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듀스 나노머신-13화 (13/124)

멤버들과의 만남 (1)

멤버들이 뚱한 눈으로 나를 쳐다본다.

환대를 기대한 것은 아니지만 예상했던 것보다 더 별로다. 나는 의식해서 웃었다. 그래도 첫인상은 좋게 남겨야하니까.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고 하잖아.

“자자, 집중!”

나를 데리고 들어온 박호영 팀장이 박수를 치며, 시선을 집중시킨다.

“오늘부터 너희들이랑 한솥밥을 먹게 된 최강민이라고 한다. 모르는 것이 많을 테니 서로 잘 좀 도와주고, 친하게 지내. 나이는 스물 셋으로 승우랑 같고.”

누군가 손을 번쩍 든다.

“실장님 질문이요!”

장요한이다. 다른 멤버들에 비해 유난히 하얀 피부와 살며시 접힌 눈 꼬리가 눈에 들어온다.

나는 이곳에 오기 전 간단하게 다섯 명에 대한 프로필을 들었다.

개인의 특성을 살리기 위해 임시로 포지션을 나눴다고 하는데, 나중에 바뀔 수도 있다고 했다. 말 그대로 어디까지나 임시.

녀석은 포지션은 서브댄서와 서브래퍼를 맡게 될 거라고 한다. 사실 포지션은 ‘메인’자가 붙지 않은 이상 그냥 다 어중간한 거다. 한 마디로 2, 3인자 쯤 된다.

실장이 고개를 끄덕인다.

“어, 물어봐.”

“지금 오신 분이랑 해서 저희 6인조로 데뷔한다고 하던데, 그 소문이 진짜에요?”

“맞아.”

동시에 팀장에게로 향해있던 시선들이 나에게로 꽂힌다.

흥미, 호기심, 약간의 경계. 한마디로 정의내리기 힘든 복합적인 시선이 느껴진다. 헌데, 유난히 한 녀석만 죽일 듯이 나를 째려본다. 처음 들어왔을 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누가 보면 철전지 원수라도 만난 줄 알겠네. 근데 다섯 명이라고 그랬는데, 한명은 왜 안 보이는 거지?

박호영 팀장이 누군가를 찾는 것처럼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러고 보니 막내가 없네? 아직 학교에서 안 끝났나?”

“네.”

아. 맞다. 막내가 아직 고2이라고 그랬지.

“자자, 그럼 난 이만 빠질 테니, 서로들 편히 인사 나누고.”

그나마 내 편에 서 있던 박팀장이 등을 돌려 가버린다. 그나마 믿고, 의지했던 울타리가 사라진다.

꼭 적진 한복판에 떨어진 병사가 된 심정.

조용한 침묵만이 연습실안을 떠돈다. 이내 두 명은 자리에서 일어나 거울을 보며 스트레칭을 한다. 좀 전까지만 해도 죽일 듯이 쳐다보고 있던 놈은 아예 무시하듯 시선도 안 주고 있고, 다른 한명은 멤버들 틈바구니에서 이리저리 눈치를 보느라 눈동자만 데굴데굴 굴리고.

서먹서먹하니 분위기 한번 끝내주네. 나만 그렇게 느끼나?

환영받을 거란 생각은 안했지만, 이건 생각보다 더 심각하다.

그래도 누군가 슬그머니 내게 다가온다. 장요한이다.

개중에는 얘가 가장 붙임성은 좋아 보인다. 눈매도 서글서글한 게 인상도 좋아 보이고.

“뭐, 좀 물어봐도 되요?”

“그러세요.”

“진짜 궁금해서 그러는 건데··· 혹시 진짜 대표님 아들이세요?”

순간 나는 너무 어이가 없어 할 말을 잃었다.

얘, 뭐지? 놀리는가 싶어 봤더니 천진난만한 표정이다.

놀리는 걸로는 보이지 않으니, 좀 모자란 얜가···?

그때 누군가 한숨을 쉬며, 장요한의 뒤통수를 때린다. 퍽소리가 난다.

“멍청아! 말이 되는 소릴 해라. 대표님 독신인 거 회사사람들이 다 아는데······.”

“아씨! 왜 때려!”

때린 놈은 박진우. 서브 보컬과 서브 댄서 담당으로 장요한과는 같은 스무살 동갑내기 친구.

장요한이 뒤통수를 문지르며, 쌍심지를 치켜든다.

“나는 뭐. 질문도 못하냐!?”

“됐다. 내가 진짜 너랑 뭔 말을 하냐? 심심하면 연습이나 더해. 또 지적 받고 질질 짜지 말고.”

“내가 또 언제 질질 짰다고 그래! 너나 잘해!”

“난 지금도 잘하고 있거든?”

“야야! 둘 다 시끄러워. 싸울 거면 정신 사나우니까 나가서 싸우고 와.”

거의 노란색에 가까운 머리카락으로 염색을 한 김태현이 둘을 향해 나가라고 손짓 한다. 데뷔반의 둘째형 김태현이다. 나이는 스물 한 살.

그리고 아직 나타나지 않은 열 여덟 살 막내 노아와 아직까지 나를 본 척 만 척하고 있는 김승우까지.

누구 환영해주는 이 하나 없는 곳에서 나는 진지하게 생각했다.

내가 과연 이곳에서 잘해낼 수 있을까?

*

“하나, 두울, 셋. 바닥 찍고, 턴! 팔 더 높이 치켜들고! 팔 더 들어! 더어!!!”

30분 후. 연습실로 레슨선생이 들어오고, 나를 제외한 넷, 아니 조금 전에 도착한 노아까지 다섯은 노래에 맞춰 안무를 연습 중이다.

물론 나는 첫날이라 안무를 모르는 까닭에 20분 째 견학 중이다. 말이 좋아 견학이지 방치나 다름없다. 이곡에 맞춘 안무를 벌써 3주 가까이 연습을 했다고 하던데, 레슨 선생은 나를 붙잡고, 1:1레슨을 해줄 생각은 조금도 없어 보인다.

“안무 잘 보고 눈에 익혀. 녹화했다가 그거 보고, 동작 따고 순서 외우고. 아무것도 모르는 신입생 붙잡고 동작 하나하나 가르쳐야할 만큼 한가하진 않으니까. 여기 학원 아니다. 친절한 걸 기대하려면 돈 주고, 학원가서 배워.”

딱 보기에도 센 언니 포스가 좔좔 흐르는 레슨선생은 그 외형적인 모습만큼이나 말도 거침이 없다. 레슨선생들은 하나같이 다 저런가? D&M에 있을 때 담당이었던 레슨선생도 딱 저런 느낌이었는데.

나는 한쪽 구석에 앉아 멤버들의 춤 솜씨를 관람했다.

춤은 이들 중에선 김승우가 제일 낫다. 유연하고, 부드러운 맛은 없는데, 동작하나하나에 박력이 흘러넘친다. 춤은 자신감이 생명이라, 자신감이 없으면 저런 폼도 나오질 않는다.

나머지는 수준이 다 비슷비슷하다.

그렇게 안무를 지켜보고 있는데, 음악이 끊긴 시점에 김승우와 눈이 마주쳤다.

다른 이들과는 달리 나를 의식하는 게 느껴진다.

듣기로는 4년 전엔가 전국 청소년댄스에서 대상을 받아, 캐스팅 됐다고 하던데 춤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1시간의 안무연습이 끝나고, 멤버들이 모두 바닥 위로 주저앉는다.

레슨선생도 달뜬 숨을 고르며, 멤버들에게 말을 하며 허리춤에 손을 얹는다.

“방금 동작들 잊어버리지 말고 잘 기억해둬. 너희들 데뷔하고 나면 배운 동작들을 기초로 쪼개고, 다듬어서 그걸로 안무 짤 테니까. 손대면 바로 튀어나오게끔 연습해 놓으란 말이야. 다들 알았어?”

“네.”

“그리고 신입생.”

돌연 레슨선생의 시선이 나에게 향했다. 순간 과녁판이 된 것처럼 시선들이 전부 쏠린다.

“이름이 강민이라고 했지?”

“네.”

“어때, 애들 춤추는 거 보니까. 따라갈 수 있겠어?”

있지. 있지 말고. 그렇지 않아도 영삼이한테 내가 조금 전에 물어봤다. 쟤네들 춤 내가 따라할수 있겠냐고.

-한 번 본 건 뭐든지 자동녹화가 됩니다. 녹화영상을 신호화해서 좌우 대뇌피질에 보내주면 간단합니다.

라고 아주 쉽게 된다더라.

“네, 순서는 대충요.”

나는 최대한 겸손하게 말했다. 헌데, 애들이 하나같이 놀란 표정을 짓는다. 심지어는 물어본 선생조차.

잘해야 반복된 동작 3번, 4번 정도를 봤을 뿐인데, 이 복잡한 동작들을 벌써 다 외웠냐는 그런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특히 김승우의 표정이 가장 볼만했다. 믿을 수 없다는 표정. 아마 내가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안 믿을 것 같다.

“호오, 그래? 그러면 나와서 맨 뒤에 붙어봐. 어제 춤 추는 거 보니까 센스가 좀 있는 것 같던데.”

아, 어쩐지 낯익다 싶었더니, 어제 오디션 현장에 있었던 선생이었구나.

“아직 다 외우진 못했는데요.”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살짝 튕겼다. 너무 잘난체 하는 것처럼 보일까봐.

“괜찮아. 느낌만 볼 테니까 애들 동선만 방해하지 말고 눈치껏 움직여.”

레슨 선생이 손짓하며 웃는다. 저렇게까지 말하는데 어쩔 수 있나. 내가 못 이기는 척 일어섰다.

“그러면 조금만 춰볼게요.”

쭈뼛거리며 가장 뒷줄에 붙었다. 앞 열에 있는 멤버들이 반걸음씩 앞으로 슬금슬금 더 붙는 것이 보인다. 걱정 마라, 이것들아. 뒤에서 엉덩이 걷어차진 않을 테니까.

레슨선생의 신호에 맞춰 멤버들이 다시 자리를 잡는다. 음악이 나오기 직전 멤버들의 표정들을 살폈다. 하나같이 호기심과 기대, 궁금증이 뒤섞인 얼굴이다. 그리고 맨 마지막엔 김승우와 눈이 마주쳤다.

그의 얼굴에 딱 그렇게 쓰여 있었다.

‘네가 춰 봤자 나만큼 추겠어?’

그게 나를 자극했다.

레슨 선생의 신호와 함께 음악이 시작되고······.

내가 마룻바닥 위로 첫발을 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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