 두 명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귀가 솔깃해진다. 저 사람들도 내 이야기를 하고 있나? 도대체 뭔 이야기들을 나누기에 아침부터 이렇게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거지?
일단 급해서 화장실 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뱃속을 비우고, 급한 용무가 끝나자 호기심이란 놈이 슬그머니 고개를 치켜든다.
“영삼아, 밖에 두 남자가 하고 있는 대화내용 좀 들려줘.”
곧이어 귀에 이어폰을 꽂은 듯한 선명한 말소리가 귓가로 들려온다.
-어떻게 될 것 같아? 김사장님 오전에 회사에 쳐들어와서 완전 뒤집고 갔다며?
-장난 아니었지. 그분 원래부터 성격이 보통이 아니잖아. 이번에 들어온 신입 팀에서 빼라고, 본부장실에 쳐들어가 아주 쌩 지랄을 했다고 하던데?
-아휴, 진짜 걔네 부모님도 극성이다. 요즘에는 치맛바람보다 바지바람이 더 무섭다더니, 그 말이 딱 맞네.
아하. 아침부터 나를 쳐다보는 눈초리들이 어째 좀 그러더라니, 그런 이유 때문이었구나.
그때 머릿속에 뭔가 떠오른다.
나를 묘하게 쳐다보던 김승우의 눈빛과 계란말이를 짚어가며 했던 의미심장한 말. 아, 그래서 녀석이 그런 말을 했구나. 치졸한 놈. 하다 안 되니 부모님을 동원하다니.
시원하게 뱃속을 비우고, 연습실로 들어가자 저마다 몸을 풀고 있는 멤버들이 보인다. 그리고 김승우도.
눈이 마주쳤다. 녀석은 아까 전 식탁에서 보던 똑같은 눈빛으로 나를 바라본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은 안다. 저건 바로 ‘네깟 놈이 뭘 할 수 있는데.’ 하고 묻는 깔보는 눈빛이다. 녀석이 이런 방식으로 눈에 거슬리는 사람들을 몇 명이나 치웠을까를 생각하자 결코 곱게만 보이진 않는다.
내가 녀석에게 성큼 다가갔다.
“그 말뜻이 그거였냐?”
저런 음흉한 놈이랑 친하게 지내보려고 잠깐이나마 생각을 했다니, 내가 미쳤지.
“뭔 소리라도 듣고 왔나보지?”
녀석의 한쪽 입 꼬리가 비뚜름하게 올라간다.
“너희 아버지 다녀 가셨다더라. 본부장실에.”
“그래? 대표님이 자리에 안 계셨나 보네. 본부장실로 찾아가신걸 보면.”
녀석이 피식 웃고는 내게 다가와 속삭인다.
“내가 말했잖아. 난 내건 안 뺏긴다고. 어디서 노래 좀 하고, 춤 좀 배웠나 본데, 어차피 이 바닥은 다 인맥 빨, 돈 빨이야. 실력은 그 다음이지. 보아하니 그런 건 없는 모양인데, 한 번 열심히 잘해 보라고. 네가 뭘 할 수 있나.”
녀석의 손이 내 어깨 위를 툭툭 두드린다.
그래, 이게 네 본성이구나.
차라리 직접 듣고 나니 속이 후련하다. 하마터면 네가 좋은 녀석인지 알고 착각했다가 뒤통수 맞을 뻔했잖아. 그랬다면 내가 얼마나 자괴감에 시달렸겠어. 아마 억울해서 잠도 못 잤겠지.
물론 녀석의 말이 맞다. 단순히 실력만 있다고 해서 성공이 보장된다면, 실력 있는 가수들이 1집, 2집, 3집씩 말아먹지도 않을 테고, 헉 소리 나도록 연기 잘하는 무명배우들이 일당 7만원에 대학로 연극판에 전전긍긍하는 일도 없을 거다.
분명 맞는 말인데도 인정하기가 싫다.
등 돌려 가는 녀석을 째려보며, 내가 영삼이에게 물었다.
“너 혹시 광선총 같은 건 없어? 왜, 영화 보니까 외계인들은 그런 걸 사용하던데.”
-없습니다.
그래, 그렇겠지? 그냥 한번 물어본 거야. 차라리 다행인지도 몰라. 만약 그런 게 있었다면 김승우 쟤를 쏴죽였을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나는 실망하지 않았다. 대신 그게 있으니까.
김승우의 녹음 파일.
‘이 새끼 거하게 엿 한 번 먹어봐라.’
나는 멤버들이 몸을 풀고 있는 사이 음악을 틀어놓는 컴퓨터 앞으로 다가가며 다시 영삼이에게 물었다.
“그 김승우 파일 여기 음악 재생 목록에 넣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돼?”
-외장 메모리 넣는 곳에다가 손가락을 넣으세요.
이렇게?
슬쩍 메모리 카드 넣는 곳에다가 손가락 끝을 대자, 손끝에 희미한 빛이 어리다 사라진다.
-됐습니다.
화면을 슬쩍 봤더니 오늘날짜로 만들어진 파일이 하나 있길래 나는 그것을 첫 곡이 끝난 다음에 나올 수 있게 해 놨다.
그리고 때 마침 반가운 소리가 들려온다.
“형! 연습 시작하게 노래 좀 틀어줘요!”
장요한 저 예쁜 놈.
음악 재생 버튼을 누르자 첫 번째 곡이 흘러나온다.
가장 먼저 준비된 장요한이 몸을 움직여 연습을 시작하고, 곧 이어 멤버들도 하나둘 동참했다. 나도 슬그머니 그 속에 끼어들어갔다.
첫 번째 곡이 끝나고, 드디어 고대하던 순간.
음악 대신 스피커에서 말소리 같은 것이 재생되기에 멤버들이 뭔가 싶어 동작을 멈추고 귀를 기울인다.
“어, 이거 승우형 목소리 아니야?”
“맞는 거 같은데?”
- ······애들 졸라 구려. 한 명은 허우대만 멀쩡한 병신이고, 한 명은 같은 동작 계속 틀려대는 춤 고자에···. 또 이젠 어떤 병신 같은 놈을 데리고 와서 6인조 만들겠다는데······.
쩍쩍쩍.
뭔가 갈라지는 소리가 들려온다. 춤을 추던 멤버들이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김승우의 눈에서는 당황함이 떠오른다. 녀석은 갈 곳 없는 눈동자를 이리저리 돌리더니, 그대로 나를 홱 하고 쏘아봤다. 두 눈에 적의가 가득하다.
아, 개운해.
저 모습을 보니 살 것 같다. 탄산수를 목구멍 안에 막 때려 붓는 느낌. 이글거리는 눈동자를 보고도, 이런 기분을 느끼다니······. 어쩌면 나 혹시 정신건강에 문제 있는 거 아니야?
“너, 너··· 이 새끼 뭔 짓을 한 거야!?”
“내가 뭘?”
내가 천연덕스럽게 대꾸했다.
“너가 지금 방금···.”
멱살이라도 붙잡을 듯 달려들었다가 멤버들의 싸늘한 눈초리를 받자 김승우가 씩씩거리며 변명하듯 말한다.
“나 아니라고 이 자식들아!”
김승우가 성큼성큼 컴퓨터 앞으로 가더니, 내가 끼워놓은 목록을 삭제하고, 다시 음악을 재생시킨다.
“어떤 새끼가 장난쳤나본데, 이럴 시간 있으면 연습이나 더 해. 어떤 미친 새낀지는 몰라도 잡히기만 해봐라. 가만 안둘 테니까.”
때마침 레슨 선생이 들어왔다. 녀석이 태연하게 레슨 선생에게 인사를 하고,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연습을 시작한다.
좀 안타깝다. 레슨선생이 조금만 늦게 들어왔으면 일이 났어도 뭐가 날 분위기였는데······.
하지만 이들 중 태연한 건 녀석뿐이었다.
이전과는 연습실 분위기가 많이 달라져 있었다. 특히 김승우를 쳐다보는 멤버들의 눈들이 가라앉아 있다 못해 싸늘하다. 마치, 식어버린 불판을 보는 것 마냥.
*
R&N 대표실 안.
누군가 고급스러운 캐시미어 재킷을 벗어 옷걸이에 걸고 있다. 하얀색 셔츠와 검은색 정장 바지를 입고 있는 중년 사내다. 은연중 드러나 보이는 굵고, 날렵한 턱선. 강인한 인상.
그는 바로 R&N의 대표 정도운이다.
명패가 놓여있는 책상 앞, 김관수 본부장이 팔을 포갠 채 목덜미를 긁적이며 서 있다.
“대표님. 생각보다 빨리 오셨네요. 3시쯤이나 되면 오실 줄 알았는데.”
“어차피 그곳에서 할 일도 없더라고. 전화 끊고, 바로 비행기 탔어.”
“부산에 오랜 만에 가신 거잖아요. 회도 좀 드시고, 바다 바람도 쐬고, 천천히 오시지.”
재킷을 옷걸이에 걸어놓은 정도운 대표가 푹신한 의자위에 몸을 기댔다. 부드럽게 짓고 있는 웃음 위에 남성다움이 물씬 풍기는 곧은 미간이 보인다.
올해 나이 마흔 일곱. 열여덟에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연예계로 뛰어들면서 매니저 일을 배우며, 2002년 엔터테인먼트를 설립. 오늘 날 R&N을 우리나라에서 대표하는 거대 엔터테인먼트로 키워낸 장본인.
그래서인지 평범한 행동 하나에도 범인에게서는 느껴지지 않는 카리스마가 느껴진다.
“그러고 싶었지. 그러고 싶었는데··· 김 선배가 여기 와서 뒤집고 갔다는데, 대표라는 작자가 마음 편히 놀고만 있을 수가 없더라고. 그리고 궁금하기도 하고.”
“네? 뭐가요?”
“그 친구 말이야. 여기서 오디션 찍은 영상이 있다며?”
“최강민이요? 네. 춤추는 영상과 노래하는 영상이 있습니다.”
“음, 그래?”
정도운 대표가 손가락 끝으로 책상 위를 툭툭 두드리며, 말을 이었다.
“그러면, 나도 그것 좀 볼 수 있을까?”
“물론이죠. 금방 가지고 오라고 하겠습니다.”
김관수 본부장이 어디론가로 전화를 걸자 잠시 후, 박호영 팀장이 들어와 USB메모리를 내민다. 그것을 건네받은 김관수가 책상위에 놓인 노트북에 연결하고는 재생버튼을 클릭했다.
“보십시오.”
이내 화면에 춤을 추고 있는 최강민의 모습이 재생된다.
모니터를 보고 있는 정도운 대표의 눈에 이채가 서린다. 춤 영상이 끝나고, 노래가 나오자 ‘호오.’하는 감탄성을 내뱉는다. 마치, 어디서 저런 물건이 튀어 나왔을까? 하는 표정이 얼굴에 고스란히 떠오른다.
노래까지 재생이 멈추자, 그가 다리 한쪽을 꼬며, 턱을 괸다. 그리고는 흥미로운 표정을 지으며, 검은색으로 물든 화면을 한참 동안이나 바라본다.
“이 친구 이름이 최강민이라고?”
골똘히 생각에 잠긴 그가 한참 만에 입을 열었다.
“네.”
“이 친구 어디서 찾아냈어?”
“카페랍니다. 처음 명함을 준건 서은채 매니저인 최형식 실장이었다고 합니다.”
“호오, 그래?”
백도운 얼굴에 흡족한 미소가 떠오른다.
“그 친구 일 잘하네. 이번 달에 보너스라도 챙겨 줘.”
“네?”
“일 잘하는 직원은 보너스도 가끔 주고 그래야 더 열심히 하지. 안 그래?”
“하하하, 네, 뭐···.”
김관수 본부장이 멋쩍게 웃더니 묻는다.
“그건 그렇고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대표님?”
“흐음. 그러니까 지금 센터자리를 놓고, 이 난리인거지?”
“그렇죠.”
“김승우를 센터에 세우고, 최강민을 옆에 두면 어떨까?”
김관수 본부장이 고개를 내젓는다.
“그림이 좀 별롭니다. 김승우를 센터로 세워놔도 자꾸 시선이 옆에 있는 최강민에게로 갑니다. 그렇다고 최강민을 센터에 세워놓으면 김승우가 붕 뜬 느낌이라 팀 밸런스를 무너트리는 것 같고요.”
“이번 팀 컨셉이 뭐지?”
“그렇지 않아도 이번 정기회의 때 정하려고요. 아무래도 스마트한 꽃미남 컨셉으로 갈 것 같습니다. 그게 요즘 트렌드라서요. 팀원들 이미지랑도 그게 잘 맞아 떨어지고요.”
“음. 데뷔 후, 방송이나 광고 쪽까지 생각을 하면 짐승돌 컨셉보다는 그런 쪽이 더 낫지. 팬덤층도 확보하기 더 쉽고. 그러고 보니 김승우가 컨셉이랑 좀 안 맞긴 하네.”
“예, 그래서 좀 걱정입니다. 김승우가 좀 세게 보이는 캐릭터라 가운데 넣어놓으면, 그럭저럭 밸런스가 맞아 보였는데, 최강민이 들어오니 그게 마이너스 요소가 돼버렸습니다.”
“으음. 이제야 문제를 알겠네. 결국 최강민과 김승우. 둘중 하나를 선택해야겠네. 흐음···. 이를 어쩐다?”
“차선책으로 차라리 최강민을 잠시 보류시켜놓고, 데뷔 팀을 다시 꾸리는 방법도 있으니, 한 번 그쪽도 생각을 해보시면······.”
“김 본부장.”
묵직한 정도운 대표의 음성이 그의 말허리를 자른다.
“네, 네!?”
그의 손가락이 탁자를 톡톡 두들긴다.
김관수 본부장이 그를 쳐다봤다.
무표정한 포커페이스와 조금은 찡그려져있는 미간. 도통 대표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정도운 대표 밑에서 벌써 십년이 넘게 일을 해왔지만, 여전히 그에게 정도운 대표는 모를 사람이었다.
“이 바닥에 다음이라는 건 없어. 알면서 그러네.”
“아··· 전 단지 김 사장님과의 관계를 고려해서······.”
그리고는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생각이 짧았습니다.”
“내가 전에 물었지. 둘 중 한 명만 선택해야 한다면 누굴 선택 하겠냐고. 대답은 그때와 같겠지?”
입술을 굳게 다문 채 김관수 본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알았어. 그러면 그렇게 해.”
“네!?”
“그렇게 하라고. 그리고 전화 좀 넣어줘. 내가 자주 가는 일식집에도 예약 좀 잡아주고.”
“누구한테요? 호, 혹시··· 김 사장님한테요···?”
“그래, 내가 할 이야기가 있다고 오늘 좀 보잔다고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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