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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듀스 나노머신-18화 (18/124)

니가 가라. 하와이 (1)

계단을 밟고 바로 2층으로 올라가자, 203호라고 쓰여 있는 대문이 보인다. 차조영 실장은 그 앞에서 도어락을 열고, 비밀번호를 눌렀다. 철컹하고 문이 열린다.

“누구세요?”

문 열리는 소리를 들었는지, 현관문에서 가장 가까운 곳의 방문이 열리고, 누군가 잠옷차림으로 거실로 나온다. 막내 노아다.

“어, 나야. 안 자고 있었어?”

“아, 실장형. 내일 숙제 하느라요. 헌데. 이 시간엔 웬일······.”

뒤에 나를 보고는 멈칫한다.

그리고는 고개를 꾸벅 숙인다.

내가 멋쩍게 손을 흔든다.

“어, 그래. 안녕.”

집이 그리 크진 않다. 방 세 개에 화장실 하나, 거실과 이어진 조그마한 부엌도 보인다. 다섯이서 살기에는 조금 작아 보이는 느낌. 아, 이제 나까지 여섯인가. 거실 소파에 앉아 졸면서 티비를 보고 있던 장요한이 비척거리며 다가온다.

“형. 내일 오시기로 한 거 아니었어요?"

“그렇게 됐어.”

뜻밖의 소란스러움에 닫혀있던 방문들이 열리고, 멤버들이 하나, 둘씩 거실로 나와 모습을 비춘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김승우도.

“집 구경은 너희들이 시켜주고, 나는 이만 퇴근해볼게. 내일 보자 얘들아.”

차조영 실장은 사자우리 안에 먹잇감 던져 놓듯 나를 안으로 밀어 넣고 가버렸다.

으, 뭔가 뻘쭘한데.

다행히 장요한이 친절하게 내 짐까지 받아주며, 방을 안내한다.

“형은 승우형이랑 저기 끝에 있는 방을 쓰면 돼요. 침대는 내일 들여 논다고 했으니까, 오늘은 그냥 소파나 바닥에서 자면 되고요. 이름 쓰여 있는 개인 물품들은 손대면 안 되고, 공용으로 쓰는 물품들은 사용해도 돼요. 아참, 치약, 샴푸, 비누 같은 건 같이 사용하는데, 혹시 깔끔 떨고 그런 성격은 아니죠?”

“아니야.”

“아, 난또. 여기 숙소에 치약 윗부분부터 짠다고 막 뭐라고 하는 애가 있거든요. 혹시 그런 성격인가 싶어서.”

뒤에 서 있던 박진우가 장요한 머리통을 팔꿈치로 지그시 누른다.

“어째, 그거 내 얘기 같다? 그리고 치약은 원래 아랫부분부터 짜는 게 맞거든? 초딩때 학교에서 안 가르쳐주디?”

“학교에서 그런 것도 가르쳐줬어?”

“네가 수업시간에 졸았나보지. 아니면 멍청해서 기억을 못하던가.”

시비는 지가 걸어놓고, 지가 당한다.

노아는 숙제를 마저 한다고 방으로 들어가 버리고, 박진우와 장요한도 졸립다며 방으로 들어갔다. 김태현은 조금은 묘한 시선으로 소파에 앉아 나와 김승우를 바라봤다. 그리고 김승우가 방으로 들어가며 내게 손짓한다.

“들어와. 방 보여줄게.”

저승사자가 손짓을 한다면 꼭 이런 기분일까.

*

제대로 말 한마디 안 나눠본 사인데, 이렇게까지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 수 있다니.

저것도 일종의 재능이다.

나는 자신감을 가졌다. 나만 불편하냐? 지도 불편하겠지.

성큼 방안으로 걸음을 내딛었다.

방을 보자 적절한 말이 딱 떠올랐다. 닭장. 아니면 사육장?

이거나 그거나.

딱 옥탑 방에서 지냈던 방의 절반만하다.

침대 둘. 발밑에 붙여놓은 2단 행거 하나를 넣으면 꽉 차겠는데?

고시원도 이것보단 낫겠다. 거긴 적어도 책상이라도 있으니까. 이 좁은 데서 김승우랑 같이 생활하고 자야한다는데, 생각 만해도 목이 졸리는 기분이다.

“뭐, 호텔 방이라도 기대한 표정인데?”

김승우가 피식거리며 가느다란 입 꼬리를 올린다.

어째 저거 비웃는 거 같은데? 한 번 사람이 비뚤게 보이니 뭔 말을 해도 비이냥거리는 것처럼 들린다. 꼴 보기 쉬운 놈은 숨 쉬는 것만 봐도 밉다 하지 않던가. 내가 딱 그랬다.

“아니, 심플하고 좋네.”

“그래? 그렇다면 다행이고. 어차피 잠만 들어와서 잘 거니까. 아, 말 놔도 되지? 나랑 동갑이던데.”

“어, 그래.”

“난 피곤해서 먼저 잔다. 너도 대충 하고 자라.”

“어? 어어···.”

그러더니 쿨하게 침대 위로 올라가 눈을 감는다.

나는 그 모습을 떨떠름하게 쳐다봤다. 이제부터 투명인간 취급하기로 한 걸 철회하기로 했나? 여지껏 침묵을 지켰던 것이 무색하리만치 허무해진다. 나를 경계한다고 생각했던 게 혹시 나만의 착각이었나. 지금부터라도 한번 친근하게 대해볼까? 혹시 또 알아? 둘도 없는 친구가 될지?

별의별 생각이 다 머릿속을 스친다.

녀석이 자는 것 같길래 닭장 속에서 나와, 거실 소파에 앉았다. 그러자 러그위에 앉아서 티비를 보고 있던 김태현이 나를 물끄러미 쳐다본다.

“왜? 나한테 할 말 있어?”

“아뇨.”

“근데 왜 그렇게 쳐다봐?”

“그냥요.”

그러더니 히죽댄다. 이제 보니 이놈도 정상은 아니다.

한참을 그러고 있더니 티비 리모컨을 내 손에 쥐어주고, 지 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덩그러니 거실에 혼자 남아 티비를 봤다. 저번 주에 못 본 예능프로그램이 티비에서 흘러나온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리얼 예능프로그램.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중이 하나도 되질 않는다. 어제 이 시간에는 옥탑 방에서 나만의 공간 속에서 나만의 시간을 보냈는데, 지금은······.

하아, 요즘은 진짜 하루하루가 변화무쌍하구나.

내일 또 어떤 일이 벌어질까?

잠이라도 자고 싶은데, 장소가 바뀌어서인지 쉽사리 잠도 안 온다.

그때 어디선가 옆방에서 도란도란한 말소리가 들려온다. 바로 옆이면 김승우랑 내 방인데, 혹시 녀석이 전화 통화라도 하고 있나?

나는 순간 호기심에 영삼이를 불렀다.

“옆방 소리 좀 키워줘.”

-네.

-비즈니스지, 비즈니스. 애들 졸라 구려. 한 명은 허우대만 멀쩡한 병신이고, 한 명은 같은 동작 계속 틀려대는 춤 고자에···. 또 이젠 어떤 병신 같은 놈을 데리고 와서 6인조 만들겠다는데. 아 짜증나 죽겠어, 시발. 어, 어···.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다른 데랑 할걸 그랬나봐. 뭐? 지금이라도 나오라고? 가긴 어딜 가 아버지 앞마당이 여긴데. 그 병신을 쫓아내야지.

마지막 말이 반복적으로 환청처럼 들려온다.

그 병신을 쫓아내야지. 그 병신을 쫓아내야지. 그 병신을 쫓아내야지.

아무래도 지금 상황에선 그 병신이 난거 같지?

웃는 얼굴로 나를 보며, 속으로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니. 음흉한 새끼.

순간 친하게 지내볼까 했던 내가 병신 같다. 아, 그러고 보니 쟤 말이 맞네, 병신.

헌데, 나야 그렇다 치더라도. 그래도 숙소생활도 같이 하고 있고, 적게는 몇 개월씩 같이 연습을 한 동료들이자 전우들을 싸잡아 병신이라고 하는 건 조금 그렇지 않나?

방금 난 인간 탈을 쓴 개새끼를 봤다.

소름 돋네. 저런 생각을 갖고 있는 놈이 같은 팀이자, 내 룸메이트라니.

멤버들은 김승우가 자신들을 이렇게 평가하고 있다는 걸 알면 어떤 기분이 들까? 썩 좋진 않겠지?

이걸 멤버들한테 확 말해?

아니야. 괜히 증거도 없이 말했다가는 이간질 시킨다고 오해할지도 몰라. 그러면 진짜 상황이 엿될 수도 있는 거지.

그때 뭔가가 머릿속에 확 하고 스쳐지나간다.

어?

“영삼아. 혹시 방금 그 내용 녹음 했어?”

-네.

“그러면 혹시 그거 외장 메모리에 저장도 가능해?

-언제든지 가능합니다.

예스. 예스! 이거지, 이거!!!

나는 주먹을 둥글게 말아 쥐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외계에서 온 프로그램이라니까 혹시나 해서 물어봤는데, 그런 것도 될 줄이야.

좋아. 잘됐다. 그래도 딴에는 멤버들한테 정상인 코스프레를 하고 있는 모양인데, 기회 봐서 녀석 면상위에 깨소금이나 뿌려줘야겠다.

멤버들도 네놈이 싸이코라는 건 알고 있어야 하지 않겠어?

그날 밤.

이런저런 생각에, 나는 한참동안이나 뒤척이다가 겨우 잠을 이뤘다.

아, 자려는 데 왜자꾸 웃음이 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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