멤버들과의 만남 (4)
오전 시간은 레슨과 연습의 반복. 그리고 짧은 점심식사시간이 주어지고, 또 다시 오후 늦게까지 이어진 레슨과 연습의 반복. 이러한 패턴에는 익숙해져있다고 생각했지만, 강도는 D&M에 있을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었다.
이게 바로 B반과 데뷔반의 차인가? 격차가 어마어마하다. 가벼운 차림으로 연병장 뛰는 것과 완전군장 맨 채 산을 뛰는 차이랄까? 비교가 안 된다.
“하아, 더는 못하겠다.”
오후 5시쯤 되자 장요한이 물 먹은 솜 마냥 바닥위로 쓰러진다. 그것이 시작이었을까. 멤버들도 하나 둘 마룻바닥 위로 전사한다.
나도 흐르는 땀을 닦으며 한쪽 벽에 기대앉았다.
“형은 안 힘들어요? 첫날인데.”
장요한이 엎어진 채 고개만 돌려 묻는다.
기운 없기는 나도 매한가지다.
“힘들지.”
“그런데 왜 이렇게 쌩쌩해 보이죠?”
그건 말이야. 신체개조를 받아서 그래.
에너자이저처럼 한숨도 안자고, 운동해도 끄떡없을까 생각했지만 그런 건 아니었다. 다만 피로도가 남들에 비해 조금 적게 올 뿐. 힘들기는 매 한가지다. 차라리 이편이 더 안심이다. 그래도 적어도 사람 같이는 보이니까.
“내가 체력 하나는 좋거든.”
그리고 저기 체력 좋은 사람 한명 더 있네.
내 시선이 김승우에게 머문다.
방금 췄던 안무 중에 뭐가 마음에 안든 부분이 있었는지 동작을 점검 중이다. 그리고 순간 나와 눈이 마주쳤다. 눈이 마주친 것이 착각이었다 생각할 만큼 빠르게 시선을 돌리며 하던 것을 마저 한다.
어제부터 줄곧 말을 걸기는커녕 지금까지도 투명인간 취급이네. 혹시 내가 진짜 안보이나 싶기도 한데, 방금 반응을 보니 그건 아닌 거 같고.
“근데 우리 연습은 언제까지 해?”
D&M에서는 연습종료가 5시쯤이었는데. 뭐,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이어지는 장요한의 말이 나를 충격에 빠트렸다.
“다른 연습생들 다 집에 가고, 직원들, 레슨 쌤들 다 퇴근한 후에? 한 8시쯤?”
“뭐?”
순간 잘못들은 줄 알았다.
“그러면 주말에는?”
“주말에는 공식적인 레슨은 없지만 대부분은 연습실에 나와서 개인연습을 해요.”
“와.”
순수하게 놀랐다. 설마 주말에도 이렇게 빡세게 연습을 하는 건가?
“제일 열심히 해야 할 시긴데, 놀 순 없잖아요. 쟤는 뭔 자신감에 연습도 안 하냐, 데뷔 반 들어가더니 관리 안하네. 행여 안무 때 실수라도 하면, 저렇게 연습을 안 하니 안무를 틀리지. 회사 내에서도 별의 별 말들이 다 나돌아요. 그래서 그냥 일어나면 회사 왔다가 잘 때가 되면 숙소로 들어가요. 차라리 그게 더 마음 편해요.”
“그러면 개인 스케줄은? 개인적인 약속이 있다던가, 볼일 있는 사람은?”
“에이, 그런 게 어딨어요.”
근처에 있던 박진우가 대화에 슬쩍 끼어든다.
“여긴 군대고, 형은 막 입소한 훈련병이라고 생각하세요. 전 지금 2달째 친구는커녕 가족 얼굴도 못 봤어요.”
“군대도 안 가봤으면서 그걸 어떻게 알아? 그리고 너 4급 받았잖아!”
“멍청아. 꼭 가봐야지만 아냐? 그리고 4급도 훈련소에는 가거든?”
그러더니 또 둘이 티격태격한다.
얘네는 사이가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다.
어쨌든 당분간은 개인적인 일은 보기 힘들다 이거지? 아, 큰일이네. 월세 내려면 생활비를 벌어야하는데.
그때 뭔가가 머릿속을 스친다. 가만, 숙소?
“혹시 여기 있는 멤버 전부 숙소 생활해?”
“네. 데뷔 반으로 정해지니까 회사에서 내줬어요. 지금은 전부 짐 싸들고 들어가서 거기서 생활하고 있어요.”
“그래?”
“아, 그러고 보니 형도 데뷔 반 들어왔으니 숙소로 들어와야 하는 거 아니에요?”
박진우가 옆에서 거들었다.
“그러긴 그래야할걸? 가만, 그러면 지금 숙소에 방이 3갠데, 태현이형이랑 나랑 한 방 쓰고 있고, 너랑 노아랑 한방 쓰고 있으니까, 남는 자리는······.”
잠자코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멤버들의 시선이 김승우에게로 향한다.
설마 쟤랑 나랑? 그건 나도 좀 불편한데.
그때 연습실문이 열리고 직원 한 명이 나에게 손짓한다.
“최강민씨. 박팀장님이 부르시는데요. 잠깐 사무실로 좀 올라오시래요.”
이거, 타이밍이 좀 그런데.
*
박호영 팀장이 말했다.
“버스로 세 정거장정도 위치에 숙소 있어. 다른 멤버들도 다 거기 있으니까 너도 들어가. 어차피 너 혼자 산다며? 이참에 월세 아끼고 잘됐지.”
어떻게 된 게 이놈의 예감은 틀린 적이 없는 걸까.
월세를 아끼는 건 좋다. 헌데, 나를 투명인간이랑 취급하는 놈이랑 한방을?
“그냥 지금 지내고 있는 곳에서 왔다갔다하면 안 될까요?”
“다른 멤버들 전부 숙소생활 하는데, 너만 예외를 둘 순 없지. 아직 학생인 노아도 숙소에서 학교를 왔다 갔다 하는데, 안 그래? 더군다나 가뜩이나 늦게 합류한 멤버라 서먹서먹할 텐데, 한집에서 서로 부대끼고 살다보면 빨리 정도 들고 좋지 뭐.”
“그건 그런데요.”
내가 잘 때 그놈이 내게 무슨 짓을 할 줄 알고.
박호영 팀장이 단호하게 말한다.
“어차피 데뷔하게 되면 숙소생활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야. 잔말 말고 들어가.”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별도리가 있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애들이랑 사이는 어때?”
“뭐, 나쁘진 않아요.”
단 김승우만 빼고.
장요한이 가장 살갑고, 다른 멤버들과도 딱히 문제는 없다. 적어도 투명인간취급은 하지 않으니까. 막내인 노아랑도 인사밖에 해보지 않았지만, 애가 내성적이어서 그렇지 나쁜 애 같아보이진 않았다.
“다들 착한 애들이니까 네가 먼저 마음열고 다가가면 걔네들도 잘 대해줄 거야. 앞으로 쭉 같이 갈 애들이니까. 친하게 지내고.”
네. 친하게 지낼게요. 역시나 김승우만 빼고.
“그리고 이건 거의 내부에서 확정 되서 이야기하는 건데, 아마 곧 공식 발표날 거야. 케이팝 리그 챌린지라고 sbn에서 프로그램 하나 들어가는데, 너랑 데뷔 반 애들 거기 나가게 될 거니까 미리 알아둬.”
“네?”
이건 또 뭔 소리냐.
“너 방송 나간다고.”
*
사무실에서 나온 다음에도 계속 박호영팀장의 목소리가 귓가에 메아리친다.
-너 방송 나간다고. 너 방송 나간다고. 너 방송 나간다고.
솔직히 말하면 조금 얼떨떨하다.
좋지. 좋은 일이긴 한데, 조금 불안하다.
이런 행운이 계속 연달아 찾아와도 되는 건가?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여자 친구한테 차이고, 볼 구석이라고는 하나 없는 4년차 연습생일뿐이었는데, 그렇다고 딱히 뭐가 도드라지는 것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저냥, 카페나 전전긍긍하며 손님들한테 박수나 받는 별 볼일 없는 스물 세 살의 청년.
헌데 R&N으로 회사를 옮겨오고, 데뷔 반에 들어가고, 게다가 방송 출연까지.
어쩌면 평생 만나보기 힘들 큰 파도가 최근 연달아 들이닥쳤다. 아, 진짜 제일 큰일은 외계인을 만난 일이지. 아니 외계 프로그램을 만난 일인가? 아무튼···.
겁 안 나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거지. 난 이번 일을 통해 새삼 느꼈다고. 내 맨탈이 그래도 쿠쿠다스급은 아니구나, 하고.
문득 궁금해졌다.
“영삼아. 그런데 하필 왜 나야? 왜 나를 선택했어?”
운명이었다는 둥, 나에게서 발전의 가능성을 보았다는 둥, 그런 말들이 나올 거라고 기대했지만, 녀석의 대답은 짧고 굵직했다.
-무작위요?
그래. 내가 너랑 무슨 말을 하겠냐.
어쨌든 뜻하지 않은 행운과 함께 절대 필 날 없을 줄 알았던 내 인생에도 서서히 볕이 들고 있었다. 인간만사 새옹지마라더니, 옛 선조 말 하나 틀린 게 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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