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듀스 나노머신-14화 (14/124)

멤버들과의 만남 (2)

그날 저녁.

집에서 샤워를 하고, 나오는데 전화 한통이 걸려왔다. 발신자를 확인하니 최형식 실장이었다.

-어땠어? 회사 옮긴 첫날인데. 소감이?

“어쩌긴요. 그냥 그랬죠.

-아까 회사 들어가다가 레슨 선생 잠깐 만났는데, 장난 아니었다고 하던데? 그 선생 칭찬 인색하기로 유명한데.

“뭘요. 절 예쁘게 봐주신 거겠죠. 실장님은 밖이세요?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는 거 같은데···.

-어, 나 촬영 현장. 오늘 은채 야간 촬영이 있어서.

“아, 힘드시겠어요.”

-배우 매니저일이 다 그렇지 뭐. 그래도 이것도 널널해진 거야. 연말 때가 되면 지금보다 훨씬 더 바빠질테니까. 그때는 잠도 못자, 어휴 생각만 해도 끔찍하네.

그때 희미하게 누군가를 부르고, ‘네!’하고, 대답하는 여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이거 혹시 서은채 목소린가?

-아··· 촬영 들어간대. 이만, 끊어야겠다. 나중에 또 통화하자.

끊긴 핸드폰을 침대 옆 협탁 위에 올려놓고, 나는 침대위에 누웠다. 문득 낮에 봤던 멤버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입 꼬리가 씰룩거린다. 벌어진 입술사이로 웃음이 새어나온다. 큭큭큭. 나는 미친놈처럼 실실 웃었다.

춤을 다 추고 난 후, 나를 쳐다보는 얼굴들이란.

특히나 김승우의 얼굴이 가장 볼만했다. 점점 일그러지는 얼굴이 나중에는 아예 썩어 문드러져 가는데, 저러다가 아예 얼굴이 없어질까 걱정됐다. 급기야 한곡을 끝내자마자 화장실에 간다고, 뛰쳐나가 한참 후에야 돌아왔지.

다른 애들의 반응들은 나쁘지 않았다. 행여 자신들의 발목을 잡을까봐 걱정했는데, 그런 걱정은 덜은 표정이랄까.

차츰 시간이 갈수록 경계가 사라지는 것이 느껴졌다. 처음부터 줄곧 한결같은 태도를 유지하는 김승우만 빼고.

근데, 궁금하다.

내가 지 한테 딱히 잘못한 것도 없는 왜 그렇게 나를 경계 하지?

*

“센터 자리 뺏길까봐 그래요. 형 오시기전에는 승우형이 센터로 확정되는 분위기였거든요.”

아······.

다음 날. 연습실에 왔더니 장요한이 춤 연습을 하다말고 나에게 들러붙는다. 연습시간까지는 조금 이른 시간이라 다른 멤버들은 아무도 없다.

어제 봤을 때도 느낀 건데 얘가 성격이 좋은 건지, 사교성이 좋은 건지 이제 두 번째 본 나에게도 스스럼이 없다. 누구랑 붙여놔도 잘 지낼 그럴 타입이다.

“센터가 그렇게 중요해요?”

아참, 말 놓기로 했지.

“중요해?”

“그러엄요. 이 형 진짜 아무것도 모르네.”

장요한이 웃는다. 잘 다듬어진 눈매가 보기좋게 가늘어진다. 웃는 게 꽤나 귀엽··· 큼큼. 데뷔하면 누나 팬들이 엄청 붙을 얼굴이다.

장요한이 열심히 침을 튀겨가며 설명한다.

카메라를 찍더라도 무조건 센터 위주라는 둥, 코멘트 인터뷰를 딸 때도 센터한테 가장 먼저 간다는 둥, 사람들의 시선을 가장 많이 받고, 포지션 위치상도 가장 앞이고 등등.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팀 이미지가 보통 센터 따라가거든요. 센터가 상남자면 그룹도 짐승돌 컨셉. 꽃미남이면 꽃미남 컨셉. 그래서 팀 컨셉을 알려면 대부분 센터만 보면 알 수 있어요.”

“아······.”

나는 순수하게 감탄했다.

연습생 4년차면 뭐하나. 처음 듣는 소린걸.

만년 B반 연습생이었던 내가 언제 그런 걸 생각해보기나 했겠어? 이런 이야기를 들으니 내가 데뷔 반에 들어왔다는 것이 확연히 느껴진다. 예전의 나라면, 이런 이야기가 마치 딴 세상 이야기 듣는 것 같았을 텐데.

“그래서 사실 저는 조금 그랬어요. 보시다시피 제가 승우형이랑은 이미지가 극과 극이라···. 승우형은 좀 강렬한 이미진데, 저는 그런 쪽은 아니잖아요. 그래서 체중을 더 늘려서 근육을 키워야하나 고민했거든요. 그런데 그건 좀 나랑 안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고.”

솔직한 고백까지.

애가 순진한 건지 아니면 멍청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속내를 감추고 이런 스타일은 아닌 것 같다. 이왕 멤버로 같이 갈 거라면 차라리 이런 쪽이 상대하기 편하다. 음흉한 것보다야 백배는 낫지.

“너는? 너는 센터 욕심 없어?”

내가 불쑥 물었다. 아니, 그냥 순수하게 궁금해서.

그랬더니 화들짝 놀란다.

“저요?”

마치 못들은 걸 들은 사람 마냥. 그리고는 한참동안이나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바닥을 보며, 중얼거린다.

“전 어림도 없죠. 제가 무슨. 데뷔 반 들어온 것도 운이 좋았다고 생각해요. 다른 멤버들에 비하면 저는······.”

“왜? 내가 보기에는 너도 충분히 가능성 있어 보이는데?”

꼼지락거리던 손가락이 어느 순간 뚝하고 멈춘다. 바닥에 쳐 박혀있던 고개가 서서히 들리는 가 싶어 봤더니 입가가 씰룩거리고 있다. 터져 나오는 웃음을 겨우겨우 누르고 있는 듯한 딱 그런 표정.

“에이, 제가 무슨···.”

“왜, 난 너 충분히 잘한다고 생각하는데?”

“진짜요?”

“진짜로.”

또 다시 웃는다. 좋아한다. 좋아해. 그것도 엄청 많이.

칭찬 못들은 귀신이라도 붙었나? 뺨이 연신 꿈틀거리는 게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뭘 생각하고 있는지 그냥 알겠다. 생각하는 게 얼굴에 그대로 나타나는 타입이다.

얼굴도 하얗고, 내성적으로 생겨서 친해지기 어려울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착각이었나 보다. 이제 보니 눈 꼬리도 살짝 처진 게 생긴 것도 엄청 순하게 생겨서 꼭 눈 꼬리처진 강아지 같다.

물론 내가 빈말을 한 건 아니다. R&N에서 심혈을 기울여 만들고 있다는 그룹답게, 어느 누구하나 부족한 애가 없다. 개개인의 개성도 뚜렷한 거 같고, 외모, 실력도 마찬가지.

생긴 거야 크게 떨어지지 않는 이상 팬들 취향인거지 그걸 낫네 부족하네 판단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전 데뷔반 멤버가 된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해요. 지금도 혹시 멤버에서 빠지게 될까봐 조마조마한데, 센터요? 어후. 심장 떨려.”

그리고는 말도 안 된다는 듯이 고개를 흔든다.

“저 밤 되면 골목도 혼자 못 다녀요. 무서워서.”

그래. 딱 보기에도 간이 콩알만할 것 같다.

“근데 형, 어제 보니까 춤 좀 추시던데. 춤은 어디서 배우셨어요? 듣기론 여기오기 전에 D&M에 있었다던데. 거기서 배운 거예요?”

“맞아. 거기서 배웠어.”

숨길 것도 없어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렇구나. 형 거기서도 에이스였죠? 그런데 회사는 왜 옮겼어요? 형 실력정도면 거기서 절대 안 놔줬을 것 같은데.”

놔줬지. 그것도 쿨하게 방출로.

이런저런 쓸데없는 이야기로 시간을 낭비하고 있을 무렵, 멤버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낸다.

눈에 잔뜩 힘주고 들어오는 김승우를 선두로 김태현, 박진우가 차례로 들어온다. 막내 노아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오늘도 또 학교 갔나?

나를 보고, 슬쩍 눈인사를 하는 김태현과 박진우와는 달리 김승우는 슥 쳐다보고는 그대로 지나쳐 마룻바닥위에서 자리를 깔고 스트레칭을 시작한다. 지금 저거 나 무시하는 거 맞지? 어제도 느꼈지만 이 녀석도 참 한결같은 놈이다. 설마 이대로 쭉 말도 섞지 않겠다는 건 아닐 테고.

“자자. 대충 다 온 거 같으니까. 오늘도 또 시작해볼까?”

잠시 후, 어제 봤던 레슨선생이 들어오자, 각자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던 이들이 거의 교관을 마주한 훈련병들처럼 빠릿빠릿해진다. 눈대중으로 안무대형으로 열을 맞춘다. 나는 레슨선생이 별말 없기에 어제와 같이 맨 뒤로 붙었다. 돌연 레슨선생이 나를 가리켰다.

“시작하기 전에 잠깐. 거기 뒤에 서 있는 강민이.”

“네?”

“앞으로 나와 봐.”

내가 비척거리며 앞으로 나가자 멤버들이 시선이 내게 날아와 꽂혔다.

“어제 보니까 동작은 다 외운 것 같던데. 하루 만에 다 까먹은 건 아니지?”

그럴 리가.

“다 기억합니다.”

“그래? 그러면 앞 열 중앙에 서봐.”

“네?”

“그림 어떤지 한번 보려는 거니까.”

눈치를 보고 있던 박진우가 앞 열에서 슬그머니 나와 뒤로 빠지고, 가운데 있던 승우가 잡아먹을 것 같은 표정을 짓더니, 이내 옆으로 한 발 비켜선다.

그리고 내가 그 자리에 들어갔다.

레슨 선생이 뭔가 생각에 잠긴 듯한 표정으로 구도를 보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인다.

“자, 그러면 음악 튼다. 준비하고!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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