멤버들과의 만남 (5)
-저녁에 집 앞으로 차 보낼 테니까 필요한 짐만 싸놔. 말 나온 김에 오늘 당장 숙소로 옮겨.
이 양반 제트기 엔진을 떼다가 달았나. 일 처리하는 추진력이 장난이 아니다. 매니저들은 원래 다 저런 성격인건가?
그날 저녁.
나는 집으로 돌아와 조용히 이삿짐을 꾸렸다. 짐이라고 해봤자 내가 가지고 들어온 건 옷 몇 가지와 낡은 노트북 하나가 전부다. 어차피 계약도 없이 사는 달방인지라 방 빼는 데도 별 다른 문제도 없다. 다만 선불치 낸 게 조금 아까워서 그렇지.
짐 싸고 시간이 남기에 카페 사장 형에게 전화를 걸었다. 당분간은 카페에 아르바이트 못나간다는 말과 함께 회사를 옮기고, 숙소에 들어가게 될 거라는 말도 함께.
사장 형이 진심으로 축하를 해준다. 아주 잘된 일이라고.
데뷔하게 되면 가게로 놀러와 사진 찍고, 사인도 남겨놓고 가라는 말에 나는 한참동안이나 웃었다.
그리고도 시간이 남아서 나는 노트북을 연결하고 케이팝 리그 챌린지라고 검색을 해봤다. 기사 몇 개가 연달아 주르륵 뜬다.
그중 하나를 클릭했다.
- [TV] 김철중 PD가 SMN에서 새 오디션 프로그램을 제작한다.
그는 ‘우리 집에 와 봤니’, ‘프리스타일 랩’으로 인기몰이 고공행진을 하며, 특히 작년에는 케이팝 챌린지로 댄스 열풍을 이끌며 손을 대는 프로그램마다 트렌드로 만드는 마이더스 손으로 이름을 날렸다. 케이팝 리그 챌린지는 시즌 2 격으로, 개인 참가자가 아닌 팀 형식의 오디션 서바이벌로 진행된다. 현재 방송국내에서 편성시간을 놓고 회의가 진행 중이며, 지상파 방송국인만큼 많은 관심들이 모아지고 있다.
케이팝 챌린지는 나도 티비를 통해봤다.
그 당시 D&M측에서도 두 명이 나갔는데 한 명은 3주차에서 탈락되고, 한명은 십 몇위까지 올라갔지만, 속마음 인터뷰에서 개념 없이 말한 발언 때문에 인성 논란 문제로, 결국 최후 10인에서 하차했다. 한동안 그것 때문에 D&M게시판에 그 연습생 퇴출시키라고 말들이 많았지.
그렇게 한참 기사를 찾아 읽고 있는데, 핸드폰이 울린다.
전화를 받고 내려가니, 하얀색 패밀리카 앞에 덩치가 산만한 남자가 등을 돌린 채 쪼그리고 앉아 있다. 뭘 하나 봤더니, 담배를 펴고 있다. 왠지 그 모습이 짠하다. 꼭 미성년자들이 어른들 눈치 보며 피는 듯 모습 같다.
인기척에 그가 멈칫하더니 이내, 벌써 꽁초가 된 담배를 손에 털며 일어선다.
“아, 반가워요. 차조영이라고 합니다. 최강민씨죠?”
스물여섯 살에 대학교를 졸업하고, 입사했다는 그는 2년차 된 실장이었다. 말끔한 흰색 와이셔츠 차림에 검은색 슬랙스. 운동화를 신고 있는 그는 현재는 박호영 팀장 밑에서 일을 배우고 있다고 했다.
“말 편히 하세요.”
“나중에요. 지금은 일단 이게 편해서요. 짐은 이게 다에요?”
“네. 조촐하죠?”
그가 피식 웃는다. 덩치는 곰 만한데 인상이 서글서글한 게 꼭 다 큰 골든 리트리버 닮았··· 큼큼, 그래도 윗사람한테 개 닮았다는 건 조금 그런가?
“간단해서 좋네요. 그거 트렁크에 넣어놓고 타세요. 제가 숙소까지 데려다 드릴 테니.”
짐을 넣어놓기 위해 트렁크를 열었는데, 이미 그곳은 온갖 잡다한 물건들로 한 가득이다. 담요, 침낭, 겨울용 점퍼. 간이용 의자와 휴대용 버너랑 코넬 등. 이런 게 대체 여기 왜 있는 거지? 아직 가을날씨밖에 안됐는데······.
어디 동계훈련이라도 미리 떠날 셈인가? 게다가 라면도 있네?
내가 라면을 물끄러미 쳐다보자 차조영 실장이 웃으며 말한다.
“이거 매니지먼트 팀 차량이에요. 곧 날씨 추워지니 쓸 일 있다고 이것저것 넣어 놨나 봐요. 강원도 오지 같은 곳에서 배우들 밤 촬영 있으면 춥다고 난리거든요. 저희 개발팀 차량이 모자라서 당분간은 매니지먼트 팀 차량을 같이 쓸 거예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짐을 대충 쑤셔 넣은 다음, 앞좌석에 올라탔다.
“팀장님께 오디션 프로그램 하신다는 이야기는 들으셨죠? 당분간 강민씨랑 데뷔 반 멤버들은 제가 전담하게 됐어요. 방송 들어가면 준비해야할 게 이것저것 많거든요.”
그가 품속에서 명함 한 장을 내민다.
“자요. 늦은 밤이라도 상관없으니까 필요하신 일 있으시면 언제든지 전화하시고요. 다른 멤버들한테는 팀장님이 내일 정식으로 이야기하신다니까 오늘 숙소 들어가서는 일단 말씀하지마세요. 아셨죠?”
“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가서 붙잡고 수다 떨 사람도 없다.
“그럼 출발할게요. 안전벨트 매세요.”
시동을 건 차가 스르륵 움직인다.
나는 짙게 썬팅 된 차창 너머로 길거리를 구경했다.
10분정도쯤 말없이 이동했을 무렵, 나를 힐끔 쳐다본 차실장이 다시 말을 걸어온다.
“어때요. 회사는 다닐 만 해요? D&M연습 생이었다고 들었는데.”
“아직까진 괜찮네요. 거긴 안 좋은 기억이 있어서.”
“아, 거기서 4년 동안 있다고 그랬죠? 으음.”
그러더니 고개를 갸웃한다.
“난 도통 이해가 안 가던데. 저도 강민씨 오디션 영상 봤거든요? 4년 동안 회사에서 썩혀놓을 실력이 아니던데. 뭐, 저희 회사 측에서야 잘된 일이긴 하죠. 강민씨같은 인재를 잡았으니까. 카페에서 노래 부르고 있다가 캐스팅 된 거라면서요? 그것도 최실장한테.”
“네.”
“그러고 보면 참 인연이라는 걸 알 수가 없단 말이에요. 그렇게 괜찮은 신인 발굴해보려고, 홍대, 압구정동, 온갖 대학로거리 다 돌아 다녀 봐도 쓸 만한 친구들은 눈에 안 띄던데, 어디서 강민씨 같은 인재가 쑥 하고 튀어나왔는지 몰라. 그러고 보면 사람일은 참 모르는 거예요. 안 그래요?”
그러더니 히죽하고 웃는다. 그 말에는 나도 동감이다.
“가족들은요? 보니까 혼자 사는 거 같던데.”
“부모님은 두 분 다 충청도에 사세요.”
“형제는요? 형이나 누나, 동생 뭐 없어요?”
“위로 일곱 살 차이 나는 형이 한명 있어요. 결혼은 작년에 했고, 부모님이랑 같이 살아요.”
“효자시네.”
그 말에 나는 하마터면 마시고 있는 물을 뿜을 뻔했다.
효자는 무슨. 덜컥 사고치는 바람에 부랴부랴 식 올리고, 모아놓은 돈도 없어 부모님 집에 얹혀 사고 있는데.
더군다나 돈 번다고 형수까지 맞벌이를 하는 바람에 애 양육은 거의 다 어머니가 전담하고 있다. 얼마 전에 집에 갔더니, 어머니 눈 밑에 다크 써클이 장난 아니게 내려와 있더라. 애가 밤낮없이 울어대는 통에, 화장실도 마음대로 가지 못한다고 나를 붙잡고 하소연을 하셨지.
“멤버들하고는 어때요? 아, 그러고 보니 강민씨가 큰 형인가?”
“아니요. 승우라고 저랑 동갑인 친구가 한 명 있더라고요.”
“맞네. 승우도 스물 셋이지.”
차조영 실장이 고개를 끄덕인다.
“멤버들 성격은 어때요? 그래도 2년 정도 되셨다면 어느 정도 아실 거 아니에요.”
“뭐, 대충은요. 태현이나 요한이 캐스팅할 때는 저도 그 자리에 있었으니까요. 둘 다 성격 괜찮죠. 태현이는 조금 무뚝뚝하긴 해도, 자기 할 일 잘하고, 책임감도 있고, 요한이는 얘가 성격이 좋아선가 붙임성도 좋아요. 음, 진우랑은 티격태격 잘 싸우지만, 크게 다툰 게 없는 거보면 걔도 괜찮은 것 같고, 아. 노아 걔는 완전 모범생이에요 FM급. 공부도 전국에서 노는 수준이에요. 요즘 애들답지 않죠. 형들 말도 잘 듣고, 부모님 속 안 썩이고.”
“승우는요? 승우는 어떤데요?”
내가 불쑥 물었다. 가장 듣고 싶은 김승우 이야기가 안 나오길래.
“승우요?”
내 질문에 차조영 실장이 묘한 표정을 지으며 목덜미를 긁적였다.
“걔는 좀 어렵죠. 캐릭터가 있어서. 더군다나 걔네 부모님도 좀 극성 맞으시고.”
“부모님이요?”
“걔네 부모님이 회사초창기 때 투자를 좀하셨거든요. 뭐, 초창기 멤버라고나 할까? 대표님이랑 개인적인 친분도 있고요. 아, 모르셨구나.”
그 뒤로 한참 김승우에 관련된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걔가 금 수저는 아니어도 은수저급은 돼요. 아주 대단한 집안은 아니지만 나름 영화바닥에서는 방구 좀 뀐다는 TA프로덕션 사장님이 걔 아버지세요. 오냐오냐해서 키웠는지 자존심 세고, 좀 이기적인 면모도 있고, 제멋대로고 좀······.”
내 표정이 점점 굳어지는 것을 봤는지 뒤에는 별 쓸데없는 사족까지 붙인다.
“아, 그래도 성격은 착해요. 착해. 하하하.”
이 양반 봐라. 어디서 그런 믿지도 않을 거짓말을···.
30분정도 더 달려서 승용차는 어느 컴컴한 골목 빌라 앞에서 멈춰 섰다. 차조영 실장이 트렁크에서 짐을 내리며, 앞에 있는 빌라를 가리켰다.
“여기에요.”
시간은 자정이 조금 안된 11시 40분.
차조영 실장이 양손에 짐을 하나씩 든 채 하얀색 빌라 안으로 들어갔다. 나도 어깨에 배낭을 하나 메고, 그 뒤를 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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