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N엔터테인먼트 (5)
5분 뒤, 연습실 문을 열고 한 명의 인물이 들어온다. 그리고 20분 뒤에 또 두 명이 들어오고. 연습실에서 들어온 지 30분쯤 될 무렵에는 구경하는 이들로 가득해진다. 어느 팀의 팀장, 실장, 안무가, 레슨 선생 등. 소문 듣고 온 직원들까지. 이러다가는 대표까지 나와 구경할 기세다.
나는 거의 40분에 가까운 시간동안 노래를 부르고, 춤을 췄다.
노래는 댄스, 발라드, 락발라드곡. 가리지 않고, 주문대로 골고루 불렀다. 간혹 날아드는 질문에 소신껏 대답도 해주고.
그것으로도 성이 안찼는지 사람들이 마지막에는 나를 녹음실에 밀어 넣었다. 음향 장비를 모두 갖춘 곳에서 제대로 녹음을 한번 해보자면서. 나야 좋지. 별로라면 이런 제안도 하지 않았을테니까.
테스트용 영상도 찍고, 노래도 녹음했다.
노래 중에 간간히 자기들끼리 속닥거리기도 하고, 노래 한곡이 끝날 무렵에는 아예 몸을 돌려 자기들끼리 즉석 회의를 한다.
아, 궁금해.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거야?
답답함을 이기지 못하고, 영삼이에게 슬쩍 물었다.
“영삼아, 혹시 밖에서 하는 이야기 들을 수 있어? 그런 기능은 없나?”
-있습니다. 외부 오디오 모드를 실행할까요?
오, 그런 게 있었어? 그러면 진작 좀 말해주지.
“당장 실행해줘.”
-노래가 나무랄 데가 없네요. 나쁜 버릇 같은 것도 보이지 않고. 당장 데뷔시켜도 문제가 없겠어요.
-댄스도 흠잡을 데가 없어요. 춤에 그루브도 살아있고. 저런 애들은 그냥 손만 뻗어도 간지가 나거든요. 팀으로 가야될 거 같지 않아요? 그림 좀 나올 거 같은데.
-팀도 좋지만 솔로도 나쁘지 않아요. 얼굴이 되니 집중도도 높고. 아까 영상 테스트한 거보니까 카메라 빨도 나쁘지 않던데요?
-나쁘지 않긴, 그 정도면 아주 끝내주지. 반사판 안 대도 아주 얼굴에서 철철 윤이 나던데. 아마 무대 위에서 비눗방울만 불어도 팬들이 좋다고 난리칠걸?
-노래를 생각하면 솔로도 좋지만, 춤이 아깝잖아요, 춤이. 저 춤을 갖고, 발라드 가수요? 절대 안 될 말이죠. 그건 재능을 썩혀두고 있는 거라고요!
아, 저런 말들을 나누고 있었어?
반응을 보니 나쁘지는 않은 분위기다. 아니, 정확히 말을 하자면 상당히 좋다. 이미 연습 생으로 받아주느냐 아니냐는 논의 대상이 아니었다. 어떤 식으로 데뷔를 시켜야 할지로 고민이었지.
그런데 이런 말도 튀어나왔다.
-근데 저 친구 어제까지 D&M에 있었다면서요? 혹시 신변에 무슨 문제 있는 거 아니에요? 회사에서 저런 애를 내보냈다고요? 미치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최형식 실장이 대답한다.
-아, 그건 제가 한번 이야기해볼게요. 저도 궁금하기는 하네요. 조용히 불러내서 한번 물어볼게요.
결국 나는 최형식 실장과 따로 면담을 했다. 하긴 이런 이야기는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지. 나는 그냥 뭐, 그냥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그게 대단한 비밀이라고.
여자친구와 배우 한준혁과의 나의 삼각관계, 그리고 카페에서 알바하다 걸려 방출됐다는 이야기를 털어놓으니, 그제야 안도어린 표정을 짓는다.
그 후로 계약문제는 급물살을 탔다. 본부장이 당장 계약서를 가지고 오라고 하고, 조건도 D&M에서 할 때보다 훨씬 유리한 조건으로 계약을 했다. 아, 그리고 알바금지에 대한 예외조항도 넣어달라고 했다.
이건 혹시나 몰라서, 사람 일이란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거니까.
계약을 끝내고, 회사를 나오자 최형식 실장이 뒤따라 나오며 인사를 건넨다.
“강민씨, 오늘 수고했어요.”
“수고는요. 그리고 이제 말 놓으세요. 최 실장님.”
“아, 그러면 그렇게 할까?”
기다렸다는 듯이 말을 놓는다.
나도 이게 편하다. 이젠 제 식구라 이거지. 연습 생들에게 존대를 하는 실장은 어느 회사를 가도 없다. 그건 철저하게 계급사회로 이루어진 연예계 바닥에서 정7품 쯤 되는 행정관이 노비에게 존대를 하는 격이랄까. 말이 안 되지.
“내일 오전에 다시 회사로 오면 되는 거죠?”
“응, 내가 집까지 데려다주고 싶은데, 나도 스케줄이 있어서 말이야. 은채 촬영현장에 가 봐야하거든.”
아, 맞다. 이 양반 서은채 매니저라고 그랬지.
“아참, 그리고 인사가 늦었네요.”
나는 고개를 숙였다.
“기회 주셔서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내 인사를 받은 최형식이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내 어깨를 툭툭 두드린다.
“감사는 무슨. 오히려 내가 더 고맙지. 혹시 회사 다니다가 무슨 문제 있으면 어려워하지 말고, 연락주고. 도와줄 것이 생기면 내가 힘 닿는 데까지 도와줄 테니까.”
“알겠습니다.”
*
늦은 오후.
3층에 자리하고 있는 전체 회의실 안.
가장 상석에는 김관수 본부장과 그 아래 양옆으로는 박호영 팀장과 한민아 팀장, 회사 소속 보컬 트레이너 둘에, 레슨 선생, 안무가, 기타 직원들까지. 총 13명의 인원이 테이블에 앉아 머리를 맞대고 있다.
최강민이 춤을 추고 있는 영상이 모니터를 가득 채우고 있고, 오늘 낮에 녹음실에서 불렀던 노래파일을 정지 시킨 지 채 5분도 안된 시점이다.
“다들 어떻게 생각해?”
김관수 본부장이 불쑥 물었다.
보컬 트레이너 한 명이 기다렸다는 듯이 입을 연다. 아까 전부터 계속 감탄을 내뱉고 있던 이들 중 한 명이다.
“와, 이건 뭐. 음정, 박자는 둘째치고라도 딕션, 리듬감도 무척 좋아 가사가 아주 귀에 쏙쏙 박히네요. 이 정도로 정확히 노래 부르는 사람은 기성가수 들 중에서도 극히 드문데. 발음이 좋아서 연기를 시켜놔도 잘할 거 같은데요?”
“거, 무슨 끔찍한 소리를. 얘, 춤추는 걸 좀 봐요. 당장 비보이 대회 내보내도 본선진출은 끄떡없어 보이는데. 배우요?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해요?”
“아니, 누가 배우 시키자고 했나? 해도 잘 할 것 같다고 한 거지.”
건너편에 앉아 있던 안무가 선생의 핀잔에 그녀가 입술을 삐죽인다.
본부장이 상황을 정리했다.
“음, 실력 좋다는 데에는 다들 이견이 없는 것 같고. 팀이 좋을지 솔로가 좋을지 의견들 좀 모아보자고.”
박호영 팀장이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이건 볼 것도 없이 그룹으로 가야죠. 요즘 대세이기도 하고. 솔로도 나쁘지는 않지만 요즘에는 해외 진출하려면 무조건 보이그룹으로 가야해요. 한류열풍에 동참 안 하실 거예요?”
그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인다.
“하긴, 필요하면 그룹으로 데뷔했다가 나중에 솔로로 음반을 내도 되긴 하지. 휴식기에는 개인 활동을 가질 수도 있고. 그런데 말이야. 지금 시기가 좀 애매해서.”
“뭐가요?”
“지금 데뷔 반 보이그룹 한창 준비 중인데, 애들 무대 올리고 나면 또 다시 준비시키는데 빨라도 1, 2년은 걸릴 거 아냐? 그렇게 되면 최강민이 나이가 스물 중반인데. 아이돌치고는 나이가 너무 많지 않아?”
“그것도 문제네요.”
“으음, 어떻게 한다.”
김관수 본부장이 턱을 매만지며 생각에 잠겼다.
“그냥 지금 데뷔 반에 넣자니까요. 5인조에서 6인조로. 센터로 팍 꽂아 넣으면 그림 딱 나올 것 같은데.”
애초에 박호영 팀장과 한민아 팀장은 그렇게 의견을 피력했지만, 부정적인 여론도 있었다.
특히나 연습생들과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내고, 지켜보던 시간이 많은 레슨선생들은 대부분 고개를 저었다.
“그게 그냥 간단한 문제가 아니에요. 이미 데뷔반 애들이야 같이 연습생 생활을 오래해서 동고동락한 전우들 같겠지만, 느닷없이 듣보잡 애가 끼어들어 센터차지 한다고 하면, 북한 괴뢰군 같이 느껴질 텐데. 걔네들이 가만히 있겠어요? 들들 볶아댈게 뻔한데, 그 등쌀에 얼마 견디지 못하고 나가떨어질 걸요?”
“에이, 또 뭘 그렇게까지······. 실력 좋은 애 들어오면 팀 수준 높아지고, 서로 좋은 거지. 너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거 아니에요?”
“어··· 어!? 비즈니스는 저희들이나 따지죠. 연습생들은 그런 거 생각 안 해요. 같은 그룹 멤버들끼리도 얼마나 경쟁이 치열한데요? 불화설이 괜히 생기는 게 아니라니까요.”
“그렇다고 다른 대안이 있는 건 아니잖아요. 저런 인재를 썩혀둘 수도 없는 노릇이고. 어차피 이 바닥이야 비즈니스 관계로 굴러가는 거니, 애들도 결국 다 납득하겠죠. 일단 실력이 되잖아요. 실력이.”
“뭐, 그건 맞는 말이지만.”
한동안 회의는 계속 이어지고, 의견은 크게 두 가지로 좁혀졌다.
5인조 데뷔 반에 넣어 6인조체제로 갈 것인가, 아니면 A반에 넣어 다음 보이그룹을 결성할 때까지 추이를 지켜볼 건지.
결국 의견은 전자 쪽으로 기울었다. 당장 내일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게 이 바닥인데, 다음을 기약하기에는 그 미래가 너무 불투명했다.
*
다음 날. R&N 지하에 위치한 연습실.
장요한이 황급히 연습실로 들어오며 소리쳤다.
“형들, 혹시 그 소식 들었어?”
“무슨 소식?”
“오늘 우리 팀에 누가 한 명 더 온다고 하던데?”
물을 마시고 있던 김승우의 고개가 홱 하고 돌아갔다.
“누가?”
“그건 나도 모르지. 확실한건 우리 연습생은 아니래. 외부사람이라던데?”
“나도 오다가 어제 미팅한 직원한테 들었어. 지금 멤버에 한 명 더 충원해서 6인조로 데뷔 팀 꾸려질 것 같다고 하더라고.”
김승우의 한쪽 입 꼬리가 비뚜름하게 올라간다.
“지금 다 차려놓은 밥상에 들어와서 숟가락만 얹고 가겠다는 거야? 걔가 무슨 대표님 아들이라도 된대? 우리가 여기까지 오는데 얼마나 개고생을 했는데. 나이는 몇 살이래?”
“형하고 동갑이라던데. 근데, 그 형 비주얼이 끝판 왕이래. 키도 크고, 실력도 장난 아니래.”
“실력은 개뿔. 그런 놈이 여지껏 잠자코 있다가 하늘에서 뚝 떨어졌겠어? 소문이 났어도 벌써 났겠지. 그리고 형은 누가 네 형이야!?”
김승우가 쥐고 있던 빈 패트병이 우그러지며, 괴상한 소리를 낸다. 멤버들이 눈치를 보며 슬그머니 입을 다물었다.
눈을 치켜뜬 김승우가 중얼거리듯 내뱉는다.
“한번 보자고. 얼마나 대단한 놈이 오는지.”
그때 멤버 한 명이 밖을 향해 가리켰다.
“어? 팀장님이 누구랑 같이 오고 있는데? 혹시, 온다는 사람이 저 사람 아니야?”
홱. 동시에 네 명의 시선이 밖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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