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N엔터테인먼트 (4)
“그러게 말이에요. 곡수집도 잘 진행되고 있고, 앨범 수록 곡 안무도 벌써 연습 중이라면서요? 준비는 착착 잘 진행되고 있는데, 미치겠네. 본부장님은 뭐라고 하세요?”
“뭐라시긴. 정 안되면 있는 대로 팀 꾸려서 준비하라고 하시지. 그래서 말인데, 한 팀장은 그래도 이들 중 누가 가장 나아 보여요? 센터 감으로?”
한 팀장이 고민하는 표정을 짓더니, 다섯 명의 프로필을 늘어놓고 고심하더니, 가장 우측에 있는 이를 지목한다.
“그래도 얘가 이중에는 가장 낫네요.”
“김승우요?”
“네. 저는 얘가 가장 괜찮아 보이는데. 얼굴선도 굵직한 게 남자답고, 주목도도 있고. 이런 애가 중간에서 딱 받쳐주면 중심 있어 보이거든요.”
“하긴, 얘네 들 중에서는 가장 큰형이고, 나름 리더십도 있는 것 같아요. 있긴 한데······.”
“왜요? 뭐 걸리는 거 있어요?”
“애가 좀 음흉스러워요. 질투도 심한 것 같고. 자기중심적이랄까?”
“센터라면 좀 그런 마인드도 괜찮지 않아요? 우유부단한 것 보단 나은 거 같은데.”
박팀장이 손사래를 쳤다.
“에이, 모르는 소리마세요. 데뷔하고 방송타 봐요. 팀원들 중 누가 자기보다 조금 더 카메라에 많이 잡히던가, 인지도가 조금 더 높으면 그거 못 견뎌 해요. 그게 쌓이고, 갈등이 돼서 터지면 엄청나거든요.”
“보이 그룹들도 그런 게 있어요? 걸 그룹들만 그런 줄 알았는데.”
“말도 마요. 걸 그룹보다 보이그룹들이 더 유치할 때가 많아요. 어쩔 때 보면 중2병 걸린 말기환자 집단 같다니까요?”
“아, 그래요? 그러면 박팀장님은 누가 센터 감으로 가장 나은 것 같아요?”
박팀장이 늘어져있는 프로필을 훑으며, 머리를 벅벅 긁었다.
“그러니까 더 미치겠다는 거죠. 그래도 승우가 개중엔 가장 나은 것 같은데, 이게 필이 팍 꽂히는 정도는 아니라서···. 아씨, 이번 그룹은 꼭 성공해야하는데. 누구 괜찮은 애 진짜 어디 없나?”
“그래서 그런 말이 나오나 봐요. 아이돌 그룹 센터는 하늘이 내려주는 거라고.”
*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모르는 번호.
고개를 갸웃하며, 핸드폰을 손에 쥐고 통화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최형식 실장님 핸드폰이죠?
“네, 제가 최형식인데요.”
-저 혹시 기억하실지 모르겠는데요. 최강민이라고, 어제 홍대카페에서 노래 불렀던.
최형식은 이름을 듣는 순간 어제 뜻하지 않게 홍대카페에서 감명을 줬던 한 청년이 떠올랐다. 정신이 번쩍 든다. 노래 첫 소절을 듣는 순간 딱, 애다. 싶었는데 이미 다른 회사 연습생이라길래 한참동안이나 아쉬워했지.
“아, 물론이죠. 기억납니다.”
-어제 실장님이 그러셨죠? 사람일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명함 갖고 있으라고.
“네, 분명히 제가 그랬죠.”
-저 D&M에서 나오게 됐어요. 혹시 그쪽 회사 오디션 볼 수 있나 해서 전화 드려봤어요.
순간 최형식 머릿속에 의아함이 떠오른다.
당장 무대에 올려놔도 손색이 없는 애를 연습 생으로 4년간 썩혀둔 것도 모자라 끝내 방출을 한 거지? 크게 보자면 이유 중 둘 중 하나다. D&M 안목이 동태 눈깔이던가, 그도 아니면 최강민이라는 인간이 데뷔도 못 시킬 만큼 큰 결함을 갖고 있던가.
혹시, 춤이 아예 안 되는 건 아닐까? 그럴 수 있다. 어제는 노래와 연주 실력은 확인했지만, 춤추는 건 확인하지 못했으니까. 그것도 아니라면 연예계 생활에 지장을 줄만큼 정신병을 앓고 있나?
별의 별 오만가지 생각이 다 떠올랐다 사라진다. 뭐, 그거는 직접 만나봐서 알아보면 되겠지.
만일, 최강민이 D&M을 나오게 된 이유가 후자가 아닌 전자의 이유라면···.
“최강민씨. 지금 어디에요? 우리 만나서 이야기할까요?”
땡 잡았지 뭐.
*
“뭐, 지금? 웬일이야. 네가. 그런 부탁을 다 하고. 알았어. 어차피 지금 회사니까 한 번 데리고 와보던가. 어··· 어. 그래 조금 있다가 보자.”
박 팀장이 핸드폰을 내리자, 옆에 앉아 있던 한 팀장이 궁금하다는 눈초리로 묻는다.
“누군데 그래요?”
“현식이요. 서은채 일봐주고 있는 실장.”
“아, 저도 그분 알아요. 헌데 그분이 왜요? 괜찮은 가수 지망생이라도 찾아냈대요?”
“그건 나도 모르겠고. 누구 좀 데리고 올 테니 괜찮은지 봐 달라네요.”
“누구지? 사촌 동생쯤이라도 되나? 최 실장님이 원래 그런 부탁 종종해요?”
박 팀장이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요. 처음이에요. 자기랑은 아무 상관없는 애라는데, 실력이 장난이 아니라고 호들갑떨고 난리도 아니네요. 진짜 괜찮은 애라도 찾아냈나보죠.”
최근 오디션 경쟁프로그램이 부쩍 늘어남에 따라 신인 기근에 목말라 하던 한 팀장도 그 말에 눈이 번쩍 떠졌다.
“남자래요, 여자래요?”
“남자요. 스물 셋이라는데, 키도 185쯤 되고, 외모도 어지간한 애들 압살하다고 하던데요?”
압살? 귀가 솔깃해진다.
“그래요? 언제쯤 온다는데요?”
“근처라고 하니까 한 5분 후쯤? 아, 지금 나가봐야겠네요.”
박 팀장이 자리에서 일어서자, 한 팀장도 그를 따라 자리에서 일어섰다.
“괜찮다면 저도 잠깐 따라가서 구경해도 될까요? 도대체 압살한다는 외모가 어느 정도인지 궁금하기도 하고. 머리도 식힐 겸.”
박 팀장이 피식 웃으며 손짓했다.
“그래요 그럼. 같이 나가요.”
*
본관 지하에 위치한 연습실.
이곳은 아까 전부터 정적에 휩 쌓여 있다.
내가 노래를 끝 마쳤을 때에는 두 사람이 넋을 놓고, 나를 쳐다보고 있다. 그리고 그런 두 사람을 뿌듯한 눈빛으로 최형식이 쳐다보고 있고.
“······팀장님! 박 팀장님?”
“어······ 어?”
최형식이 팔을 툭툭 치자, 그제야 정신을 차린 박 팀장이 나를 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아, 좋네요. 노래 잘 들었어요. 잘 듣기는 했는데······.”
박팀장의 눈동자가 좌우로 흔들린다. 그의 눈동자는 뭔지 모를 불안감에 젖어 있다.
그의 머릿속에는 한 가지 생각으로 가득 했다.
-노래는 됐다. 이정도면 미친 거나 다름없지. 헌데, 만일, 춤이 안 되면 어떻게 하지?
그가 종종 입버릇처럼 말하는 말이 있다. 신은 공평하기에 인간에게 여러 재능을 몰빵해주지 않았다고.
노래가 되는 애들은 춤이 안 되고, 춤이 되는 애들은 노래가 안됐다. 그도 아니면 외모가 떨어지거나. 한 가지 방면에서만 특출한 재능을 발휘하기도 어려운데, 두 가지, 세 가지 분야에서 특출한 재능이 있다면 그건 이미 사람의 범주를 벗어난 거다.
그래, 인간인 이상 다 잘하는 건 말도 안 되지. 말도 안 되는 거 잘 알고 있는데······.
진짜로,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물었다.
“혹시, 춤도 출줄 알아요? 좀 볼 수 있을까요?”
“여기서요?”
“아주 조금만이면 되는데. 그냥 리듬감만 보려고요.”
“네. 그러면 조금만 춰볼게요. 혹시 음악 있나요?”
“물론이죠.”
“네, 그러면 조금 빠른 곡으로 부탁드릴게요.”
둥둥둥-
120bmp의 요란한 비트음이 연습실을 때려댄다. 슬슬 리듬을 맞추는 가 싶더니 이내, 발이 움직이고, 몸이 움직이고, 마지막에 손이 뒤따른다.
박 팀장은 기도하는 심정으로 그것을 지켜봤다.
율동만 아니면 된다. 저 노래와 외모정도면 율동 수준만 아니라면 어느 정도 커버가 가능하다. 진짜 최악의 경우 영 못 봐줄 정도면 솔로나 듀엣가수로 데뷔를 시켜도 좋다. 그냥 썩혀두기에는 노래 솜씨가 너무 아까우니까.
그런데,
“······.”
언제부턴가 박팀장이 턱을 아래로 쭉 빼놓고, 초점 없는 눈으로 응시한다.
가만 보니 한 팀장도 같은 표정이다. 음악이 나오는 2분여정도동안 무대를 휩쓸고 다닌 내가 숨을 몰아쉬며, 허리를 폈더니 그제야 최형식이 음악을 정지시키고, 박 팀장를 쳐다본다.
나는 그 둘의 표정을 보는 순간 직감했다.
아, 됐구나.
-본부장님. 차, 찾았어요. 찾았어!
“찾아? 뭘?”
-센터요!
“앞뒤다 잘라먹지 말고, 천천히 차근차근 이야기를 해. 무슨 센터를 찾았다는 건데? 야야, 그리고 살살 좀 말해. 나 귀 안 먹었어.”
본부장 김관수는 갑자기 전화를 걸어서 다짜고짜 고함치는 박호영 팀장 때문에 이맛살을 찌푸렸다.
-이번에 회사에서 보이그룹으로 데뷔시킬 팀이요. 거기 센터.
“이건 또 무슨 참신한 헛소리야. 센터는 승우 세운다고 했잖아. 그런데 또 무슨 센터를 찾아?”
박 팀장은 자신이 너무 흥분했다는 걸 깨달았는지 깊이 숨을 들이쉬었다 토해내며 말했다.
-그러니까 그게요. 지금 제가 오늘 한 팀장이랑 같이 어떤 애 오디션을 봤는데······.
“오디션? 정기오디션 보는 날은 오늘이 아니잖아?”
-아, 최형식이 직접 데리고 온 애가 한명 있거든요. 아무튼 기획팀 한 팀장도 옆에 있어서 같이 봤는데요.
“봤는데?”
-진짜 미쳤더라고요. 애가.
종종 실없는 소리를 하긴 했어도, 일적으로는 농담을 안 하는 사람이다. 뭘 보고 왔는지는 몰라도 잔뜩 흥분한 목소리기에 본부장이 호기심어린 표정을 지으며, 턱을 문질렀다.
“대체 어느 정도기에 그래?”
-혹시, 지금 바쁘세요?
-아니 딱히.
“그러면 지금 지하연습실로 내려 와보세요. 빨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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