멤버들과의 만남 (3)
급하게 회의가 열렸다. 팀장급 이상들만 참가하는 회의였다.
본부장 김관수와 신인개발팀의 박호영 팀장, 김종학 팀장, 언론 홍보팀의 장선영 팀장이 마주보며 회의실 의자에 앉았다.
본부장 김관수 앞에는 두툼한 종이뭉치가 놓여 있다. 첫 장에는 ‘케이팝 리그 챌린지.’라는 큼지막한 프로그램명이 박혀 있다. 바로 어제 김종학 팀장이 방송국에서 갖고 온 기획안이다.
“아, 이거 참 타이밍이 조금 그러네.”
본부장 김관수가 앞에 놓인 기획안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까슬까슬한 턱을 만진다.
“두 달, 아니 한 달 정도만 있다가 왔어도 얼씨구나 했을 텐데. 이걸 어떻게 한다?”
그가 고민하는 이유는 하나다. 방송국인 SBN에서 새로 기획하고 있는 프로그램 때문이다.
‘케이팝 리그 챌린지.’ 일명 케리챌.
“그러게요. 프로그램 개편 시기철도 아니고, 뭔 프로그램이 들어가는 타이밍이 이렇대요? 게다가 개인전도 아니고 팀전이라니.”
“요즘 방송사들 한창 오디션프로그램으로 꿀 빨고 있잖아. 다 비슷비슷한 프로그램들 천지라 슬쩍 포맷 한 번 바꿔서 시도해보겠다는 거지. 개인전도 좋지만 팀 전이 훨씬 더 볼거리는 많잖아. 기획사 연습생들만 참가 가능하다고 하니, 실력들이야 어느 정도 보장 될 테고. 왜, 칼 군무 멋지고, 좋잖아?”
“그래도 왜 보이 그룹만이에요. 걸 그룹 무시하나?”
장선영 팀장이 웃으면서 대꾸했다.
“보이그룹이라면 팬덤들이 대놓고 빨아주니, 그렇죠. 한 명한테만 꽂히면 멤버들 전체가 업혀 갈수 있잖아요. 더군다나 이런 프로야 10대 20대들이 주 연령층이고. 왜? 난 좋은 것 같은데요? 회사 입장에서도 공짜로 연습생들 홍보해주니, 좋고. 안 그래요? 내가 회사 대표라면 얼씨구나 할 것 같은데.”
“그게 또 그렇게 간단하지 만은 않아요. 회사차원에서 보내는 거니까 좀 괜찮은 애들로만 내보내야하거든. 만일 초반에 탈락하고 그래봐. 회사차원에서 이미지 완전 구기는 거지.”
“그 정도밖에 안 되는 애들이라면 어차피 정식 데뷔해봤자 가망 없는 거 아니에요?”
“하긴, 그건 또 그러네.”
장선영 팀장의 말에 김종학 팀장은 금방 납득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장선영이 팀장이 본부장을 쳐다보며 묻는다.
“근데 우리 회사 측에서 애들 내보내게 되면 데뷔 반 애들이 나가게 되겠죠?”
“아무래도 그렇지.”
“최강민인가 하는 그 친구는 어제 합류했잖아요? 걔는 어떻게 하시려고요?”
“뭘 어떻게 해? 같이 내보내야지. 6인조로.”
“이렇게나 빨리요?”
장선영 팀장이 놀란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전 반대예요, 본부장님. 어제 찍은 계약서에 아직 잉크도 안 말랐어요. 걔가 아무리 난 애라고 해도, 이제 막 들어온 애를 데리고 어떻게 방송을 해요? 가르쳐야할 게 한 두 개가 아닌데. 아실만한 분이 왜 이러세요? 방송이 장난도 아닌데.”
본부장이 웃는 낯으로 그녀를 불렀다.
“장 팀장.”
“네?”
“어제 월차 쓰고, 회사 안 나왔지?”
“네? 본부장님! 저 반년 만에 처음 쓰는 월차였어요. 그거 가지고 뭐라고 하시면 저 진짜······!!!”
울컥한 장선영 팀장의 말에 본부장이 오해 말라는 표정으로 손을 저었다.
“아니아니, 내 말은 그게 아니라 최강민, 걔 노래하는 거나 춤추는 거 봤냐는 소리야. 아직 못 봤지?”
“네? 네. 출근하자마자 회의실로 바로 와서 아직 못 봤는데요.”
“응, 그래 보였어.”
“네?”
“그러니 반대를 하지.”
“그게 무슨······.”
그녀가 말을 하다 말고 말꼬리를 흐렸다. 가만 보니 최강민의 방송출연을 반대하는 건 자신뿐이다. 뭐지? 뭐지?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하는데, 옆에 앉아 있던 박호영 팀장 자신의 핸드폰을 내밀었다.
“장팀장 이거 한번 봐봐.”
“이게 뭐예요?”
“어제 본 최강민 오디션 영상. 일단 이거나 보고 이야기하지.”
장선영 팀장은 그가 건네주는 핸드폰을 받으며 물었다.
“박팀장님. 왜 이렇게 자신만만해 해요? 실력 괜찮아요?”
박호영이 음흉하게 웃었다.
“괜찮은 정도가 아니라 최강이야. 이름부터가 최강민이잖아.”
그녀가 이어폰을 꺼내 귀에 꽂았다.
그리고 틱. 재생버튼을 눌렀다.
처음 춤 영상이 나올 때까지만 해도 그녀가 ‘오, 제법’하는 표정이었다. 그러다가는 ‘와.’하는 표정으로 바뀌고, 춤 영상이 끝나고, 노래를 부르는 구간에서는 아예 초점을 놓고 입을 벌렸다. 마지막으로 BMA4의 댄스곡을 춤과 노래를 같이 선보일 때는 눈이 튀어 나올 만큼 확장됐다.
그녀의 다채로운 변화를 보고 있던 회의멤버들이 모두 큭큭 거리며 웃었다. 아마 어제 그 모습을 본 자신들의 표정도 별반 다르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에.
그리고.
손바닥만 한 핸드폰 화면의 재생이 끝이 나고, 대기화면으로 넘어가 검은색으로 물들 때까지 장선영 팀장은 화면에서 헤어 나오질 못했다.
급기야 박호영 팀장이 어깨를 툭하고 쳤다.
“장 팀장. 장 팀장?”
“······허어억읍!”
괴상한 소리로 숨을 들이쉬는 소리와 함께 정선영 팀장이 몸을 부스스 떨며 정신을 차렸다.
그걸 보고 또 한 번 사람들이 숨 죽여 웃었다.
“어때?”
“뭐······.”
“응?”
“뭐예요!!! 이 얘!?”
고막이 얼얼해질 정도로 큰 소리다. 박호영 팀장이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아씨, 애 떨어질 뻔 했네. 작게 말해. 작게. 나 귀 안 먹었어. 내가 말했잖아. 잘한다고.”
“이건 잘하는 정도가 아니라, 거의, 뭐······.”
그리고는 뭔가를 거침없이 종이위에 써 내렸다.
“뭐해?”
“이 기분 잊어버리기 전에 홍보에 넣을 문구 좀 작성해놓으려고요.”
박호영 팀장이 뭐라 쓰여 있는지 종이를 슬쩍 쳐다봤다.
천상의 목소리. 마이콜잭슨의 현신등. 댄스곡을 들으면서 감동을 느낄 줄은 몰랐다. 단순히 시각적인 것만을 넘어선 그 무언가 가슴을 울리는······. 얼핏 보니 휘갈긴 종이위에는 자극적인 문구들과 문장들이 가득이다.
본부장 김관수가 피식 웃으며 장선영 팀장을 바라보며 물었다.
“장 팀장. 이제 반대는 안하는 거지?”
그녀가 여전히 펜을 잡은 채 상기된 표정으로 대답했다.
“반대는요 무슨. 내보내기만 하세요. 제가 뒤에서 펌프질 열심히 할 테니까.”
“그거 믿음직스럽네.”
“한번 두고 보세요. 켈리챌인지 뭔지 몰라도 아무튼 그 방송 시작되면, 여론이 장난 아닐 테니까요.”
“왜? 최강민 때문에?”
“네. 이 바닥 생활 10년차인 제 직감으로 말하는데. 방송 최대수혜자는 최강민이 될 거에요. 틀림없이.”
*
R&N소속 레슨선생들이 점심시간 직원 휴게실에서 모여 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다.
“이나영 선생님. 오전타임에 데뷔 반 애들 레슨 들어갔죠?”
“네.”
“최강민 어때요? 이선생님이 그 팀 담당이니까 제일 잘 알거 아니에요. 실제로도 영상만큼 춤 잘 춰요?”
불과 하루 만에 최강민은 불판위에 올린 뜨거운 감자가 됐다. 특히나 레슨 선생들 사이에서는 MSG가 들어갔네, 보정 빨이네, 의견들이 분분했다. 춤은 보통 정해진 레퍼토리 안 에서 머무는 경우가 많았고, 노래도 보여주기 식이라면 한곡만 한 천 번쯤 연습하면 잘 부르는 것처럼 들리기도 하니까. 그걸 엄밀히 말하자면 실력이라고 하긴 조금 그렇지. 딱 그런 표정이었다.
이나영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뇨.”
“그쵸? 저도 회사 내에서 하도 떠들어대서 영상 봤는데, 이게 영상으로 보는 거랑 또 실제 보는 거랑은 아무래도 차이가······.”
“영상보다 더 잘 춰요.”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나영이 대꾸한다. 끼어든 선생의 표정이 기괴해졌다.
“뭐? 아니······네?”
“영상보다도 더 잘 춘다고요. 어제 몇 번 본 안무. 오늘 완벽하게 추던걸요? 동작도 하나도 안 틀리고. 뭐 그런 애가 다 있나 싶더라고요.”
“말도 안 돼. 걔네들도 나름 데뷔 반인데, 쉬운 안무 레슨받고 있진 않을 테고. 그 말 진짜에요?”
“제가 뭣 하러 거짓말을 하겠어요. 제게 무슨 이득을 본다고.”
“하긴. 그것도 그러네. 그보다 오늘 회사에 소문하나 돌던데. SBN에서 하는 케이팝 리그 챌린지. 애들 내보내기로 했다면서?”
“아마 그러겠죠? 손해날 일은 아니니까.”
다른 선생 한 명이 불쑥 물어왔다.
“근데, 그렇게 되면 센터는 누가 서게 되는 거예요?”
“승우가 서겠죠. 원래부터 그렇게 내정되어 있었으니까.”
또 다른 선생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건 최강민이 들어오기 전이죠. 돌아가는 분위기보니까 느낌이 딱 최강민을 센터감으로 데리고 온 것 같던데. 사실 승우가 다른 애들이랑 막 조화되고, 그런 분위기는 아니잖아요. 안 그래요?”
그때 잠자코 선생들의 말을 듣고 있던 이나영이 뭔가 생각났다는 표정으로 ‘아.’하고 입을 벌렸다. 옆에 앉아 있던 선생이 궁금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채근한다.
“왜요, 왜?”
“혹시, 그래서 본부장님이 그러셨나?”
“뭘요?”
“오늘 아침에 저를 부르셔서, 최강민 중앙에 한번 세워보라고 하시더라고요.”
“어머, 본부장님이 진짜 그러셨어요? 세워보니까 어때요. 선생님이 보시기엔?”
아까 전 연습실에서 멤버들이 춤추는 것을 잠깐 상기시켜본 이나영이 솔직한 심정을 털어놨다.
“좋던데요? 이전에는 눈을 어디다가 두고 봐야할지 모르겠던데, 강민이 센터 박아놓으니까 몰입이 확 되더라고요. 애가 비율도 좋고, 생긴 것도 잘생겨서 그런가? 만약 데뷔하면 진짜 소녀 팬들 난리 나겠던데요.”
“그러면 이대로 최강민이 낙점되는 건가요?”
또 다른 선생 한명이 고개를 저었다.
“에이, 그건 아닐걸요. 승우가 이대로 밀려나진 않겠죠. 걔는 그래도 부모님 버프빨이 있는데.”
“네? 그건 또 무슨 소리에요? 걔네 부모님 뭐 있어요?”
“아, 선생님은 여기 온지 얼마 안됐죠? 승우 부모님. 여기 창립 멤버시잖아요. 대표님이랑 친분도 두텁고. 지금은 프로덕션 사장님인가 그럴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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